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71
71화
들개 떼처럼 몰려온 개방도들이 절벽 밑의 강가를 가득 채웠다.
그들은 도착과 동시에 일사불란하게 시신을 수습하고 포로들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그들을 이끈 형주 개방 분타주 옥동개(玉童丐)가 오결의 개방도답게 제갈선과 등여평을 단번에 알아보고 다가왔다.
“형주분타주 옥동개가 백로 어른과 제갈가의 대공자를 뵙습니다. 혹 본방의 어르신께 협전을 받은 분이?”
옥동개는 당연히 백로가 아닐까 생각하며 물었다.
그들이 형주분타에 들고 온 협전은 무풍개 양소방의 것이 확실했다.
양소방의 행적은 개방도들조차 정확히 알지 못할 정도로 신묘했고, 아직 양소방이 협전을 누군가에게 전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기에 의아할 따름이었다.
“내가 아닐세.”
“예?”
“저기.”
등여평이 미소 띤 얼굴로 청상과 청우를 개 잡듯이(?) 수련시키고 있는 진무를 가리켰다.
“저분은?”
“무당지검이라네.”
“헛! 무당지검!”
소문으로 들은 바는 있었다.
현 호북성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는 정보 중의 하나였다.
무당지검의 칭호를 받은 약관의 무인.
몇 가지 사건들은 있었으나 그 외에는 산문에 틀어박혀 행적이 불분명했기에 그에 대한 정보는 최고 등급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개방도들이 시신을 수습하고 사건을 조사하는 사이 옥동개는 서둘러 진무를 향해 다가갔다.
“개방의 옥동개가 협전의 주인인 무당지검 진무 도장을 뵙습니다.”
“…….”
감격해 마지않는 표정.
이름 그대로 옥동자처럼 작은데 신기하리만큼 못생긴 얼굴이었다.
도대체 왜 이름에 옥동이 들어가지?
“여기 협전입니다.”
옥동개가 양손에 협전을 받쳐 공손히 내밀자 진무가 매우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받아 챙겼다.
영영 안 돌아오는 줄 알았다.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과연 대단하십니다. 협전의 주인께서 그 이름에 걸맞게 사용해 주시니 이 모두가 무림의 홍복입니다.”
옥동개는 궁금했다.
무풍개로부터 협전을 받은 인물.
이는 곧 그 대단한 사람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더욱이 무당지검이니 연을 맺어 두면 더없이 좋으리라.
그렇기에 최대한의 친근함을 보였으나 진무는 귀찮기만 한 표정이었다.
“얼마나 더 쓸 수 있소?”
“예?”
“이거.”
“아! 협전은 본방의 신물 중 하나입니다. 아시다시피…….”
“얼마나 더 쓸 수 있는지만 말하시오.”
“그, 무풍개 어른의 권한상 두…… 번…….”
“크윽!”
갑자기 진무가 제 심장을 부여잡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아, 아니오. 신경 쓰지 마시오.”
두 번이란다.
그 귀중한 기회 중 한 번을…….
“청우! 누가 쉬랬어! 뛰어!”
매섭게 고개를 돌린 진무가 잠시나마 물결에 둥실둥실 몸을 맡기고 쉬던 청우를 향해 소리를 뻑 지르자 물속에 있던 청우가 재빨리 튀어 올라 절벽에 매달렸다.
망할 놈이.
두 번밖에 쓸 수 없는 이 귀한 협전을 쓸데없는 일로 한 번이나 써 버렸다.
용서치 않으리라.
진무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청우을 노려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저, 진무 도장?”
“뭐요!”
“예?”
“볼일이 남았소?”
“아니, 그게 아니라. 대화를 좀.”
“됐소! 나눌 이야기 없소!”
“…….”
“청우! 똑바로 안 해?”
진무가 다짜고짜 강물을 밟고 달리며 막 절벽에서 미끄러진 청우의 뒷덜미를 잡고 절벽에 패대기치듯 던졌다.
“빨리 안 기어 올라가?”
“…….”
진무의 행동에 당황한 옥동개가 멍한 표정을 짓는 사이 제갈선이 웃으며 다가왔다.
“좀 특이하지요?”
“예?”
“진무 도장의 성격 말입니다.”
“뭐, 예.”
“그래도 대단한 무인입니다. 저희도 이번에 저분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제갈선이 자신을 무난하게 지키고 적의 수장까지 처리한 진무를 떠올렸다.
“맞네. 성격이 좀…… 거칠기는 하지만 무당지검의 칭호가 잘 어울리는 사내라네.”
등여평이 옆에 다가와 거들었다.
“그, 그런가요?”
그러기에는 동문의 제자를 너무.
“수련법이 특이하더군요.”
제갈선이 그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대단한 수련법인 듯합니다. 벌써 청상 도장의 무위가 현기에 이르렀다 하니.”
“헛! 현기란 말입니까? 청자 배라면 이대제자인데?”
옥동개의 놀람에 제갈선이 살포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대단하지요?”
“대단하지?”
“…….”
진무를 바라보는 이 둘의 눈빛은 또 뭐란 말인가?
무한한 신뢰가 담긴 흠모의 눈빛?
아니, 그러기에는 좀…… 싸가지가 없어 보였는데.
“어쨌든 진무 도장의 말씀으로는 습격한 자들이 무풍개 어른이 뒤쫓는 자들과 관계가 있을 거라 하셨습니다.”
“예? 어르신이 뒤쫓는?”
옥동개는 진무에게 향해 있던 의아한 시선을 지우고 표정을 굳혔다.
무풍개가 누군가를 쫓고 있다는 사실을 들은 바가 없었다.
즉, 비사 중의 비사란 뜻이다. 절대로 발설되어서는 안 되는.
“하면 두 분께선.”
“비밀로 하겠습니다.”
“아? 예.”
눈치 빠른 제갈선이 싱긋 웃었다.
“일단 무풍개 어른께서 쫓고 계시는 일이니 본가에도 고하지 않겠습니다.”
“마찬가질세.”
제갈선과 등여평의 말에 옥동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 아이. 습격자들에 의해 가족이 몰살을 당한 것인지, 아니면 달리 무슨 일을 당한 것인지 실어증에 걸려 있습니다. 심신 상태도 불안정하고요.”
“그래 보이는군요. 무리하게 조사하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면 뒷일은 개방에서 수습하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예.”
옥동개가 제갈선과 등여평에게 인사를 나누고 조사를 위해 물러났다.
그사이 율평과 사령은 출발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근데, 오늘은 좀 더…… 뭐랄까?”
“빡세구만.”
* * *
정무맹이 위치한 무한.
용봉회로 인해 각지의 내로라하는 무인들이 몰려든 탓에 인산인해가 따로 없었다.
아직 용봉회가 시작되려면 닷새라는 시간이 남았기에 정무맹의 문은 열리지 않고 있었다.
늦게 도착한 자들은 객점을 구하지 못해 인근 마을 사람들에게 돈을 주고 헛간을 빌려서라도 자리를 잡았고, 그마저도 구하지 못한 이들은 무한 외곽에서 야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용봉회에 몰려든 이들은 각 지역을 대표하는 가문의 차남이나 차녀, 혹은 이대제자였다.
약소 방파에서는 장자를 보낸 경우도 있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찾아온 정파의 후기지수들은 반드시 시험에 통과해야만 했다.
정무맹주 철지량이 직접 개최하는 용봉회.
그 시험만 통과하면 새로 마련된 용봉관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무림의 명숙들에게 직접 무공을 사사할 수 있고, 운이 좋으면 그중 한 사람은 무림맹주 철지량의 제자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더욱이 얼마 전 은밀하게 퍼진 소문에 의하면 학관주로 거론된 이가 백로 등여평과 용무 여월협이었다.
철지량의 제자가 못 되어도 백로와 용무의 제자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입관식에는 정무칠성의 일부도 모습을 보인다고 하니 이보다 대단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용봉관의 입관.
그것은 꿈이요, 보장된 출셋길이었기에 당금 정무맹 예하 모든 문파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했다.
“아니 내가 왜!”
무한의 입구로 들어서는 진무의 고함이 짜증스럽게 울려 퍼졌다.
“어차피 객점을 못 구합니다.”
“구해!”
“허헛, 진무 도장. 지금 무한에 몰린 후기지수만 수천입니다. 그들을 호위하는 각 가문의 사람들까지 합하면 추산이 안 되지요.”
“…….”
“객점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진무의 옆을 나란히 달리는 제갈선이 무척이나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상관없어. 어차피 이놈들만 내려놓고 갈 거니까.”
“하핫. 그러지 마시고.”
“됐다니까!”
“아니 용봉회가 개최되려면 아직 닷새나 남았는데 도대체 어디에 거처를 삼겠다고 이 고집을 부리시는 거요?”
“…….”
“설마. 체면 떨어지게 무당의 제자들이 야숙을 할 셈은 아니겠지요?”
진무의 짜증에도 제갈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쯤 되면 화를 낼 만도 한데 차분하게 웃으며 대화를 이끌고 있었다.
언뜻 보면 진무 혼자서 화를 내며 투덜거리는 모양새였다.
“그러니 잘 부탁한다잖아. 제갈세가에서 이 두 녀석을 맡아 주겠다며?”
“물론입니다.”
“그럼 됐네.”
“제 말을 잘못 이해하셨군요. 진무 도장과 함께입니다.”
“이게 진짜?”
눈앞의 남장 여인.
말싸움으로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언제나 차분하고 편안한 미소를 머금고 살살 구슬려서 상대가 은연중에 비밀을 토해 내게 만든다.
요망한 여우가 사내로 변신한 것이 틀림없었다.
“진무 도장, 그러지 말고 마음 돌리시지요. 서로 다 좋지 않습니까?”
“안 좋아.”
말해 봐야 계속 말리기만 할 것 같았던 진무가 고개를 돌리는데.
“하하, 이 사람아. 나도 함께라지 않는가?”
등여평이 환하게 웃으며 끼어들었다.
닥쳐! 너랑 있는 것도 비슷하게 싫어!
이제 겨우 무당에서 빠져나왔다.
그 숨 막히던 스승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무림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는데 뭐 하러 다시 정파 놈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머문단 말인가?
더욱이 무당의 도사니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많다.
어떻게 봐도 진무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닷새씩이나 있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망할 것들이 진짜 싫다는데 왜들 이렇게 귀찮게 구는지.
“어? 다 왔네요.”
“뭐?”
제갈선의 말에 진무가 고개를 홱 돌렸다.
거대한 정문에 ‘제갈세가 무한지부’라고 쓰인 현판이 보였다.
어, 언제?
“자, 들어가시지요.”
“들어가세. 이리 올 것을 그리 고집을 부리고. 사람 참.”
“…….”
등여평과 제갈선은 참 죽이 잘 맞았다.
어째 자꾸 말을 건다 했더니 사이좋게 말로 현혹하며 자신을 제갈분가 앞에 끌어다 놓은 것이다.
젠장, 이것들이.
인상을 팍 구긴 진무가 말머리를 돌리려는데.
“사숙?”
청우가 너무나도 지친 표정으로 진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놈 자식.
마음 같아서는 객점은커녕 야숙을 시켜도 모자랄 놈의 자식.
청우 때문에 협전을 쓸 수 있는 두 번의 기회 중 하나가 날아간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속에서 천불이 날 지경이었다.
“사숙, 객점을 알아볼까요?”
청상이 늘 그랬듯이 진무에게 묻는다. 그 역시 지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진무가 가자 하면 따라나설 게 틀림없다.
진무의 마음이 불현듯 약해졌다.
우직하고 충성스럽지만 가끔씩 사고를 치는 청우.
화적이라면 치를 떨지만 말 잘 듣고 눈치 빠른 청상.
그들은 누가 뭐래도 진무의 충직한 수하 일 호와 이 호가 아니던가?
그래, 이 정도로 용서해 주자.
뭐, 제갈세가에서 지내면 돈도 아끼고, 손님이니 술과 음식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공짜로.
어차피 스승인 명진이 정무맹주를 반드시 만나고 용봉회가 개최된 뒤에 표주를 떠나라 했으니 못해도 닷새 동안은 꼼짝없이 무한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어휴, 됐다, 됐어. 들어가자. 손님으로 청해졌으니 차라리 가서 푹 쉬자.”
진무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그사이.
“나는 제갈선이라 하네. 안에 기별을 넣어 주겠는가?”
“제갈? 앗! 대공자님을 뵙습니다!”
제갈선을 알아본 정문 위사가 급히 인사를 하고 안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