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624
94화
북리도천이 뿜어내는 화기의 힘은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사실 화기만 놓고 보자면 그가 진무보다 훨씬 더 강하다고 할 수 있었다.
진무는 인지함으로써 사용법을 알게 되었지만, 북리도천은 그 안에 머물던 잠재력을 통해 새로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즉, 지금의 북리도천은 화기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어딘가 기시감이 드는 그 모습에, 진무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불의 신, 축융.”
신이라 불리는 존재들.
그들 또한 황혼을 맞이해 소멸하지만, 힘의 순환으로 언젠가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기 마련이다.
비록 귀모의 계략으로 원치 않은 소멸을 맞이해 버렸으나, 순환의 이치에 따라 새로운 몸에 깃드는 것은 당연한 순서.
자신이 북리도천의 몸에 자리 잡은 잠재력을 일깨워 그를 살린 것은 어쩌면 그러한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본시 이유 없는 결과는 없다 했다.
과거 북리도천이 힘과 기억을 잃고 인계에 머물던 축융의 잔재 청염의 선택을 받았던 이유도, 또한 자신으로 인해 지금의 힘을 깨닫게 된 이유도……. 모두 그가 가진 운명의 수레바퀴 안에서 일어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나, 아직은 이르다.
무릇 수많은 것들이 비슷한 운명을 타고나지만, 모두가 그 끝자락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많은 과정을 지나야 할 것이다. 운명을 계승하자면 오랜 세월 각성에 각성을 거쳐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리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융이라니. 큭큭, 꽤 재미있겠네. 잘하면 진짜로 한판 크게 싸울 때가 올지도 모르겠어.”
얼마나 좋은가?
절대라는 고독에 사무치며 고통스러워하는 대신, 걸출한 상대가 있음을 인지하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하나, 굳이 그가 가지게 된 운명을 알려 줄 필요는 없다.
미래란 태초에서 비롯되었던 마고라 할지라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며, 강제한다 한들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똑같이 아기로 태어나 어떤 이는 악인의 길을 걷고, 또 어떤 이는 선인의 길을 걷는 것처럼.
운명은 그저 운명일 뿐, 어떤 길을 걷는가에 대한 것은 오롯이 자의(自意)에 달렸다. 타고난 팔자는 중요치 않다. 본인의 선택에 따라 쉼 없이 바뀌는 것이다.
음이든 양이든, 선이든 악이든 스스로 결정하여 운명을 개척하는 것. 그것이 마고가 만들어 놓은 세상의 이치였다.
콰아아앙!
북리도천이 걸어갈 운명을 흐뭇하게 머릿속에 그리던 진무가 귓가를 뒤흔드는 거친 충돌음에 전장을 바라봤다.
땅바닥에 패대기쳐진 듯 뒹구는 여의와 금혼?
그리고 얼굴을 찡그린 채 한 곳을 노려보고 있는 북리도천…….
“…….”
그 시선을 따라간 곳에는 검은 갑주에 쌍검을 움켜쥔 이가 있었다.
기억하던 모습과는 다르지만, 외양이 뭐 그리 중요할까.
북리도천을 막고 선 이는 원하면 어떤 것으로도 존재할 수 있는 자가 아니던가?
문을 부숴 놓으니 집 지키는 개새끼가 주인보다 먼저 뛰어나오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고.
“수호령…… 순조.”
지계에서 귀모 다음으로 강하다는 그. 포궁에 머물며 귀모의 곁을 지키는 그의 등장에 마귀들이 일제히 물러났다.
아마도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할 모양이었다.
신수라고는 하지만 여의는 완전히 성장하지 못한 새끼 용에 불과했고, 금혼은 완전한 각성을 이루지 못했다.
북리도천 또한 아직 축융이 아니기에…….
스윽.
발을 뻗어 밟자, 진무는 어느새 북리도천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또 보는군.”
“……!”
손을 들어 흔드는 인사에 순조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죽었다고 여겼던 이가 눈앞에 나타났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와중에 외양마저 과거와 똑같지 않은가?
“……네놈이었군.”
“흠, 어째 막 알아본 느낌인데? 귀모가 말 안 해 준 모양이지?”
“놈! 말을 삼가라!”
진무의 비아냥에 대번에 순조의 몸에서 칼날처럼 날카로운 기파가 쏘아져 주위를 헤집었다.
아마도 제 주인에게 공손치 않음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뭐…… 귀모를 귀모라 부르지 옥황이라 부르랴?
얼굴을 찡그린 진무가 빈손을 활짝 펼쳐 뻗었다.
파삭!
순조가 뿜어낸 기운이 얇은 얼음처럼 부서져 흩날렸다.
수고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저 가만히 서서 맞았어도 자신에게는 아무 영향도 줄 수 없는 힘이지만, 뒤에 있는 셋에겐 다르니까.
“내가 분명히 경고했었지.”
“…….”
“귀모님께 위협이 된다면 다시는 객으로 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아! 그랬었지? 까맣게 잊고 있었네?”
진무가 히죽 웃으며 응대하자 순조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랐다.
그때는 그저 웃음 짓는 것만으로도 몸이 수만 갈래로 베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었는데, 이젠 아무렇지도 않았다.
“네놈…… 과거와는 달라졌구나.”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달라지는 법이지. 너도 달라졌어.”
“…….”
“꾸준히 운동이라도 좀 하지. 이렇게 약해져 있으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 전의(戰意)도 안 생기게시리.”
약해져?
그건 진무의 눈에나 그럴 뿐이다.
모름지기 힘이란 상대적인 것. 한없이 높아 보이는 전각 지붕도 그보다 높은 산 정상에 올라 바라보면 손에 잡히지도 않을 듯 작아 보이는 법이 아니던가?
그저 진무가 너무 강해져서 그런 것이다.
하지만 순조의 눈동자에는 조금의 동요도 스치지 않았다.
“같잖은 힘을 얻었다 하여 나를 너무 우습게 보는구나.”
“그렇게 보이는 걸 아니라고 할 순 없잖아.”
시종일관 여유를 잃지 않는 진무의 모습에 순조의 눈빛이 더욱 싸늘해졌다.
“나는 포궁의 수호령이다.”
“…….”
“아느냐? 귀모님을 제외한 그 어떤 존재도 이곳에서만큼은 나를 능가할 수 없음을…….”
뿌득, 뿌드득.
순조의 모습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굳이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해도 똑똑히 보였다.
비슷해 보였던 몸집이 어느새 고개를 끝까지 뒤로 젖혀야 보일 만큼 거대해졌다.
쿠우우우우.
커진 것은 육체뿐이 아니었다.
내려다보는 시선과 함께 수십 배로 늘어난 그의 기운이 대지를 찍어 누르고 있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선인 놈. 선을 넘은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
그의 심어가 밖으로 표출되어 포궁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지만, 진무는 그저 시큰둥하게 바라보며 귀를 후볐다.
“새끼가, 작게 말해도 될 걸 시끄럽게 웅웅거리기는.”
거신의 형상은 아마도 다른 마왕들처럼 봉신을 해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강해졌다.
하지만 그가 분명히 말하지 않았던가? ‘귀모를 제외한’이라고…….
즉, 이미 귀모나 옥황과 동급이라 자신하는 진무에게는 조금도 해당 사항이 없다는 말이다.
진무에게 있어 그는 그저 찾아온 객에게 버릇없이 짖어 대는 개새끼와 다를 바가 없었다.
“순조.”
“…….”
“올려다보기 목 아프다. 네 본신은 볼 만큼 봤으니까 원래대로 돌아오지 그러냐?”
「미친놈.」
심드렁한 감상을 뱉어 내는 순간, 순조의 거대한 손이 진무를 압살하려는 것처럼 지상을 향해 세차게 떨어져 내렸다.
콰콰콰콰!
대기를 찢어발기는 소음이 사방으로 퍼졌다.
체구가 그처럼 거대해졌음에도 둔해지기는커녕 눈으로 좇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진무는 피할 생각 따위는 없는지 그저 그를 올려다보며 나지막이 투덜거렸다.
“손에 구멍이라도 나야 말을 처들으려나…….”
짜증이 물씬 느껴지는 목소리와 함께 진무가 신목의 가지를 들어 올리는 순간.
화르륵!
거대한 불길이 화끈함을 동반하며 날아들었다.
“……?!”
콰아아앙!
진무의 앞을 가로막고 순조의 손을 쳐 낸 것은 다름 아닌 북리도천이었다.
“도천?”
“제기랄, 아주 욱신욱신하는구만.”
“……?”
북리도천이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며 순조를 노려봤다.
「우융! 이놈! 이게 무슨 짓이냐!」
진무가 채 입을 떼기도 전에 순조의 고함이 벼락같이 터져 나왔다.
「네놈이 지금 나를 방해할 참이냐!」
“방해? 누가 그래?”
「뭐라?」
“상대를 해 주는 것도 급이 맞아야 하는 법이다.”
「뭐?」
“지금 네놈이 진무의 상대가 될 성싶으냐? 어림도 없지. 너 정도는 내가 딱 적당하다.”
「마왕이라는 놈이 감히! 귀모님을 배신할 참이더냐?」
“배신? 충성한 적도 없는데 무슨 배신이냐?”
「뭣이 어째?」
“나는 네놈들처럼 충성을 바친 것이 아니라, 권능을 받은 대가로 도와준 것뿐이다. 귀모는 언젠가 쓰러뜨리고 싶은 상대였을 뿐이야.”
「닥쳐라!」
“닥치긴 뭘 닥쳐? 잡소리 말고 덤벼. 네놈과도 꼭 한번 싸워 보고 싶었으니까.”
「……!」
순조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죽일 듯 노려보는데도, 북리도천은 조금도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아직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북리도천은 아직 제 힘을 완전히 깨닫지 못한 상태가 아니던가?
“도천.”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주인을 만나려는 놈이 개새끼와 싸워서야 쓰겠느냐? 이곳은 내게 맡기고 넌 귀모에게나 가라.”
“도천! 놈은 강하다.”
“흥! 모르고 나섰을까.”
“…….”
“강하지만, 놈은 그저 네놈에게 닿기 전에 지나갈 통과점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은 내 힘이 부족하지만, 언제든 네놈은 반드시 내가 쓰러뜨릴 것이다. 그전엔 절대로 다른 놈에게 맡기지 않는다.”
돌아보지조차 않는 북리도천의 결연한 말에 진무가 말려 보려 뻗었던 손을 내렸다.
어찌 막을까? 등짝에서도 그 결의가 선명한데.
그래, 북리도천은 산을 오르려는 자다. 그리고 산은 그런 이런 이의 발목을 걸지 않는다.
그 걸음을 막는 것들은 돌부리이며, 외부로 돌출된 나무뿌리와 무성한 수풀일 뿐이다.
걸려 넘어지고, 헤치고 나아가지 못한 자는 늘 산 아래에 머물러 있기 마련인 법이다.
오르고자 하면 반드시 넘어야 한다.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산의 정상에 서게 된다. 또한 그것이 북리도천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방법인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진무는 뒤로 한 발 물러났다.
더 막는 것은 목숨보다 귀중한 그의 자존심을 무시하는 처사였다.
“믿겠다.”
“뒈지면 그게 내 운명이겠지.”
“…….”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채였지만, 분명 웃고 있을 테다.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기에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여의! 금혼!”
“……?”
“길을 열어라! 귀모에게로 간다.”
진무의 일갈에 담긴 단호함이 금혼과 여의를 즉시 움직이게 했다.
-크허엉!
-크아아아!
동시에 토해진 울음과 함께 여의와 금혼이 마귀들의 장벽으로 쏘아져 나가고, 이어 진무가 북리도천을 스쳐 천천히 걸어 나갔다.
「이런 개 같은 놈들이! 내가 두고 볼 것 같으냐!」
순조가 주먹을 휘둘러 막으려 했지만, 진무는 어떤 반응도 하지 않고 묵묵히 걸었다.
콰아아앙!
「크아악!」
그 주먹을 북리도천이 막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놈! 내가 그리 우스워 보이더냐! 나는! 북리도천이다!”
「이런 빌어먹을!」
쾅! 콰쾅!
걸어가는 진무의 뒷덜미에 거친 소음과 충격파가 연신 닿는다.
돌아보지 않았다.
다만 천천히 걸을 것이다.
북리도천이 수호령 순조를 넘어, 자신의 뒤를 따라오기 충분하도록.
아직은 순조에 비해 약하지만, 믿고 있기에.
남의 말에 복종해 맹목적으로 따르는 자와 스스로 나아가는 자는 의지부터가 다른 법이니…… 그는 이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