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68
68화
제갈선은 몰라도 등여평은 들은 모양이었다.
촤촤촤촤.
미약하지만 분명 숲을 헤치며 달리는 발소리.
거칠다.
무인임은 확실한데, 매우 불규칙했다.
“청상! 청우!”
“……?”
진무의 외침에 절벽을 헥헥거리며 오르던 청상과 청우가 고개를 돌렸다.
“위! 떨어진다!”
진무의 말에 둘은 급히 고개를 쳐들었고.
파학!
백의를 입은 지친 표정의 사내가 달리던 걸음 그대로 절벽으로 뛰어들었다.
그러곤 진무 일행을 발견하고 품에 안았던 무언가를 던졌다.
“아악!”
뾰족하게 터져 나오는 어린 소녀의 목소리.
사내가 던진 것은 여덟에서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작은 소녀였다.
“청우! 받쳐!”
발목에 달린 돌을 떼 버린 청상의 외침에 청우가 급히 공력을 운용해 절벽에 발을 쑤셔 박으며 손을 내밀었다.
파앙!
청우의 손을 밟고 허공을 날아오른 청상이 소녀를 향해 날아갔다.
받았다.
무당의 제운종.
허공을 구름인 듯 가볍게 밟은 청상의 신형이 떨어지는 소녀를 안고 재빨리 회전했다.
그리고.
피잉!
어디선가 날아온 수십 개의 암기가 소녀를 던진 백의 사내의 등을 꿰뚫는다.
“크윽!”
암기를 다발로 맞은 백의인이 그대로 추락해 물속으로 떨어졌다.
풍덩!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파파파팍!
소녀가 떨어진 절벽 위쪽에서 복면을 쓴 수십 명의 인물이 숲을 헤치고 나타났다.
흠, 대낮에 복면?
진무 일행이 절벽 인근에서 쉬고 있는데 나타난 것이 매우 공교로웠으나 무림에서는 자주, 종종, 왕왕 있어 온 일들이다.
이런 경우 대부분 복면인들은 인신매매범이거나 어떤 가문을 박살 낸 흉적이었다.
일이 벌어진 와중에 백의 사내가 어린 소녀를 안고 도망치고, 흉적들이 그 뒤를 쫓아온 것이 틀림없다.
아무리 그래도 애를 괴롭히다니 무인으로서 자존심도 없는 놈들.
진무는 비열한 사파인으로 살면서도 단 한 가지만큼은 지켜 왔다.
무림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절대로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것.
특히, 힘없는 민가의 여자와 애를 건드린 수하들은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인신매매가 그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통제했던 것이다.
지금 청상이 안고 있는 소녀 또한 채 열 살도 되지 않아 보였다.
나쁜 놈의 새끼들. 분란이 있으면 어른들만 죽이면 되지 애를 괴롭혀?
사패천도 하지 않는 짓을.
‘쯧!’
하지만 관계없는 일이다.
딱히 소녀와 아는 사이도 아니고 도와줄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진무와 달리 제갈선과 등여평은 달랐다.
물론 소녀를 안고 강물에서 빠져나오는 청상과 절벽에서 튀어나온 청우의 생각도 달랐다.
마치 죽은 백의 사내가 원래 알던 사람인 양, 혹은 소녀와 친인척이라도 되는 것처럼 흉흉한 눈빛으로 복면인들을 경계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무가 나설 필요는 없었다.
그에게는 그저 남의 일에 불과했지만 이쪽에는 정무맹 최고수중 하나로 불리는 등여평이 있으니.
“웬 놈들이냐!”
진무의 생각대로 정의감 넘치는 등여평이 우렁찬 고함을 내질렀다.
도망친 것은 어린 소녀요, 쫓은 자는 대낮에 복면이다.
당연히 그놈들을 나쁜 놈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복장을 보니 제갈세가인가?”
말을 건네 온 자.
그를 축으로 절벽을 내려온 복면인들이 좌우에 위치한 걸 보면 필시 그들의 수장일 것이다.
등여평의 얼굴은 알아보지 못한 듯했으나 제갈선 등의 복장을 알아보았다.
하긴, 등여평이 아무리 대단한 무인이라고 해도 무림을 살아가는 자가 몇 명인데 딱 보고 알아본단 말인가?
더욱이 은거한 뒤로 유랑 중이라 행색이 민가의 촌로나 다름없다.
알아보는 것은 저 눈치 빠른 제갈선이나 몇 번이나 얼굴을 맞대 본 진무나 가능한 일이다.
물론 왕년의 사패천주 혁련무강이라면 누구라도 알아봤겠지만.
역시 자신과 등여평은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질적으로.
“네놈들은 누구냐?”
등여평의 물음에 사내가 차갑게 대답했다.
“제갈세가에서 끼어들 일이 아니다.”
“닥쳐라! 백주(白晝)에 힘없는 어린 소녀를 추격한 놈들이.”
“흠, 제갈세가의 어른쯤 되는 모양이지? 허나 다시 말하지만, 그대들이 끼어들 일이 아니다.”
그들은 등여평을 그저 제갈세가의 노고수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큰코다칠 텐데.
“아이를 놓고 물러나라. 그럼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다.”
“닥치지 못할까!”
등여평이 매서운 기세를 뿜어내자 복면인들이 은근히 진무 등을 포위하듯 감싸기 시작했다.
“쯧, 아직은 딱히 중원 무림과 척을 질 때가 아니거늘. 허나 그 아이는 반드시 필요하니 안타깝게 되었군.”
“뭐라?”
등여평이 한쪽 눈을 찡그리는데.
“어르신, 아이에게 어떤 비밀이 있는 듯합니다. 또한, 저들의 기세 또한 간악한 사파의 인신매매범과는 다르니 일단은 지켜야겠습니다.”
어이, 간악한 사파라니?
사패천 예하에 인신매매를 금하게 한 게 언젠데!
재들은 그냥 조무래기야.
사파도 뭐도 아니라고!
진무가 흘겨보았으나 제갈선의 판단이 내려지자.
차아앙!
율평과 사령이라는 자들이 검을 뽑아 들고 청상의 주위를 둘러쌌다. 등여평 역시 마찬가지였고, 청우 역시 주먹을 움켜쥐고 빈자리를 채웠다. 지키려는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진무뿐이었다.
그저 팔짱을 끼고 지켜본다.
등여평이면 충분하다. 굳이 자신까지 힘을 뺄 필요가 없었다.
그 사이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 오던 복면인들이 진형을 갖춤과 동시에.
“죽여라!”
수장의 외침과 함께 복면인들이 일제히 검을 날려 왔다.
깡! 까강!
순식간에 전투가 시작되었다.
복면인들의 검격이 매섭고 날카롭게 번득였으나 율평과 사령들의 실력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하긴 제갈본가에서 후계자를 호위하는 무인을 허접한 놈으로 붙일 리는 없었다.
또한 아이를 제갈선에게 맡긴 청상이야 당연했고, 청우의 권격에서 발출되는 발경 또한 대단했다.
펑! 퍼펑!
“크악!”
그 와중에 등여평의 무위는 그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았다.
순식간에 두 명의 복면인들을 제압하는 모습.
‘쯧, 봐주는군. 적이라 판단하는 순간 대가리를 쪼개 버렸어야지.’
전투를 지켜보던 진무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정파인들.
뛰어난 무위를 가지고 있으나 그들의 행동은 언제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의로워야 한다 생각하는 그들의 마음가짐은 늘 원래의 실력을 모두 끌어내지 못했다. 예를 들어 눈앞에 적을 맞이했음에도 살수를 펼치지 않고 제압하려 드는 지금처럼.
멍청한 것들, 꼭 위기에 처해야 제 실력을 보이지.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는 것은 자신의 가르침에 초반부터 살수를 펼치는 청상과 청우뿐이었다.
“크윽!”
하지만 역시 쪽수에 장사 없다.
사령 중 하나가 가슴께에 칼을 맞고 물러나자 팽팽하던 진형이 깨져 버렸다.
“이령!”
제갈선의 외침.
이름하고는…… 좀 잘 지어 주지 않고. 사령 중 두 번째라니.
어쨌든 진형이 깨어지는 순간 칼끝이 그 중심의 제갈선을 향해 파고든다.
까라랑!
어느새 제갈선의 손에 들린 검이 허공을 수놓아 날아오는 공격을 쳐 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누군가를 지키며 싸운다는 것은 대개 제 실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
또한, 그가 공격을 받자 자리를 지켜야 할 율평과 사령들의 맡은 자리가 더욱 빠르게 무너졌다.
그 틈을 노린 복면인들의 검이 제갈선을 위협했다.
“쯧!”
땅! 따다다당!
단 한 번의 손길이 펼쳐지자 모든 공격이 무위로 돌아간다.
진무의 손에서 펼쳐진 태청산수가 사방을 휘저으며 제갈선을 감쌌고, 그녀는 순식간에 위기를 벗어났다.
그러나 그뿐이다. 진무의 움직임은 딱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고맙소.”
위기를 넘긴 제갈선이 감사의 눈빛으로 진무를 쳐다보았지만.
“흥!”
누가 너 같은 걸 도운 줄 알아?
진무가 보호한 것은 제갈선이 아니라 어린 소녀였다.
무공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혹여 다칠까 봐서 움직인 것이다. 아이를 안고 있는 제갈선은 덤일 뿐이었다.
땅! 따다다당!
수십 개의 잔영을 만들어 낸 진무의 손이 제갈선을 중심으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내었다.
“아!”
진무의 활약으로 더 이상 검을 휘두를 필요가 없어진 제갈선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의 개입만으로도 율평과 사령, 청우와 청상이 제힘을 발휘했고, 진형이 제자리를 잡아 갔다.
“대단하시오. 진무 도장.”
걸걸한 목소리의 감탄.
여러 가지로 성가시게 하네. 칭찬할 시간에 검이나 더 열심히 휘두를 것이지.
진무가 짜증스럽게 살짝 내려다보니.
어? 언제 이렇게 가까이…….
제갈선이 위험을 피해 진무의 가슴 근처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로서는 좀 더 안전한 위치를 점한 것일 터다.
하지만.
머리 하나 정도의 차이로 인해 내려 볼 수밖에 없었고, 시야에 진무를 올려 보느라 치켜뜬 제갈선의 눈동자가 들어왔다.
‘크윽! 또! 이런 요망한 년!’
또 예의 그 사슴 같은 눈망울에 어린 감탄이 진무의 시선을 관통했다.
‘예쁘…… 이, 이런! 내가 또 무슨 생각을!’
육십 년 차이다.
다 늙어서 이 무슨 주책이란 말이냐.
더구나 아직 본 얼굴도 못 봤다.
눈빛을 제외한 외양은 영락없는 사내의 모습인데.
머리로는 다 알지만, 이 몹쓸 젊은 몸뚱이가 도무지 말을 안 듣는다. 심장이 통제를 잃고 날뛰기 시작했다.
나대지 마라. 이 미친 심장아. 나는 여자를 좋아한단 말이다! 이런 목소리 걸걸한 남장여자 말고!
진무는 마구잡이로 치미는 짜증을 떨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손을 움직였다.
휘오오오!
그 때문인지 진무의 태청산수에 의해 주변에 회오리바람마저 일어날 정도였다.
그리고 제갈선은 그런 상황을 놓치지 않았다.
“율평! 좌변, 하위!”
진무로 인해 여유가 생긴 제갈선이 주변을 냉철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복면인들이 만들어 낸 진형.
그는 빠르게 공격 방향을 찾아내었고,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깡!
진형에 작은 균열이 만들어지고.
피윳!
순식간에 복면인 하나가 상처를 입었다.
“일령! 중심, 상로!”
“삼령! 후위, 중위변!”
진무가 공격을 막아 주는 사이에 제갈선의 명령이 연이어 내려진다.
제법이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상황을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더욱이 단번에 적의 진형을 파악하고 시기적절한 결정을 내리기는 더욱 어렵다.
그런데 제갈선은 그 모두를 해내고 있었다.
단번에 적의 진형을 꿰뚫고 균열을 만들었다.
수적으로 열세임이 분명한데 그의 판단이 순식간에 그 간극을 메운다.
“흥! 제법 뛰어난 책사 놈이 있었군! 중심을 집중적으로 공격해라!”
적의 수장도 제법 보는 눈이 있었다. 흘러가는 상황을 재빨리 판단하고 곧바로 진형을 변화시켰다.
“이런!”
공격이 갑자기 후방으로 집중되자 등여평이 몸을 빼려 했다.
하지만 다섯이나 되는 복면인이 짜임새 있는 연계기를 펼치며 그를 막아서자 쉽지 않은 듯 몇 걸음 떼지 못했다.
“이놈의 자식들이!”
우웅!
제 의사대로 되지 않은 등여평이 갑자기 기운을 폭발시켰다.
단전에서 솟구친 기운이 폭발적으로 뿜어 나오며 그의 주먹에 푸른 강기가 어렸다.
쿠아앙!
휘두른 주먹에 복면인 하나가 피를 뿜으며 날아갔다.
“제길, 강기의 고수였나?”
적의 수장이 등여평의 무위를 확인하고 얼굴을 찡그렸다.
“놈은 내가 맡겠다! 나머지는 아이를 확보하는 데 집중하라!”
파앙!
그의 명령에 복면인들이 곧장 몸을 빼 제갈선을 향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