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70
40화
“어딜 가신다고요?”
“여기.”
“…….”
손가락을 세운 진무가 짚은 곳을 바라본 백표가 입을 딱 벌렸다.
박피옥에 대해 설명하며 바닥에 그린 그림을 찬찬히 보던 진무의 손이 닿은 곳은 분절형장이었다.
해형장과 마찬가지로 박피옥 외곽에 있는 형벌장 중 하나였지만, 백표는 황당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뭐? 왜? 불만이야?”
진무가 한쪽 눈썹을 씰룩이며 내려다보자 백표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아니, 불만이 아니라, 굳이 그곳을 공격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뜻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식으로 세력을 늘려 봐야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물론, 세력을 늘릴 필요는 없지.”
“하면 어째서?”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진무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를 향해 피식 웃었다.
세력? 그딴 걸 왜 늘린단 말인가?
그건 스스로 강하지 못한 자들이 몸집을 부풀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포식자에게 당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몸집을 부풀리거나 화려한 색으로 치장해 위협하는 곤충의 방어 기제 같은 거.
다시 말해 일종의 허세다. 그리고 진정한 강자는 약자의 허세를 비웃을 뿐 신경도 쓰지 않는다.
게다가 박피옥주와의 싸움에서 세력의 규모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협비가 그랬듯, 교마는 박피옥에서만큼은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이다. 적어도 그의 귀속을 풀고 옥좌에 도전할 정도로 강한 각성을 이룬 자들을 제외하면 그렇다.
하니 해형장을 지나 분절형장과 여타의 다른 형벌장을 공격해 한패로 끌어들인다고 해도 무소용이다.
다 모아서 공격해도 박피옥주가 웃으며 ‘멈춰.’ 하면 끝날 테니까.
“그런데도 분절형장으로 가시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는 도무지 이해가…….”
“수련용 교보재가 넘쳐 나니까.”
“수련…… 예?”
무척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진무를 향해 백표는 물론 황신과 이생마저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꺾었다.
의아해하기는…….
뭐, 하지만 이해는 시켜 줘야지. 강해지려면 정확한 목표가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얘들아.”
“예.”
“너희가 해형장과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진심으로 실망했다.”
“……시, 실망까지야?”
“그럼 니들이 강하다고 생각하니?”
“그야…… 어느 정도는…….”
“나보다?”
“……예? 하하, 천주님도 참. 무슨 그런 욕 들어 처먹을 말을 하고 그러십니까?”
“그러게, 은공께서 농담이 과하십니다.”
진무의 물음에 모두가 피식피식 웃고 만다.
괴물 중에 상 괴물보다 강하냐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농담 같냐?”
“…….”
“나와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니들은 약해. 저기 있는 지금의 청상보다도.”
“그건…….”
“해서 강해져야 하는 거야. 지금의 너희는 내 발목을 잡는 방해물 이상의 의미는 없으니까.”
“…….”
너무 사실이라 반박할 말이 없었다. 담담하지만 직설적인 진무의 비평에 황신과 백표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하긴 뭐, 분절형장을 공격해서 실전 경험을 쌓는 것 말고도 다른 방법이 있지.”
“……?”
“가령, 나랑 일대일로 대련하면서 강해진다든가 하는 거. 물론, 단기간에 강해져야 하니까 각오는 단단히 해야 할 거야.”
싱긋 웃으며 내뱉는 무시무시한 말에 황신이 기겁하며 백표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배, 백표! 분절형장이 어디냐!”
“저, 저쪽! 저쪽이다!”
“서두르자! 어서 강해지자! 천주님께서 우리를 생각해 수련의 기회까지 부여하시는데 어찌 머뭇거릴까!”
“옳다. 나도 지금 막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은공, 당장에 분절형장을 습격하겠습니다. 그곳을 은공께 바치겠습니다!”
“…….”
벌떡 일어나 호들갑을 떨어 대는 둘의 모습에 진무가 피식 웃으며 손을 휘휘 저었다.
“앉아.”
“예!”
“넵!”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른 자세로 앉는 그들의 모습에 진무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녀석들……. 봐라, 그리 강해지고자 하는 욕구가 넘치니 얼마나 좋으냐? 내 마음이 다 흡족하구나.”
“감사합니다, 천주님! 늘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은공!”
그때, 둘과는 달리 한참 듣기만 하던 이생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기, 진무 님? 둘은 그렇다 치고, 저까지 굳이 강해져야 할 이유가…….”
“…….”
이생의 말에 진무가 웃으며 자충을 슬쩍 움켜쥐었다.
꽈악.
“……강해지고 싶습니다. 반드시! 꼭이요! 반드시 제 손으로 대사충을 때려잡을 실력을 가질 것입니다! 저만 믿으십시오! 진무 님의 기대에 반드시 부응할 것입니다!”
“……그래?”
“암요! 그렇구말구요! 진작부터 강해져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됐네.”
“…….”
되긴 염병…….
그러나 처맞는 것이 뒈지는 것보다 무섭다는 것을 이미 몸소 체득한 이생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강해지는 수밖에.
“한데, 은공.”
“왜?”
“박피옥주가 가만히 있을까요? 이번엔 어찌 넘어간 듯하지만, 분절형장까지 습격당하면 직접 움직일지도 모르는데요.”
“그럼 싸우지, 뭐.”
“…….”
대답 참 쉽다. 뒷일 따위는 걱정도 하지 않는 거냐?
당장에 박피옥주가 무슨 이유에서건 나서지 않아서 그렇지, 얼마나 강한지도 모르면서…….
하지만 입 밖에 내는 순간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고 있는 백표로서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어쩐다?
진무가 하겠다고 한 이상,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사실 수련의 필요성은 자신들도 알고 있지 않았던가?
이미 청상이 싸우는 모습을 본 뒤다. 적어도 그 정도가 되지 못하면 진무의 말대로 언제까지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일단 그리 알고들 좀 쉬어. 난 청상을 좀 살펴야 하니까.”
“예.”
진무가 일어나 청상 쪽으로 다가가자 백표가 급히 황신을 불렀다.
“이보게, 황신.”
“응?”
진무가 잠시 술을 마시는 사이 백표가 황신을 향해 급히 마음을 전한다.
「은공께서 저리 말씀하셨으니 할 수밖에 없네.」
「당연한 소릴? 내가 예전에 해 봐서 알아. 천주님과 개인 수련은 절대로 사양이라고.」
「그러니 하는 말일세. 수련이라 하셨으니 절대 도와주시지 않을 게야.」
「음…….」
「사실 분절형장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닐세.」
「그, 그래?」
「육장 봤지?」
「음…….」
황신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지막지한 힘을 발휘하던 청상을 요상한 법구로 가둬 버린 놈. 진무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자충에 잠식되지 않았다면 되레 청상이 당했을 것이다.
「분절형장의 수좌인 조음이라는 놈은 보통 놈이 아니야.」
「응? 육장이 가장 강하다고 하지 않았어?」
「물론, 개인의 실력은 육장이 더 뛰어나지. 하지만 세력전으로 가면 달라. 육장은 법구를 믿고 혼자 날뛰지만, 조음은 휘하를 부릴 줄 아는 놈이거든.」
「아! 음, 그렇군. 그럼 어쩌지?」
「해서 말인데, 육장을 끌어들이자고 하면 어떤가?」
「육장을?」
「그래, 어차피 우리가 무너뜨린 곳이 아닌가? 놈을 회유해서 우리랑 한패로 끌어들이는 거야. 박피옥주와의 싸움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분절형장에서 싸울 때는 분명 도움이 될 거야.」
「하지만 천주님께서 허락하실까?」
「처음이니 그 정도만 이해해 달라고 하세. 어떤가? 자네와 내가 처맞을 것을 각오하고 간곡하게 부탁하면…….」
「음, 어쩔 수 없지. 청상이 저 모양이고, 이생 놈은 있으나 마나 하니……. 한번 해 보세.」
「잘 생각했네.」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둘이 결심을 굳힌 표정으로 진무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저기, 은공?”
“응?”
좌정하고 심상 수련에 빠진 청상을 돕던 진무가 고개를 돌렸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이왕지사 이리된 참에 육장과 그 휘하를 함께 데려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들을? 왜?”
“박피옥주와의 싸움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테지만, 향후를 생각하면 괜찮을 듯합니다.”
“흐음.”
“어차피 박피옥주를 쓰러뜨리고 나면 은공의 수하가 될 이들이니 미리미리 포섭하시는 것이…….”
“흠…….”
진무가 샐쭉한 눈으로 백표를 쳐다보며 턱을 어루만진다. 등줄기가 순식간에 축축하게 젖는 것만 같은 그 따가운 눈빛에, 백표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다 얼마나 지났을까? 진무가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그러네. 일리가 있어. 생각해 보니 굳이 박피옥주와 싸울 때가 아니라도 이용할 가치가 충분히 있겠어.”
“그, 그렇죠?”
진무의 긍정적인 답변에 백표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고, 뒤에 있던 황신이 공적을 치켜세우듯 엄지를 들어 올렸다.
“좋아, 육장도 데려가자.”
“알겠습니다. 설득은 제게 맡겨 주십시오.”
허락을 얻어 낸 백표가 무엇이든 해내겠다는 표정으로 가슴을 탕탕 쳤다.
“아주 쓸 만한 생각이었어,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핫핫! 그러실 수도 있지요. 은공께서는 원체 많은 것을 고려하시는 분이니, 가끔 놓치는 일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게. 잘만 이용하면 수련 강도가 훨씬 더 올라가겠어.”
“예?”
어째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말에 백표의 고개가 살짝 꺾였다.
저게 무슨 말일까?
육장이 돕는다면 수련 강도가 내려가는 것이 정상이지, 왜 올라가?
“니들이 분절형장을 공격하는 순간, 육장이 너희의 뒤를 공격하게 하는 거야.”
“……예에?”
“그래, 바로 그거지. 진퇴양난, 고립무원, 사면초가, 낭패불감 등등등! 스스로를 난국 속으로 몰아넣음으로써 한계를 더욱 빨리 경험한다!”
“…….”
“최악의 상황일수록 얻는 것이 훨씬 더 많을 거야. 암, 그렇고말고.”
“…….”
박수까지 치며 환히 웃는 진무의 말을 들은 백표의 눈에 초점이 사라졌다.
뭐가요?
제가 말씀드린 건…… 그런 게 아니잖아요.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수련 효과를 더욱 끌어 올릴 방법이 있었는데 말이지. 역시 사람은 혼자 잘날 수는 없어. 이리 머릴 맞대니 더 좋은 수련법을 생각해 냈잖아, 그치?”
백표의 표정이 한층 허망해졌다.
일이 왜 이렇게…….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분절형장을 끝내면 그놈들도 끌어들이는 거야. 그럼 적들이 점점 더 많아질 테고, 너희는 점점 더 강해지겠지. 맞아! 정말 좋은 방법이야! 잘했다! 백표! 아주 잘했어. 금세 강해지겠구나! 핫핫핫!”
“……아, 예에.”
백표는 어깨까지 두들겨 주는 진무의 칭찬에 어색하게 웃으며 뒤를 돌았다.
“…….”
잡아먹을 것 같은 눈을 하고 몸을 부들부들 떨어 대며 ‘죽여 버릴 거야.’를 연발하는 황신, 하늘이 무너진 듯 털썩 주저앉아 우는 이생…….
졸지에 적이 두 배로 늘었네…… 빌어먹을.
애초에 나쁜 도깨비 같은 진무를 상대로 함부로 혹을 떼려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봐라, 강해지기도 전에 황신에게 죽게 생기지 않았는가.
그리고 진무는 그런 셋을 쳐다보며 음흉하게 웃었다.
이것들이 어디서 만 년이나 살아온 나를 상대로 꼼수를 부려 보겠다고.
턱도 없다 이 자식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