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78
48화
분골형장의 전투가 시작되던 무렵, 총귀장 규사는 평소보다 몇 배는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일이야 늘 비슷비슷하게 많았지만, 이번에는 교마가 부재중이라 그가 해야 할 일까지 자신이 몽땅 떠맡은 탓이었다.
든 자린 몰라도 난 자린 금세 표 나는 법이라더니…….
“휴우…… 이러다 일에 치여서 다시 죽겠네. 옥주님은 대체 언제 돌아오실 겐지.”
해형장에 이어 분절형장까지 박살 내 놓은 음양귀, 그놈이 문제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나한텐 꿈쩍도 하지 말랬으면서 본인이 직접 가다니. 그것도 말도 없이.
“뭐, 별일이야 있겠어? 곧 돌아오시겠지.”
사실 걱정은 사치다.
다른 이도 아니고 같은 육계의 주인이 아니라면 교마를 누가 쓰러뜨릴 수 있겠는가?
분절이고 해형이고 차지해 봐야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을.
“쓸데없는 생각이지. 차라리 업무라도 하나 더 처리하자. 괜히 옥주께서 돌아와서 화를 내실지도 모르니…….”
규사는 머리를 휘휘 저어 잡념을 떨치고 다시금 산처럼 쌓인 서류에 집중했다.
각 형장에서 올라온 보고서들이었다.
인계에서 불효와 배신의 죄를 짓고 올라온 망자와 아귀가 어디 좀 많아야지.
세상이 어찌 되려고 죄지은 놈들이 이리 많은지, 원.
“하아, 일단 먼저 처리할 것부터 순서를 정해 쌓아야겠네.”
본인도 같은 죄를 짓고 박피옥의 망자가 되었던 때가 있었지만, 너무 오래전이라 잊어버린 규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분류해서 쌓고 또 쌓고…….
막상 하다 보니 은근히 재미도 있었다.
높다랗게 쌓여 미세하게 휘청이는 것이 위태위태해 제법 긴장감도 느끼게 했고…….
“휴, 다 됐네.”
꽤 오랜 시간 공들여 탑을 쌓은 규사가 내쉬는 숨마저 아껴 가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자, 그럼. 일단 맨 위 것부터…….”
규사가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가던 그 순간.
콰아아앙!
“……!?”
밖에서 굉음이 들리더니, 앉은 의자가 휘청일 정도의 진동이 느껴졌다.
“뭐, 뭐야?”
휙 고개를 돌려 밖을 쳐다본 규사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박피옥이 조용한 곳은 아니다.
죄 많은 망자와 아귀에게 형벌을 내리는 곳이다 보니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형벌을 받다가 참지 못하고 도주하는 놈, 갑자기 각성해서 주변을 공격하는 놈, 높은 자리 차지하겠다고 저보다 윗줄인 놈과 연일 쌈박질을 벌이는 놈 등등. 모두가 매우 일상적인 일이다.
제법 거친 진동이 있었던 것을 보면 힘깨나 쓰는 놈이 자신의 거처를 때려 박기라도 한 모양이다.
예전에도 간혹 있던 일이니까…….
“하아, 신경 쓰지 말자. 아랫것들이 알아서 잘하겠지.”
대수롭지 않은 투로 중얼거리곤 이내 관심을 끊어 버린 규사가 업무를 처리하려 고개를 돌렸다.
사방을 뒹굴고 있는 집기들과 쓰러진 가구들, 그리고.
사라락.
“타, 탑이……?”
무너졌다.
공들여 순서대로 쌓아 놓은 업무의 탑이.
“이, 이런 쌍! 어떤 개잡놈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규사가 대번에 법구를 소환해 들고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어떤 개 같은 망자 놈이!
기다려라! 이놈!
힘없이 무너진 탑의 원수를 갚아 줄 것이다!
이를 박박 갈며 훌쩍 밖으로 뛰어내린 규사는 자신의 거처 주위를 빠르게 훑었다.
“어떤 놈…… 응?”
하지만 충격을 줄 만한 무언가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거처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었는데…… 생각보다 더 힘이 센 놈이었나?
분노가 의아함으로 바뀐 규사의 시선이 좀 더 떨어진 곳을……. 그보다 더 먼…….
“…….”
올라가는 시선과 함께, 규사의 고개가 천천히 쳐들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형벌장에서 죗값을 치르는 망자도, 아귀도 그들을 벌하는 괴들이며 판관들도 모두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먼지구름이 하늘을 뚫을 듯 피어오르는…… 아니, 설마 저기서?
규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 정도 거리에서 여기까지 충격을 전한다고?
한참이나 눈을 끔벅이다, 규사는 일순 먼지구름을 꿰뚫고 솟구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콰우우우우!
거대한 아가리를 쩍 하니 벌리고 포효하는…….
“요, 용?”
그것도 무척이나 시커먼 용이다.
“아니, 뜬금없이 뭔 용이야, 저게?”
게다가 먼 거리이기는 했지만, 몸의 비늘까지 선명하게 보일 정도니…… 대체 얼마나 큰 거지?
“박피옥에 저런 걸 구현해 내는 놈이 있었나?”
멍해진 정신이 쉽게 돌아오지 않아 혼란스러워하는데, 순간 꼬리가 완전히 보일 정도로 솟구쳐 올랐던 흑룡이 최고점에 다다랐다가 구부정하게 몸을 뒤틀며 떨어져 내렸다.
슈아아악! 콰아아앙!
이전보다 더욱 강한 두 번째 진동에 발이 찌르르 울렸다.
대지가 먼지 털어 내는 이불처럼 들썩이고, 충격파가 만든 폭풍이 얼굴 앞까지 불어닥쳤다.
“대체, 이게 뭔?”
익숙지 않음에서 오는 황당함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끄아아악!”
“……!?”
다음 순간 들려온 비명이 규사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휩쓸리고 있다.
망자와 아귀, 귀와 요, 형벌장의 지형지물까지. 박피옥의 모든 것이 충격파에 휩쓸려 처참하게 박살이 났다.
교마가 자리를 비운 틈에…….
“이런 쌍!”
열이 잔뜩 받은 규사가 생각할 틈도 없이 충격파의 중심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쿠아아아아!
“…….”
대지를 뒤집어 놓고 거칠게 포효하는 여의의 모습에, 진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좋단다.
하긴, 모처럼 봉에서 빠져나와 찌뿌둥하던 몸을 풀어 댔으니 좋기도 할 테다.
사실 진무도 그랬다.
“역시, 마구잡이로 박살 내는 데는 여의만 한 것도 없지.”
단 두 방.
청상에게 잠시 자충을 넘겨주고 여의를 사용해 박피옥의 외곽 방어선을 휑하니 뚫어 버린 진무가 자신이 만든 처참한 풍경을 바라보며 속이 뻥 뚫린다는 듯 씩 웃었다.
“신!”
“예! 천주님!”
“전부 개잡놈들이다. 사정 봐주지 말고 닥치는 대로 뚫어 버려! 모가지 시원하게!”
“흐흐, 예!”
비수를 핥아 대며 답한 황신이 스산한 웃음과 함께 쏘아져 나갔다.
“백표! 알지?”
“맡겨만 주십시오! 껍데기는 원래가 제 전문입니다!”
“좋아! 가라!”
“예!”
황신과 백표, 그리고 이제는 명령 없이도 알아서 도리깨를 휘두르며 내달리는 이생까지.
불효, 불충, 그 외 수많은 여죄를 지었을 박피옥의 망자와 아귀, 그리고 그런 놈들이 각성해서 된 괴와 요, 귀.
전부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나쁜 놈들이다. 누가 처벌하든 뭔 상관인가?
너희들이 인계에서 지은 모든 죄는 박피옥을 대신해 직접 다스려주마.
인정 따윈 필요 없다. 굳이 이것저것 신경 써 가며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다.
최선을 다해, 박피옥을 박살 낸다. 그 어떤 때보다 빠르게, 그 어떤 때보다 강하게!
“사숙, 저는…….”
“…….”
진무의 명으로 적들을 향해 뛰어가는 황신 일행을 바라보던 청상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웅얼거렸다.
그래, 너도 그 정도면 많이 참았다.
기왕 박피옥주의 능력 때문에 신력이 들켰을지도 모르는 마당인 바에야…….
꾹꾹 참고 있었으니 한 번쯤 표출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
혹여라도 귀모가 개입하면 귀천옥으로 토끼면 그만이다.
품 안의 작은 구슬을 만지작거리던 진무가 빙긋 웃으며 청상을 불렀다.
“청상아.”
“……예, 사숙.”
“신력, 맘껏 써도 좋다.”
“예?”
“단! 이번에도 휘둘리면 그땐 알지?”
“……!”
진무가 눈을 찡긋하며 장난스레 협박 섞어 허락하자 청상의 눈이 기쁨으로 번쩍 뜨였다.
“이를 말입니까! 사숙! 앞으로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좋아, 가라! 박피옥 놈들의 씨를 말려 버려!”
“크흐흐, 알겠습니다! 사숙!”
파아앙!
허락을 득한 청상이 그 어느 때보다 사악하게 웃으며 자충과 함께 쏘아져 나갔다.
“하아, 저놈 저거 아무래도 걱정돼…….”
청상이, 그 올곧던 청상이 ‘크크크’라니. 아무래도 성격에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건 나중에 패서라도 고치면 될 일!
지금은 내버려 두자.
너무 쌓아 두면 심병밖에 더 생기겠는가?
다만, 확실히 할 건 해야지.
「자충.」
「…….」
「잠깐 쓰게 하는 동안 청상을 또 노리면, 그땐 녹여서 호미로 만들 테다. 평생 땅이나 파먹게.」
「…….」
위협적인 심어에 자충은 침묵했다.
지놈이 뭔데 귀모의 권능이 스민 자신을 호미로 만든단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하도 호되게 당했다 보니 귓등으로 들을 수가 없었다.
사악하기가 지계 마왕들 줄싸대기를 후려치는 수준인 진무 놈이라면 호미를 만들지 못해도 검째로 땅을 파헤치게 하고도 남는다.
자신보다 훨씬 오래전에 검에 봉인된 신수, 여의조차도 비굴하게 굽신거리며 아양을 떠는 모습을 이미 보지 않았던가?
우우우웅!
아무리 생각해도 도리가 없던 자충은 속으로 피눈물을 삼키며, 맹렬한 울음과 함께 청상의 손에서 휘둘러졌다.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는 상극의 기운, 서기를 억지로 참아 가며…….
“청상까지 보내 놓으니 마음이 든든하네.”
진무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뛰어가 박피옥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는 청상 등의 모습에 흐뭇하게 웃었다.
개중에 청상에게 죽는 놈들은 축복받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른 이들에게 죽으면 부활할 터였지만, 청상의 신력에 참해지면 곧바로 소멸이니까.
뭐, 것두 지 놈들 복이지.
우웅! 우우우웅!
“…….”
진무가 실로 개판이 되어 가는 박피옥을 바라보던 그때, 여의가 힘차게 울어 댔다.
잊지 말고 자기도 좀 써먹으라고…….
“그래, 애들이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내가 쉬면 안 되지, 암!”
여의를 힘껏 움켜쥔 진무의 시선이 전장을 스산하게 훑었다.
벌써 뛰어나왔어야 할 교마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육장과 조음이 미끼 역할을 제대로 해낸 것이다.
그럼?
“돌아오기 전에 끝내 줘야지.”
꾸우욱.
지면을 힘껏 짓밟고 힘차게 솟구쳐 오른 진무가 박피옥의 하늘에 멈춰 천신처럼 세상을 굽어봤다.
[여의! 커져라!]여의를 휙 들어 올리며 언령을 외자, 허공에 떠오른 여의가 박피옥 전역에 그늘을 드리울 만큼 거대해졌다.
목표는 박피옥에서 가장 커다란 건물, 즉 교마의 거처일 가능성이 가장 큰 곳.
이제부터 여기는 내 땅이다.
그러니 당연히 표식을 남겨야지! 문서가 아닌 저 땅에!
[가랏! 여의!]묵룡혼원공! 대치창파!
단, 기가 아닌 물리!
이건 내 땅에 찍는 도장(圖章)이니까!
쐐애액!
한없이 거대해진 여의가 온 힘을 다해 휘두른 진무의 왼손을 따라 벼락처럼 대지에 때려 박혔다.
이어 여의에 스몄던 흑룡이 대지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가, 이내 힘차게 폭발했다.
쿠르르릉! 콰아아아앙!
파도처럼 거칠게 뒤틀린 대지가 사방에서 솟구쳐 오르고, 충격파와 함께 튀어나온 묵룡의 기운이 박피옥을 집어삼킬 듯 뒤덮었다.
만족스럽다.
역시 흑룡은 왼손이…….
그렇게 박피옥을 향한 진무의 개행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