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618
88화
“네, 네 놈이…… 어찌?”
혼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홀로 세상에 군림하는 듯 불량스럽기 짝이 없는 저 모습.
“……살아 있었나?”
“……?”
우융마저 잘게 떨고 있었다.
흥분에 가득 찬 눈동자뿐 아니라, 손끝까지.
연이 닿은 적 없었기에 진무를 처음 본 악구는 둘의 반응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저놈이 누구길래?
“진무야!”
“……?!”
싸우던 마귀가 일순간에 소멸해 버린 터라 멍해 있던 명진의 외침에 그의 의문은 곧바로 해소됐다.
진무라고?
아니, 어찌?
귀모는 분명, 지계를 한바탕 뒤집어 놓았던 그가 계의 붕괴 속에서 소멸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살아 있었……다고? 대체 어찌?
또한 조금 전 그 힘은 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악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결계로 들어갔던 마귀 중 살아남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야말로 한순간의 떼 몰살이었다.
봉신을 해한 마왕들조차도 불가능한…….
악구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진무는 무당산을 지키고 있던 이들과 재회를 나눴다.
“스승님!”
“어찌 된 일이냐?”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어? 오냐.”
다가오자마자 걱정 가득한 눈길로 몸 이곳저곳을 살피는 진무의 모습에 명진이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괜찮다, 괜찮대두.”
“이런 씨, 그러니까 그냥 자소궁에 계시지 뭐 하러 나서서 싸웁니까? 천계에서 지원도 잔뜩 왔는데. 그리고 양소방 그놈은 대체 왜 안 보여요?”
“위에, 자소궁에 마련된 천계의 통로를 지키느라.”
“뭐요!? 이 거지새끼가 진짜! 그게 뭐 그리 중요한 일이라고!”
“진무야…… 그런 게 아니라, 무당을 타인의 손에 맡기기가 그래서…….”
명진이 자제시키려 애썼지만, 스승 걱정에 화가 잔뜩 난 진무에겐 소용없었다.
“무당은 무슨 무당요? 이미 등선하신 분이 뭔 그딴 것까지 신경을 쓰십니까?”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그래돕니까? 몸도 약한 분이, 찬 바람에 고뿔이라도 들면 어쩌시려구!”
“…….”
“으휴, 진짜 스승님 때문에 불안해서 제가 잠시라도 나가 있질 못하겠습니다. 옆에 끼고 다니든지 해야지, 원.”
숫제 자신을 아이 취급하며 툴툴거리는 진무로 인해 명진의 표정이 더욱 어색해진다.
그 정도면 집착이란다, 제자야.
그리고 걱정하는 마음은 알지만…… 선인에게 고뿔이라니.
“참!”
“응?”
별안간 진무가 눈을 부릅뜨자 명진이 살짝 긴장했다.
스승인 자신에게 해를 입히진 않겠지만, 이미 양소방이 줘 터지는 것을 보았던지라…….
“……지, 진무야, 그만 화 풀거라. 내 과거완 달리 이리 건강해졌느니라.”
“그게 아니고요!”
“으응?”
“혹시, 허락하신 겁니까?”
“……응? 뭘?”
밑도 끝도 없는 물음에 명진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의아해했다.
“뭐긴 뭡니까? 세령이와의 혼례요!”
“……아!”
“아아? 허락하셨단 말인 거죠?”
“아, 그게…….”
“어유, 진짜! 아무리 죽었다지만 영혼식(靈婚式)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내…… 겪어 보니 그만한 순정이 없는지라. 문파의 어른들한테도 싹싹한 것이…….”
“순정이요? 순저엉?”
“…….”
“아니, 평생 도사로 살면서 여인의 손 한번 못 잡아 보신 스승님이 혼례에 대해서 뭘 압니까? 본인 일 아니라고 막 그렇게 함부로 결정해도 되는 겁니까? 예!?”
졸지에 연애 한 번 못 해 본 사내가 돼 버렸지만,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명진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채, 입만 삐죽거렸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모두가 자신이 만든 업보인 것을…… 무량수불.
“두장군!”
“……?”
난감하기 짝없는 상황에 놓여 있던 명진을 구한 것은 다름 아닌 백양이었다.
“어? 니가 여긴 웬일이냐?”
“……하하, 지금 보신 겁니까?”
“미안, 스승님 걱정에 몸이 잔뜩 달아 있었거든.”
미안함이라곤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답에 백양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하여간 성격하곤……. 오랜만에 봤는데 하나도 안 변했구만.
“근데 웬 두장군이냐? 청상에게 듣기로는 니가 내 뒤를 이었다던데?”
“임시였습니다.”
“뭐?”
“두장군께서 돌아오셨으니, 응당 제자리로 돌아가야지요.”
“…….”
백양의 말에 진무가 고개를 저었다.
같은 소속이라면 응당 그럴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이미 팔자가 달라진 참이다.
“백양.”
“예, 두장군.”
“나 이제 천계 소속 아니다.”
“예?”
“말하자면, 옥황이랑 귀모와 동급인…….”
“예에?”
“뭐야? 스승님이 말씀 안 해 주셨어?”
“무슨 말을?”
“이상하네. 제자의 일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열두 시진을 쉬지 않고 자랑하실 분인데.”
진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명진의 볼이 슬그머니 붉어졌다.
“진무야, 이 스승이 그 정돈 아니니라.”
“…….”
“사실 틀린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네 그리 말하니 몹시도 섭섭하구나.”
나이답지 않게 토라진 모습에 진무가 작게 웃으며 백양의 어깨를 툭 쳤다.
“……뭐, 됐다. 스승님께서 자랑치 않으셨다면 이유가 있었겠지. 일단 설명하자면 기니까 이 자식들부터 정리하고 나서 이야기할까?”
“음, 알겠습니다.”
답은 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천지의 주인들과 동급이라니?
하지만 허튼소린 아닐 테니 나중에 찬찬히 듣지, 뭐. 간단히 결론을 내린 백양이 자신의 도끼를 힘껏 움켜쥐고 진무의 옆에 섰다.
“너 뭐 하냐?”
“뭘 하다니요? 도와야지요.”
“왜?”
“예? 그야 당연히 마왕들과 싸우시는데…….”
“필요 없어.”
“……예?”
“저딴 것들 세 놈쯤이야. 좀 있으면 다른 애들도 도착할 테니까, 넌 그냥 마귀들이 산으로 못 올라오게 지키기나 해라.”
“……예?”
백양은 거듭 같은 말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저딴 세…… 놈?
설마 혼자서 마왕 셋을 상대하겠다고?
물론, 그의 놀라운 업적은 명진에게 숱하게 들었다.
그런 자랑이 또 어디 있을까 싶을 만큼 각종 미사여구를 덕지덕지 바른, 가히 신화급 자랑질이었다.
무당을 찾아온 마왕 둘의 소멸.
그리고 청상을 위시한 신령들과 함께 마왕의 강림지까지 봉인하겠다 떠났다지.
하지만 그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마왕이 하나일 때의 이야기다.
“두장군! 아무리 그래도 셋은…….”
“어! 애들 왔다.”
“……?”
진무를 따라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마귀들의 포위장을 쐐기처럼 꿰뚫고 들어오는 이들이 있었다.
“마귀 새끼들, 모조리 죽어라! 비사! 조져 버려!”
“예!”
촤아악!
우선 비사를 대동하고 수월도로 금빛 서기를 뿌리며 마귀들을 헤집는 당세령.
“이것들이! 안 비켜!”
화아악!
그녀의 등 뒤에서 환각처럼 솟구친 천 개의 손에 모습을 드러낸 극락정토의 보물들이 마귀들을 휩쓸었다.
“전부 뒈져 버려라! 크학학학!”
“…….”
미친X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정말 큰 도움이 되는 미친X이었다.
당세령이 뚫어 내는 길을 따라 청상이 자충으로 마귀들을 줄줄이 꿰곤 태극조화검으로 마무리한다. 뒤이어 청우와 사패오왕을 위시한 신령들이 통로의 잔당들을 섬멸시키며 따랐다.
진무를 도와 인계의 마귀들을 정벌한 뒤 무당으로 돌아오는 늠름한(?) 영웅들이었다.
“마왕은 내가 맡을 테니까 쟤들이랑 무당 잘 부탁한다. 마귀 놈들이 무당산에 흠집도 못 내게 해! 알겠어? 만약에 못 막으면…… 알지?”
“두, 두장군!”
백양이 황급히 그를 잡으려 손을 뻗어 봤지만, 손에 잡힌 것은 한 줄기 바람뿐이었다.
“헉! 어, 어느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까지 눈앞에 있던 진무가 이미 결계의 밖에 도착해 있지 않은가?
“젠장할! 신장들은 나를 따르라!”
결정은 내려졌고, 다른 방도를 떠올리지 못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백양은 신장들을 향해 다급히 외쳤다.
진무의 한마디.
못 막으면…… 알지?
모를 리가 있나. 부하였던 시절이 만 년에 가까운데.
* * *
“도천, 오랜만이네.”
“음…….”
손을 들며 방긋 웃는 진무의 모습에 우융, 아니 북리도천의 눈이 찌푸려졌다.
저리 여유롭다니…….
무당산을 포위한 마귀들과 막고자 하는 이들의 싸움이 재개됐지만, 그들이 있는 자리는 따로 떨어진 곳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진무가 나타난 이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마왕들이 움직이지 못했던 것은, 그가 보여 준 모습이 너무도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 전의 움직임.
……바람?
보이지 않은 무언가가 휙 부는 느낌이었는데, 진무가 눈앞에 나타났다.
분명 한순간도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는데, 마치 한순간에 공간을 넘어온 것처럼…….
“제기랄…… 강해졌군.”
“그래.”
“…….”
북리도천의 감상은 무거웠고, 진무의 답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그런데 너, 너무 언행불일치 아니냐? 아주 좋아 죽을 것 같다는 표정을 하고서는.”
“몹시 그렇군. 당장이라도 싸워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말이야.”
부정치 않았다.
진무의 강함에 북리도천은 몸이 잘게 떨리는 것 같았다.
천계와 지계, 음과 양. 그따위 이유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진무와 싸워 보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을 만큼 몸이 달아오르는 기분 좋은 전율이었다.
모든 것을 걸고…….
“큭, 과연 너다운 말이네.”
“…….”
“그래서, 셋이 함께할 거냐?”
“글쎄…….”
북리도천의 목소리에 주저함이 느껴졌다.
이처럼 맛난 놈을…… 어찌 나누어 먹을 수 있을까?
“음,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군.”
“혼자선 힘들 텐데?”
“해 보지 않곤 모를 일이지.”
“뭐, 좋아. 그 역시 너다우니까.”
진무가 피식 웃고는 악구와 혼천을 쳐다봤다.
“그럼 니들 둘부터네.”
“……뭐?”
“혼자 하겠다잖아.”
“…….”
진무의 말에 악구와 혼천이 북리도천을 바라봤다.
그의 말처럼 마왕 셋이 합공을 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멍청하지 않았다.
진무의 실력을 가늠하는 것은 그가 보여준 두 번의 움직임이면 족했다. 일거에 마귀들을 쓸어버린 것과 한 걸음에 자신들의 앞까지 다가온 것. 어느 것도 그들이 할 수 있다 장담할 수 없었다.
“우융! 그게 무슨 개 같은 소리냐!”
발악하듯 외치는 혼천에게 북리도천이 무심하게 답했다.
“혼천.”
“……?”
“진무를 찢어 죽이겠다 하지 않았던가?”
“뭐?”
“나서지 말아 달라 하지 않았던가?”
“……그, 그건.”
“기회가 오지 않았는가? 나는 이전처럼 나서지 않겠다.”
“이, 빌어먹을 자식이!”
합공을 거부당한 혼천의 얼굴이 괴이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우융! 귀모님의 명을 거역할 참이냐!”
“…….”
악구가 매섭게 일갈했지만, 북리도천은 오히려 한 걸음 더 물러났다.
“난 누구의 명을 듣는 사람이 아니다.”
“뭐?”
“너희는 귀모를 주인처럼 모셨으나, 나는 쓰러뜨려야 할 상대로 여겨 왔다.”
“…….”
“그간 그녀의 말을 들었던 것은 권능의 강제력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지, 충성했기 때문이 아니다.”
“네, 네놈!”
“한데, 이곳에선 그녀의 종속력이 느껴지지 않는군.”
“닥쳐라! 귀모님께서 네놈을 용서할 것 같으냐!”
“용서? 글쎄…… 그건 일단 저 친구의 손에서 살아난 다음에 걱정해야 할 문제일 듯한데? 나나 너희나.”
“……!”
그가 또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물러난 만큼의 거리보다 더 깊이 진무가 다가와 있었다.
“이 새끼들이 추잡하게시리…… 싫다는데 왜 자꾸 들러붙어? 할 거야 말 거야?”
“…….”
“뭐, 됐어. 하든 말든 니네 둘이 뒈진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으니까. 혼천, 아니 한무화. 기억나지? 니 마지막이 어땠는지?”
진무가 스산하게 웃으며 깍지 낀 손을 꺾어 댔다.
우두둑, 우두두둑.
“…….”
저 모습…….
본능 안에 각인되어 있던 기억이 떠오른 혼천이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미소 속에 번뜩이는 송곳니, 차디찬 눈빛.
그 뒤에 이어졌던 것은…… 몸서리쳐지는 구타.
하지만 기억을 잊을 만한 시간이 흘렀고, 자신은 그때의 한무화가 아니었다.
“이런 개자식! 나는 한빙옥주! 혼천이다!”
파하학!
혼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혹한이 진무를 단숨에 빙결시켰다.
더운 피가 싸늘히 식었고, 육신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러나 잠시였다. 진무의 몸에서 별안간 용암처럼 화끈한 열기가 뿜어져 나와 한기를 밀어 냈다.
“거, 겁화의 권능이라고?”
“…….”
분명 사타가 가졌던 권능이다.
설마 놈이 사타의 권능을 빼앗기라도 한 건가?
하지만 진무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딴 짝퉁이랑 비교하면 곤란하지.”
“뭐?”
“이건…… 오행의 화기(火氣)라고 하는 게다.”
“……오행의 화기?”
“그래, 사타와 싸우면서 자연스럽게 깨달았지. 진짜를 말이야.”
“…….”
진무가 히죽 웃으며 혼천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리 와라.
사타는 물 싸다구 맞고 뒈졌거든.
넌 얼음이시라고? 그럼 아예 증발시켜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