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60
30화
꾸우웅!
땅이 잘게 뒤흔들리는 느낌에, 술에 잔뜩 취해 오수에 빠졌던 박피옥의 사공 가리온이 눈을 끔벅였다.
“염병, 너무 많이 처먹었……을 리가 없는데?”
처음엔 그저 취기가 가시지 않아서 땅이 흔들리는 착각이 든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진짜임을 깨달았다.
콰아아앙!
드득, 우수수…….
“……?”
분명 멀리서 들려오는 충격음과 함께 대지를 타고 전해진 진동이 가리온의 거처를 뒤흔들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뭔?”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난 가리온이 황급히 문을 박차고 밖으로 튀어 나갔다.
우르릉! 꽈광!
“……!”
갑자기 번쩍하며 환해지는 세상에 가리온이 고개를 쳐들었다.
온통 먹구름으로 가득 찬 하늘이 갈라지고 검붉은 뇌전이 지상을 향해 세차게 떨어져 내린다.
번쩍! 우르릉! 쾅!
섬전과 뇌성, 이어 거친 충돌음까지…….
“이게 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박피옥 사공 가리온, 자신이 어떤 인물이던가?
망자가 되어 처음 도착했던 곳은 아비옥이었다. 인생 말년에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살긴 했으나, 초년에 살인을 너무 많이 저지른 탓이었다.
다행히 신임 아비옥주가 자신을 잘 봐준 것인지, 업경을 관리하는 사타에게 말해 죄의 일부를 사해 주었다. 운 좋게 한 다리 건너 아는 인연이 도움이 된 것이다.
그리고 업경에 적힌 과가 공보다 적게 되면 천계로 갈 수도 있다고 했다.
어찌나 고맙던지……. 어쩌면 그를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 아니던가?
하지만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망자의 경우에는 몰라도 괴를 넘어선 것들은 귀모의 승인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했다.
또한 그 뒤로도 천계와 연락을 취해, 공식적으로 틈을 열고 여러 가지 절차를 거쳐야겠지만…….
천계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지난 몇백 년 동안 귀모가 바쁜지 곧바로 해결되지는 않았다.
뭐,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인 그들이기에 조급할 이유는 없었다.
해서 기다리는 동안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며 시간이라도 때우라는 아비옥주의 말에 박피옥으로 왔다. 껍데기를 벗기는 일이야말로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으니까.
지난 수백 년간 껍데기를 벗기다 보니 그것도 수련이 된 것인지 원래 가진 실력보다 경지가 깊어졌다.
하지만 박피옥에서 껍데기 벗기는 것은 핵심 중의 핵심.
일취월장하는 그의 실력에 선임자가 견제를 해 오기 시작했다. 제 자리가 빼앗기게 생겼으니 목숨 걸고 지키려는 것이 당연했다.
싸워도 상관없는 일이었으나, 가리온은 두말없이 칼을 놓고 공석이었던 뱃사공 통솔귀의 자리에 지원했다.
어차피 천계로 가기 위해 대기 중인 그가 아니던가? 굳이 남의 자리를 빼앗을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귀모의 승낙을 기다리며 오랜 시간 뱃사공으로 살아왔다.
그 사이에 별별 망자를 다 보았다.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지, 불효에 불충을 저지른 놈들이 끝도 없이 줄을 이어 가지고, 그놈들을 나르고 또 나르고……. 어쨌든 별의별 놈들을 다 만났고, 별의별 일들을 다 겪었다.
몇몇 놈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못하고 생짜를 부렸지만, 턱도 없는 일이다.
박피형을 관장하는 직책에 오를 뻔한 귀인 자신에게, 어쭙잖은 망자 놈들의 반항 따위는 문제도 되지 않았다. 살포시 껍데기 몇 꺼풀 벗겨서 소금물에 담가 놓기만 하면 백이면 백, 살려 달라고 아우성을 쳐 댔으니까.
하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수많은 경험을 가진 가리온에게조차 너무나 생소했다.
마른……하늘은 아니었지만, 때아닌 날벼락이라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
박피옥에 사공으로 머문 시간동안 지계의 하늘에 번개가 쳤던 적은 없었다.
“거참, 신기한 일이네. 지계에도 우기가 있었나?”
가리온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보는 사이에도 뇌전은 계속해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보다 보니 마치 이승에 살 때 보았던 폭죽놀이 같기도 하고…….
신기한 듯 그 광경을 바라보다, 가리온은 문득 의구심을 품었다.
그러고 보니 희한하지 않은가?
그래, 낙뢰라 치자. 자신이 본 게 처음이어서 그렇지, 본시 지계의 하늘은 항시 먹구름으로 가득했고, 그 정도면 진작에 비도 내리고 뇌우도 뿌리고 했어야 마땅하니까.
하지만 이해되는 건 거기까지.
“어째서…… 뇌우가 한곳에만 치고 있는 거지?”
그랬다.
꽤 먼 거리라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으나, 뇌우가 한곳에만 집중적으로 떨어지고 있음을 어찌 모를까?
마치 뇌전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그곳에 있는 것처럼…….
우르릉! 쾅! 콰쾅! 콰과과과!
계속 지켜보다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소리도 좀 이상하지 않은가?
뇌전이 떨어지는 소리 말고도 그 뒤를 이어 들리는 소리는…….
“뭘 때려 부수는 것 같은데?”
가리온이 눈을 가늘게 뜨며 시선을 집중했다.
망자들을 운송하는 총책임자인 그다.
비록 대기 발령 중에 맡은 직책이기는 하나 사공의 임무를 맡은 이상 선착장이 있는 사막 연안은 그의 힘이 가장 크게 미치는 곳이다. 멀다 해도 보고자 하면 보이고 듣고자 하면 들린다.
솨아아아.
가리온이 눈에 힘을 집어넣어 부릅뜨자, 멀리 떨어져 희미했던 광경이 눈앞까지 훅 다가와 선명해졌다. 그리고 청각이 수십 배 이상 늘어나 모든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우르릉! 쾅! 콰쾅!
“……용?”
뇌우를 뿌리고 있는 것은 지계의 먹구름 낀 하늘이 아니라 번쩍이는 윤기를 가진 검은 용.
“……의 모습으로 형상화시킨 법구인 건가?”
오해할 만했다.
그것 말고는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흑룡을 설명할 길이 없으니까.
그런데…….
“무슨 저런 위력을?”
가리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중에 뇌우를 뿜어내는 능력도 있었다고?
“어?”
놀람이 아직 다 가시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무언가가 보였다.
후우웅! 콰아아아앙!
“크핫핫! 사공 나와라!”
“……?”
사람? 아니, 요? 귀? 대체 뭘까?
얼굴을 정확히 볼 수는 없었지만, 인간의 형태를 가진 존재가 커다란 쇠봉을 휘두르며…… 연안을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고 있었다. 멀리까지 느껴진 진동은 바로 그가 만들어 낸 것이 틀림없었다.
쇠봉이 묵직하게 휘둘러질 때마다 호수의 물결이 반으로 갈리고, 대지가 쩍쩍 갈라지는 통에 연안의 풍경이 바뀌고 있었다.
자신이 관리하는 연안이…….
“저, 저런 씨부랄 놈이!”
상황 파악이 끝남과 동시에 가리온이 거친 욕설과 함께 땅을 박차고 쏘아져 나갔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비록 얼마 안 되었다곤 해도 자신이 있는 손때 없는 손때 묻혀 가며 애지중지해 온 곳이다.
더욱이 연안의 풍경이 바뀔 정도의 충격파가 계속되면 박피옥주의 문책을 피하지 못할 것이고, 잘못하면 천계로 갈 기회까지 날아갈지도 모른다.
와중에 책임을 물어 망자로 좌천당하면…….
껍데기가…….
“이런 씨봘 놈아! 멈추라고오!”
* * *
콰아아아앙!
“크핫핫핫!”
여의를 휘둘러 연안의 지형을 완벽하게 뒤바꾸는 내내, 진무의 웃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역시나 뭐든 때려 부수는 것이 최고다. 꽉 막혔던 무언가가 쑥 하고 내려간 심정이랄까?
“좋아! 여의! 다음은 저쪽 절벽이다!”
-크아아아아!
진무의 손가락질에 흑룡 여의가 광포한 포효와 함께 곧장 날아가 절벽에 제 몸통을 때려 박았다.
콰아아앙!
“오! 이놈! 충파(衝破)도 가능했더냐?”
몸뚱이로 때려 박는 기술에 거대한 절벽 반절이 통째로 날아가 버리자 진무가 환히 웃으며 감탄했다.
잘하면 묵룡혼원공을 대입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계에서는 써 볼 기회가 없었지 않았던가? 과연 마력을 사용하면 어떤 모습일까?
와중에 내공으로 만들어 낸 환영이 아니라 진짜 흑룡이라면?
“……뭘 어울리지도 않게 고민을 하고 있단 말인가?”
생각나면 곧바로 실행에 옮기는 추진력!
그것이 바로 자신의 장점이 아니던가? 더러 생각하기도 전에 실행에 옮긴 적도 있었다.
“좋아! 뭐든 해 봐야 알지! 그렇고말고! 여의, 돌아와라!”
결심을 굳힌 진무가 힘껏 부르자 흑룡이 단번에 여의에 빨려 들어 모습을 감췄다.
“후훕!”
지면에 내려선 진무가 달려 나갈 듯한 자세를 취하고 가슴이 한껏 부풀도록 숨을 들이마셨다.
일단 자신의 마력…….
우우우웅!
진무의 마력이 급류처럼 파고들자 여의가 광택을 드러내며 세차게 진동했다.
“좋아! 한계치까지 끌어 올린다!”
우우우웅!
마력에 마력이 더해지고, 그 마력이 여의의 힘을 통해 더욱 증폭되기 시작했다.
지지직, 지직!
쌓이고 응축된 마력이 순식간에 한계점을 넘어서자, 여의의 몸체에 검은 전격이 어른거렸다.
“자아…….”
목표는 여의가 부수다 만 절벽!
꾸우우…….
힘껏 짓누른 발이 대지를 푹푹 파고든 순간.
파아앙!
섬전처럼 날아간 진무가 여의를 곧게 내질렀다.
푸욱!
절벽 면에 여의를 깊숙이 박아 넣은 진무가 마력을 모조리 뿜어 넣는다.
쿠우우우…….
절벽이 거칠게 떨렸고, 이내 그 깊숙한 곳에서 일어난 폭발에 절벽이 너울 치듯 흔들렸다.
“……묵룡혼원공, 대지창파.”
드드드득,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과 함께 산산이 조각나 흩어지는 절벽의 모습에 진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커, 커어억!”
묵룡혼원공의 위력을 처음 본 이생이 턱이 빠질 듯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저, 저게…….”
“가능한…….”
이미 수차례 위력을 확인했었던 청상과 황신마저도 벌떡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쥘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절벽?
그딴 게 있었던 것인가?
콰우우우우!
절벽은 물론이거니와 연안의 한 곳이 통째로 사라져 버렸고, 갑자기 생겨난 공간으로 물길이 세차게 쏟아져 채우고 있었다.
“겨, 격이 달라지셨네.”
“으, 으응.”
황신의 말에 청상이 절벽이 사라져 버린 곳을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강하다. 아니, 강하다는 말로 표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도산옥주와 싸울 때만 해도 저 정돈 아니지 않았던가?
“하아, 인계에서도 그러시더니……. 정말로 적응이 안 되는구나. 하루가 달리 강해지시니…….”
“그러게…… 응?”
청상의 감탄에 고개를 주억거리던 황신이 갑자기 멈칫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황신? 왜……?”
청상의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황신이 굳은 얼굴로 갑자기 홱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 다가오고 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방향은…… 진무?
“청상!”
황신이 위험을 감지했음을 깨달은 청상은 이미 그가 부르기도 전에 자충을 소환하기 위해 손을 뻗고 있었다.
[꿰뚫어라! 자충!]언령과 함께 청상의 손에서 붉은빛이 쑥 솟구치더니, 이내 다가오는 인물을 향해 세차게 쏘아져 나갔다.
슈아아악! 까아앙!
“……큭!”
거친 충돌음과 함께 되돌아온 반탄력에 청상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자충이 튕긴 것이다.
무엇이든 잘라 버릴 것 같은 그것이.
가가가각!
그리고 흉수인 듯한 자가 자충의 겉면을 긁어 스치며 황신과 청상을 향해 뛰어들었다.
“이런 씨발!”
청상의 일격이 실패하자, 황신이 다급히 법구인 쌍비를 소환해 잡으며 휘둘렀다.
후우웅!
“……!”
하지만 교차한 궤적이 허공을 갈랐고.
뻐어억!
날아온 그대로 몸을 비틀어 주먹을 피한 흉수는 상대해 줄 생각도 없는지 황신의 뒤통수를 발판 삼아 차 내며 곧장 진무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니기미! 천주니임!”
뒤통수가 얼얼한 충격에도 황신이 다급히 몸을 돌리며 진무를 불렀다.
쫓기엔 이미 늦었으니 경고라도 하려고 한 것이다.
“……응?”
황신의 부름에 고개를 돌린 진무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물체를 쳐다봤다.
양손에 식칼 같은 것을 하나씩 들고 날아오는 이.
그런데…….
“어?”
그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진무가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했고.
“……으응?”
날아온 흉수도 진무의 얼굴을 보고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너…….”
“……!”
진무의 말에 가리온의 눈동자에 눈물이 샘처럼 솟구쳤다.
그리고 그는 달려온 그대로 진무의 앞에 뛰어들어 넙죽 엎드렸다.
“크허허헝! 은고오옹!”
“…….”
진무는 자신의 앞에 엎드려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한 이를 지그시 바라봤다.
“누군데?”
“……예?”
진무는 갸웃거렸고, 울먹이는 가리온도 갸웃거렸으며, 청상과 황신도 갸웃거렸다.
그래서 너 누군데?
내가 선계에서만 만 년 정도 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