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79
49화
푹! 푸푹!
보이지 않는 칼날이 바람이 되어 파고든다.
처음 보는 쪼끄만 새끼…….
서걱, 서걱.
이어 휘둘러진 식칼이 일초에 피부와 살을 분리하고, 이초에 뼈를 골라낸다.
저놈은 가리온.
같은 박피옥 밥을 먹던 처지에 몰라볼 수가 없다.
빡! 빠박!
“크악! 이놈!”
그리고 일진일퇴를 반복하며 차근히 적의 머리를 바수며 나아가는 도리깨.
뭔 놈의 맷집이…….
하나 저놈 쪽은 딱히 피해가 크지 않으니 무시하도록 하고.
쐐애액! 콰드드득!
저 네 번째 놈이 제법 위험하다.
섬광처럼 쏘아지는 빛줄기가 구슬 꿰는 실처럼 뚫고 지나갈 때마다 괴 수십이 털썩대며 쓰러지는 것도 그렇거니와…….
전장에 뛰어든 규사는 자충을 들고 전장을 휘저어 대는 청상의 모습에 눈을 찌푸렸다.
서기라니?
어찌 이 박피옥에 신력을 가진 놈이 나타날 수가 있지?
충분히 심상치 않은 일이었지만, 막상 규사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놈은 따로 있었다.
후아악! 콰앙!
“…….”
용을 부리는 것도 모자라 검은 봉을 휘둘러 박피옥을 무자비하게 때려 부수고 있는 놈이었다.
“크핫핫핫!”
전역을 뒤흔드는 앙천광소와 함께 그의 손에 들린 봉이 휘둘러질 때마다 퍼져 나오는 기파에 몸이 저릿저릿하게 울렸다.
그의 봉에 특정 목표는 없었다.
그냥 휘두른다.
마치…… 맞고 다 뒈져 버리라는 식으로.
놈의 전신에서 줄기줄기 뻗어 나오는 것은 마력임이 분명한데, 어째서 신력을 쓰는 놈보다 더 위험해 보인단 말인가?
와중에 놈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가 다 통틀어서 가장 컸다.
규사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교마가 옥주로서 존재하는 한 박피옥은 스스로 복구되는 재생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어지간해야 말이지. 하나가 복구되기도 전에 둘, 셋이 부서져 버리고 있으니…….
그놈들이다.
가리온이 함께인 것을 보면, 해형장과 분절형장을 공격해 박피옥에 크나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그놈들이 분명하다.
빌어먹을, 옥주가 없는 틈을 노려 본진을 습격해 올 줄이야. 그것도 다섯 놈이서.
“크학학학!”
후아앙! 쩌저저정!
“총귀장님! 명을 내려 주십시오!”
“…….”
이미 대기 중인 휘하 귀들이 고민에 빠진 규사를 재촉했지만, 규사는 쉽사리 입을 열 수 없었다.
난입한 적들의 실력은 명확했다.
판단을 내려야 할 때임에도 고민되는 것은…….
서기를 가진 놈을 먼저 쳐서 소멸부터 막을 것인가, 아니면 저 무지막지한 용봉춤을 추는 놈부터 처리해 박피옥의 붕괴를 막을 것인가?
“총귀장!”
휘하 귀의 외침에 규사는 더 잠자코 있지 못했다.
“이런 염병할! 조령!”
“예! 제가 저 도리깨 놈을 맡도록 하겠습니다!”
“응? 그, 그래? 오냐! 그럼 귀장 오십을 데리고…….”
“아닙니다, 저 혼자 충분합니다!”
“음, 좋다. 그리하라!”
도리깨는 여럿이 맡을 필요가 없다.
사실 그놈으로 인한 피해는 미미하지 않은가?
끽해야 괴와 귀 사이의 실력이니, 조령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규사를 향해 염마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총귀장, 그렇다면 제가 귀장 오십을 이끌고 저 작은 놈을 맡겠습니다.”
“오! 염마! 너의 자신감이 좋구나! 제법 발이 빠른 놈이다. 조심하라!”
“예!”
염마가 호기롭게 튀어 나갔다.
이제 남은 것은 셋.
“오랑!”
“저는 가리온 놈을 처리하겠습니다.”
“응?”
“다녀오겠습니다.”
“…….”
오랑이 잡을 새도 없이 쏜살처럼 튀어 나갔고, 귀장 오십이 미리 짠 듯이 그 뒤를 따랐다.
아직 상대를 지정해 주지도 않았는데……. 이놈들이 왜 이리 적극적이지?
여하간에, 그럼 남은 것은?
저 신력 쓰는 놈이랑…… 음, 일단 신력 쓰는 놈.
아무래도 신력은 상극의 기운이라 소멸의 위험도 있으니 내가 맡는 편이…….
“귀장 이백은 나를 따르라! 신력을 사용하는 놈이니, 자칫 소멸할 수 있음을 주의한다!”
“예!”
“…….”
규사가 명을 내리기도 전에 눈치를 살피다 벌떡 일어난 전휴가 냅다 튀어 나가고, 귀장들이 우르르 그 뒤를 따랐다.
그, 그럼 남은 것은…….
후아악! 쾅! 콰쾅!
“크핫핫핫!”
“…….”
자, 잠깐만. 차근차근…… 다시 생각해 보자.
그러니까 도리깨 일단 제외…….
바람처럼 움직이는 놈에겐 염마가 갔고, 가리온은 오랑이 갔으며, 신력 놈에겐 전혜가…… 소멸을 각오하고…….
결국, 남은 건.
슈아악! 꾸우우웅!
“…….”
왠지 신력을 쓰는 놈에게 소멸을 각오하고 덤벼들 마음이 생기게끔 무시무시한…… 마력을 가진 놈.
지켜보는 것만으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그런 놈……만 남았다.
흐리멍덩한 눈으로 용봉춤을 감상하는 규사 옆에서, 남은 귀장들이 안타까운 탄성을 내질렀다.
“아, 저놈만은 피하고 싶었는데…….”
“젠장!”
“빌어먹을!”
“씨부럴! 재수도 없지.”
“…….”
다들 똑같은 생각들일 테다. 먼저 일어나 외치는 놈만 살아남는 눈치 싸움인 줄도 모르고 멍하니 여유 부리다가 따귀 맞은 기분이겠지.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 눈과 귀가 있으면 누구라도 알 일이었다. 저 용봉춤을 추는 놈이 젤 무시무시하다는 것 정도는.
놈이 뿌려 대는 것이 마력이 분명한데도, 스치면 소멸당할 것만 같은 섬찟한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어쩌겠는가. 승부는 눈치채기도 전에 끝나 버렸고, 저 현실성 없는 용봉춤보다는 교마의 조각도가 훨씬 더 무서운 것을.
“얘들아!”
“……눼.”
“가자!”
“……하아, 눼.”
간신히 마음을 다잡은 규사의 진격 명령에 박피옥의 자랑스러운…… 아니 자랑스러웠던 귀장들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몸을 돌렸다.
가기 싫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아주 천천히.
그러다 한 귀장이 불쑥 입을 열었다.
“총귀장님, 혼자 가셔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뭐?”
“아! 맞습니다. 총귀장님이 누구십니까? 교마 님 이하 박피옥에서 가장 강하신 분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저놈은 마력을 가졌을 뿐이니 설마 죽기야 하시겠습니까? 저희는 소멸을 각오하고 신력을 가진 놈을 공격한 전휴 님을 돕겠습니다!”
“…….”
한마음 한뜻으로 외치는 그들의 눈동자에 담긴 것은 오지게도 싫다는 감정이었다.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다, 규사는 일순 벙긋 웃었다.
기특한 박피옥의 귀장 녀석들 같으니.
니들은 이 위기 속에서도 배신할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그런데, 누가 니들한테 소멸 같은 축복을 차지하게 해 준대?
그럴 순 없지!
“얘들아.”
“예?”
“튀어 가! 나보다 늦게 뛰는 새끼들은 지금 이 자리에서 뒈질 줄 알아!”
“……!”
마력을 줄기줄기 뽑아내며 눈을 희번덕이는 규사의 모습에 귀장들이 기겁하며 내달렸다.
본시 먼 미래의 위협보다는 눈앞의 주먹이 더 무서운 법이 아니던가?
비록 그 시간이 찰나일지언정…….
그리고.
“좋아, 귀장들이 놈의 시선을 끄는 동안 배후를 노리면 가능성은 있겠어.”
교마의 아래, 박피옥의 총귀장답게 수하들을 칼받이로 쓰려는 악독한 마음을 품은 규사였다.
* * *
콰드득! 콰앙!
“흠.”
여의를 한차례 휘둘러 백여 장의 공간을 소멸시키다시피 한 진무가 눈을 찌푸렸다.
때려 부수는 건 언제 해도 즐겁기 그지없지만, 이런 식의 싸움은 심심하기만 할 뿐이다.
적들의 수가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많으면 뭐 하나? 상대가 돼야지.
와중에 이젠 적이 근처로 다가서지도 않는다.
여의를 어깨에 턱 걸치고 한 걸음 다가서기만 해도 그를 중심으로 주변이 휙 멀어진다.
이래서야 혼자 지랄발광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모름지기 가장 중요한 것이 손맛인데……. 주먹에 놀아나며 펄떡펄떡 뛰는 그런 느낌이 있어야 흥도 나고, 어? 보람도 있지.
아, 강자의 고독이여.
“상대가 없네, 상대가.”
얼굴을 잔뜩 구긴 진무가 언짢게 입을 삐죽이며 전장을 둘러봤다.
황신, 백표, 청상…….
저마다 제법 상대가 될 만한 녀석들과 싸우고 있는데 나만 이게 뭐람.
이런 식이면 차라리 분골형장에 가서 교마와 싸울 걸 그랬나?
“어?”
지금이라도 그쪽으로 갈까, 진지하게 고민하는데 멀리 먼지구름을 자욱하게 피워 올리며 다가오는 한 떼의 적이 보였다.
눈앞의 적들보단 강해 보이기는 하는데, 영 마뜩잖았다.
기세가 예사롭지 않으면 뭘 하나, 그래 봐야 황신의 발끝에도 못 미쳐 보이는 놈들인데.
개미가 모여 봐야 개미 떼인 것을…….
“응?”
심드렁히 시선을 좀 더 뒤쪽으로 옮기던 진무의 눈이 순간 개미 떼 사이에서 사마귀를 발견한 아이처럼 반짝였다.
“있네. 펄떡펄떡 뛸 듯한 놈이.”
얇게 벌어지는 입술 새로 드러나는 송곳니.
지루함이 이어지던 상황에서 한 줄기 빛 같은 존재의 등장에 진무가 활짝 핀 꽃처럼 웃었다.
“날개랑 다리 뜯는 맛이 있겠어, 흐흐흐.”
다만 좀…… 많이 사악했다.
음흉하고, 음산하고, 섬찟한 느낌이 들게 하는 그런 미소였다.
개미 떼는 필요 없다.
목표는 하나.
그의 어깨에 얹혀 있던 여의가 스륵 내려갔다가 지면을 스치며 뒤로 뻗었다.
꾸우우…….
곧 튀어 나갈 듯 상체와 함께 굽혀진 앞발에 힘이 담겨 대지가 눌리고.
파아앙!
시위 놓은 활대처럼 펼쳐지는 무릎과 함께, 진무의 신형이 섬전이 되어 쏘아졌다.
쐐애애액!
“어?”
“어어?”
내내 무료한 듯 여유를 부리다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진무의 행동에 달려오던 귀장들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어어어?!”
그러다 속도가 더욱 빨라지자 휘둥그레 눈을 뜨고 허둥지둥 막을 채비를 갖추는데…….
“으아아악!”
콰직!
“……?”
뛰었다.
바로 눈앞에서 선두에 서 있던 귀장의 머리를 땅바닥에 처박히도록 찍어 밟고.
휘이이이.
표표히 귀장 무리 위로 뛰어오른 진무가 규사를 향해 무척이나 반가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무 오래 기다렸어.”
나머진 필요 없고 너만 있으면 된다, 이 사랑스러운 사마귀 같은 녀석아.
“…….”
이게 무슨 상황일까?
규사는 황당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저놈이 왜? 어째서 자신을 저리 살벌하게 그윽한 눈으로 쳐다본단 말인가?
환하게 웃는 그 미소를 보는 순간 뒷머리가 쭈뼛하니 솟구치고, 등골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 올랐다.
자, 잠깐!
이렇게 되면 수하들을 칼받이로 쓰며 배후를 노리려던 내 계획은?
“노, 놈을 공격해라!”
규사의 다급한 외침과 동시에 몸을 비틀며 허공을 짓밟은 진무의 신형이 사선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런! 쌍!”
어떻게든 막을 수밖에 없게 된 규사가 자신의 법구에 다급히 마력을 불어넣고 휘둘렀다.
이내 부러질 듯 휘어지며 수직으로 내려쳐진 여의와 힘껏 올려 친 규사의 법구가 강렬하게 충돌했다.
슈아아악! 떠어어어엉!
둔중한 충돌음과 함께 둘의 마력이 갈가리 쪼개져 사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콰드득! 쾅! 콰쾅!
“끄아악!”
기파가 훑고 간 곳에 있던 모든 기물이 산산이 아스러지고, 범위 내에 있던 박피옥의 생명들이 마구 찢겨 나갔다.
고작 한 번의 충돌에 주위에 있던 태반의 전력이 날아갔지만, 규사는 그딴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까드득, 까드드득.
엄청난 압기(壓氣)였다.
진무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이 사방의 대기를 짓눌렀고, 여의에 실린 무지막지한 힘이 규사의 몸을 바닥에 쑤셔 박았다.
와중에 힘든 기색은커녕 웃는다. 마치 버티는 것조차 버거워 보이는 규사를 조롱하는 듯.
“큭, 큭큭, 역시 내가 잘 봤어. 이 정돈 돼야 부수는 맛이 있지.”
“이, 이놈…….”
양쪽 입꼬리를 말아 올려 기괴하게 웃는 진무의 모습에 규사는 이를 악물었다.
놈은 지금 자신을 장난감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다.
박피옥에서 가장 강한 귀인 자신을…….
까드드득!
자존심이 완전히 뭉개진 규사의 분노가 거칠게 터져 나왔다.
“크하아압!”
혼신의 일갈과 함께 움켜쥔 법구가 힘껏 들려 올라 여의를 떨치듯 밀었다.
가각, 가가가각!
진무는 얼굴이 벌게진 채 용을 쓰는 규사의 모습을 호기심 넘치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놈! 내가 쉽게 당할 것 같으냐! 나는! 박피옥의 총귀장! 규사다아!”
“…….”
가진 모든 마력을 모조리 끌어 올린 듯한 규사의 외침에 진무의 얼굴에 다시금 미소가 맺혔다.
“난 진무. 반가워.”
“……?”
웃음기 어린 소개와 함께 쭉 뻗는 손길.
그리고.
콰드드득!
그 가벼운 웃음과는 달리 이전보다 더 증폭된 마력에 손 쓸 도리 없이 밀려 버린 규사는 황당함에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이런 쌍! 뭐 이런 괴물이 다 있어?
눈치가 빨랐어야 했는데…….
좀 더 민첩하게 신력을 가진 놈 쪽으로 갔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