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62
32화
모닥불이 타오른다.
하지만 그 불은 필요 없는지도 모른다.
설사 눈보라가 몰아친다고 해도 불 주위에 모인 이들 중 추위를 느끼는 이는 아무도 없으니까.
또한 이생을 미끼로 청상과 황신이 낚아 온 물고기나 백표가 미리 준비해 둔 육고기를 굽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손에 열기를 모아 슥 훑으면 바싹 익을 고기를 뭐 하러 불에다가 굽는단 말인가?
하지만 분위기가 다르다.
매우 중요하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맛이 다르다.
불맛도 엄연한 맛이다.
숙수들이 괜히 그 불맛을 내기 위해 평생을 바쳐 연구하며, 미식가들이 그러한 식당을 찾아 헤매는 것은 아니니까.
타닥, 타닥.
물고기는 제 몸이 포 뜨였는지도 모르고 눈을 깜빡이며 펄떡이고, 고기는 백표의 손에 얇게 잘린 뒤 돌판에 지글거리며 익는다.
“크으! 역시 이 맛이야! 내 이 맛을 죽어서도 잊지 못했어.”
“크허! 맞습니다, 사숙. 백표 공의 고기 굽는 솜씨는 정말이지 예술입니다. 만약 무당산에 계셨다면 청우가 더 빨리 죽었을지도 모를 맛입니다.”
“씨부럴, 정말 눈깔 돌아가게 굉장한 맛이네.”
“…….”
노릇하게 구워진 고깃점을 술과 함께 맛본 셋이 감탄을 연발했다.
이생으로서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통칭 미각이라 함은 달고, 쓰고, 짜고, 쓴 네 가지 맛을 말한다. 그 맛들이 입맛에 적절하게 와 닿았을 때, 그 맛으로 쾌락을 느낀다.
하지만 망자들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지계에 그딴 게 어디 있단 말인가? 소태보다 짜고 불을 머금은 듯이 맵거나, 속이 메스꺼워질 정도로 쓴맛이라면 모를까.
“크아! 조~옿타!”
“한 잔 더 하십시오. 사숙.”
“안주는 이미 대령 중입니다, 천주님.”
“…….”
술을 따르는 청상이나, 고기 한 점을 들고 잔 비우길 기다리는 황신이나, 처먹고 기분 좋아하는 진무나…….
이생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저 백표라는 귀가 굽는 고기가 무엇이기에 저리들 감동의 도가니 속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는 거지?
“이봐, 도산옥에서 온 이생이랬나?”
“예? 아, 예.”
“뭘 그리 멀뚱히 쳐다보기만 하는 겐가? 자네도 먹게.”
“…….”
백표의 권유에 이생이 구워진 고깃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젓가락을 가져갔다.
하아, 자신들이 인간도 아니고, 멀쩡한 손을 두고 수저를 사용해야 한다니. 그러한 습관을 버린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나 인상을 찌푸리는 것이 예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기에, 이생은 억지로 표정을 가다듬으며 집어 든 고기를 입으로 가져가…….
“허헉!”
씹지도 않았다. 그저 혀에 그 진한 육즙 한 방울이 떨어져 닿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장님 개안(開眼)하듯 세상이 달라지더니, 망자가 되면서 잊어버렸던 맛의 기억이 오롯이 떠올랐다.
아, 누가 저 사막을 가리켜 황량하다 했던가? 그야말로 금빛 찬연한 황금의 대지인 것을!
거기다 저 시커멓고 칙칙하기만 했던 호수는 당장에 풍덩 뛰어들어 자맥질이라도 하고 싶게 만들지 않는가?
오물오물.
“……!!”
본격적으로 씹은 느낌은 또 어떻단 말인가?
이 결 사이사이마다 배어 퍼져 나오는 이 풍취를 대체 어찌 감당한단 말인가?
아, 정말 세상마저 아름다워지게 하는 맛이로구나. 여기가 천계로다!
고기 한 점에 황홀경을 경험한 이생의 입놀림이 빨라졌다.
아니, 씹고 자시고 할 게 뭐 있을까? 이미 녹아 목구멍을 지났고, 어디로 갔는지 모른 채 입안에 향기만이 그득한 것을.
덥석, 덥석, 덥석.
본시 중이 고기 맛을 보면 끊지를 못함이라. 잊었던 미각을 되찾아 버린 이생의 손이 쉼 없이 움직였다.
한 번에 하나씩 집던 고기가 어느새 두 개, 세 개씩 늘어났고, 급기야 마구잡이로 입에 쑤셔 박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는 그만 실수를 저질렀다. 노리지 말아야 할 것을 노린 것이다.
덥석. 탁.
바로 진무의 고기가 담긴 접시.
“……?”
맹렬했던 젓가락질이 방해받자 이생이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방해꾼을 노려봤다.
물론 그 대상도 잘못되었다. 진무였다.
하필이면…….
“하, 이 괴 놈이 죽으려고?”
“……!”
순간 무시무시한 생각이 든 이생이 슬며시 젓가락을 떼는데.
“이런 씨부랄 놈이! 하다 하다 천주님 고기를 노려! 죽어, 이 괴 놈 새끼야!”
퍼억! 빠각! 퍽퍽퍽!
충성스러운 개인 호위 황신의 발이 이생의 안면을 힘차게 강타하고, 곧이어 손이 훌쩍 날아가려던 이생의 머리채를 잡아당겨 다시 짓밟았다.
“끄아아악!”
고기 맛에 취해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건드린 이생의 말로였다.
“이런 젠장, 다 처먹었네, 다 처먹었어.”
이생이 짓밟히는 사이 돌판 위의 고기가 하나도 남지 않았음을 깨달은 진무가 입맛을 다시며 젓가락을 놓았다.
“허허, 은공. 봐주시죠? 괴인 그가 고기 맛에 미각을 되찾았으니 흥분했을 만도 하…….”
“안 돼!”
“…….”
“내 고기 노린 새끼를 어떻게 가만히 놔둬? 본때를 봐야 다신 저런 짓을 못 하지. 와중에 그 고기가 보통 고기야?”
진무는 절대로 용서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당연했다. 그 역시 만 년 동안 잊고 있던 맛이었고, 언제나 고기에는 진심이었으니까.
“에이 씨, 입맛만 버렸네. 청상, 술이나 채워라. 입가심하게.”
“예, 사숙.”
쪼르륵.
청상이 재빨리 채운 잔을 신경질적으로 입에 털어 넣는 진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백표가 넌지시 말을 꺼냈다. 계속 하고 싶었던 말을.
“저기, 진무 님?”
“응?”
“……저도 따라가면 안 될까요?”
“응? 나를 따라오겠다고?”
“예.”
“뭐 하러?”
“예?”
“넌 이미 천계로 갈 날을 받아 놓고 기다리는 중이라며?”
“그야…….”
“그럼 그냥 있어.”
“…….”
“실은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꽤 위험하거든.”
“…….”
“실패할 확률도 매우 높아. 괜히 끼어들었다가 귀모의 미움을 받아서 영원히 지계에 갇히는 수가 있어.”
“하지만, 청상은 몰라도 저기 있는 황신도 저와 마찬가지 입장이 아닙니까? 저, 이생이라는 자도 그렇고…….”
“물론 그렇지.”
“…….”
“그래도 조금 달라.”
“뭐가요?”
“황신 녀석은 고집을 부리는 중이거든.”
“예?”
“말해도 도통 들어 처먹을 생각을 하지 않더라고. 죽어도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통에 그냥 데려가는 중이야. 저 이생이라는 놈은 최소 소멸만 해도 감지덕지하는 놈이라 그냥 데리고 다니는 거고.”
“…….”
“그러니까 넌 그냥 이곳에 있어. 나와 엮이지만 않으면 언젠가 천계로 오게 될 거 아냐? 네가 구워 주는 고기 맛이 아쉽긴 하지만, 나중에 다시 만나는 걸로 하자.”
웃으며 타이르는 진무의 말에 백표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실은 이미 질렸습니다.”
“뭐?”
“인계에서 망자가 되었을 때, 이런 삶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일이지요.”
“…….”
“비록 껍질을 벗기는 박피옥의 일도 적성에 맞고, 망자를 건너게 하는 사공의 일도 나쁘진 않으나 이젠 의미 없는 삶의 반복일 뿐입니다.”
“음…….”
“부디 내치지 마시고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혹여 일이 잘못되어 영원히 이곳에 갇히거나 소멸이 된다 해도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백표의 절절한 간청에 진무가 그의 두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이 새끼…… 진심이네.
저런 눈빛이면 줘 패서 주저앉혀 놓으면 기어서라도 따라오겠다.
“후우, 정말 괜찮겠어?”
“……!”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묻는 말에 백표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물론입니다! 아마 제가 도움이 되실 겁니다. 귀 정도의 힘으로는 은공께 도움이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제가 아는 것들이 필시 도움이 될 터입니다. 제가 박피옥이며 아비옥까지 모두 알고 있으니까요.”
“흠…….”
자신의 쓰임을 열심히 피력하는 백표의 모습에 진무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니가 결정했으니 니 뜻대로 해.”
“암요! 책임도 제가 질 것입니다.”
“뭐, 그건 알아서 하고……. 그나저나 입이 아쉽네. 고기 더 없어?”
“고기! 있습니다! 아니, 지금 당장 구해 오도록 하겠습니다.”
“오! 그래?”
“하면 속히 다녀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잔뜩 흥분해 콧김까지 씩씩거리며, 백표가 양손에 식칼처럼 생긴 법구를 움켜쥐고 한달음에 밖으로 뛰어나갔다.
“죽어! 죽어, 이 새끼야! 나도 이제껏 천주님 고기 못 뺏어 먹어봤는데, 니가 감히!”
콰직, 콰지직, 콱콱콱!
“꾸에엑! 꽥!”
황신은 여전히 이생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있었다.
하지만 신경 쓸 필요 없다. 어차피 불사의 몸을 가졌으니 고통만 느낄 뿐 안 죽는다.
그냥 백표가 돌아올 때까지 구경이나…….
그런데 황신 녀석.
수련을 게을리했나? 패는 게 전만 못한데?
퍽!
쯧, 저럴 땐 늑골 아래쪽을 스치듯이 파고들어야 좀 더 아픈 법인데…….
빠박!
얼씨구? 저걸 구타라고 하고 있나?
“하아, 안 되겠네. 교육이 필요하겠어, 교육이. 청상도, 황신도……. 저래서야 이 험한 지계를 어찌 헤쳐 나간다고…….”
“……!”
진무의 중얼거림을 옆에서 듣던 청상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대번에 황신에게 뛰어갔다.
“이 친구! 구타가 왜 이 모양인가! 비키게! 내가 하겠네.”
“어? 나 아직 쌩쌩한데?”
황신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가깝게 붙은 청상이 눈을 부라리며 소곤거렸다.
“……비켜, 이 조막만 한 자식아. 너 때문에 나도 죽게 생겼어.”
“어?”
“눈깔 치우고 비키라고, 자충으로 뚫어 버리기 전에.”
“…….”
눈을 희번덕거리며 황신을 밀어 낸 청상이 다짜고짜 이생을 줘 패기 시작했다.
황신은 난데없이 벌어진 상황에 멀뚱히 눈을 끔벅였다.
뭐지? 청상이 이런 성격이었나? 가끔 눈 돌아가는 경우는 있어도 험한 말을 입에 담진 않았는데…….
그때, 이생을 패느라 듣지 못한 진무의 작은 목소리가 황신의 귓가에 천둥처럼 때려 박혔다.
“흠, 그래도 청상이 좀 낫네. 그럼 수련은 황신만 시킬까? 그래, 저 녀석은 아직 더 강해져야 하니까.”
“……!!”
황신은 청상이 눈 돌아간 이유를 비로소 알아채고 화다닥 청상에게 달려갔다.
“처, 청상! 내가 할게! 내가! 비켜!”
“놔! 내가 할 거야! 내가 팬다고!”
“닥쳐! 내 거였잖아!”
“이런 쌍! 니 거 내 거가 어디 있어!?”
“…….”
서로 패겠다며 옥신각신하는 둘을 바라보며 이생은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야! 이생! 니가 골라! 누구한테 처맞을래!”
“지랄하고 있네, 저 새끼한테 선택지 같은 게 어디 있어? 패는 대로 처맞아야지!”
“그러니까! 내가 잘 패고 있었는데 니가 꼈잖아, 지금!”
“잘 같은 소리 하네. 가서 수련이나 받아라, 모자란 놈아!”
“…….”
거, 잘들 노는구만.
진무는 혼자 술잔을 기울이며 그들의 단란한(?) 한때를 감상하다, 문득 실소를 흘렸다.
“이러다가 과거의 인연들을 지계에서 전부 만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도산옥에 이어 박피옥. 두 번째 계의 입구에서 또 일행 하나가 늘어났으니, 다른 계에서도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하긴 뭐, 그것도 나름대로 즐거울 것 같았다. 기대되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