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71
41화
“뭐? 어디로 가?”
“분절형장으로 향했습니다.”
“……?”
규사의 말에 갸웃거리던 교마의 고개가 어깨에 달라붙을 정도로 휙 꺾였다.
뜬금없이 분절형장이라니?
해형장에 상륙해서 대놓고 싸움을 벌였다면 곧장 치고 들어와야 마땅할 판에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만날 때를 학수고대하며 쉼 없이 세류로 조각상을 만들어 내던 교마의 손이 순간 힘을 잃고 툭 떨어졌다.
얼마나 실망이 컸는지 축 처진 그의 눈꼬리를 못 본 척하며, 규사가 보고를 이어 나갔다.
“마지막 행적을 확인한 바로는 해형장의 육장이 휘하를 이끌고 뒤따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놈들과 합류한 것으로 보입니다.”
“……끄음.”
“빌어먹을 놈들이 아닙니까? 명하시면 제가 직접 가서 놈들을 잡아 오겠습니다.”
규사의 충성 어린 말에 교마가 귀찮은 듯 손을 휘휘 저었다.
“됐어, 놔둬라.”
“예?”
“해형장이든 분절형장이든, 혹은 그 외의 무엇이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둬라. 세력 따위를 규합해 봐야 무슨 도움이 된다고.”
“그건 그렇지만…….”
“놔둬, 건드리지 마.”
“알겠습니다. 옥주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규사가 공손히 절을 올리고 물러났다. 교마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손짓으로 대충 그를 배웅한 뒤, 생각에 잠겼다.
개운치 않은 기분이었다.
놈이 이곳저곳을 습격해서 세력을 늘리는 건 조금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육장이 음양귀 놈의 편에 서든, 아니 뭐 박피옥 전체가 놈의 수하가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박피옥에 존재하는 놈들은 애초에 불효하거나 불충한 놈들이다. 언제든 돌아설 준비가 되어 있는 놈들이 돌아섰다는데 뭐 그리 놀랄 일이겠는가?
신경이 거슬리는 것은 음양귀의 의도였다.
왜? 어째서? 무엇 때문에?
협비를 쓰러뜨릴 정도로 강한 놈이다.
귀모의 권능을 부여받을 수 있었을 텐데도 도산옥주의 자리조차 마다한 것을 보면…….
“……놈의 탐심이 도산옥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다는 뜻인데.”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고심하던 교마가 무언가에 놀란 듯 눈을 부릅떴다.
잠깐, 그러고 보니 그때…….
‘우융, 조만간 즐거운 인연이 찾아갈 것 같구나.’
“……!”
설마 그 또한 음양귀 놈을 지칭하는 것이었나?
확실히 이런 존재가 동시에 여럿 나타나는 것보다는 그쪽이 설득력 있다. 교마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하면 귀모는 이미 자신조차 그놈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인가?
“하, 이런 씨부랄. 나를 위한 만찬이라 여겼더니, 내가 량채(凉菜)였던 게군.”
연회 요리 중 가장 먼저 내줌으로써 입맛을 돋우는 량채.
귀모는 협비와 자신을 그리 판단한 것이다. 놈이 우융을 만나기 전 거쳐 가는 과정 정도로.
까드득.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교마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주변을 얼릴 기세로 싸늘히 뿜어지는 한기와는 반대로, 용암처럼 끓어오른 배신감이 그의 가슴을 데우고 머릿속을 달궜다.
귀모와 그의 정신이 연결되어 있음을 잠시 잊을 정도로…….
교마, 그가 누구인가.
박피옥주이다.
그 누구보다 불충하고 불효한 자, 배덕한 자들의 왕.
“좋다, 알게 해 주마. 내가 어떤 위인인지, 나의 방식대로…….”
교마가 법구 세류를 힘껏 움켜쥐며 일어났다.
흥분은 하지 않는다.
귀모가 자신을 낮게 판단했다면, 그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녀의 눈은 틀리지 않을 테니.
그러니 냉철하게 분석한다.
놈을 보고, 느끼고, 살펴 이길 방법을 찾을 것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곳으로 놈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먹어 치운다.
놈이 가진 능력을 흡수해 우융을 뛰어넘고, 종내 귀모의 생각에 일침을 가하리라.
애초에 해형장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말라 명했지, 놈을 공격하지 말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하니 그 뜻을 어기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꽈악.
교마가 그의 곁에 늘어서 있던 조각상을 향해 세류를 들어 겨누었다.
스아아아.
모든 조각상이 세류 속으로 빨려 들어간 뒤, 넓디넓은 대전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많던 조각상도, 교마의 모습도.
* * *
콰아아앙!
서쪽 방어선이 터져 나가는 소음에 분절형장의 수장 조음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두루와! 두루와 봐, 이 새끼들아! 내가 황신이다!”
양손에 비수를 힘껏 움켜쥔 귀가 전선으로 뛰어들어 수하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이름은 묻지도 않았는데?
게다가 허락도 없이 들어온 게 누군데 뭘 자꾸 들어오라고 소리를 지르고 앉았단 말인가?
그뿐이 아니었다.
촤아아악!
조음의 시선이 그 옆, 식칼을 꼬나쥐고 종횡무진 날뛰는 놈에게로 옮겨 갔다.
놈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수북이 쌓이는 껍데기,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저 능숙한 박피 솜씨.
자신이 잘못 보지 않았다면 박피옥의 자랑스러운 사공 가리온이 틀림없다.
뭔……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얌전히 천계로 갈 날을 기다리며 노질이나 할 일이지 왜 갑자기 자신의 형장으로 찾아와서 분탕을 치고 지랄이야?
“후아압!”
따아앙!
그 뒤로 약한 놈들만 쏙쏙 골라 대가리를 터트려 대는 놈도 보였다.
“…….”
그런데 어째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난동을 피우는 놈들치고 신나 보이지 않는다.
꼭 무언가에 쫓기는 것 같은, 마치 이쪽을 공격하지 않으면 지 놈들이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절박하고 처절한…….
“대체 뭐 하는 새끼들이야?”
옥주에게 아무런 전갈도 받지 못한 조음으로서는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스르륵.
고민하던 조음이 깊은 한숨과 함께 천천히 법구를 뽑아 들었다.
서쪽이든 동쪽이든, 어차피 그 셋에게 죽임을 당한 자들은 부활해 돌아올 터였지만, 일단은 막아야 했다.
뭐가 어찌 됐든 자신이 관리하는 곳에서 일어난 소란이 아닌가?
“응? 저건 또 뭐야?”
막 나서려던 조음의 눈동자에 멀리서 밀물처럼 몰려오는 또 다른 무리가 보였다.
그들 앞에서 내달려 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육장?”
그였다.
한 손에 항아리를 든 그가 해형장의 괴들을 이끌고 분절형장을 노도처럼 밀어닥치고 있었다.
“이런 염병할, 오늘이 대목장도 아니고 젓갈쟁이 새끼는 해형장을 두고 왜 여기 와서 지랄이야?!”
도 넘은 황당함에 욕설이 절로 튀어나왔다. 개판도 어느 정도여야 침착할 것 아닌가.
그런데…….
“응?”
어째 상황이 묘하다.
“공격해라! 저 세 놈들을 반드시 쓰러뜨려야 한다!”
미친 듯이 해형장 요괴들 등 떠미는 육장 놈이 가리키는 게…… 앞선 셋이네?
그럼 지금 우릴 도우러 온 거라고?
쉬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눈이 휘둥그레진 조음의 시선이 다시금 황신 일행에게로 향했다.
“대체 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해형장을 떠났다는 것만으로도 옥주의 추궁을 받을 것이 뻔한데…….
“음, 이리되면 일단 육장을 만나 상황 파악부터 해야 하는 건가?”
갑자기 돌아 버린 게 아니고서야 뭔가 자신이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직접 묻는 게 가장 빠르겠지.
“일단 너희는 놈들을 막아라! 나는 육장을 만나 보겠다!”
“알겠습니다!”
결심을 굳히고 휘하의 요와 괴에게 명을 내린 조음이 전장을 우회해 육장이 있는 방향으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육자앙!”
“……!?”
한달음에 도착한 조음의 부름에 육장이 힐끗 쳐다보는가 싶더니, 곧바로 그를 무시하고 공격을 이어 나갔다. 조음은 그 모습을 잠시 쳐다보다, 다시 빽 외쳤다.
“육장! 이 자식아! 멈춰 보라고!”
“비켜, 이 새끼야! 바빠!”
“…….”
이건 또 뭔 소리야.
바빠? 뭐가?
“야, 인마! 이러는 연유나 좀 알자! 대체 무슨 일이길래 해형장까지 버리고 이러는 거냐? 옥주님의 추궁이 두렵지도 않아? 이러다가 너 세류의 제물이 될 수도 있어!”
“……풉!”
“……?”
나름 생각해서 해 준 말에 육장이 조소를 터트렸다.
“조음아, 이 멍청한 조음아. 지금 뒷일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야.”
“응?”
“내가 충고 하나 해 주마.”
“으응?”
“궁금해하지 마. 멍청한 대가리로 생각 같은 것도 하지 마. 그냥, 싸워.”
“으응?”
“쟤들 보이지?”
“……?”
육장의 손가락 끝을 따라 고개를 돌린 조음이 눈을 끔벅였다.
“쟤들 못 막으면…… 너나 나나 둘 다 죽은 목숨이야. 그러니까 방해하지 말고 비켜!”
“…….”
그 말을 끝으로 제 손을 냅다 뿌리치고 황신을 향해 달려 나가는 육장의 뒷모습에, 조음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저게 진짜?”
하여간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남의 집에 왔으면 이유부터 밝히는 것이 먼저이거늘, 괜한 의문만 더해 놓지 않았는가?
“쯧쯧, 분절형장이라는 곳도 별거 아니네. 고작 셋을 못 잡아서 저 난리라니…….”
“……?”
인상을 팍 구긴 채 육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조음이 혀 차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무척이나 대조적인 모습을 한 둘이었다.
하나는 있으니 들어 준다는 느낌으로 대충 어깨에 검을 걸친 채 아무렇게나 터벅거리며 걸어오고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검은 광택이 번들거리는 봉을 비껴든 채 뒤따르고 있었다.
“뭘 길 처막고 꼬나봐? 비켜.”
“…….”
그중 대충 걷던 놈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조음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사숙, 저쪽으로 가시죠? 바위가 높은 데다가 위가 평평하니 전장을 지켜보기에는 안성맞춤일 듯싶습니다.”
“오! 그러네. 그 옆에 공터는 네가 좌선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구나.”
“예, 사숙.”
“…….”
자신을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한 모습에 조음의 눈 주위가 크게 씰룩였다.
무시당했다, 분절형장의 주인인 자신이.
황당함이 의문으로, 의문이 다시 분노로 변해 표출되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거기, 일단 정지.”
“……?”
“하아, 이것들이 진짜 나를 뭘로 보고…….”
“……?”
“니들 뭐냐? 어? 하는 꼴을 보니 어디서 좀 놀았나 본데, 대상을 아주 잘못 골랐다, 응? 내가 누군 줄 알아?”
분노가 극에 달한 조음이 혈광이 감도는 눈을 힘껏 부라렸다.
뜬금없이 분절형장을 공격한 셋이나, 아무리 돕는다고는 해도 허락도 없이 수하들을 죄 이끌고 온 육장…….
그리고 싸가지는 어디 바위 위에 말려 놓고 온 듯한 이놈들까지.
전부 조진다.
순서는 상관없다.
눈앞에 있는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부터 조진 이후에 모조리 처리할 것이다.
조음이 한창 전의를 불태우는데, 그를 빤히 쳐다보던 불한당, 진무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니가 누군데?”
“뭐?”
“모르니까 말해 보라고, 니가 누군지.”
“…….”
고개를 비딱하게 꺾은 채 묻는 시건방진 태도에 조음의 이성이 팽팽하게 당겨졌고.
“음, 뉘신진 모르겠으나 웬만하면 저쪽 전장으로 가시기를 추천해 드립니다. 이곳은 무척이나 위험하거든요.”
“…….”
충고랍시고 전장을 손가락질하며 친절하게 자신을 무시해 주는 청상의 모습에 당겨진 이성이 툭 끊어졌다.
후아아악!
그의 손에 들린 법구가 청상의 머리를 향해 세차게 휘둘러졌다.
턱, 휘익, 후아앙!
동시에 진무가 청상의 어깨를 잡아당겼고, 조음의 법구가 청상이 머리가 있었던 허공을 가르며 지나갔다.
“……?”
피했다고?
힘이 좀 실리긴 했지만, 자신의 전력이 담긴 일격을?
온 힘을 다해 휘두른 공격이 목표를 놓쳐 버리자 조음이 일순 멈칫했다.
“이런, 나름 생각해서 충고해 준 애한테 다짜고짜 공격이라니.”
“……뭐?”
“청상인 아직 준비가 안 돼서 말이지. 어쩔 수 없이 내가 상대해 주마. 누군진 이따 듣기로 하고.”
입술을 얇게 벌리며 웃는 진무의 말에 조음의 분노가 기어이 머리를 뚫고 치솟았다.
“이런 개잡놈이! 죽여 버리겠다!”
“…….”
콰르르릉!
일순간 조음의 몸에서 뻗어 나온 마력이 손에 들린 법구에 오롯이 스며 벼락처럼 휘둘러졌다.
쉬아아악!
가공할 기운이 세상을 갈라 버릴 기세로 슬쩍 몸을 물리는 진무의 가슴께를 스치는가 싶었는데…….
턱.
“……?!”
정작 머리가 잡힌 건 조음이었다.
순간 상황 인지를 제대로 못 한 조음이 눈을 휘둥그레 뜨자, 진무가 가볍게 뻗은 팔에 힘을 주며 싱긋 웃었다.
“난폭하긴, 일단 좀 맞자. 얌전해질 때까지.”
“이놈이!”
쩌어어억!
손을 떨치려던 조음의 머리가 진무의 주먹에 세차게 휘돌았다.
“이, 이놈…….”
쩌어억!
머리가 뒤흔들리는 충격을 겨우 이겨 내고 고개를 쳐들자, 또다시 진무의 주먹이 틀어박혔다.
“이…….”
쩌어억!
“…….”
쩌어억! 쩍! 쩍! 쩍!
머리를 움켜쥔 채 말없이 주먹을 휘두르는 진무도, 그때마다 고개가 수없이 돌아가는 조음도 말이 없었다.
쩍! 쩌적! 쩍, 쩍! 퍼어억!
몸에 힘조차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얻어맞은 조음이 땅바닥에 털썩 널브러졌다.
분명 죽었는데……. 또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이었다.
몸을 일으키지도 못한 채 부들부들 떨며 겨우 고개를 들어 올린 조음과 시선을 맞추며, 진무가 다시 물었다.
“그래서? 네가 누군데?”
“이, 이놈…….”
마지막 자존심을 담아 노려본 곳에 진무의 주먹이 있자 움찔한 조음이 급히 입을 뗐다.
“조…….”
퍼어억!
그러나 진무의 주먹이 그의 턱뼈를 때려 부수는 게 먼저였다.
“이 새끼가 아직 정신 못 차렸네. 너 지금 욕하려고 했지!”
“…….”
아니, 그런 적 없는데요…….
전 그냥 이름, 이름을 말하려고…….
혹시 뭘 까는 것처럼 들렸던 건가요? 그랬다면 죄송합니다. 제발 그만 때리세요.
하지만 입은 열었으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퍼억, 퍽, 뻑!
처절하고도 가련한 몸 소리만이 한동안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