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60
60화
“하아아아.”
진무가 방바닥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대제자가 될 수 없다니. 양의심공이 물 건너갈 줄이야. 망할 장문 도사 놈 같으니.”
원망스럽다.
미리 말해 줬으면 절대로 태청신단에 현혹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공 따위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모으면 그만이다.
강의 경지?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어차피 묵룡혼원공만 얻으면 강기 따위는 금방인데.
“하아.”
한숨이 그야말로 쉴 새 없이 나왔다.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강제로 뺏을까?”
어차피 이제 무당 최고수다.
장문인 모가지에 칼을 들이밀고 ‘내놔, 양의심공.’이라고 하면 줄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지만 필시 자신의 본능을 지배하고 있는 망할 스승이 방해하겠지.
만약 스승이 ‘멈춰!’ 하면 멈출 수밖에 없다. 망할 도동 놈의 기억은 아직 유효하니까.
“젠장, 뭐 어쩌라는 거야!”
저승차사 빌어먹을 놈. 하필이면 무당에 보내 가지고.
태청신단을 얻었을 때 감사했던 마음은 싹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하아.”
이걸로 몇 번째 한숨인지. 폐 다 쪼그라들겠네, 아주.
진무가 고개를 푹 숙이고 힘없이 앉아 있는데.
“사숙! 사숙!”
청상이 문을 벌컥 열었다.
“사조님께서 장서각에 다녀오시랍니다.”
“…….”
이 새낀 뭐가 좋다고 처웃고 있는 건지.
거기다가 저 존경심을 잔뜩 담은 눈빛이라니…… 아, 파내 버릴까?
하지만 스승의 명이라니.
“장서각은 왜?”
“일전에 사조님께서 부탁하신 무공 비급의 필사가 끝났다고 연락이 와서요.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망할 스승. 제자의 마음도 몰라주고 심부름이나 시키다니.
아, 원망스러워라.
“알았다. 가자.”
진무가 의욕 없는 모습으로 일어났다.
충허암에서 장서각으로 가는 길은 산길이다. 절벽에 붙은 잔도까지 있으니 수레는 부적합했다. 터벅거리며 걷는 진무의 뒤를 청상과 청우가 등에 지게를 지고 따랐다.
오든가 말든가.
아, 가기 싫다.
느린 걸음 때문인지 장서각이 위치한 영은궁까지 가는 시간은 평소의 배나 걸렸다.
“오! 진무가 아니냐!”
낮 시간이라 궁에 있던 영은궁주 명공이 진무를 알아보고 반가운 척을 했다.
이것들이 왜 죄다 내 얼굴만 보면 쪼개는지 모르겠다.
“예.”
진무가 귀찮은 표정으로 대답하는데 멀리 진혜가 보인다.
원망, 질투, 부러움……. 눈깔 하나에 참 다양하게도 감정이 묻어난다.
눈깔 파낼 놈이 자꾸만 늘어 가네.
진무가 째려보자 진혜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래, 장서각으로 간다고?”
“예.”
“어서 가 보거라. 허허.”
명공은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멀어지는 진무의 등을 바라보았다.
‘진무가 강기, 아니 강환을 깨달았다.’
명진의 그 한마디는 순식간에 무당 전체로 퍼져 나갔다.
이 얼마나 장한 일이던가?
무당에 강의 경지를 깨달았던 도인이 마지막으로 존재했던 때가 언제였던가?
만약 자신들이 그때 죽어 가던 도동을 살리지 않았다면? 그를 일대제자로 들이지 않았다면?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무당을 찾아온 축복이자 선대의 보살핌이었다.
정무칠성이라 불리는 절대자들과 이름을 나란히 놓으며 앞으로 중원 무림에 무당의 이름을 드높일 보물이었다.
그에게 태청신단을 주었을 때, 강의 경지를 기대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보란 듯이 이루어 내었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기적을.
“허허, 어찌 이리도 장한 모습이란 말이냐.”
장서각이 있는 절벽의 잔도로 모습을 감추는 진무의 모습에 명공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물론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진혜는.
‘아, 아랫배가 끊어질 것 같구나.’
인상을 찌푸리고 뒷간으로 향했다.
장서각에 도착한 청우와 청상은 신기한 듯이 안을 두리번거렸다.
무당에 십 년을 넘게 살았지만 이대제자에게 허락되지 않은 장소이니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빨리 들어가!”
진무의 짜증스러운 한마디와 함께 장서각의 문이 열렸다.
“왔느냐?”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장서각을 지키는 운공.
나이도 배분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노인네였지만, 지금의 진무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어휴, 많기도 많다. 쓸모없는 무공들 같으니.”
높다랗게 쌓아 수십 권씩 새끼줄에 묶인 비급을 보며 진무가 푸념처럼 중얼거리자 운공이 묘한 표정을 짓는다.
“젠장, 양의심공도 없는데 이 많은 비급이 다 무슨 소용이야.”
“응?”
낮게 중얼거린 혼잣말에 운공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왜요?”
운공의 관심에 진무가 짜증스럽게 인상을 썼다.
“아니다. 이제는 아무도 익히지 않는 양의심공 따위에 관심을 두는 것이 신기하여 물어보았다.”
“쯧, 무당의 대제자만 익힐 수 있는 고매한 무공을 두고 따위라니.”
“허허, 고매한 무공이라?”
운공이 진무의 말을 곱씹으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고매하긴 하지. 허나 양의심공은 독(毒)이기도 하다.”
“…….”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이 노인네가 노망이 났나?
이내 진무가 관심을 끊어 버리려는 순간.
“오랫동안 무당의 전설이었던 양의심공을 다시 찾는다면 좋기는 하겠구나. 처음의 모습 그대로…….”
운공의 말에 진무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호기심이 동했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소리요?”
처음의 그 모습은 무엇이며, 다시 찾는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무슨 말은. 그저 노인네의 넋두리지. 비급이나 가지고 돌아가거라.”
운공이 귀찮은 듯이 손을 휘휘 내저었지만, 진무의 호기심은 이미 극에 달해 있었다.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고 생각했던 양의심공에 대한 말이 아닌가.
이 노인네, 분명 뭔가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청상, 청우.”
“예, 사숙.”
“먼저 돌아가거라.”
“예?”
“사부님께는 내가 장서각에 좀 더 머물다 간다 말씀드리고.”
“……예.”
청상과 청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장서각을 빠져나가자마자 진무가 노인의 곁에 앉았다.
“어르신.”
“……?”
“양의심공에 대해 아십니까?”
어느새 말투마저 공손해져 있었다.
“양의심공?”
운공은 별소리를 다 듣겠다는 표정이었다.
“무당에 양의심공에 대해서 모르는 이도 있다더냐?”
그건 그렇지.
무공을 대표하는 무공 중의 하나니까.
“한데 독이라는 건 무슨 말씀입니까? 양의심공을 처음 그 모습대로 다시 찾는다는 것은 또 무슨 말씀이구요?”
“…….”
두 가지 물음에 운공이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
“거참 근래 보기 드문 놈일세. 내 몇 대의 제자들을 지나왔으나 아무도 양의심공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거늘.”
“예? 그게 무슨?”
“무슨이고 나발이고, 어찌하여 양의심공에 대해 관심을 보이느냐?”
운공의 눈동자에 묘한 신광이 어렸다.
“아, 그게…….”
“혹, 익혀 보려고?”
눈을 샐쭉하게 뜨는 운공 노인의 말에 진무가 잠시 고민했다.
사실대로 말해야 할까?
진무는 운공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처음 노인을 만났을 때 느꼈던 기이한 느낌.
그리고 지금의 느낌.
노인은 양의심공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배분도 나이도 알 수 없는 노인.
무당의 누구보다 오래 살았을 노인이 어쩌면 한 줄기 희망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히고 싶습니다.”
“익혀?”
“예. 뜻하는 바가 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은 양의심공뿐입니다.”
“…….”
운공노인이 진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뜻하는 바가 있다라…… 흠.”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눈동자.
그의 눈빛을 마주한 진무는 놀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세상을 살며 봐 왔던 어떤 눈과도 달랐다.
세월이 쌓여 누런빛이 도는 그것은 단순한 탁수(濁水)인가 싶다가도,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처럼 느껴졌다.
“허헛, 네놈 이름이 진무겠지?”
“어찌 아십니까?”
“멍청한 놈. 무당이 다 아는 사실을 어찌 나만 모르겠느냐? 아침에도 명공이 찾아와 네놈 자랑을 한 바가지나 하고 갔는데.”
그뿐 아니라 얼마 전에 양소방도 찾아와 대화 내내 진무의 이름을 수도 없이 거론해서 아직까지 귀에 딱지가 앉은 기분이었다.
들은 것만으로 따지면 무당의 역사 이래 무재가 가장 뛰어난 제자가 아닌가.
“약관에 ‘강’에 이르다니 네놈도 참 대단하구나.”
“운이 좋았습니다.”
“허허, 운이라. 천명(天命)은 쉬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니라.”
운공의 미소에 진무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마치 불가에서 말하는 염화미소(拈華微笑)처럼 보였다.
웃음 속에 모든 것을 깨달아 아는 듯한.
‘도대체 이 노인의 정체가 뭐길래.’
볼수록 신기한 노인이었다. 진무는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나에 대해 궁금한 것이냐?”
운공은 마치 진무의 마음을 읽어 내기라도 한 듯이 물었다.
“예. 운자 배시라면 필경 본문의 최고 어른이실 텐데.”
“뭐라? 하하핫! 내가 말이냐?”
“……?”
갑자기 노인이 웃기 시작했다.
“너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듣지 못한 모양이구나.”
묻지도 않았고, 가르쳐 준 사람도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운자 배는 맞다만, 죄를 지어 잊힌 파문 제자이니 문도의 예를 차릴 필요 없다. 마땅히 사지근맥이 잘리고 파문이 되었어야 마땅함이나 선대의 은혜를 입어 내공만 폐하여졌느니. 지금은 그저 한 줌 내공도 없이 장서각을 지키는 이름뿐인 노인네니라.”
파문 제자. 선대의 은혜.
진무는 노인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딱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노인이 누구건 간에 핵심은 양의심공이었으니까.
“듣자 하니 네가 무당지검의 칭호를 받았다 하더구나.”
“예.”
“하면 양의심공을 익힐 수 없다는 사실도 들었겠구나.”
“예.”
“한데 어찌 관심을 두느냐? 이미 선택을 하였음인데?”
운공의 말에 진무의 표정이 시무룩하게 변했다.
“양의심공을 전수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무당지검의 칭호를 선택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대신 태청신단을 받았지 않느냐?”
“태청신단요? 쳇, 양의심공에 비하면 그냥 내공 덩어리 환약일 뿐이잖아요.”
진무의 투덜거림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운공이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뭐? 하핫! 태청신단을 그리 표현하다니 실로 미친놈이로다.”
“제겐 그렇습니다.”
“쯧쯧, 과욕이다. 포기하거라. 무릇 하나를 익혀 대성하기도 힘든 것이 무공이다. 더 욕심내어서는 어중간할 수밖에 없는 게야. 너는 이미 그 나이에 과분할 정도로 이루었으니 천명을 받은 것과 같다. 허니 그 길만을 갈고 닦아도 무림사에 누구보다 이름을 알릴 것이다.”
“당연히 그렇겠지요. 하지만 그런 것들이 양의심공에 비하겠습니까?”
“쯧쯧.”
진무의 말에 운공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과욕은 좋지 않다.
특히나 이미 빛을 발하고 있는 제자가 아니던가? 더 많은 욕심을 부리는 것은 가야 할 길을 늦출 뿐이었다.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제자가 양의에 매몰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던 운공은 진무를 말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놈아. 양의(兩意)의 뜻을 모르더냐?”
“예?”
“정상적인 무당의 도사가 그것을 익히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 보느냐?”
“……?”
“무릇 태극은 음양이다. 음양은 밝음과 어둠이요, 이는 곧 선과 악이니라. 그 둘을 한 몸에 담는 것이 양의이나 나누어진 것은 다시 뭉치려 들기 마련. 종래에는 끊임없이 마음속에서 선악이 충돌하게 된다. 이를 끝내 융합하면 모르되, 실패하는 순간 심마(心魔)에 빠지게 되는 것이니라.”
“…….”
“도문의 제자가 마음속의 악함을 이기지 못해 심마에 빠지면 어찌 되는 줄 아느냐?”
“…….”
“마귀가 된다. 마선(魔仙)이 되어 세상에 해악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익혀야지.
운공의 말이 맞다. 도인은 사공을 익힐 수 없고 악인은 선공을 익힐 수 없다.
선공을 익히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마음마저 정결히 변하는 법이니 사공을 익혀도 내공이 늘지 않는다.
진무의 몸에 쌓인 육양신공의 기운이 묵룡혼원공의 사기를 흩어 놓는 것만 보아도 아는 일이다.
또한, 삿된 마음을 품은 자는 절대로 무당의 무공을 대성할 수 없었다.
무당의 내공이 그러하다. 인내함으로써, 마음을 명경지수처럼 닦으면서 깨달음을 얻는 무공이다. 그렇기에 도가의 내공을 도력(道力)이라 하지 않던가?
하지만 진무는 다른 누구와도 달랐다.
진무는 정상적인 도사가 아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