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81
51화
슈아악!
“빌어먹을!”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린 교마가 곧바로 날아든 진무의 손을 피해 물러났다.
하지만 따라잡혔다.
마음은 이미 멀리 도망가고도 남았으나, 거죽의 한계가 명확했다.
고유 능력, 위안.
상대의 모습은 물론 가진 그 능력까지 완벽하게 모방해 지근거리까지 다가선 것은 좋았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지금의 그는 교마가 아니라 육장이다. 외모뿐 아니라 능력까지도 완벽히…… 염병할…….
휘이익!
잡히게 생긴 교마가 급한 대로 손에 든 자옹에 마력을 있는 대로 담아 진무의 손길을 후려쳤다.
빠가각!
다행히 실린 힘이 많지 않았는지 진무의 손을 떨쳐 낼 수 있었다.
후두둑.
자옹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지긴 했지만…… 그래도 거리는 벌렸다.
“어쭈?”
“…….”
욱신거리는 손을 내려다보던 진무가 눈썹을 싸늘히 휘어 웃었다.
“확실히 손맛이 다르네, 육장이랑은. 이쯤 하고 그냥 본 모습 보여 주지 그러냐?”
“…….”
여의를 어깨에 걸친 채 짝다리를 짚고 건들거리는 진무의 능글맞은 모습에 교마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음귀(陰鬼) 놈.”
“……음 뭐?”
“조음과 육장은 네놈이 수장이라 했다. 귀모께선 음양귀라 하였고.”
“…….”
“한데 이제 보니, 음양귀가 아니라 음양귀들! 이었어. 아마도 네놈이 음귀, 저쪽에 있는 저놈이 양귀일 테지?”
멀리서 신력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물씬 풍겨 대고 있는 청상을 힐끗거리며 교마의 말에 진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뭔 귀? 음양귀?
음과 양이 신력과 마력을 말하는 거라면…… 딱 맞는 표현이긴 하네.
상당히 잘못 짚은 것 같지만, 그 오판이 어찌나 다행스러운지.
한데 청상의 신력을 보며 음양귀가 둘이라 확신하는 것을 보면 한 가지 가설이 생긴다.
상처가 생기던 당시 자신은 마력만을 사용했었다. 즉, 세류는 상처를 낸 순간만을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분명하고, 아직 자신에 대해 정확히 모른다는 것.
그런데 귀모가 어째서 음양귀라고 했을까?
진무는 게슴츠레한 눈매에 속내를 감추고 뻔뻔하게 물었다.
그쯤은 사기에 달통한 자신에게 일도 아니었다.
그들이 충성하는 척! 하듯, 자신은 모른 척! 하는데 도가 튼 지 오래니까.
“흠, 그렇군. 그래서 서기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군?”
“그래, 귀모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니까.”
“직접? 뭐라고?”
“해형장을 습격한 음양귀를 내버려 두라 하시더군.”
“……내버려 둬?”
진무는 교마의 말을 되풀이해 주며, 묻는 대로 술술 말하게 부추겼다.
아마 여전히 제 놈이 더 강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굳이 감추지 않을 것이다. 저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보면 언제든 죽일 수 있다 여기는 모양이니까.
어쨌거나, 귀모가 내버려 두라고 했다는 게 묘하게 거슬렸다.
뭔가 더 있다.
자신을 직접 음양귀라 칭했다면, 이미 어느 정도 정체를 눈치챈 것이 틀림없다. 어쩌면 천계의 인물이라는 것까지도.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의문이 생기고, 의심이 짙어진다. 단순히 절대자의 유희라고 보기엔 좀 과하지 않나?
아무 이유 없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인데…….
옥황과 멱살잡이까지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그녀의 의도가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다.
“그보다 대체 어떻게 안 거지?”
“응?”
혼자만의 고민에 빠져 있던 그때, 교마의 질문이 진무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네놈은 어떻게 된 놈이길래 나의 정체를 한 번에 알아챈 것이냐?”
“흐흠…….”
얼굴이 상기된 것을 보면, 꽤 궁금한 모양이었다.
하긴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누가 봐도 육장이긴 하지.
뭐건 간에 못 말해 줄 것도 없다.
자신감은 지 놈만 있나.
고작 남의 가죽이나 뒤집어쓰고 흉내나 내는 원숭이 같은 놈이 뭐가 두렵다고.
“딱 보면 알지?”
“……딱 보면 알아?”
“그래, 내가 원래 의심이 많은 편이라서.”
“허, 고작 의심만으로? 나는 완벽한 육장이었을 텐데?”
“맞아, 완벽한 육장이지. 거죽이며 말투, 습관, 그리고 몸에서 풍기는 기운까지도.”
“그런데 어찌?”
“의심이 많다니까?”
“교묘한 말로 답을 회피할 참이냐? 나를 흔들어 보려?”
“누가? 내가? 그딴 건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나 부리는 꼼수지. 넌 아냐.”
“뭣이?! 이놈이!”
조롱 섞인 말에 발끈하는 교마의 모습에 진무가 픽 웃음을 터트렸다.
“뭘 일일이 화를 내고 그래? 넌 안 해 봤나? 배신자 천지라는 박피옥에서 의심하지 않고 사는 게 더 어려웠을 텐데?”
“그야…….”
“하지만 난 예전부터 의심의 방향이 좀 달랐다. 가령, 저 물건은 왜 저기 있을까? 왜 저렇게 만들어졌을까, 하는 사물에 대한 것부터…… 이놈이 날 배신하진 않을까? 저놈이 혹시나 사기를 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사람에 대한 의심, 저 무공은 어째서 저런 방식으로 펼쳐질까? 저기서 방향을 바꾸면 어떤 위력이 나올까? 하는 의심.”
“허! 매 순간을 의심으로 채우며 살아왔다고?”
교마의 놀라는 모습에 진무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안 미친 게 다행이다.
혁련 팔십, 진무 십수 년, 선인으로 만 년이나 되는 시간을 그리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처음엔 비정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고, 이후엔 묻고 답하고 행하는 과정이 몸에 습관처럼 배어 버린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거든. 다만, 답을 내리고 나면 반드시 행했지. 그래야 직성이 풀렸으니까. 때문에 욕도 많이 먹었다. 목숨의 위기를 수차례 넘기기도 했었고……. 어쨌든 의심을 품은 놈에겐 항상 습관처럼 미끼를 던져 보거든? 니가 이렇게 덥석 물어 줄 거라는 건 몰랐지만.”
진무가 히죽 웃는 모습에 교마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자, 내 답은 충분히 들었을 테니까, 이제 나도 하나 물을까? 서로 하나씩 주고받는 그런 건설적인 거 있잖아? 그치?”
“…….”
장난스레 말하며 눈을 찡긋한 진무가 자신이 궁금해했던 것을 물었다.
“귀모가 내게 원하는 게 뭐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이유를 일러줬을 텐데?”
“…….”
……없었다.
귀모는 애초에 그런 이유 따위를 설명해 주지 않았다.
첫째, 해형장을 습격한 것은 도산옥을 무너뜨린 음양귀다.
둘째, 해형장에는 어떠한 관심도 가지지 마라.
그 두 가지 뿐이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음양귀가 음귀와 양귀를 통칭한 것도 지금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해형장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진무의 움직임에 따라 교마 자신이 판단하고 행한 것이다.
놈의 능력을 취하기 위해서, 세류의 먹잇감으로 삼기 위해서…….
“큭, 넌 뭔가 착각하는구나.”
“……뭐?”
“그리 물으면, 내가 순순히 대답해 줄 것이라 여겼더냐?”
음산하게 웃곤 육장의 거죽을 벗는 교마의 모습에 진무가 다시금 피식 웃었다.
새끼가 앙탈은. 아깐 순순히 대답만 잘하더니.
스륵.
그런데 참, 볼수록 색달랐다.
뒷골목에서 살던 어린 시절, 잘나가는 기녀가 옷 갈아입는 것을 몰래 훔쳐봤던 적은 있었지만…….
눈앞에서 거죽을 벗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그리고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낸 교마는…… 돼…… 아니 이건 흡사 공?
완연히 형체를 갖춘 공(?) 마를 보며, 진무는 멍하니 생각했다.
대체 어떻게 저런 크기가 남의 거죽에 들어갈 수 있지?
무엇보다…… 거 새끼, 빵빵한 게 잘 튀게 생겼네.
스윽.
그러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세류를 꼬나쥐고 스산하게 웃는 그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딱 봐도 싸우자는 거네.
끝이야 당연히 그럴 줄 알았지만, 뭐라도 좀 더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하지만 뭔 상관일까?
그냥 순서만 바뀌는 거다.
묻고 패느냐, 아니면 패고 묻느냐.
“후우…… 너, 나 잘 모르지?”
“…….”
진무가 하는 수 없이 어깨에 걸쳤던 여의를 툭 바닥으로 내려뜨렸다.
“그간에 별놈들이 다 있었다.”
“…….”
“걔들이 첨엔 다 그래. 내 행동이나 말이 좀 가볍다 보니 무시를 하더라고. 그러다 어떻게 됐을 것 같아?”
“…….”
“돈이 없다고 맞고, 말 안 듣다가 맞고, 어떤 새끼는 얼굴이 기분이 나빠, 그래서 또 맞고……. 그렇게 처맞은 놈들이 다들 어떻게 됐겠냐? 아마 대다수가 지금 지계에서 똥오줌 못 가리고 있을 거야.”
가가가각.
여의의 끝이 땅바닥에 끌리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다.
“그러니까, 웬만하면 그만둬라. 너도 마왕씩이나 되는데, 애들한테 처맞으며 질질 짤 순 없잖냐? 좋게 좋게 묻고 답하고, 응? 그럼 좋잖아? 안 그래?”
무척이나 불량스럽고 가벼워 보이는 투의 위협과는 반대로, 몸에서 피어난 마기는 아지랑이처럼 퍼져 세상을 묵직하게 짓눌렀다.
하지만 교마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짙어졌다.
왜냐고? 냉정한 분석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으니까.
그간 조심했던 것은 놈의 말처럼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불안감과 함께.
하지만 그간 놈을 지켜보며 많은 것을 알아냈다.
또한 세류가 남긴 상흔.
음귀로 추정되는 놈의 능력은 자신에 비해 모자란다.
봉처럼 생긴 법구를 통해 마력이 증폭되어도 비슷한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저 멀리 양귀일 것으로 추정되는 놈. 놈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음귀보다 훨씬 더 실망스럽다.
신력이 마력과 상극한다 하여도 그 정도로는 자신의 발끝조차 따라올 수 없다.
즉, 박피옥은 자신의 영역권이니 싸우면 무조건 자신이 이긴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개도 제집에서 삼 할은 먹고 들어간다는데…….
“큭, 큭큭큭.”
별안간 교마가 웃음을 터트리자 진무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냐?”
“너야말로, 나를 너무 우습게 본 모양이구나?”
“…….”
당연히 우습다.
설마하니 공처럼 생긴 놈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
“하나 너는 아느냐? 배신자로 가득한 박피옥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받아 왔는지, 그때마다 어찌 헤쳐 나와 박피옥주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지.”
“…….”
알 리가 있나, 알고 싶지도 않은데.
“약자를 상대로 최선을 다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심한 새끼, 그걸 자랑이라고…….
“비록 네놈의 마력이 나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과, 가진 모든 힘으로 너를 쓰러뜨려 주마.”
“……?!”
그 말과 함께 교마의 뚱뚱한 모습이 바람에 흩날리듯 푸스스 사라졌다.
「아느냐? 나는 나이자 모두이다. 적어도 이 박피옥에서만큼은. 어디 한번 찾아보아라, 나를…….」
그리고.
슈아아악!
별안간 옆에서 날아오는 규사의 공격에 진무가 급히 뒤로 물러났다.
“이거……. 이러면 곤란한데?”
규사뿐만이 아니었다.
박피옥의 모든 생명체의 눈빛이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충성하는 척(?)했던 그들이 홀린 듯한 눈빛을 하고 살기와 마기를 뿜어내며 진무를 향해 모여들고 있었다.
“하아, 역시…… 세류의 세 번째 능력은 사령의 확장형 같은 게 맞나 보네.”
「알았다 해도 이미 늦었다. 이 자리의 모두가 죽여도 죽여도 되살아나 공격할 것이다. 네놈의 힘이 다 빠질 때까지.」
“…….”
새끼, 위치 들키지 않으려고 심어로 말하기는. 약한 놈답게 잔머리 하난 제법이야.
하지만 그렇다 한들 방법이 없을까?
“그래? 그럼 되살아나지 못하게 전부 소멸시켜 버리면 되겠네.”
「뭐? 소멸? 웃기는군. 소멸의 권능을 부여받은 것은 오직 육계의 마왕들뿐이다. 네놈이 신력을 쓰지 못하는 이상 불가능하다.」
교마의 비웃음에 진무가 스산히 웃었다.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 설마 저기 있는 양귀 놈을 믿고 있는 것이냐? 말도 안 되는 소리! 저놈의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또한 설사 네놈들이 합공을 한다 해도, 너희는 나의 모습조차 보지 못하고 소멸할 것이다.」
새끼, 자존감 쩌네.
하지만 음양귀라는 게 청상과 나를 싸잡은 거라고 생각한 순간부터 너는 틀렸단 말이다.
“누가 둘이 합공한대? 너 따윈 나 혼자서도 충분해.”
비웃음을 가득 머금은 진무는 곧바로 마력을 신력으로 치환했다.
어차피 다 안다는데 뭐.
고맙게도 음양귀라는 이름으로 포장까지 해 줬으니, 마땅히 날뛰어 줘야지.
우우웅!
마력이 신력으로 뒤바뀌자 진무의 몸에서 은은한 금빛 서기가 퍼져 나왔다.
「자, 잠깐! 서기……라고? 음귀인 네놈이 어찌?」
“나는 나이자 모두라고 했나?”
「?」
“나는 음귀이자 양귀거든.”
「……!!」
“무슨 생각으로 귀모가 음양귀라 칭했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외적 도움 없이도 신력과 마력을 동시에 쓸 수 있는 건! 처음부터 나 하나뿐이었다.”
쿠우우우우.
청상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위력을 가진 진무의 신력이 금빛 서기를 휘황찬란하게 드리우며 대기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이봐, 교마. 한 가지 말해 주자면…… 난 마력보다 신력이 더 세.”
당연한 말이다.
마력을 쓰는 게 훨씬 더 성미에 맞는다곤 해도, 그가 실제로 만 년이나 수련해 온 것은 신력이니까.
“덧붙여 한마디만 더 하자면!”
「……?!」
진무가 반개한 눈으로 은은한 신광을 내뿜으며 길게 늘어뜨린 여의를 내려다봤다.
“이놈이 태초 뭐시기라서 그런진 모르겠는데 음양의 힘을 동시에 품어 증폭시키는 게 가능하단 말이지. 말하자면 음양봉이랄까?”
「그, 그게 무슨?」
경악에 찬 교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진무가 손에 침을 뱉어 비볐다.
“무슨 소리긴? 넌 이제 뒈졌단 소리지.”
“…….”
손에 착 감긴 여의가 금빛으로 물들자 진무가 눈알을 반들거리며 웃었다.
니들 귀모랑 정신적으로다가 대화를 한다면서?
그럼, 지금 사죄의 말씀을 전달해 드려라.
못 뵙고 뒈져서 죄송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