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6
6화
벌써 중천을 향해 달려가는 해를 보며 진무가 인상을 찌푸리는데.
“사숙! 사숙!”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청우가 뒤뚱거리며 달려왔다.
“닭은?”
“여기요!”
진무의 물음에 청우가 자랑스럽게 손에 든 것을 쑥 하고 내밀었다.
꼬꼬댁!
청우의 손안에서 날갯죽지를 잡힌 닭 두 마리가 뒤엉킨 채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다.
“아주 잘했다.”
“헤헤.”
청우가 해맑게 웃었다.
딱 써먹기 좋게 순진무구한 녀석 같으니.
“그럼 죽여.”
“옙!”
불쌍한 닭 두 마리가 두툼한 청우의 손에서 생을 마감했다.
“피 뽑고.”
주륵.
“넣어.”
솥뚜껑을 연 청우가 곧바로 펄펄 끓는 물에 닭을 던져 넣었다.
“털 뽑고.”
“예!”
말만 하면 된다.
이런 듬직한 놈을 여태 귀찮게만 여겼다니.
거기다 어제 아침 진허를 패는 것을 본 다음부터는 충성도까지 소폭 상승한 것 같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좀 더 패는 건데 그랬나.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끓일까?”
“예!”
닭이 끓는 동안 그 앞에 쪼그려 앉은 청우가 진무에게 물었다.
“저, 근데 사숙.”
“응?”
“어떻게 하신 거예요?”
“뭐가?”
“어제요. 저 진짜 놀랐어요. 진허 사숙의 무공은 사숙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데, 그분을 그렇게.”
“대단하지? 존경스럽지?”
끄덕끄덕.
청우가 선망 가득한 시선으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청우야.”
“예. 사숙.”
“물 넘친다.”
“옙!”
흐흐흐. 기특하다, 기특해.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라.
진무가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자 청우는 정말로 보이기는 하는 건지 의심스러운 그 눈을 또 활짝 휘며 기뻐했다.
보다 보니 그새 좀 귀여운 것도 같고.
전에 느꼈듯이 청우는 누군가와 많이 닮아 있었다.
천우명.
심각하게 눈치 없고 모자라긴 해도 충성심만큼은 최고였던 녀석. 지금 와서 유일하게 보지 못함이 그리운 녀석.
청우는 그 녀석의 어린 시절을 닮았다.
하다못해…… 너무 착해서 동배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는 것까지.
오냐, 이왕 이렇게 된 것 앞으로 너를 부하 일 호로 삼아 주마!
“근데 괜찮을까요?”
“뭐가?”
“닭이요.”
청우의 말에 진무가 허연 김을 내뿜으며 맛난 냄새가 폴폴 올라오는 솥을 힐끗 쳐다보았다.
“육식은 엄격히 금하고 있는데……. 혹시라도 걸리면.”
“청우야.”
“예.”
“나 믿지?”
“옙!”
“그럼 이제 꺼내 와.”
“…….”
“뭘 그렇게 봐? 다 익었어.”
“아!”
돌 터지는 소리 내기는.
솥뚜껑을 열자 먹음직스럽게 익은 닭이 윤기 나는 자태를 드러내었다.
“먹을래?”
진무의 말에 청우가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울대가 움직일 만큼 침을 삼킨다.
무당십계(武當十誡).
무당의 도인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도리였다.
그중 육식(肉食)은 선기를 쌓기 위해 무공이 일정 경지에 오를 때까지는 무조건 금해야 하는 것이었다.
무당 내공 연단법으로 선기가 어느 정도 영글기 전에 육식을 하게 되면 선기는 쌓이지 않고 내공만 늘어나게 된다.
그렇기에 무당에서는 제자의 육식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허락된 것은 오직 여러 가지 곡물과 약초를 배합해 만든 벽곡단뿐이었다.
쯧쯧, 한참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에게. 못된 도사 놈들 같으니.
“괜찮아. 나도 가끔 먹는다. 스승님도 드신 지 오래되었고.”
“…….”
청우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침 넘기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려왔다.
진무는 청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고 커다란 그릇에 닭 한 마리를 가득 담아 명진이 누워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스승님.”
문을 열고 들어선 진무의 손에 닭이 담긴 그릇이 들려 있자 명진이 흐뭇한 표정으로 상 앞에 앉았다.
그가 육식을 시작한 지도 벌써 몇 달이 지났다.
고기 맛을 알아, 이제는 어느 고기가 맛있더라며 품평까지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닭이로구나. 허허, 이 귀한 것을.”
“많이 드시고 더욱 왕성하게 기력을 회복하셔야지요.”
“헛헛, 오냐, 오냐. 안 그래도 내 너의 말을 듣고 육식을 한 뒤로는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는구나. 두 달 전부터는 산보도 다니질 않느냐.”
“예. 다행입니다.”
그리하셔야 제가 걱정을 덜고 이 지긋지긋한 무당에서 뒤도 안 돌아보고 내빼지요.
닭 다리를 뜯어 가는 스승의 모습에 진무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옛다. 너도 먹거라.”
“아닙니다. 밖에 한 마리 더 있습니다. 청우와 전 그것을 먹겠습니다.”
“어허, 한창 클 나이에 한 마리를 둘이 나눈단 말이냐? 쯧쯧, 아예 세 마리를 잡아 오지 않고.”
“…….”
이런 타락한 도사 놈을 보았나.
고기 맛을 보더니 아주 점점 더 노골적으로 타락하고 있었다.
“하면 나가 보겠습니다. 스승님. 식사를 마치시면 말씀하십시오. 내어 가겠습니다.”
“오냐.”
흐뭇해하며 닭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스승을 뒤로하고 진무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
처먹지 않겠다고 빼던 청우의 앞에 조금 전까지 토실토실하게 오른 살에 윤기가 가득했던 닭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듯 깨끗이 발라진 뼈만이.
이런 나눠 먹는 즐거움도 모르는 돼지 새끼를 봤나!
그 순간.
“이노옴! 당장 뱉지 못할까!”
불호령과 함께 나타난 것은 명현자와 장로들이었다.
저것들이 웬일이지?
닭 다리뼈에 남은 육수까지 쪽쪽 빨아 먹고 있던 청우는 그대로 얼어 버렸다.
“이놈이 감히! 본산 안에서 계율을 어겨?”
불같이 화를 낸 것은 무당의 계율을 담당하는 영은궁(迎恩宮)의 장로 명공이었다.
서슬 퍼런 그의 기세에 청우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바닥에 납작 엎드려 떨었다.
그리고 장문인 명현이 방 안에 앉아 막 닭을 먹기 시작한 명진을 바라보았다.
“자, 자네가 어찌…….”
“…….”
명진의 입가에 노골적으로 묻은 기름기에 명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장문인을 뵙습니다.”
진무의 공손한 인사에도 명현의 시선은 명진에게서 떨어지지 못했다.
“이게 지금 무슨…….”
명진은 갑자기 닥친 상황에 적잖이 당황했고, 명현은 너무나 화가 난 탓인지 수염을 부들거리며 말을 이어 가지 못했다.
엿 됐다.
하필이면 다른 놈도 아니고 장문인이라니.
대제자가 되어야 하는데.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식으로 찍히게 되면 곤란하다. 만일 이런 일로 오점이 생겨서 대제자가 되지 못하면 어쩐단 말인가?
진무는 일단 냅다 엎드려 빌기로 했다.
“죄송합니다. 모두가 제 잘못입니다.”
“…….”
엎드려 죄를 청하는 진무의 말에 명현의 시선이 비로소 명진에게서 떨어졌다.
“스승님의 기력이 너무도 쇠하시어.”
“닥쳐라. 이놈!”
불같이 노성을 지른 것은 명현이 아니라 계율을 담당하는 영은궁의 명공이었다.
“스승을 생각하는 마음은 갸륵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본문의 계율을 어겨? 네놈이 정녕 제정신이란 말이냐!”
“…….”
계율 좋아하네.
스승을 최선을 다해 봉양하는 중인데 고작 닭고기 좀 먹었기로서니, 쯧쯧.
마음 같아서는 확 그냥.
‘아직은 때가 아니지.’
썩어도 준치다.
변칙이나 초식 운용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은 이제 막 삼십 줄을 넘은 일대제자들까지였다.
무당의 장로라는 자들의 실력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아직은 힘이 모자랐다.
‘참자, 양의심공(兩儀心功)을 얻을 때까지. 그것만 익히면…… 꼭 저 새끼 대가리부터 깨 버려야지.’
바닥에 납죽 엎드린 그대로, 진무는 이를 북북 갈며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다.
“자네가 말해 보게. 무당의 가장 어른인 자네가…….”
“…….”
“명지-인!”
명현의 노성에 명진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똑바로 쳐다보았다.
“사형.”
“…….”
“그것이 그리도 큰 죄입니까?”
“……!”
강하게 이글거리는 눈빛.
그의 형형한 눈빛은 간신히 자리보전이나 하던 뒷방 노인의 그것이 아니었다.
“진무는 그만 일어나거라.”
“…….”
“어서!”
단호한 명진의 말에 진무가 쭈뼛거리며 일어났다.
“떳떳하게 고개를 들어라. 네가 무슨 죄를 지어 고개를 숙인단 말이냐. 거기 청우도 그만 일어나거라.”
명진의 목소리는 온화했지만 무거운 힘이 깃들어 있었다.
정말로 무공을 잃고 폐인이 된 사람이 맞는가 싶을 정도였다.
“사형, 명공, 명선.”
명진은 명현과 자신의 사형제들을 하나씩 불렀다.
“내 모습이 어찌 보이십니까?”
“…….”
“내가 사패천주 그 사악한 놈에게 무공을 잃고 폐인이 되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아십니까? 힘이 없어 죽어 가는 사형제들과 장로님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는 또 얼마나 참담했는지 아느냔 말입니다.”
저기, 사악한은 좀 빼고…… 어쨌든 진무는 스승을 응원했다.
역시 고기를 먹여 놓은 보람이 있다. 제 놈도 먹었으니 당연히 편을 들 수밖에 없으리라.
자, 어서 설득해! 설득해서 나의 죄를 사하여라!
“우리가 왜 무너진 것 같습니까? 힘이 없어서? 아니요. 이따위 허울뿐인 계율에 갇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명진.”
“끝까지 들으십시오.”
명진의 음성은 당당했고 한편으로 무거웠으며, 엄하기까지 했다.
“우리가 그 허울뿐인 계율을 죽도록 지켜서 얻은 결과가 무엇입니까?”
명현과 장로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우리가 허울 좋은 정도(正道)의 도리를 지키는 동안 어찌 되었습니까?”
“…….”
“무너졌지요. 참담하게 패배했습니다. 사패천주 혁련무강이 돌아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무맹은 휴전을 했습니다. 그 후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입니까? 하다못해 복수라도 했습니까?”
옳은 말이었다.
정무맹은 그때 명분보다 실리를 택했다.
당시의 무림은 삼파전.
정사대전이 더 지속되기라도 하면 호시탐탐 중원으로 세력을 뻗으려는 일월마교만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얻을 것이 분명했다.
그것을 우려한 정무맹은 무당의 참담한 현실을 외면하고 휴전을 택했다.
그 후 어느 누구도 무당을 돕지 않았다.
무당은 잊혀진 채 서서히 쇠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림이다.
힘이 있을 때는 누구나 도우려 하지만 힘이 없어지면 철저히 외면받는.
정의며 협(俠)이라 포장한다 해도 그것이 냉혹한 현실이었다.
도가의 종맥이던 전진도, 그 외 다른 수많은 문파들도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변하지 않는 이상 지금 이 순간에도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무당이 온전히 무림에 남을 것 같습니까? 무당의 역사가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 누가 장담을 합니까?”
“…….”
“그래요. 진무가 처음 고기를 먹으라 줄 때는 나도 놀랐습니다. 한데 저 아이가 그럽디다. 그거라도 먹고 기력을 차리라고. 제가 죽으면 자신은 어찌 사느냐고.”
“…….”
명진의 말에 명현이 고개 숙인 진무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래서 먹었습니다. 먹었더니 힘이 났지요. 요새는 충허암 근처로 산보도 다니고 있습니다.”
“…….”
놀라운 말이었다.
십 년을 자리에 누워 있다시피 한 명진이었다.
그런 그가 산보를 다닐 정도로 회복되었단 말인가?
“그래요. 십계를 어겼지요. 한데 어기니 훨씬 더 나아집디다. 그것이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힐책에 가까운 명진의 말에 명현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사형은 모르십니까? 우리가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는 이 계율을 지키는 동안 중원 무학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습니다. 선기를 쌓기 위해서는 육식을 지양해야 하나 육신의 힘을 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함을 어찌 모르십니까? 우리가 제재만 하는 사이에 무당 전체의 힘이 약해지고 있음을 어찌 모르시냔 말입니다.”
명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지켜 온 십계가 그리 중요합니까? 무당이 망하고 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지요?”
“…….”
“재물을 탐하지 않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작금의 무당을 살렸습니까? 아니요. 재물을 멀리했기에 이리 궁핍합니다. 제자들에게 새 도복 하나 내어 주지 못하지 않습니까?”
“…….”
“함부로 살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요. 그리도 인명을 아껴 어찌 되었습니까? 예. 사패천에 이 꼴이 되었습니다.”
몇 가지 말이 반복되기는 했으되, 이후로도 명진의 말은 거침없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