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72
42화
“아, 미안. 난 또 욕하는 줄 알고.”
“아닙니다. 빠르게 붙여 말하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그리 이해해 주니 고맙네.”
“별말씀을요, 헤헤.”
분절형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평평한 바위 위.
온몸은 진흙밭을 구른 듯했고, 얼굴은 특히 집중적으로 줘 터진 탓에 세 배쯤 부어오른 조음이 좌정한 진무 옆에 무릎 꿇고 앉아 연신 헤실거리며 비위를 맞췄다.
하나 마음까지 어디 그렇겠는가?
빌어먹을 새끼!
두고 보자, 지금은 힘이 없으니 고개를 숙인다만! 반드시 복수해 주마!
“그래, 저쪽이 더 세다고?”
“그렇습니다. 저 조그만 귀 쪽에 포진된 서쪽 방어선이 훨씬 더 강합니다.”
다만, 마음과 달리 입은 철저히 가식 덩어리였다.
“황신이다.”
“아, 죄송합니다. 황신이라는 저 귀가 좀 더 위험합니다. 육장마저 그를 공격하고 있으니.”
“음, 그럼 안 되지. 두 녀석을 고루 수련시켜야 하는데, 한쪽이 너무 우세하면 균형이 무너지잖아.”
“저런.”
“이걸 어쩌지? 가서 백표가 있는 쪽에 좀 더 투입하라고 명을 좀 내려 줄래?”
“가다니요? 그 정도는 여기서 바로 시행할 수 있습니다.”
“응? 바로? 그게 돼?”
“암요! 되고말고요! 제가 이 분절형장의 주인이올습니다.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호오.”
진무가 흥미롭다는 듯 쳐다보자, 조음이 법구를 쥐고 정신을 집중하듯 눈을 감았다 떴다.
그러자 황신을 공격하던 요괴들이 대거 빠져나와 백표 쪽으로 달리며 전장의 모양새가 빠르게 변화했다.
“오, 신기하구만.”
“제 법구인 사령(思令)입니다.”
조음이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내민, 노파의 지팡이처럼 볼품없이 휘어진 법구를 지그시 바라보던 진무가 되물었다.
“사령?”
“예, 제게 귀속된 놈들에게 명을 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법구입니다. 이 때문에 제가 박피옥에서 세력전을 가장 잘 수행하는 귀가 되었지요.”
“굉장한데? 법구를 가진 사람은 아무나 되는 거냐?”
“그럴 리가요. 사령과 동화를 이루지 못한 이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박피옥에서 오직 저만 가능합니다.”
“그래? 어디 한번 줘 봐.”
“예?”
“줘 보라고, 되나 안 되나 좀 보게.”
“……안 되실 텐데.”
부탁도 아니고 생짜다.
남의 법구를 달라 손을 내밀면서 어찌 저리도 당당할 수 있단 말인가?
“여기 있습니다.”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조음이 냉큼 사령을 건네자 진무가 빙긋 웃었다.
스승님께서 가르치시길, 자고로 말로써 설득함이 최고라 하셨으나…… 들어 처먹을 놈에게 해야지.
평생을 악인으로 살다가 죽은 놈들에게 설득은 무슨?
이런 놈들에게 매만큼 효과 빠른 것도 없다.
봐라, 품은 마음이야 어찌 되었건 제 법구를 건네주면서도 저리 웃고 있지 않은가.
“특이한 느낌이네.”
“그렇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된다고?”
“해 보시게요?”
“어.”
“일단 동화를 하셔야…….”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방법이나 가르쳐 주면 좋겠는데?”
거듭 난색을 표해 짜증이 난 듯 진무가 눈을 살짝 찡그리자 조음이 기겁하며 빠르게 설명했다.
“마력을 불어넣으시고, 명령을 내리고자 하는 자들을 보면서…….”
“음.”
조음의 설명에 진무가 백표 쪽을 바라보며 정신을 집중했다.
“될 리가…….”
하지만 한편으론 불안했다.
저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보니 뭔가 될 것도 같은 느낌이…….
“어디, 후훕!”
진무가 숨을 참듯 모으며 마력을 밀어 넣자 사령이 반발하듯 강렬하게 진동하며 울어 대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휴, 역시나.
조음은 내심 다행이라 여기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진무가 성공했다면 사령에게 큰 실망을 할 뻔했다.
법구를 쓴다는 것이 어디 힘만으로 되는 일이겠는가?
인생의 짝을 만나는 일이다. 통해야 하고, 교감해야 겨우 얻을까 말까 한 일이…….
“어쭈? 이 자식이 반항을 해?”
“……?”
기분이 상했던 것일까?
사령이 거칠게 반발하자 언짢다는 듯 미간을 팍 찌푸린 진무가 마력을 더욱더 강하게 불어넣었다.
드드드드드.
그 가공할 힘으로 인해 사령이 터질 듯이 부풀고, 이내 실금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자, 잠시만요! 자칫 사령이 부서질…… 어?”
순간 조음의 입이 떡 벌어졌다.
웅!
짧고 간결한 울음.
진무의 힘을 완강하게 거부하던 사령이 잠잠해졌다. 떨림이 사라지고, 진무의 마력을 받아들여 이전보다 환한 광채를 뿜어냈다.
“새끼, 진작에 그럴 것이지.”
사령을 강제로 통제하곤 입꼬리를 슬며시 말아 올리며 웃는 진무를 보며, 조음이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바, 받아들였다고? 내가 아닌 존재의 힘을?”
믿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믿을 법구 없다더니!
어찌 이리 쉽게 타인과 정을 통할 수가 있단 말인가?
아무리 배신이 난무하는 박피옥이라지만, 사령이 그럴 줄은 몰랐다. 정말이지 한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조음.”
“눼.”
“여기서 어떻게 한다고?”
“…….”
말해 주고 싶지 않았지만, 주먹이 너무 가까운 곳에 있었다.
“명을 전할 대상을 보면서 심어를 전하듯 해야 합니다. 하지만 거리도 멀고, 분절형장의 요귀들을 귀속시키는 능력을 가지지 않으셨기에…….”
“그건 해 보지 않곤 모를 일이지. 어디…….”
진무가 가늘어진 눈으로 백표와 싸우고 있는 괴 하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사령에 마력을 집어넣어서…….
「물러나라.」
사령이 환한 빛을 토해 내는 순간, 진무가 쳐다보고 있던 곳에 시선을 집중하던 조음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심어이기에 진무가 무엇을 전했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 변화를 알아채기는 충분했다. 백표의 근처에 있던 괴 하나가 갑자기 뒤로 훌쩍 물러났으니까.
그게…… 된다고?
“흐흠, 역시 네 말이 맞는군. 귀속권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너무 거리가 멀어서인지 한 놈이 고작이야. 심어가 유지되는 시간도 짧고.”
“…….”
“하지만 마음에 들었어!”
“……예?”
“이봐, 조음.”
“…….”
“이거 나 줘라.”
“……예?”
“나 줘, 이거.”
“…….”
그게 지금 해맑은 표정으로 할 말이냐? 남의 거 강탈해 가려고 하면서?
“그건…… 제 법구인지라…….”
“음, 그렇지. 그럼 빌려줘라. 쓰고 줄게.”
“…….”
빤히 쳐다보는 눈빛에서 반드시 가지고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조음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빌려드리는 것이라면…….”
“좋아! 고마워. 큭큭, 이거 좀 더 써먹어 봐야겠어. 잘하면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야.”
“…….”
진무가 킥킥거리며 사령을 잡곤 다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한다.
사령이 희뿌연 빛을 발할 때마다 백표와 황신의 주변에 있던 괴들 몇몇이 평소와 다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거참 신기한 법구군. 사숙께서 꽤 신이 나신 모양이네.”
옆에서 좌선하며 깨달음을 향해 수련하던 청상이 빙긋 웃는데…….
우웅! 우우우우웅!
그의 옆에 놓여 있던 여의가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뭔가 난동을 부리는 느낌에 청상이 다급히 여의를 움켜쥐었다.
“어허, 이놈이 왜 갑…… 어헉!?”
그리고 순간, 잡은 손을 타고 급류처럼 파고드는 힘에 청상이 감전당한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런 빌어먹을 진무 자식! 보자 보자 하니까 청상도 모자라서 저따위 잡스러운 놈에게 한눈을 팔아? 나처럼 멋지고, 뛰어난 실력을 가진 흑룡을 두고?! 오냐, 두고 보자. 나도 가만히 수절하고만 있지는 않겠다! 이렇게 되면 맞바람이라 이거야!」
……라는 듯한 의지가 물씬 느껴졌고, 청상은 몸속으로 파고든 여의의 마력을 버텨 내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했다.
“사, 사수우……욱, 여의가 갑자기…….”
진무를 향해 도움을 청했지만, 쥐어짜 낸 목소리였기에 중얼거림보다 작았다.
「닥쳐! 이 초짜 신선 새끼야! 내가 널 선택한 거야! 그러니까 줄 때 받아 처먹어! 이렇게 된 이상 전력을 다해서 네놈을 각성시켜 버릴 테다!」
“끄으으…….”
외로운 사투를 시작한 청상의 꽉 맞물린 잇새로 앓는 듯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정작 그 원흉이나 다름없는 진무는 여의의 질투가 폭발한 것도, 그로 인해 청상이 또다시 고통받게 된 것도 모를 정도로 사령에게 정신이 팔린 채였다.
“호오, 제법 시간이 늘어나는데? 좋아! 본격적인 수련이다!”
* * *
휘이익! 퍼어억!
“큭!”
괴의 변칙 공격에 복부를 걷어차이고 한참이나 뒤로 물러난 황신이 얼굴을 찡그렸다.
“이런 씨부랄, 별 그지 같은 게!”
그러나 자옹을 든 육장이 그의 빈틈을 노려 왔기에 곧장 반격하지 못하고 다시금 물러나야만 했다.
한데 뭔가 의아했다.
한순간 자신을 공격했던 괴의 움직임을 놓쳤다.
예민한 청력에 와 닿은 공기의 흐름을 통해 그 움직임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여겼는데, 예상치 못한 곳을 파고든 것이다.
이미 과거의 힘을 되찾아 귀의 경지에 올랐음에도 괴에게 공격을 허용한다는 것은 진무의 개인 호위를 자처해 온 그에겐 무척이나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빌어먹을 새끼가…….”
방금 자신을 공격한 괴를 바라보던 황신이 자기도 모르게 생전의 버릇을 드러냈다.
할짝.
붉디붉은 혀가 날름대며 비수의 날을 핥는 그 순간.
퓻!
황신의 움직임이 그림자에 스미듯 사라졌다.
동시에 괴의 전면에 모습을 드러낸 그가 비수를 곧게 뻗었다.
푹!
“끄륵…….”
괴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지도 못한 표정으로 기우뚱 쓰러졌다.
“캬악, 퉤! 별것도 아닌 게 까불고 지랄이야.”
하지만 머뭇거릴 틈은 없었다.
쉬이익! 쩌어엉!
또 다른 괴가 공격이 끝난 순간을 노려 황신의 하단을 파고들었다.
“……쌍!”
역시나 좀 전의 녀석과 같다.
청력과 마력에 의존하고 있던 그의 예측을 완전히 벗어난 공격이었다.
그 순간에도 쉬지 않고 공격해 오는 육장보다 더욱 빠르고 날카로웠으며, 위협적이었다.
마치 괴들이 자신의 움직임을 전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젠장, 수련이 우리만 되는 건 아닌가 보네. 그사이에 각성이라도 한 모양이지?”
실력이 급등해 버린 몇몇 괴들의 공격에 황신이 싸늘한 미소를 머금으며 비수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나라고 가만히 있겠냐, 이 괴 새끼들아?”
이전과는 눈빛부터 판이해진 황신이 주변을 스산하게 바라본다.
어느 순간 몸이 기억해 낸 것이다. 자신이 어떠한 싸움을 해 왔던 인물인지.
애초에 정면으로 싸우는 건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때 살막의 후계자로 후에 생사인(生死刃)으로 불렸던 소동보와 상하를 다투던 어둠 속의 칼날이 바로 자신이 아니었던가?
다만 다른 것은…….
푹!
소동보는 베었다면 자신은 찌른다는 것.
“지금부터 모가지에 바람구멍 하나씩은 각오해 둬라, 괴 새끼들아.”
황신의 움직임에 그간 잊고 있었던 기예가 더해지기 시작했다.
발걸음은 낙엽이 부서지지 않을 만큼 가벼워졌고, 속도는 바닥에 그림자조차 맺히지 않을 만큼 빨라졌다.
쉬잇!
어느새 형체마저 사라져 버린 황신이 바람처럼 적들의 틈새를 누비기 시작했고, 비수가 번쩍일 때마다 목구멍이 뚫린 괴들의 시체가 쌓였다.
그리고 괴들의 변화는 비단 황신에게만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퍼어억!
쉽게 껍데기를 벗겨 내던 백표가 괴의 공격에 바닥을 뒹굴었다.
“크억! 이런 씨발! 뭔데? 대체 뭐야! 왜 갑자기 세진 건데? 니들 각성이라도 한 거냐?”
……백표는 썩 순조로워 보이지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