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59
29화
촤아악! 촤아아악!
대사충이 바다를 가르는 배처럼 모래 위를 쏜살처럼 나아간다.
“이랴! 달려라! 으핫핫핫!”
머리 위에 떡하니 선 진무가 여의를 채찍 삼아 독촉하니.
-쿠아아아!
대사충이 괴성과 함께 광포한 눈알을 번뜩이며 더욱 박차를 가해 질주했다.
“으핫핫핫! 좋구나! 달려라! 대사충!”
-쿠아아아!
어찌나 빠른지 세찬 바람에 뒤로 쫙 뻗은 머리카락이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신나 보이시지?”
“음, 그럴 만도 해. 이리 빨리 달리니……. 한 걸음에 백 리를 달리는 이동꾼들의 속도에 버금가는군.”
“그런데 쟤는 아직도 삐져 있는 거냐?”
“음, 것도 역시 그럴 만하지 않을까?”
“하긴…….”
진무의 뒤편에 편히 앉은 청상과 황신이 이생을 힐끗 돌아봤다.
여의봉에 매달린 미끼가 되어 죽다 살아난 이생은 화가 잔뜩 나 있었다.
또 먹혔다.
진무 놈께서 늦게 구하러 오는 바람에 저 빌어먹을 아가리에 또 들어갔다고!
그나마 늦게라도 처맞고 토해 냈기 망정이지, 더 늦었더라면 식도를 지나 위가 어찌 생겼는지 확인하고 돌아올 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산! 끈적하고 뜨끈하게 뼈와 살을 녹이는 그 고통은 상상만으로도 참을 수가 없었다.
“야! 그만하고 너도 이리 와 앉아라. 사내새끼가 뭘 그런 일로 삐지고 그러냐?”
“…….”
황신이 손짓해 불렀지만…… 다 똑같은 놈들이다. 그리 고생했건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해 주지 않는 악독하고 매정한 놈들.
두고 봐라. 내 천계에 가게 되는 목표만 이루면 네놈들과는 절대로 상종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참아 주마. 그때까지…… 흑흑, 빌어먹을…… 참을 수 있을까?
몹시도 울적해진 이생이 눈물을 훔치는데.
“이생!”
“예?”
“이리 와라. 와서 고삐 좀 잡아. 놀 거 다 놀았으니 난 애들이랑 술이나 한잔하련다.”
“예?”
진무가 고개를 휙 돌리며 하는 말에 흠칫 놀라 대답한 이생이 눈을 끔벅였다.
고삐라니, 대사충이 무슨 말이냐? 대체 그딴 게 어디 있는데?
“이 새끼가 어디서 천주님을 야리고 있어? 눈깔을 확 파 버릴라. 부르면 재깍재깍 안 달려가?”
“…….”
황신이 대번에 눈을 홉뜨며 위협하자 이생이 기겁해서 진무에게로 뛰어갔다.
빌어먹을 놈……. 저놈은 다시 죽어도 박피옥에는 안 가겠다, 저리도 충성이 넘치니.
이생에게 있지도 않은 고삐와 채찍 삼아 쓰던 여의를 넘겨준 진무가 휙 몸을 돌려 황신과 청상 곁에 앉았다.
“술!”
“여기 있습니다.”
“크으…… 좋구만! 아주우~ 좋아! 보이는 게 사막뿐이라 흥취는 좀 덜하지만, 유람이 따로 없네.”
진무가 기분 좋은 얼굴로 협비에게 얻어 온 술을 음미하며 한 곡조 뽑았다.
이럴 땐 그저…….
“청사~안.”
“예!”
“…….”
시작도 하기 전에 청상이 대답해서 맥이 탁 풀려 버렸다.
이 녀석은 백육십 년이나 살고 신선이 되었는데 왜 이 곡조를 뽑을 때마다 대답을 하고 지랄인지…….
“자, 너희들도 한잔하거라.”
“예, 사숙.”
“예, 천주님.”
“…….”
그래 뭐, 변하면 죽는 게지.
……아, 그래서 죽었나?
오고 가는 술잔 속에서 오래전 지나간 추억을 안주 삼아 늘어놓고 웃으며 떠드는 동안, 이생은 허상의 고삐를 잡고 대사충을 몰아야 했다.
“이랴!”
-……쿠어?
이생이 신경질적으로 고삐 치는 척하며 소리치자 대사충이 커다란 눈깔을 돌려 쳐다봤다.
그런데 눈깔에 담긴 감정이…… 마치 무시?
니가 뭔데? 하는 느낌으로?
와중에 속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촤아아아…….
진무 일행도 꼴 보기가 싫어 죽겠는데 대사충까지 말썽이니, 이생의 속이 좋을 리가 없었다.
“이놈의 벌레 새끼가 어딜 째려봐! 빨리 안 가!”
-쿠어?! 쿠어어어!
벌레 새끼라는 말이 속상했는지 대사충이 눈깔을 희번덕거리자 이생이 반사적으로 움찔했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 외쳤다.
“이놈의 새끼! 어디 눈깔을 그따위로 떠! 네놈이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맞아야!”
이미 진무에게는 공손한 대사충이었기에 용기가 생긴 이생이 평소에는 절대로 하지 않았을 욕설을 뱉으며 여의를 힘껏 들어…… 올리려고 했다.
“……?”
뭐야? 왜 꼼짝도 안 해?
이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의가 별안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무게가 수천 근으로 늘어나 버린 듯, 마치 땅에 박힌 거목처럼 고정돼 버린 것이다.
우우우웅!
“…….”
하마터면 빠질 뻔한 팔을 타고 올라오는 잔 진동.
진무의 법구인지라 동화를 이루지 않아 말이 안 통하는데도 그 극렬한 저항이 오롯이 느껴져 왔다.
너 따위가 감히 나를 휘둘러? 당장 내 몸에서 손 떼라, 이 빌어먹을 괴 자식아!
……라는 느낌의 진동이었다.
제기랄, 이젠 쇠몽둥이까지 지랄이야!
하아, 정말 싫다. 진무와 그 일행 놈들도, 대사충도, 쇠몽둥이 자식도…….
“뭐 해?”
“예?”
“속도가 떨어졌잖아!”
“아니 그게…… 대사충이 제 말을…….”
촤아악! 촤아악!
이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사충이 미친 듯이 모래사막을 헤치며 달리기 시작했다.
“대사충이 뭐? 잘만 달리는구만. 이게 어디서 거짓말이야?”
“…….”
아까까진 안 달렸다. 진짜다. 째려보며 위협까지 했었다.
하지만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실은 채찍질을 하려는데 이 봉이 들리지가…….”
휙!
“…….”
들렸다. 솜털처럼 가볍다.
“휴우, 됐다. 내가 하마. 너도 이리 와서 술이나 한잔 걸쳐라. 미끼 노릇 하느라 고생했는데.”
“…….”
말은 신경 써 주듯 하였지만, 여의를 빼앗아 드는 진무의 얼굴에는 언짢은 기색이 가득했다.
그의 짜증이 전해진 것일까?
촤아악! 촤아아아아악!
달리라는 말도 안 했는데 대사충이 한층 미친 듯이 질주했고, 여의는 저절로 움직이며 대사충을 채찍질했다.
-쿠아아아아!
“…….”
정말 싫다……. 도산옥으로 돌아갈까?
멍한 표정으로 진무와 여의, 대사충을 보던 이생이 머쓱한 표정으로 물러나 쭈그려 앉았다.
의기소침해진 이생의 모습이 신경이 쓰였는지, 청상이 그의 곁에 다가와 어깨를 다독이며 술병을 건넸다.
“자, 자네도 한잔하게. 속은 누구보다 따뜻한 분이니 너무 맘 상해 말고.”
“……처, 청상선인.”
원래가 그렇다. 힘들고 지쳤을 때, 누군가 손 내밀면 그리 고마울 수 없는 법이다.
이 순간 이생은 청상이 본 적도 없는 관음보살처럼 느껴졌다.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푸근하고, 마음이 안정되고…….
아, 청상. 너는 저 숭악한 놈들과는 달리 참으로 착한 놈이었구나. 그래, 선인은 이런 거지.
“허허, 이 사람, 울먹이긴. 마음 단단히 먹게. 언제 또 미끼 역할을 해야 할지 모르는데.”
“…….”
“아까 보니 자네가 딱 적임이더구만. 내 자네처럼 싱싱하게 펄떡이는 미끼는 처음 보았네.”
“…….”
어깨를 툭툭 두들겨 주며 격려하는 청상을 바라보며, 이생은 생각했다.
말리는 시누이 같은 새끼. 차라리 황신처럼 욕설을 해라.
왜 나처럼 순진한 괴를 들었다 놨다 하냐?
“다음에 내 낚시 때도 부탁함세, 사숙께서 하시는 걸 보니 나도 하고 싶더라고, 핫핫핫!”
“…….”
……개새끼.
“어? 너도 할 거야? 그럼 나도 한다! 이생! 들었지? 내가 할 때도 잘 부탁한다.”
“…….”
들…….
* * *
사막의 끝자락에서 만난 것은 까마득히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호수, 아니 바다였다.
“여기가 염수호입니다.”
“염수호?”
“예. 저 호수 어딘가에 박피옥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흐흠.”
이생의 설명에 진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호수를 바라봤다.
사계산에 있는 중수와는 무척이나 다른 느낌을 주는 검은빛 호수.
사계산의 중수가 같은 흑빛이라도 그 물비늘이 반짝이는 모습마저 아름답게 느껴졌다면, 이곳의 검은 물결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인상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칙칙했다.
와중에 하늘마저 어두우니 절로 기분이 언짢아졌다.
“박피옥으로 가자면 사공부터 찾아야 합니다.”
“사공?”
“예. 박피옥으로 오는 망자들을 안내하는 괴입니다.”
“그놈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데?”
“그건 저도 모르죠.”
“…….”
몰라?
전부 다 아는 것처럼 설명하더니…….
진무의 눈매가 게슴츠레해지자 흠칫 놀라 황신부터 살핀 이생이 황급히 대답했다.
“아, 아시다시피 전 도산옥 소속 괴인지라…….”
“음, 하긴. 그러네.”
“…….”
“그런데 사공이 꼭 있어야 해? 저런 호수쯤은 건너는 건 일도 아닌데?”
“안 될 겁니다.”
“응?”
“듣기론 박피옥 근처에 마력을 잡아먹는 생물이 산다고 들었습니다. 오직 사공에게만 길을 내준다더군요.”
“마력을? 흐흠, 그럼 안 되겠네. 결국 사공이 필요하단 소리고.”
“예.”
“하아, 그럼 어쩐다? 박피옥이 지척인데 무턱대고 돌아다니며 시간을 허비할 수도 없고…… 음, 어쩔 수 없지.”
“뭘 어찌하시려고?”
이생이 의아해하며 물었지만, 진무는 고민하지 않고 즉시 대사충의 머리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를 따라 일행이 바닥에 내려서자 진무가 대사충을 쳐다보며 말했다.
“수고했다, 대사충아.”
-쿠어…….
“이만 네 집으로 돌아가거라. 아무거나 주워 먹다가 낭패당하지 말고.”
-쿠어!
다른 말은 둘째 치고 돌아가란 말에 대사충이 힘차게 포효했다.
“녀석, 너도 헤어지기가 섭섭한 모양이구나?”
진무가 손을 들어 쓸자 대사충이 커다란 머리를 그 작은 손에 애써 비비적거렸다.
지켜보는 이생으로서는 황당할 따름이었다.
개냐?
그리고 섭섭하긴 뭐가 섭섭해. 빨리 도망치고 싶어서 꼬리 들썩이는 게 다 보이는구먼.
하지만 진무는 대사충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표정이 참으로 애틋했다.
“오냐, 나도 네가 보고 싶겠구나. 타는 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다음에도 종종 애용하마. 부르면 꼭 오도록 해라. 내가 사막을 전부 뒤집어서 찾아내기 전에, 알겠지?”
-쿠, 쿠어어…….
진무의 위협 같은 인사에 대사충이 흠칫 놀란 듯 머리를 연신 끄덕였다.
“자, 그럼 가거라.”
-쿠어!
……사라졌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생이 보기엔 아마 꽁꽁 틀어박혀서 다시 안 올 것만 같았다.
“자, 그럼 어디 사공을 불러내 볼까?”
대사충이 멀리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진무가 여의를 양손으로 잡고 몸을 풀었다.
“대체 뭘 하시려는?”
“뭐긴? 불러내야지.”
“불러요? 어디 있는 줄 알고?”
“어디든 있겠지.”
“……예?”
이생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진무가 여의를 들고 흑수의 연안으로 걸어갔다.
어디 있든 상관없다. 원래 찾아다니는 성격도 아니고.
[여의, 모습을 드러내라.]나지막한 언령에 손안에 들렸던 여의가 힘차게 진동하더니, 흑룡이 쑥 모습을 드러냈다.
-크아아아아!
거친 포효와 함께 솟구쳐 그 거대한 덩치를 완연히 드러낸 여의가 제 존재감을 과시하듯 힘을 쓰자 하늘이 뒤흔들리고 천둥 번개가 사방에 쏟아져 내렸다.
우르릉, 꽈과광!
이생은 의아했다.
대체 뭘 하려고 용을 끄집어낸 거지?
“사공! 게 있느냐!”
“…….”
별안간 우렁찬 목소리로 내지른 진무의 외침이 사방에 메아리쳐 울렸다.
“나는 도산옥에서 온 진무다! 이곳을 건너 박피옥으로 가고자 하니 배를 꺼내 놓거라!”
그리 외치곤, 진무는 물 위를 가만히 응시했다.
시간이 지나고 메아리마저 사라졌으나, 어떤 것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흠, 이리 크게 외쳤는데 안 나온다는 건 버티겠다는 말이지? 아니면 무시하는 거든가, 그치?”
진무가 뒤를 돌아보며 히죽 웃자 황신과 청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네요.”
“이런 씨부랄 사공 놈이! 제가 당장에 찾아 오겠습니다.”
“됐어, 뭐 하러.”
고개를 저은 진무의 벌어진 입술 새로 송곳니가 드러났다.
이제는 이생도 안다. 저 송곳니가 빌어먹을 것이라는 사실을.
해서 더 궁금했다.
“……대체 뭘?”
이생이 궁금증을 드러내던 그 순간, 진무가 여의의 끝을 잡고 온 힘을 담아 휘둘렀다.
후아악! 콰아아앙!
“……!”
진무의 마력이 여의에 담겨 증폭되고, 이내 그 무지막지한 힘이 대해를 쩍 갈라 버렸다.
“이래도 안 나와!”
후우우웅! 콰쾅!
여의가 신들린 듯 춤을 췄고, 검은 물결이 위로 뇌전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
우지직, 쿠구구웅.
그리고 삽시간에 연안이 폐허로 변하기 시작했다.
본시 그런 법이 아니던가? 성벽이든, 대문이든, 물이든……. 입구라는 곳을 때려 부수면 누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역시 사숙이시다.”
“과연 천주님께선 여전히 박력이 넘치시는군.”
“…….”
그렇게, 박피옥으로 가기 위한 진무의 개행패가 청상과 황신의 열띤 응원 속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