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75
45화
“오, 옥주님?”
“응? 그게 무슨 말이냐?”
진무가 들고 있는 거죽을 쳐다보던 조음과 육장이 눈을 부릅뜨며 놀랐다.
“설마 박피옥주를 말하는 거냐?”
“아…….”
“…….”
둘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보니 답은 듣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조금 전 그놈 뒤에 교마가 있는 게 아니라, 그놈이 교마였군.
“야, 대답해 봐. 이게 박피옥주라는 거냐?”
진무가 손에 든 거죽을 휙휙 휘두르며 묻자 조음이 힘없이 주저앉으며 답했다.
“예, 아마도…… 아니, 확실할 겁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표정으로 내뱉는 조음의 말에 진무의 미간이 깊이 일그러졌다.
“벗겨 낸 가죽으로 환형(幻形)하는 것은 그분의 법구인 세류의 능력 중 하나입니다.”
“흠, 모습을 바꾸는 능력이라.”
육장 또한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동조하자 진무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턱 언저리를 쓸었다.
둘이 그리 확신한다면 조금 전의 놈의 정체는 교마가 확실할 것이다. 박피옥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놈들이 잘못 볼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이상하다.
일전의 서기는 공사가 몹시 다망해서 보거나 느끼지 못했었다고 치더라도, 남의 거죽까지 뒤집어쓰고 숨어들어 살필 정도라면 이미 자신의 방문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해형장에 분절형장까지 이 모양 이 꼴이니 모를 린 없겠지.
그런데 왜?
만약 자신이었다면, 일단 싸움부터 걸고 줘 패서 곤죽을 만든 뒤에 물었을 것이다. 너 뭐 하는 새끼냐고.
자신의 개념으론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인데 어째서 살피고자 한 것일…… 아!
순간 진무의 미간이 활짝 펴지고,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 새끼, 약한 거네.”
“예에?”
“약해. 정면으로 싸울 자신이 없으니까 이딴 짓을 하는 거지.”
조음과 육장이 멀뚱히 눈을 끔벅이며 서로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어, 진무 님?”
“뭐?”
“제가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지금 교마 님이 약하다, 뭐 그런 말씀은 아니시죠?”
“맞는데?”
“…….”
뭘 그렇게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한 태도에 둘의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표정하고는…….
진무는 똑같은 표정을 한 둘을 보며 피식 웃었다.
하지만 진심이었다.
환형? 그게 역용술이나 축골공 같은 것과 뭐 그리 다르단 말인가?
그런 것들은 스스로의 약한 면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그러한 기예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들이 보기엔 자신이 무턱대고 담벼락부터 부수고 들어가는 미친놈이라 생각하지만, 오산이다.
혁련무강일 때도, 진무일 때도, 선인이 된 지금도.
자신의 가장 뛰어난 점이 무엇이겠는가? 무공? 신력? 마력?
아니다, 바로 비열함이다.
여러 모습으로 살아왔으나, 그 정체성만큼은 확고했다.
왜냐고?
강함이라는 것은 상대적이니까.
지계로 왔을 때 곧장 귀모를 찾아가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또한, 옥황이 자신들을 은밀하게 침투시킨 것도 마찬가지다. 반드시 이긴다는 자신이 없기 때문에.
한때 정파라 부르짖던 놈들이나, 선계에서 편안하게 살아온 놈들은 그걸 모른다. 대의명분이 있으면, 올곧게 나아가기만 한다면 반드시 이긴다고 믿는다.
멍청하게도…….
그건 고집이고, 만용이다.
정면 승부도 가능할 때나 하는 것이다.
약하단 판단이 들면 굽힐 줄도 알아야 하고, 필요하면 돌아갈 수도 있는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즉,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하는 법.
비열함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다.
해서 이기기 위해서는 계략을 철저히 세우든가, 상대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는 실력이 될 때까지 발톱을 감추고 기다려야만 한다.
아직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교마는 그걸 아는 약한 놈이 분명하다.
옥주씩이나 되는 체면에 직접 살피러 온 것만으로도 놈의 성격을 알 것 같았다.
언제든 비열할 수 있는 놈. 그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는 놈.
즉, 무척이나 까다로운 상대일 게 틀림없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질 수 없다.
딴 건 몰라도 그쪽 분야에서는 내가 최고니까. 최고여야만 하니까.
“이봐, 조음.”
“예?”
“교마의 능력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봐. 하나도 빠짐없이.”
“어째서……?”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그건 천계와 지계, 인계를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니까. 비슷한 힘을 가진 상대라면 더욱 효과가 큰 법이고 말이야.”
“……그, 말씀은?”
“교마를 쓰러뜨리겠다는 뜻이지.”
조음은 말을 마치고 싱긋 웃는 진무를 초점마저 흐려진 눈으로 멍하니 응시했다.
이놈이 지금 무슨 말을 씨불이고 있단 말인가? 누구랑 싸운다고? 지피가 뭐 어째?
홱 고개를 돌려 보니 육장은 아예 턱이 빠질 듯이 입을 벌린 채 굳어 있었다.
저런 병신, 너도 몰랐구나. 모르고 따라온 거였어.
그래, 인정한다.
진무는 육장이나 자신이 어찌해 보지 못할 만큼 강하다.
동화도 이루지 않은 사령을 제 법구처럼 사용하는 것도 여전히 믿기지 않거니와, 특히 저 주먹은…… 죽을 수도 없을 만큼 고통스럽다.
승자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은 지계에 사는 이들의 속성이었고, 당장에야 진무가 무서워서 충성을 바치는 척했으나!
실상 마음은 달랐다.
박피옥의 유능한 귀답게 겉으론 충성하면서도 언제든 기회만 찾아오면 등에 칼을 박아 넣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마 육장도 비슷한 마음으로 충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교마와 대적하겠다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이 와중에 더 문제인 것은 척이든 뭐든 진무에게 굽실거리는 장면을 교마가 봤다는 데 있다.
교마가 세류의 능력까지 써서 진무를 살피고 있었다면, 그를 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뜻.
그런 이에게 충성을 바치는 모습을 들켰으니…….
필시 배신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배신자들에게 형벌을 주는 박피옥답게,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사각, 사각사각.
머잖아 닥쳐올 시련을 떠올리자마자 환청이 들려왔다. 음험하고도 잔혹한, 그야말로 모골이 송연해지는 환청이.
“…….”
어느새 머릿속을 점령한 조각도 소리를 떨치려 애쓰며, 조음은 굳게 다짐했다.
막아야 한다.
놈의 미친 짓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
어떻게든 마음을 돌려 함께 죄를 청하고 고개를 조아리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만이 살길이다.
만약 진무가 거부한다면?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다.
저 주먹이 두렵지만, 죽었다가 부활하면 적어도 항변은 해 볼 수 있으리라.
“자, 잠깐만요. 진무 님.”
“왜?”
“교마 님은 그리 만만하신 분이 아닙니다.”
“…….”
“육계의 주인들이 그렇듯, 교마 님이 가진 힘은 귀모님의 권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즉, 교마 님이 가지고 계신 능력은 귀모님의 능력이기도 하단 말입니다!”
“알아.”
“알……아요?”
“어, 알아.”
“…….”
“협비가 그러더군, 자신이 받은 것은 검을 다루는 힘이라고.”
“아…… 아아? 협 누구요?”
“협비.”
“그, 설마 도산옥주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
순간 말문이 막혔다.
머리가 하얘지는 것 같았다.
여기서 도산옥주의 이야기가 왜 나온단 말……이 아니라, 잠깐만. 도산옥주가 말해 줬다고? 직접?
진무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눈을 쉼 없이 깜빡이던 조음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기, 그 말씀은 혹시…… 진무 님께서 도산옥주님을…….”
“쓰러뜨리셨다.”
“…….”
답은 황신이 대신했다.
“저기 있는 청상과 둘이서, 아니 나까지 셋이서 도산옥을 괴멸시켰다.”
“…….”
“싸우셨고, 패셨으며, 이기셨다.”
자부심 가득한 황신의 증언에 조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뭔 어법에도 맞지 않는 삼단논법이란 말인가?
조음이 황당한 눈빛으로 육장을 쳐다봤다.
「나, 나도 몰랐던 사실이다.」
그 역시나 진무의 내력을 알지 못한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알 리가 없었다.
진무에 대해 아는 거라면, 백표와 함께 갑자기 찾아와서 해형장을 때려 부수고 자신을 줘 팼다는 것뿐이다.
그때, 서기 비스무리한 것을 본 것 같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는 짓이며, 말투며 누가 봐도 악인보다 악인 같은 진무에게 서기가 웬 말인가?
처맞는 중에 본 환상이겠지 싶었다. 처맞은 뒤로는 해형장 물속에서 식어들에게 뜯어 먹히느라 정신도 없었고…….
“자, 잠시만! 잠시만요! 그런데 왜 박피옥으로 오셨습니까? 도산옥주를 쓰러뜨리셨다면! 응당 그 권능을 이어받아 후임 도산옥주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간신히 정신을 차린 조음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따지고 들자 진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귀찮아서 거절했다.”
“예에?”
“그리고, 내 목표는 좀 더 위에 있거든.”
“……위라면?”
“귀모.”
“…….”
어질어질하네…….
자신만만한 진무의 말에 조음은 또 머리가 멍해졌다.
야이, 씨!
그건 인마!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잖아!
교마도 모자라서 귀모라니?
“아니, 그럼 지금! 지계를 정벌하기라도 하겠다는 그런 미친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중간에 거의 속삭이다시피 해서 잘 들리지 않았지만, 진무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
“뭐, 당장은 먼 이야기지만, 언젠간 반드시 그렇게 해 보려고. 박피옥은 두 번째 통과점이다. 그러니까 잡소리 그만하고 이제 설명해 봐. 교마가 가진 능력에 대해서.”
조음은 씩 웃는 진무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흠칫하며 물러났다.
뭐지, 저 송곳니?
갑자기 오한이 들긴 하지만, 묘하게 믿음을 심어 준다.
순간 진짜로 지계를 손에 넣을 것만 같았달까?
“그, 그럼 어찌 분절형장입니까? 해형장으로 상륙한 순간 곧바로 교마 님을 찾아갔어야 하지 않습니까?”
“물론 그랬어야 했지. 어차피 교마와의 싸움에서 너희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테니까.”
“…….”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저 녀석들은 아무런 발전이 없잖아. 난 몰라도 저 녀석들에겐 아직 수련이 필요하거든.”
그렇게 말하며 황신 등을 힐끗거리는 진무를 바라보는 조음으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당연히 육계마왕급은 돼야 하지 않겠어?”
“유, 유, 유…….”
말이 나오지 않았다.
꿈이 거창해도 정도껏 해야지. 이거 진짜 개미친놈 아냐.
“뭘 더듬어? 당연한 소리 아냐? 내가 귀모가 되면 저놈들은 당연히 그 아래 급은 돼야지. 어쩌면 지계를 한 구역씩 맡아서 책임져야 할지도 모르고.”
“…….”
너무 당당해서 이젠 당연하게까지 들리는 저 개소리를 대체 어떻게 막을지 궁리하는데, 말도 안 되는 가정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만약…….
진짜로 그렇게 된다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혹시라도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
“…….”
울대가 움직이는 것이 티 나도록 침을 크게 삼키며, 조음은 머릿속으로 빠르게 이해타산을 따지기 시작했다.
지금 진무를 따르고 있는 것은 모두 넷이다.
황신과 백표의 실력은 충분히 봤고, 청상이라는 자는 진무의 옆에 딱 붙어 있다.
옆자리가 괜히 옆자리겠는가?
와중에 싸우지도 않았지 않았던가?
또한 자신이 맞은 뒤에 갑자기 픽하니 쓰러진 그를 진무가 아기 다루듯 살피던 모습을 보건대, 가장 가까운 사이일 것이다.
이생은…… 딱 봐도 가능성이 없으니까 빼고.
그럼 세 자리.
진무가 그의 포부대로 정말로 지계를 정벌하면 세 자리가 빈다.
누군가 선점하기만 하면?
조음의 머릿속에 배신에 이어 또 다른 배신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대상이 이젠 교마도 아니고 무려 귀모다.
꿀꺽!
다시금 다 들리게 침을 삼킨 조음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진무 님!”
“…….”
“교마의 법구인 세류는 세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 제가 아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좋아, 두 개면 아주 준수하구만. 그거라도 말해 봐.”
“알겠습니다. 제가 아는 모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새 교마의 이름 뒤에 ‘님’ 자를 생략한 조음은 눈에 짙은 안광까지 토하며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조음! 네놈 무슨 생각이냐? 설마 저 미친 소리를…….」
「닥치고 나만 믿어라, 육장! 우리 귀생이 달라질 수 있음이다!」
화들짝 놀라 다급히 보내온 육장의 심어를 씹어 버리고, 조음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어차피 이미 갈 데까지 간 상황이다.
아무리 설득해 봐야 진무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것이고, 목숨 걸고 싸워 봐야 처맞기밖에 더 하겠는가?
이미 배신한 걸 본 교마가 용서해 줄 리는 더더욱 없고 말이지.
그렇다면?
고위험, 고수익!
어차피 이리된 마당이니 영혼까지 끌어모아 한 방을 노린다. 재수 없으면 쪽박이고, 잘만 되면 육계마왕이다.
혼신을 다해 세 자리 중 하나는 반드시 차지할 것이다! 아니, 진무의 가장 충성스러운 수하로 거듭날 것이다!
그러곤 언젠가, 반드시 그 등짝에…… 배신의 칼날을…… 흐흐흐.
원래가 칼은 오른팔이 주는 법이라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