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56
26화
“지, 진무 님! 전 아닙니다!”
진무의 접근에 기겁한 이생이 화들짝 놀라며 부인했으나, 공허한 외침일 따름이었다.
우두둑, 우두두둑.
깍지 낀 손에서 나는 위협적인 소음과 고개를 슬쩍 들고 내려다보는 눈빛, 그리고 입술 새로 흉악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송곳니.
그랬다. 진무는 이미 그를 범인으로 확정한 상태였다.
“당연히 아니시겠지. 아무렴 맞는다고 하겠어? 그런데 귀모가 이미 날 안다지 않니?”
“그, 그건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럼 청상이 알까? 아니면 황신? 그도 아니면 협비?”
“진무 님, 아닙니다, 정말 아닙니다.”
“그래, 아니겠지. 설마 방귀 뀐 놈이 지가 뀌었다고 하겠어?”
“그, 그게 무슨?”
“무슨 말인지는 이제부터 알게 될 거야.”
“진뭅…… 읍! 으읍!”
진무가 활짝 편 손을 쭉 뻗어 턱을 잡는 바람에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게 된 이생이 눈만 동그랗게 떴다.
“움직이지 마라. 잘못 맞으면 뼈 상한다.”
“읍! 으읍! 읍읍읍읍!”
“아! 생각해 보니 니네 안 죽지?”
“……!”
“아주우~! 잘됐네.”
진무가 씩 입을 찢어 웃으며 힘껏 움켜쥔 주먹을 높이 쳐들었고, 이생은 순간 자신이 잘됐다는 말을 들은 건지 잘 뒈졌다는 말을 들은 건지 고민했다.
“으~읍!”
콰직!
“커어억! 지, 진무 닙…….”
빠각!
“쿠학! 진뭅…….”
쩌어억!
“지…….”
콰직, 콰지직, 콱콱!
진무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이생의 몸에 지금까지 살아오며 수련해 온 구타신공(?)을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새겨 넣었다.
콰지직, 콰직!
뼈가 부러지고, 살점이 문드러지고…….
“꾸에에엑!”
이생은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 댔다.
어느샌가 박자를 타며 예술의 그것으로 화한 구타음과 이생이 내지르는 처절한 비명이 소름 끼치는 조화를 이뤘지만 황신과 청상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익히 봤고, 당한 적도 많았으니까.
그럼 협비는?
역시나 놀라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지계가 어떤 곳인가. 죄지은 망자에게 형벌을 내리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도산옥은 영혼들의 살점을 고기처럼 썰고 다지며, 또다시 살려서 썰고 다지고를 반복하는 무시무시한 곳이다.
그런 곳의 주인이 구타를 보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겠는가? 사방이 피로 흥건히 젖는 것이 일상인데…….
하지만 문득, 그의 눈에 이채가 어리기 시작했다.
“흠, 이생이라는 괴가 참으로 맷집이 좋군. 저리 맞고도 버티다니. 죽어도 벌써 죽었어야 마땅한데…….”
“…….”
협비의 감탄에 청상과 황신이 동시에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홱 돌렸다.
“뭐 어째? 맷집이 좋아? 이런 씨부랄 놈아, 니 눈깔엔 저게 맷집이 좋아서 저런 걸로 보이냐?”
“으응? 뭔 부랄? 뭐가 어째?”
협비는 황신의 원색적인 비난에 눈을 치켜떴다가, 이내 의아하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뭐지? 입이 원래부터 걸걸했던 총아, 아니 황신 놈은 그렇다 치고, 진무와 함께 온 놈의 눈깔은 또 왜 저렇단 말인가?
뭔가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는 가운데…… 또 뭔가 이유를 알 수 없는 독기하며…… 뭐지, 대체?
“하여간 모르는 새끼들이 씨부렁거리는 건 잘도 씨부렁거리지. 저게 그냥 구타인 줄 알아? 어?! 맞을수록 정신이 또렷해지는 그런 구타라고!”
“이보게, 신. 어찌 언성을 높이는가? 그냥 내버려 두게. 경험도 해 보지 않은 도산옥주께서 저 고통을 어찌 안다고?”
“…….”
청상이 황신을 말리며 협비를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협비는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대체 뭔데, 이 무시당하는 느낌은?
“씨발, 아까 저러셨어야 했어. 그냥 뒈져서 회천옥에서 깨어나게 할 게 아니라 저랬어야 했다니까? 그럼 옥주고 나발이고 피똥을 싸면서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이 볼만했을 텐데…….”
“어허, 황신. 그만하게. 옥주님께서 무안하시겠네.”
황신과 청상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에 협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런 썩어 문드러질 것들이 얻다 대고 야자에 욕설, 무시까지 함부로 하고 지랄이야? 내가 진무 놈한테 졌지 니들한테 졌냐?
당장 둘의 모가지를 꺾어 버리려다, 협비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만, 근데 뭐랬지? 맞을수록 정신이 말짱해져?
그게 뭔?
“도산옥주님.”
“응?”
청상의 은근한 부름에 협비가 의아하게 쳐다봤다.
“저기 보이시죠?”
“…….”
“왠지 이생의 몸부림이 아까보다 더 활발해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신가요?”
“그러고 보니…….”
“목청도 더 커졌죠?”
“……그것도 그렇고.”
협비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구타는요. 맞으면 맞을수록 정신이 번쩍 들어요. 기절? 그딴 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죠. 맞는데 정신을 잃을 수 없으니 고통이 말도 못 합니다.”
“아니, 어찌 그런?”
“보아하니 더 능숙해지신 거 같네요. 그리고 대충 끝나 가는 것 같고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쉬는 청상을 보며, 협비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도산옥에 도입하면 죄수들을 징벌하는 데 꽤 도움이 될 것도 같아서였다.
그리고 청상의 말마따나 신들린 구타는 거의 끝자락에 다다르고 있었다.
한데 그 순간.
퓻!
진무의 손에 멱살 잡혀 축 늘어져 있던 이생의 몸에서 무언가가 솟구치더니, 퍽 소리를 내며 깨지듯이 사라졌다.
“……어? 저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의 정체를 알아봤는지 협비가 눈을 크게 떴다.
“왜? 뭐?”
진무가 고개를 홱 돌려 묻자 협비가 그제야 모든 것을 알겠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그랬군요. 귀모님께서 눈을 붙여 두셨던 모양입니다.”
“눈?”
“예.”
“그러니까 귀모가 눈깔을 떼서 붙였다고?”
“예? 아니, 그게 그런 게 아니라…… 음, 마력으로 만든 일종의 공명체 같은…… 거랄까요?”
“……?”
“그게 뭐냐 하면…….”
“됐어, 시시콜콜 설명은 무슨. 어쨌든 이생의 몸에다가 눈깔 같은 걸 붙여서 날 감시했다는 거 아냐?”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아마도 진무 님께서 이생에게 가한 고통이 한계치를 초과해서 저절로 떨어져 나간 것 같습니다.”
“…….”
협비의 말에 진무가 이생을 힐끗 쳐다봤다.
“그러게…… 끄윽, 제가 아니라고…… 끄으으…….”
“…….”
진하디진한 고통의 여운에 썩은 가지처럼 흐물흐물해진 이생이 꺼져 가는 목소리로 끝까지 제 무고를 항변했다.
“아마 이생은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
결국 이생의 잘못은 아니라는 소리다. 진무는 눈을 살짝 내리깔며 생각에 잠겼다.
흠, 그럼 괜히 팬 건가?
아니지. 지은 죄가 좀 많았으면 지계로 왔겠어? 저런 놈은 이유 없이 맞아도 싸다.
하지만 뭐, 그래도…… 사과는 해 둬야지. 기껏 신분 위조까지 해 줬는데.
“쳇, 미안하게 됐다. 감시당했다는 생각에 내가 너무 화가 나서.”
“괜찮…… 끄으…… 습니다.”
“…….”
괜찮다 하는 모습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 것인지 진무가 이생을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있는데 이대로 고통을 느끼게 하는 건 도리가 아니지.”
“……예?”
“니들 죽으면 회천이라는 곳에서 부활한다며?”
“…….”
진무의 말을 멍하니 곱씹던 이생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가 뭘 할지 예상이 된 것이다.
“자, 잠깐만…… 설마 지금?”
“이놈아, 그럼 계속 고통스러울래? 잠깐 아프고 말자.”
“……!”
곧바로 진무의 손이 머리를 우악스레 움켜쥐었다. 이생은 자신에게 닥쳐올 운명을 예감했다.
이런 씨발!
아무리 자신들이 끝없이 부활하는 운명이라지만, 그렇다고 죽일 생각을 해? 뭐 이런 미친 신선 놈이 다 있단…….
뿌드득!
“끄아아악!”
처절한 단말마를 끝으로, 이생은 그대로 절명해 버렸다.
솨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이 바람에 흩날리는 재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죽었으니 혼이 이동된 것이었다. 회천으로…….
“황신.”
“예! 천주님.”
“니가 부활한 망자들을 데려오는 일을 했었다고 했지?”
“예.”
“가서 데려와라.”
“예? 이생을 계속 데리고 다니시려고요?”
“어.”
“왜요? 무지하게 나쁜 놈인데?”
“상관없어. 너나 나는 착한 놈이었냐? 그리고 녀석이 무슨 죄를 졌든 그건 나와 만나기 전의 일이니까. 나를 따르기로 한 놈을 그냥 둘 순 없지. 따로 약속한 일도 있고.”
“음, 알겠습니다. 속히 다녀오겠습니다.”
명을 받은 황신이 한달음에 사라진 뒤, 진무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생의 몸에 들러붙어 자신의 모든 것을 감시한 귀모의 눈. 그렇다면 그녀가 자신의 정체를 전부 알게 된 것일까? 그럼 곤란한데…….
“이봐, 협비.”
“말씀하십시오.”
“혹시 그 귀모의 눈이라는 거, 듣는 기능도 있어?”
“제가 알기론 아닙니다. 그저 볼 수 있다고만…….”
“그래? 그나마 다행이네.”
“예?”
협비가 설명이 필요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지만, 진무는 더 답하지 않았다.
보기만 했다. 그렇다면 이생과 나누었던 말은 듣지 못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때 분명 신력을 잠시 드러냈었는데…….
“협비, 하나만 더 묻자.”
“언제든 답해 드리겠습니다.”
“귀모가 나를 알고 있었다고 했지?”
“예.”
“혹시 귀모가 지계의 변화를 모조리 감지할 수 있는 거냐?”
“음, 미리 신경을 쓰고 있었다면 모를까, 항시 전체를 감시하실순 없을 겁니다. 아마 큰 계기가 있지 않은 한…….”
“계기라…… 혹시 검수림을 부순 일 같은 거?”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어쩌면 진무님의 예상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산옥의 검수를 만드신 분이 바로 귀모님이시니까요.”
“그래? 그렇다면 더더욱 다행이네, 그때부터라서.”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혼잣말이야. 신경 쓰지 마.”
“알겠습니다.”
그렇다 하니 더 안 묻고 수긍한다.
편하네, 지계에서 힘의 우위에 있다는 건. 한편으론 반대라곤 없을 테니 심심할 것도 같고…….
어쨌든 이생 놈에게 붙은 귀모의 눈이 사라졌으니 더 감시받을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쁘다.
감시받는 것은 혁련무강일 때부터 싫었다. 당시에도 꽁무니를 쫓아다니던 거지새끼들을 경멸하지 않았던가?
진무는 한참 입을 삐죽이다가,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귀모가 내 정체를 알았건 말았건, 일단 기분 나쁜 건 나쁜 거다. 그러니 알아듣게 말을 해 드려야지, 다신 그런 짓 못 하게.
“협비.”
“예.”
“아까 너를 통해 귀모가 날 보고 있다고 했지?”
“예.”
“대화도 가능해?”
“음, 주고받는 건 안 되겠지만 말씀을 전하시는 것이라면 가능합니다. 아마 지금도 계속 보고 계실 겁니다. 제 싸움에 관심이 많으셨으니…….”
“그래? 좋아, 이리 가까이 와서 내 앞에 좀 서 봐.”
“예.”
협비가 순순히 마주하고 서자 진무가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이놈의 눈과 귀 너머에 귀모가 있다 이거지?
그런데 뭐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지계에서 가장 큰 어른이신데 인사부터? 아니지, 눈앞에 있는 건 협비인데 인사는 좀…… 그럼 뭘 먼저 해야?
“…….”
뭘 먼저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다, 갑자기 짜증이 팍 치밀었다.
이런 씨팔, 이게 대체 뭔 지랄이야 그래? 협비를 앞에 두고 귀모와 대화를 하는 것처럼 해야 하다니. 뭐 이런 개떡 같은 권능이 다 있어?
화가 나서였을까? 원래의 성격이 그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진무는 기어이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어 버렸다.
“에이 씨, 여하간 거기 귀모 보고 있나? 나 진무다. 당신이 어디서부터 보고 들었는진 모르겠는데? 내 두 번 말 안 해. 다시 한번 더 얌생이처럼 몰래 감시하다 걸려 봐. 그땐 아주 뼈를 갈아 마셔 버릴 거야, 알겠어?”
“지, 진무 님. 귀모님께 그 무슨 말버릇이…….”
“넌 닥쳐. 내가 지금 귀모랑 말하고 있잖아!”
“…….”
말이 좀 심했다 싶었는지 끼어들었던 협비가 진무의 스산한 위협에 눈을 내리깔며 입을 다물며 소심하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너무 막 나가시는데……. 열 받으시면 한걸음에 도산옥으로 오실지도 모르는데…….”
“뭔 상관이야? 없는 자리에선 왕도 욕한다는데!”
말은 당당히 하면서도, 진무의 손은 연신 품속의 귀천옥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일종의 작전상 후퇴라든가, 뭐 그런 거 있지 않나.
여차하면 튀어야지. 성질대로 화를 내긴 했어도 귀모는 무서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