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69
69화
율평과 사령, 청우와 청상이 사력을 다하고 진무가 그 중심에 버티고 있으니 복면인들은 좀처럼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약 스무 명.
날파리 떼였다.
귀찮기는 하지만 아이를 안고 있는 제갈선만큼은 무조건 보호한다.
진무의 태청산수가 화려하게 허공을 수놓았고.
“청상 도장 좌변, 청우 도장 횡격세, 율평…….”
너무도 안전하게 보호받는 제갈선은 전방위를 살피며 명령을 내렸다.
적의 공격 따위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진무가 물 샐 틈조차 없이 막아 주고 있으니까.
퍼엉! 콰쾅!
진무 등이 복면인의 공격에 갇혀(?) 있는 사이 등여평과 적 수장의 싸움이 점차 치열해지고 있었다.
권강이 사방으로 난무하고 복면인이 그 틈새를 유령처럼 피해 다녔다.
‘어찌 이런 무공이?’
내보이는 실력으로만 봤을 때는 등여평의 무공이 월등히 앞선다.
그런데 적의 무공이 심상치 않았다.
강한 것은 아니지만 한 박자 빠른 공격.
강기를 가득 머금은 권격을 피하는 순간 어느새 접근해 허를 찔러 온다.
쩡!
자신이 방비하기도 전에 찔러 오는 일장. 더구나 마땅히 있어야 할 준비 동작이 없다. 하여 어느 곳에서 공격이 시작될 것인지 예측을 할 수가 없었다.
변화 없이 간결하고, 허초가 모두 실초와 같은 움직임.
물론 그렇다고 해도 등여평이 수세에 몰린 것은 아니다. 느껴지는 상대의 경지는 대충 의기. 등여평과는 천양지차였다.
하지만 좀처럼 무력화시킬 수가 없었다.
강한 힘을 뿜어내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도망쳤다가 재빨리 파고들어 준비 동작 없는 공격을 해 오니 좀처럼 몸을 뺄 수가 없었다.
그사이.
제갈선의 뛰어난 판단으로 여유가 생긴 그들의 일행이 복면인들을 압도하며 밀어 내고 있었다.
진무가 허공을 채웠던 태청산수의 잔영도 점차 그 수가 줄어들었다.
여유가 생긴 진무가 여전히 싸우고 있는 등여평 쪽을 바라보았다.
‘쯧, 정무칠성에 버금간다더니 거짓말이군. 고작 저런 놈한테 휘둘…… 어?’
진무가 등여평을 향해 비소(誹笑)를 머금었다가 살짝 눈을 찡그렸다.
등여평과 싸우고 있는 적 수장의 무공.
무위의 격차를 메울 정도로 뛰어난 한 박자 빠른 움직임.
‘무촌경?’
양소방이 말했던 ‘그들’의 무공이었다.
순간 무월루에서 자신에게 상처를 입혔던 노인이 떠올랐다.
“하, 그 새끼와 한패라 이거지?”
진무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떠올랐다.
“청상! 청우!”
“예! 사숙!”
복면인들을 몰아붙이던 청상과 청우가 재빨리 몸을 물리며 대답했다.
“중심을 지켜라!”
“……!”
파앙!
언제나 그렇듯 진무는 생각이 든 순간 움직인다.
청상과 청우가 따라 주든 말든 돌아보지 않는다.
진무가 빠져나가자 제갈선의 통제에 급격한 제동이 걸렸다.
비어 버린 방어막 안으로 복면인들의 검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제길!”
이미 몇 번 경험이 있었던 청상이 눈치 빠르게 몸을 날려 제갈선의 옆으로 다가와 검격을 쳐 냈다.
“청우! 아이를 지켜!”
“예, 사형!”
“제갈 소저, 좌측을 부탁합니다.”
“예!”
청상은 제갈선의 무공이 청우보다 한참 윗줄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청우를 중심에 넣고 제갈선과 그 주변을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
지킨다는 건 그냥 싸울 때보다 두 배 이상은 힘든 일이니까.
땅! 따당!
진무가 빠져나가자 제갈선과 청상이 시퍼런 검기를 뽑아 휘두르고 있음에도 순식간에 진형이 흐트러졌다.
진무라는 거대한 전력이 사라진 것뿐 아니라 진형을 통제하고 있는 제갈선의 명령까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촤락! 퍼퍼펑!
중심을 벗어난 진무는 복면인들이 앞을 가로막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독수리의 발톱처럼 구부린 손가락이 좌우로 휘저어져 복면인들의 의복을 찢고 뼈마디를 비틀며 살점을 뜯어 버렸다.
사방에 피가 튀고 육편이 흩날렸다.
그럼에도 그는 등여평과 싸우고 있는 적의 수장을 향해 일직선으로 몸을 날리며 전장을 관통했다.
그리고.
쿵!
강가의 모래를 사방으로 비산시킨 일보가 깊은 족적을 만들고.
진무의 신형이 등여평에게서 버들가지처럼 휘어져 복면인의 수장을 덮쳐 갔다.
“요 새끼!”
“……!”
등여평과의 싸움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적 수장이 질겁을 하며 손을 뻗었다.
역시나 준비 동작을 생략한 무촌경.
곧바로 기운이 뿜어졌으니 달려온 걸음으로는 막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진무의 뻗어져 있던 손바닥이 복면인의 그것과 맞닿았다.
“……!”
그 순간 거칠게 압도해 오는 강대한 힘.
쩌어엉!
둔탁한 충격.
기혈을 온통 뒤집어 놓는 반탄력과 함께 복면인의 수장이 튕기듯이 밀려나 모래 바닥에 처박혔다.
“우웩!”
길게 밀려난 흔적을 남기며 엎드린 복면인이 울혈을 토했다.
복면이 입을 가리고 있어 바닥으로 쏟아지지는 않았으나 흘러내린 피가 그의 앞섶을 검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자네?”
갑자기 끼어든 진무를 등여평이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분명 복면인과 같은 무공이었다.
어떻게?
“처음부터 살수를 쓰셨어야지. 제압하려 하니 휘둘리실 수밖에. 어쨌든 뒤나 도우시죠. 쪽수도 딸리는데.”
“…….”
진무의 시선은 복면인에게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아, 알겠네.”
궁금증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으나 일단은 그들을 제압하고 볼 일이었다.
진무의 말에 등여평이 제갈선 등을 돕기 위해 급히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야, 엄살 그만 피우고 일어나.”
“…….”
“내가 너한테 궁금한 게 많거든.”
“네놈이 어찌 무촌경을?”
“무촌경이고 나발이고, 무월루의 그 노인 누구야?”
“무월?”
눈을 찡그린 복면인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딱 봐도 너보다 고수였어. 말해. 그럼 덜 팬다.”
“…….”
진무가 주먹 아래 손목에서 우두둑 소리가 나도록 위협하며 복면인을 향해 걸음을 떼었다.
“네놈, 우리를 아는군?”
“내가? 몰라.”
“뭐?”
“하지만 지금부터 좀 알아볼까 하고.”
“…….”
“내가 그 노인네한테 신세를 진 게 있어서 말이야. 꼭 한번 봐야 하거든.”
진무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복면인의 눈빛은 점점 더 매서워졌다.
이미 조금 전 싸우던 노인과 거의 동급의 힘을 가졌다는 사실은 깨닫고도 남았다.
문제는 그가 무촌경을 안다는 사실이었다.
‘무촌경을 어찌 알지? 설마 대랑(大狼)께서? 아니다. 본궁의 주축 중 한 분께서 이것을 전수했을 리가 없다.’
그는 무월루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도 자신처럼 반드시 확보해야 할 사람이 있었고, 그 임무를 맡은 것이 진무가 노인이라 부르는 대랑이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제길, 제갈세가에 이 같은 자가 있을 줄이야? 어쩐지 수하들이 목표를 확보하는 데 너무 오래 걸린다 생각했더니.’
그로서도 등여평과 같은 강기의 고수를 만난 것은 꽤 의외였다.
하지만 자신이 있었다.
한 박자 빠른 움직임의 무공.
그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무척이나 컸다.
그는 등여평이 몸을 빼지 못할 정도로만 잡고 수하들이 목표를 확보하면 곧장 도망칠 계획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무공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들의 품에 감춘 독과 암기라면 도주로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도망가야 하나?
수하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문제는 진무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세였다.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당장은 몸을 뺄 수 있을지 몰라도 좀 전의 한 방으로 입은 내상으로 인해 얼마 가지 못해 잡힐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놈, 아무리 안다 해도 쉽진 않을 것이다.”
스르릉.
복면인이 허리춤에서 휘어진 단도를 뽑아 양손에 각기 나누어 쥐었다.
“어쭈? 무기가 있었네?”
희한하게 생긴 무기다.
이제 와 그런 것을 꺼냈다는 것은.
“이 새끼 사람 보는 눈은 있네. 하긴, 등여평보다 내가 좀 윗줄이긴 하지. 아주 다리가 덜덜 후달릴 거야. 안 그래?”
뭐지? 저 만족해하는 표정은?
복면인의 수장은 도무지 눈앞의 사내를 예측할 수가 없었다.
이런 위기 상황에 저리 여유롭다니.
더욱이 정파인답지 않은 저 야비한 눈빛과 표정, 심지어 어딜 봐도 사파인 같은 말투는 또 뭐란 말인가?
하지만.
무촌경을 안다고 해도 자신들처럼 모든 무공에 대입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그들이 오랫동안 익혀 온 무공이었다. 응용력의 차이가 확연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진무는 장차 그들의 세력에 방해가 될 것이 분명했다. 설사 자신이 죽더라도 놈을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무공이 안 된다면 독이며 암기로 놈을 공격하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어쨌든 검을 뽑았는데 그냥 둘 수는 없지.”
스르릉.
진무의 손에 백색의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친히 상대해 주마.”
파앙!
일 보.
성난 호랑이를 쫓을 정도로 급변한다는 무당 호종보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왔다.
“헛!”
복면인은 지면을 낮게 쓸며 자신의 다리를 노려 오는 검격에 몸을 띄운 채 단도를 교차했다.
까앙!
불꽃이 튐과 동시에 튕겨지지 않고 곧장 솟구치는 검극이 허공에 뜬 복면인을 노렸다.
‘이, 이런!’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촌경이다.
진무의 검에는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기수식이 없었다. 정해진 검로도 없었고 변화도 없었다.
그저 무자비한 휘두름이요, 시기적절하게 허점을 노리는 실전검이었다.
‘맙소사! 어떻게 이럴 수가!’
한 가닥 자신에 차 있던 복면인은 진무의 검격에 충격을 받아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깡! 까가가강!
사력을 다해 막고 있었지만, 검격이 그의 몸을 스칠 때마다 쓰라린 상처가 생겨났다.
응당 있어야 할 초식의 강맹함이 아니라 딱 필요한 만큼의 기운을 머금은 검격이었다.
그리고 폭풍처럼 몰아친다.
예측할 수 없는 검격의 움직임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그가 움직이는 모든 방향을 차단하고 있었다.
“왜? 놀랐어? 이게 쓰임새가 제법 다양하더라고. 덕분에 연습 좀 했어.”
“…….”
그게 연습으로 될 일이냐!
복면인은 그 하나를 위해 십수 년을 수련해 왔다.
뼈를 깎는 수련을 거듭하고서야 간신히 어느 정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약관에 이른 저 애송이는 그 무촌경을 너무나도 대수롭지 않게 펼치고 있었다.
“자, 그럼 대충 눈 호강은 시켜 줬으니까. 죽지 않을 정도로!”
마치 자신을 가지고 놀듯 검을 휘두르는 진무의 입가에는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파앙!
움직임이 달라졌다.
찰나의 순간 진무의 움직임을 놓쳤고.
푸욱!
“크윽!”
가슴께를 향했던 검격이 교묘하게 심장 아래를 관통하더니, 번개같이 뽑혔다.
그런데.
“흡!”
복면인이 급히 손으로 코를 막으며 훌쩍 물러났다.
“어쭈, 이 새끼 보게.”
“…….”
그가 물러나기 전의 자리에 피와 함께 뿜어져 나온 녹빛 가루.
“독도 쓰냐?”
하필이면 진무의 검격이 그의 품속에 있었던 독주머니를 관통했다.
그 바람에 터져 버린 독분이 꿰뚫린 그의 상처를 파고들었다.
“제법 비열한 수법도 있다 이거지?”
적이 독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진무는 더욱 거침없이 사악해졌다.
독분 가진 놈이 암기가 없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파핫!
지면을 차고 독분이 스며 나온 곳을 우회하며 다가온 진무의 검이 이전과 달리 화려한 변화를 만들었다.
촤자자작!
복면인이 황급히 막았지만, 검이 노리는 것은 그의 몸이 아니었다.
진무의 공격에 그가 입고 있던 의복이 갈가리 찢겼다.
후두둑.
완전히 드러난 상체. 그리고 조각난 의복과 함께 바닥에 떨어진 암기 다발.
복면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최후의 수단마저 사라진 것이다.
심지어 상처 안으로 파고든 독분에 중독까지 되고 말았다. 그것이 우연이든 아니든 자신에게는 더 이상 어떤 가망도 없었다.
결국.
“하압!”
복면인의 눈동자에 핏발이 돋아 오르고, 무지막지한 핏빛 기운이 솟구쳤다.
파아앙!
허공이 터져 나가며 일직선으로 쏘아진 복면인의 신형이 진무를 향해 달려들었다.
곧게 펴진 팔을 따라 뻗어진 단도.
그리고 그 안에 응축된 막대한 양의 기운.
“…….”
진무의 눈이 가늘게 뜨이고,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방어를 무시한 공격.
단 일초.
동귀어진(同歸於盡).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필사(必死)의 공격법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진무였다.
“내가!”
복면인이 동귀어진의 수법을 쓴다는 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진무가 양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잡고 늘어뜨렸다.
우우웅!
지면을 향한 검날이 거칠게 떨리며 시퍼런 선기가 올올이 뭉쳐 하나의 기운으로 뻗어 나갔다.
“같이 죽어 줄 것 같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