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76
46화
조음의 헌신(?)적인 설명을 통해 알게 된 교마의 첫 번째 능력은 타인의 거죽을 이용해 환형할 수 있다는 것.
이미 보았고 경험했으니 충분히 아는 일이다.
역용이나 변장 같은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로 변할 수 있으니 구별이 까다로울 것이 틀림없다.
하긴, 만약 연회장에서 그가 몇 가지 행동에서 실수하지 않았다면, 진무조차 알아채지 못했을 터였다.
“음, 꽤 귀찮아지겠네.”
진무가 짜증스럽게 얼굴을 찌푸렸다.
만약 그가 마음먹고 자신의 곁에 잠입한다면 넋 놓고 감시당할 수밖에 없다.
이승에서도 양소방 하는 짓을 그렇게 싫어했는데……. 뭔가 양소방 확장형 마왕이 들러붙어 버린 듯한 찜찜한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인간은 어찌 되었지? 각출이도 그렇고…….
확실히, 만 년 동안 수련만 하느라 너무 무심했던 모양이다. 청상을 만나기 전까지 이승의 인연들은 조금도 생각지 않았으니.
그나저나 정의로 똘똘 뭉친 인간이 남에게 해악을 끼쳤을 리는 없으니 천계로 갔으려나?
아니, 어쩌면 남의 뒤를 캔 죄로 지계로 왔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그딴 걸 얼마나 싫어하는데…….
생각해 보면 그 인간 부려 먹을 때가 참 좋았는데 말이야.
뭐, 나중에 업경에 이름이 있는지 힐끗, 아주 최선을 다해 힐끗 확인해 보면 될 일이지.
구제해 준 대가로 다시금 부려 먹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킥, 킥킥킥.”
자신도 모르게 음산히 웃는 진무의 모습에 누군가가 흠칫 몸을 떨었다.
“크흐흠!”
그를 알아채고 헛기침한 진무가 다시금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어쩔 수 없지. 신아.”
“예!”
“교마의 능력이 그렇다 하니, 이제부턴 네가 신경을 좀 써야겠다.”
“예?”
“예나 지금이나 누군가에게 감시당한다는 건 딱 질색이라…….”
“아!”
“멀리서 보는 것까진 막진 못해도 근처는 막아야지? 우리 일행을 제외한 누구도 가까이 접근시키지 마라.”
“……!”
진무의 명에 황신의 눈이 동그래졌다.
지금 저 말은 다시금 자신에게 곁을 내주겠다는 말이 아닌가?
그래, ‘호위’라는 말만 안 했다 뿐이지, 호위로 인정해 주신 것이 틀림없음이다.
청상도 있고! 백표도 있지만! 결국 개인 호위는 나라 이거야! 마음속으로 언제나 생각하고 계셨던 것이라고!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울컥 북받친 황신이 별안간 눈을 힘주어 부릅뜨며 겉옷의 앞부분을 휙 젖히고 무릎을 꿇었다.
“천주님!”
“……?”
“이 황신! 천주님의 기대에 부응하여 막중한 책무를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어? 아, 어어.”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이며 쩌렁쩌렁하게 외치는 황신의 모습에 진무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왜 이래, 갑자기?
날파리나 쫓으라는데 기대는 뭐고 뭐가 막중해?
하지만 다음 순간 벌떡 일어난 황신이…….
팍!
뛰었다.
가가가가각!
황신의 비수가 땅을 파헤치자, 곧 진무를 중심으로 반경 오십여 장의 커다란 원이 그려졌다.
“후웁!”
정원(正圓)을 그려 낸 황신이 숨을 크게 들이키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천주님의 영원한 개인 호위 황신이다!”
부리부리한 눈으로 주위를 쓸어 보며 손에 쥔 비수를 핥는 그 모습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지금부터! 셋 센다! 자신의 위치가 이 원 안에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하는 놈은! 서둘러 꺼져라! 하느-아!”
“…….”
황신의 위협에 원 안에 있던 괴들이 쭈뼛쭈뼛 눈치를 살폈다.
당연한 일이다.
누구라고 집어서 말해 줘야지.
말도 안 했는데 누가 어울리고 누가 안 어울리는지 어떻게 알아?
“어쭈? 안 나가? 두울!”
몇몇은 일단 나가고 보자 싶었는지 속히 벗어났고, 어리둥절한 몇몇은 그대로 남았다.
“셋! 이런 씨부랄 새끼들이, 꼭 목구멍에 피리 소리 나 봐야 안다 이거지!”
팡!
거칠게 땅을 찬 황신이 원 안쪽을 헤집는다.
푹! 푸푹! 푹푹푹!
“끄아악!”
“꽤애액!”
곳곳에 구멍 꿇린 이들의 비명이 터져 나오고, 이내 털썩 쓰러진 이들의 육신이 푸스스 사라졌다.
“도, 도망쳐라!”
“늦었어, 이 괴 쉐끼들아! 니들을 괴 꼬치로 만들어 내 충성의 제물로 삼으리라! 으핫핫핫!”
푹, 푸푸푸푹!
앙천광소까지 터트려 가며 제 충성을 증명하는 황신의 모습에 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아, 저 새끼 저거…….
욕지거리며, 비수 핥아 대는 거며, 대놓고 칼질부터 하는 저 버릇까지 하나도 안 변했다. 자신이 알던 그때 그대로였다.
뭐, 그래도 역시 황신이다.
효과가 탁월하다.
충격과 공포. 괴들에게 몸소 뒈짐을 경험시켜 준 황신으로 인해 모두가 원 밖으로 물러났으니까.
모두가 봤으니 이제 그들의 마음속에 가상의 원이 생겼으리라.
이걸로, 어떤 놈도 함부로 영역권 안으로 들어올 수 없게 됐다.
들어왔다가는 황신의 칼날에 뒈질 것이고, 그런데도 들어온다면?
그놈이 바로 교마인 게 되겠지.
“그럼, 첫 번째 능력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고, 두 번째는?”
“아, 두 번째는 위안(僞贋)입니다.”
“위안?”
“예. 거짓으로 흉내 내는 능력입니다.”
“……흉내?”
“예. 교마는 세류로 작은 상처만 새겨도 모습이며 말투, 행동은 물론이거니와 그 능력까지 재현할 수 있습니다.”
“능력까지?”
“예.”
조음의 말에 진무가 미간을 좁혔다.
“그럼 여기 있는 우리도 해당된다는 뜻이야?”
“일단은 저와 육장의 모습으로는 똑같이 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박피옥에 속한 모든 귀는 세류에 의해 한차례 조각당했으니까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어?”
“응? 왜?”
“그, 목에…….”
“목?”
조음이 손가락을 바들바들 떨며 지목하자 진무가 목을 슬쩍 만지다 얼굴을 와락 구겼다.
이런 씨부랄!
교마의 비수가 훑고 간 상처……. 작은 상처만 새겨도 상대의 능력까지 재현할 수 있다는 세류의 능력이면?
“하, 엿 됐네.”
“어, 어쩌죠? 만약 교마가 진무 님과 똑같은 모습으로 접근하게 된다면…….”
“음…….”
“저희는 구분도 못 할 텐데요. 와중에 같은 능력이면…… 저희는…….”
조음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 어렸다.
“조음.”
“예?”
“그 위안이라는 능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 거냐?”
“그건 저도 잘…….”
“…….”
하긴 귀가 마왕의 능력을 전부 가늠하는 것도 이상하다.
그 정도까지 드러내 싸워야 하는 상대라면 조음이 외곽의 분절형장이나 맡고 있을 리가 없었고, 자신에게 이리 쉽게 패배하진 않았을 것이다.
“진무 님? 어쩌죠, 이제?”
“…….”
조음과 육장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힘 빠진 눈길을 보내왔다.
허, 이놈들. 아무리 걱정되기로서니 그러면 어쩌자는 거냐?
전장을 이끌 장수가 수하들 앞에서 걱정스러운 모습을 보이면 사기가 대번에 떨어진다고!
“어쩌긴 뭘 자꾸 어째?”
“예?”
“놈이 나와 똑같이 변할 수 있게 된 게 뭐?”
“…….”
“닥치지도 않은 일을 벌써 걱정해서 뭐 해?”
“하지만…….”
“걱정 마. 그깟 흉내? 귀모의 권능? 웃기고 있네. 내가 그 정도에 당할 것 같았으면 시작도 안 했어!”
“…….”
진무의 호언장담에도 육장과 조음의 얼굴은 도무지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 새끼들이 애들 보게시리…….
황신으로 인해 반경 오십 장 내로 괴들의 접근이 통제되었지만, 그렇다고 육장과 조음이 위축된 모습이 안 보일 수는 없었다.
“얘들아.”
“예?”
“웃어, 허리 펴고. 애들이 보잖아, 응? 으응?”
“……!”
진무가 둘의 어깨를 휘감아 잡고 웃으며 살벌하게 으르자 육장과 조음이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는 표정을 지었다.
“아하하하.”
“어허허허.”
“그래, 잘하네. 그렇게 계속 잘하자, 알겠지?”
“네, 헤헤.”
“옳지, 그래야지. 암, 뒈질 때까지 처맞지 않으려면.”
“…….”
다시 한번 주먹을 들어 둘을 위협하는 진무였지만, 머릿속은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이미 귀모에 의해 음양귀로 정의된 뒤였지만, 당사자인 진무는 모르고 있으니 당연했다.
빌어먹을.
귀모는 뭔 그따위 권능을 나눠 줘서는…….
어디서 어느 정도까지 능력 복사가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놈이 신력까지 복사할 수 있다면 심히 곤란해진다.
잘못하다가 정체를 들킬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이거 방치하면 안 되겠는데?
귀모가 당장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지만, 자신이 천계에서 온 상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가만히 있을까?
그럴 리가 없다.
자신과 대척점에 있는 적인데 그대로 놔두는 게 이상하다. 직접 나서지 않는다면 수하를 시켜서라도 잡아 오게 하겠지.
얘들 수련을 위해 천천히 가고자 했었지만, 이리되면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다.
최대한 조속히 교마를 쳐서 살마멸구(殺魔滅口)라도 하는 수밖에…….
눈빛을 살벌하게 빛내며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진무가 조음에게 물었다.
“조음.”
“예?”
“웃음 잃지 말고 대답해라. 여기서 제일 가까운 형장이 어디냐?”
“가까운…… 형장은 왜요? 이 마당에 수련이나 시키고 계시게요?”
“닥치고 묻는 말에 대답만 좀 해 줄래?”
송곳니 가득한 그 미소에 소름이 쫙 돋아 오른 조음이 다급하게 말했다.
“뼈를 바수는 분골형장(粉骨刑場)입니다.”
“분골…… 그곳의 전력은 어찌 되냐? 니들 둘이 가면 무너뜨릴 수 있겠냐?”
“그야 당연하지요.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형장의 수좌를 맡은 귀 중에서 가장 강한 게 육장이라면 세력전을 펼쳤을 때 가장 강한 것은 바로 저! 조음입니다.”
걱정이 가득하면서도 자부심이 느껴지는 말에 진무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니들 둘이 그곳을 쳐라.”
“에? 둘이요?”
“그래.”
“그럼 진무 님께선?”
“나? 당연히 교마의 거처가 있는 박피옥 중심으로 가야지.”
“예?”
진무의 말에 조음과 육장의 고개가 삐딱하게 꺾였다.
이해하지 못할 테지.
하지만 이건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전략이다. 아주 오래전 무당을 급습했던 그때를 떠올렸달까?
원한 건 아니었지만, 밑에 애들이 들고일어나는 바람에 정사대전이 일어났었다.
모든 시선은 자연히 그쪽으로 쏠렸고, 자신은 철검단과 함께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무당을 부쉈다.
그 이후 수십 번도 넘게 애용해 온 전략, 빈집 털이.
일단 조음과 육장을 이용해 교마의 시선을 돌린다.
남의 거죽까지 뒤집어쓴 놈이 자신을 살피는 것을 쉽게 포기할 리가 없다. 자신의 실력은 제대로 확인하지도 못하고 대가리만 뚫렸으니 독이 잔뜩 올랐겠지.
이쪽에서 우르르 몰려가면 자연히 놈의 시선은 그쪽으로 쏠릴 터다.
오래 잡아 둘 순 없다.
마왕씩이나 되는 놈이 몇몇이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육장과 조음을 두들겨 패서라도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자 하겠지.
하지만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하다. 자신이 박피옥에 남아 있는 교마의 수하들을 모조리 박살 낸 뒤일 테니까.
그리고 일대일의 승부를 펼치는 것이다.
그럼 지가 자신을 흉내 내든 뭘 하든 이겨 버리면 그만 아닌가?
물론 그 과정에서 두 녀석은 교마에게 꽤 처맞을 게 분명하다. 재수 없으면 교마의 권능으로 소멸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뭔 상관인가?
어차피 원래 내 새끼들도 아니고, 언제든 배신하고자 하는 마음이 눈깔에 선한 놈들인데…….
“얘들아.”
“예?”
“만약 교마가 너희에게 물으면 거짓 하나 섞지 말고 있는 그대로 답해 줘라. 내가 박피옥의 중심으로 향했다고. 그럼 된다.”
“……그게 무슨?”
조음과 육장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러니까 지금 그 말인즉, 미끼냐?
교마를 만나 뒈질 수도 있는 일인데…….
“에헤이, 또 얼굴 구긴다. 웃어, 응? 으응?”
“아, 아하하…….”
“어허허…….”
“그래, 그렇게 웃으면 된다. 그리고 둘이서 잘해 낼 수 있겠지? 그치? 믿어도 되지?”
“그런데요. 저희가 교마의 상대가 될까요? 잘못하면 뒈질 텐데?”
“그럼 여기서 나한테 죽을래? 원하면 그렇게 해 주고. 대신에, 성공하면 보상은 알지?”
어깨를 꽈악 움켜쥐며 웃어 주는 진무의 모습에 육장과 조음은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를 향해 눈빛으로 말했다.
‘대박이라며, 이 귀 쉐끼야? 고위험, 고소득이라며? 귀생 한 방이라며!?’
‘……미안.’
육장의 욕설 눈빛에 투자 정보를 잘못 전하며 꼬드겼던 조음이 고개를 툭 떨궜다.
하지만 그들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운 좋게 살아남길 바랄 뿐이었고, 진무가 이기길 바랄 수밖에는.
‘힘내자, 육장. 교마에게 안 죽고 살아나면…….’
‘아가리 싸물어라. 찢어서 젓갈 담가 버리기 전에.’
‘응.’
아, 걸려도 오지게 걸렸다.
미친놈한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