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73
43화
분절형장의 싸움은 점차 황신 등에게로 기울고 있었다.
휘둘린 게 언제였냐는 듯 어느새 전장을 지배하고 있는 황신 등의 모습에 진무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괄목(刮目)할 만한 성과였다.
육장을 데려온 것도 그렇지만, 조음에게서 사령을 얻는 바람에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우선 사령을 이용해 몰아붙이자 위기를 느낀 황신의 움직임이 판이해졌다.
비수를 핥는 것만 제외하면 거의 완벽에 가까운…….
뭐 상관없나? 어차피 뒈진 마당에 쇳독 오른다고 다시 뒈질 린 없으니까.
어쨌든 위기에 몰렸던 황신이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였고 다소 느리긴 했지만, 백표도 차근히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생도…….
퍽!
“끄악! 이 새끼가!”
빠아악!
“꽥! 이 쌍놈의 괴가!”
……처맞고 있긴 하지만, 동시에 때리고도 있다.
과거 청우를 처음 가르치던 그때와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일일이 하나씩 짚어 가며, 머리보단 몸이 먼저 익히도록 해야 했던…….
하지만 같은 방법으로 수련시키기에는 너무너무, 너어어무! 귀찮다. 무엇보다 시간도 부족하고.
이런 경우 그냥 밀어붙인다.
죽어도 되살아 날 놈이니 한계까지 몰아붙이다 보면 자연적으로 깨우침을 얻겠지.
맞으면 맷집으로 버티고, 악착같이 상대의 머리를 바수면 그것으로 족하다.
“흠, 그래도 나중에 맷집은 더 길러 줘야겠네.”
향후 이생이 나아가야 할 길을 심각하게 고민하며 주먹을 불끈 움켜쥔 진무가, 그 자세 그대로 눈만 돌려 힐끗 청상을 쳐다봤다.
남은 건 청상이다.
자충을 다시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자제력을 가지게 하자면……어?
순간 청상의 변화를 발견한 진무가 눈을 부릅떴다.
“끄으으…….”
여의가 뿜어내는 검은색 빛에 휩싸여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는 청상.
뿐인가? 팔뚝에는 힘줄이 툭툭 불거져 나와 있고, 앙다문 입가로는 핏기까지 비쳤다.
하아, 얘는 또 왜 이래? 기껏 자충에게서 떼 놨더니.
“청상아!”
사질이 걱정된 진무가 황급히 뛰어 내려가자 ‘웅’ 하는 떨림과 함께 여의의 빛이 움찔하더니 사라지고, 청상이 혼절한 듯 풀썩 쓰러졌다.
“음.”
기절해 버린 청상의 몸 구석구석을 살폈음에도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한 진무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별 이상은 없어 보이는데…….”
그러다 문득, 진무의 시선이 빛을 감추고 거무튀튀해진 여의에게 향했다.
갑작스러운 청상의 변화. 예측할 수 있는 원인은…….
너밖에 없네, 이 흑화한 용 새끼야.
「오, 오해다.」
“…….”
게슴츠레한 눈으로 째려보는 진무의 시선을 느꼈기 때문일까?
진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여의가 다급히 부정하고 나섰다.
「뭐가 오해란 거냐? 어? 어어!?」
「……그, 니가 생각하는 그거?」
「내가 뭘 생각했는지는 알고?」
「그, 그게……. 혹시 자충처럼 내가 청상이 몸을 차지하려 한 것은 아닐까 하는…… 뭐 그런 거 아니었냐??」
「말 안 해도 잘 아네. 내가 잠깐 한눈판 사이에 이것들이 왜! 다들 청상 가지고 난리야!」
「어, 어허! 긍지 높은 용의 후손을 뭘로 보고! 내가 그런 꼼수나 쓰는 놈으로 보이냐!」
「아니냐?」
「……다, 당연히 아니지! 물론! 청상 저 녀석이 충분히 탐날 만한 녀석이지만! 아니다! 절대로 아니야!」
「…….」
뭔가 심각하게 의심스러운 반응이었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누가 그러던데?
「아, 아니라니까? 실은…… 저놈이 발작하길래 내가 막은 거뿐이다. 정말이다. 용의 명예를 걸고 말할 수 있다!」
「마력에 미쳐서 흑화한 놈이 명예는 무슨 놈의 명예!」
「지, 진짜다. 믿어 다오! 나는 결백하다!」
여의가 거듭 변명했지만 여태 겪은 게 있어서인지 영 신뢰가 안 갔다.
하지만 청상의 몸에 딱히 이상이 없고, 몸 안에 여의의 마력이 은은하게 흐르는 것을 보면 거짓말 같지도 않았다.
흠, 하긴, 제 말처럼 용의 명예까지 운운한 놈인데…….
아니지, 그래도 만사 불여튼튼이라지 않는가?
사령처럼 주인을 갈아타는 놈도 있고, 자충처럼 청상을 노린 놈도 있으니.
「여의.」
「으응?」
「일단 니 말을 믿어 주긴 하겠는데, 혹시라도 딴생각 품지 마라. 청상 건드리면 용이고 나발이고 그땐 진짜 막가는 거야? 알겠어? 봉 대를 두 동강 내서 염수호에서 가장 깊은 곳에 처박아 버릴 테니까 명심해.」
그 말에 여의가 잘게 떨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아니, 어찌 그런 심한 말을!」
봉 대를 부러뜨리다니, 용 허리를 부러뜨리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리고 천계도 아니고 지계의 염수호라니? 수질도 더러워 보이고 이상한 물고기도 살더만…….
「심하고 나발이고! 알겠냐고!」
「끄응, 알았다. 명심하마, 빌어먹을 주인 놈아.」
「진작 그럴 것이지.」
다시금 눈을 흘기곤 본격적으로 청상을 돌보기 시작한 진무를 보며, 여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바득바득 우겼더니 겨우 믿는 눈치가 아닌가?
만일 청상의 몸에서 힘을 빼는 것이 조금만 늦었더라도 진무 놈에게 들켰을 것이다.
잘 둘러댄 덕분이다.
진무 놈과는 동화를 이룬 덕분에 서로의 마음을 읽어 대화할 수 있지만, 청상은 다르다. 아직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청상이 깨어나서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 그땐 모조리 자충 탓으로 돌려 버리면 된다.
청상의 몸에 남았던 자충의 힘이 그리한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혼절한 순간의 충격 때문일 것이라고…….
지 놈이 어쩌겠는가? 아니라는데!
하여간에, 그래도 청상의 몸에 씨앗 정도는 심어 둘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통로 삼아 청상 놈이 느끼지 못하는 새에 조금씩 그 몸 안으로 스며들 수 있게 되었다.
두고 봐라, 진무 놈아.
네놈이 나를 청상에게 맡긴 것을 땅을 치며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제발 다시 돌아와 달라며 매달리게 해 줄 것이다.
이참에 아예 주인을 바꿔 버려도 상관없다.
청상의 몸을 살펴보니 진무만큼은 아니어도 제법 쓸 만하지 않았나. 모자란 것은 내 힘으로 메꾸면 그만이다.
그래, 이걸로 되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우니, 앞으로 주의만 잘하면 된다.
뜻을 이루기도 전에 저 사악하기 짝이 없는 진무 놈에게 들켜 버리면 곤란하지.
그간 놈의 성정을 보았을 때, 뱉은 말은 반드시 하고 마는 녀석이다.
아마 진짜 자신을 두 동강 내서 염수호에 처박을지도…… 아니, 분명 그리하고도 남을 놈이다.
저런 바늘을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극악무도한 놈이 신선 중에서도 상선을 넘어 상제에 오를지도 모를 상태가 되었으니 말세다, 말세야.
나 때는 천계에 저런 놈들 없었는데…… 쯧쯧, 천계가 어찌 되려고 이러는지.
* * *
“후우, 청상이 또 이 모양이고, 전쟁도 대충 끝나 가고…… 그만 마무리해야겠네.”
여의에게 한참 으름장을 놓은 뒤 청상을 바라보던 진무가 조음을 불렀다.
“이봐, 조음.”
“예?”
“그만 내려가자.”
“아, 전쟁은 이걸로 끝입니까?”
“그래. 더 해 봐야 큰 의미도 없을 것 같고, 이젠 다음 상대를 찾아야지.”
“알겠습니다.”
“먼저 가서 대충 정리 좀 해라.”
“예. 제가 가서 전장을 정리하고, 진무 님을 위한 환영회를 준비토록 하겠습니다.”
“환영회? 호오? 거 좋지. 어서 가 봐.”
“예!”
어느새 충실한 수하라도 된 양 진무에게 공손히 인사한 조음이 분절형장을 향해 달려갔다.
“흐음, 그나저나 짐꾼이 좀 필요하겠는데.”
진무가 사령을 들고 정신을 집중하자, 분절형장의 괴 하나가 황급히 뛰어왔다.
[업어라.]진무의 명령에 괴가 홀린 듯 멍한 눈으로 청상을 조심스럽게 등에 업었다.
여의도 들고, 자충도 들고…….
이거 볼수록 유용하단 말이야.
동화도 이루지 않은 상태에서 명을 내리는 것이 어찌 가능한진 모르겠지만, 상관없다. 된다는 게 중요하지.
이참에 아예 무기한으로 임대하는 것이 좋겠다.
법구를 꼭 하나만 취하라는 법도 없잖아?
여의는 여의대로 가지고, 사령은 사령대로 가지고…….
진무가 흐뭇한 상상을 하며 전장의 중심으로 내려갔을 때, 싸움은 조음의 개입으로 인해 모두 끝난 뒤였다.
진무는 사력을 다한 탓에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풀썩 주저앉아 가쁜 호흡을 몰아쉬는 셋을 바라봤다.
영 시원찮아 보인다.
확 개별 훈련을 추가로 시켜?
아니, 아니다. 쉴 때는 쉬어야지. 급히 먹으면 체하는 법이 아니던가?
“수고했다. 아주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만하면 되었다. 오늘은 그만 휴식해라.”
“예! 천주님.”
“가, 감사합니다, 은공.”
“끄어어…….”
휴식 허락이 떨어지자 셋이 주저앉은 그대로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육장!”
“예!”
“너도 고생했다. 다음 수련을 위해 좀 쉬어 둬.”
“감사합니다.”
진무의 무서움을 치가 떨리도록 느낀 육장도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대답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사이 조음이 준비한 연회가 시작되었다.
딱히 진수성찬은 아니었지만, 뭔 상관인가? 전투로 허기진 상황에서 시장이 반찬인 법이라, 모두가 아귀처럼 들러붙어 허겁지겁 음식을 입 안에 욱여넣었다.
“술은 없나?”
“없긴요? 있습죠. 당장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전체적으로 쭉 한번 돌려 봐.”
“예!”
술과 음식. 그거면 충분했다.
황신 등은 피로한 몸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고,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해 왔던 분절형장과 해형장의 요괴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진무가 베푼 은혜에 공손히 절을 올렸다.
누가 그랬다. 뛰어난 영도력이란 잘 멕이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고.
그래, 니들도 열심히 먹어 둬라, 수련용 교보재들아. 이제부터 우리 애들 수련을 위해 죽고 부활하고를 계속해서 반복해야 할 테니까.
오늘 하루는 형벌장의 망자와 아귀들도 쉬는 것이다. 아마 지계 역사상 최초의 ‘형벌 없는 날’로 기록될지도 모르겠군.
아무리 죽을죄로 벌을 받는 처지라곤 하지만, 하루쯤의 휴식은 괜찮지…… 어? 그러고 보니…….
연회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진무가 빤히 쳐다보자 눈이 마주친 육장이 흠칫 놀라며 납작 엎드렸다.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
누가 뭐라고 했냐?
“흠, 이봐, 육장. 내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그런데…….”
“예?”
“생각해 보니 지금 해형장을 다 비운 거잖아?”
“그, 그렇습니다.”
“그럼 거긴 누가 통제해? 망자랑 아귀들은 그대로 남아 있잖아?”
“아! 그렇군요!”
“…….”
진무의 물음에 육장이 비로소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무릎을 탁 쳤다. 진무는 그런 그를 보며 황당하다는 듯 눈을 살짝 치떴다.
설마, 이제까지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던 거냐? 걱정도 안 했어?
“글쎄요. 뭐…… 어떻게 되겠죠? 핫핫핫!”
잠깐 고민하나 싶던 육장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응? 그게 끝이야?”
“……뭘 더 해야 하나요?”
“아니, 그래도 니가 수장으로 있는 곳인데?”
“그렇긴 하지만…… 이젠 진무 님을 따르고 있는데요?”
“그렇긴 하지만…… 박피옥주가 두고 보겠어?”
“두고 보진 않겠죠?”
육장이 갑자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조음이 황급히 끼어들며 손사래를 쳤다.
“괜찮습니다, 핫핫핫! 뭐 별 탈이야 있겠습니까!”
“…….”
아무리 매 맞는 게 싫어도 그렇지…….
진무는 호탕하게 웃어 버리는 조음을 질린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너 인마, 아무리 박피옥이 배신과 불효한 자들의 집합소라고 해도 그렇지, 배신이 너무 쉬운 거 아냐? 어떻게 고민 한 가닥이 없어? 어?
하지만 조음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술잔을 채우는 조음을 비롯해 연회장에 있는 모든 요괴가 진무를 향해 충성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아, 이런 배신자 나부랭이들 같으니라고.
주인 바꾸기를 여반장처럼 하는 그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진무의 시선이 일순 한 곳에 딱 멈추었다.
“응?”
뭐지, 저놈은?
희한한 놈이었다.
보기엔 그냥 분절형장의 여느 괴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인데, 뭔가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게다가…… 조금 전 느껴진 살벌한 분노는 대체 뭐였지?
내가 느낀 게 확실하다면 그 분노가 육장을 향해 있는 것 같았는데?
진무의 눈매가 의심을 품은 채 한없이 가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