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76
76화
쩡!
쩌정!
거대한 공동이 강렬한 진동과 함께 울음을 토했다.
검광이 사위를 가득 채워 밝히고 부딪힌 기의 조각들이 늦봄 바람 맞은 꽃잎처럼 뿌려졌다.
“허!”
둘의 비무를 지켜보던 등여평은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상대가 안 된다.
격차가 너무 크다.
같은 검강이라고는 하나 그 순도부터가 달랐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파가가각!
채찍처럼 휘어진 검강이 지면을 스치듯이 달려가는 진무의 뒤를 쫓아 바닥을 파내며 고랑을 만들었다.
취릭, 콱!
철지량의 전면으로 다가서는 순간 깊게 박힌 검에 힘이 실리고 검날이 부러질 듯 휘어졌다.
땅!
용수철처럼 튕겨진 검과 함께 진무의 몸이 사선으로 솟구쳤다. 그리고 그와 함께 송곳처럼 곧게 펴져 찔러지는 발.
철지량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진무의 인사.
느긋하게 받아 볼 생각이었다.
무당의 일대제자.
그는 무당의 앞날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정파의 앞길을 열어 갈 든든한 후기지수가 아니던가?
철지량이 검을 뽑아 든 것에는 진무의 실력을 확인하고자 하는 뜻도 있었으나,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무인을 적당히 눌러 줄 생각도 있었다.
너무 빠른 것은 좋지 않다.
빠른 것은 때로 독이 되기도 한다. 튼튼히 쌓지 않은 기초가 혹여 벽을 만나 무너질까를 우려한 것이다.
때로는 천천히 느긋하게 가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진무가 검강을 뽑아 올려 공격해 올 때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여유롭게 차근히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덤으로 약간의 부상을 입혀 의실 신세를 지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분명 실력의 격차는 확연했다.
그러나 자신의 검술이 가진 허점을 교묘하게 파고들며 그 격차를 현저하게 줄여 버린다.
마치 그의 검술인 벽사검법(僻邪劍法)을 오래전부터 연구해 온 것처럼.
‘이런 망할.’
벽사검법의 유성비타(流星飛墮).
수십 개로 나누어진 검강이 유성처럼 날아가 떨어지는 적의 움직임을 가두는 초식이었다.
초식의 특성상 모르면 아차 하는 순간 꼼짝없이 당하기 쉽고, 설령 안다 해도 벗어나기가 힘들다. 그 초식을 펼친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검성 철지량이기 때문이다.
하나도 아니고 수십 개의 검강이 각개로 흐르듯이 움직이는데 어찌 피한단 말인가?
그리고 피한다고 해도 곧바로 이어지는 야화소천(野火燒天).
유성비타에 의해 떨어진 검강이 들불처럼 솟구쳐 올라 하늘을 뒤덮는다.
일월마교의 대장로였던 마군(魔君) 괴월의 오른팔을 날려 버린 초식이었다.
그가 무림을 주유하는 동안 그 연계기에서 벗어난 것은 단 한 명뿐이었다.
사패천주 혁련무강.
싸울 때마다 강해지던 그 괴물 같은 놈만이 유일했다.
물론 혁련무강 같은 경우야 그 무위가 엄청났기 때문에 야화소천 자체를 짓눌러 버렸지만.
그런데 또 한 명.
아무리 가진 내력의 오 할만 사용했다고 하지만 진무가 그것을 해내고 있었다.
물론 방법은 달랐다.
물 찬 제비처럼 요리조리 바닥을 스쳐 유성 같은 검강을 피하고 야화소천이 시작되기도 전에 철지량을 공격해 흐름을 끊었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니 초식의 흐름이 아주 잠시 멈칫했을 뿐이다.
그러나 진무는 순간의 틈을 놓치지 않고 송곳처럼 발을 찔러 왔다. 그리고 그를 피하는 순간 팽이처럼 회전하며 검격을 휘둘러 온다.
수십여 개의 검격이 그의 전신을 할퀴듯이 날아들었다. 바로 옆에서 날아온 것이기에 피할 수도 없었다.
“합!”
기합성과 함께 당겨진 검에 막대한 기운이 어렸다.
따아앙!
거친 공명음과 함께 쳐 내진 검.
진무는 반탄력을 이용해 몸을 훌쩍 물리며 철지량의 공격에 대비했다.
그런데 움직이지 않는다.
검을 늘어뜨린 철지량이 멈춰 서서 진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어떻게?”
철지량의 말에 잠시 휴식을 취할 틈이 생긴 진무가 가슴이 부풀어 오르도록 들이마셨던 숨을 토했다.
“벽사검법을 알고 있었던가?”
당연히 알지.
하지만 누가 봐도 안다고 하면 안 되는 상황이다. 산중에 틀어박혀 있었던 진무가 그걸 안다는 게 더 이상했으니까.
“그럴 리가요.”
“한데 어찌 피해 낸 것도 모자라 초식의 흐름을 끊었단 말인가? 간격을 잡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삐끗하는 순간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인데?”
“그러게요. 그 어려운 걸 제가 해냈네요.”
진무가 스스로도 놀란 표정을 한껏 지어 주었다.
어렵긴. 철지량에 대한 분석은 이미 오래전에 끝냈다.
하오문에 은위단까지 총동원해서 그의 검술뿐 아니라 성격이며 집안 사정까지 빠삭하게 뒷조사를 했었다.
그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검성 철지량. 산동성에서 내로라하는 검가(劍家) 벽사문 출생.
올해 일흔 살. 밑으로 여동생이 하나 있었고, 처 하나, 첩 하나, 그리고 슬하에 아들 둘, 딸 셋. 많이도 낳았다.
철지량을 제외한 그의 가족들은 산동성 벽사문에 있었다. 그들의 가문이 권력을 남용할 것을 우려한 그가 정무맹에 발을 들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첩을 하나 더 들였거나, 자식을 더 봤거나, 아무튼 바뀌지 않았다면 진무의 기억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진무가 그에 대해 연구했다고 해도 만약 생사투였다면 지금의 경지로는 철지량의 일 초식조차 막지 못할 것을 안다.
고수의 대결에서는 상대의 검공을 안다 해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었다.
초식이 순서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며, 그마저도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마구잡이로 초식을 잘라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련은 아까의 기세에 이은 두 번째 시험임을 알고 있었다.
철지량은 절대로 살수를 펼치지 않는다. 또한, 절대로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 왜냐? 정파니까.
그리고 스스로가 가진 초식을 하나씩 아주 친절하게 선보여 줄 것이 틀림없었다. 파훼식만 알고 있다면 충분히 승산 있는 싸움이었다.
또한, 진무는 철지량을 알지만 철지량은 진무를 알지 못한다. 이건 이것대로 짜릿한 일이다. 당황해하는 철지량의 표정만 봐도 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흐흐흐, 백날 고민해 봐라. 이 새끼야. 죽었다 깨어나도 내가 혁련무강임은 모를 것이다.’
벽사검법? 철지량?
그게 뭐?
벽사검법은 무겁고 가볍다. 그러니 무거움은 흘리고 가벼움은 무겁게 짓눌러 막으면 된다.
진무가 속으로 음흉하게 웃으면서 연무장 구석에서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등여평은 턱이 빠질 지경이었고 제갈협진은 눈이 튀어나올 듯하다.
제갈산산은…… 동그란 사슴 같은 눈망울…….
빌어먹을. 어쨌든 아주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큭큭, 이거 이름값 좀 오르겠네. 다들 잘 봐라. 내가 바로 앞으로 정사무림 전체에 군림할 진무니라!’
진무는 천천히 검을 사선으로 비껴 쥐었다.
“인사는 잘 받으셨나요?”
“…….”
철지량이 진무를 응시하다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핫! 이런, 내 참으로 자네를 잘못 보았으이. 이거 비밀 대련이 아니었으면 큰 창피를 당했겠어.”
뭐? 비밀 대련? 그럼 소문은? 내 이름값은?
이런 얍삽한 놈을 보았나!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대련이라고 해도 검성이자 정무맹주 체면에 질 수야 없지.”
어? 뭐?
철지량이 갑자기 싱긋이 웃는다.
왜 쪼개지? 진무가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데.
둥실.
그의 손에 잡혔던 검이 갑자기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 저건?
“내 자네를 무시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 주겠네.”
아, 이러면 곤란한데?
진무의 눈이 점점 커지고, 눈동자에 떠오른 경악의 감정이 점점 더 짙어진다.
휘리리리.
철지량의 기운이 갑자기 급속도로 팽창하고, 흐름 없던 대기가 폭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쑤욱!
떠오른 검을 대신해 철지량의 손에서 푸른 검강이 솟구쳐 검처럼 자리 잡았다.
“내가 깨달은 검공의 마지막 단계일세. 이기어검술(以氣馭劍術)이라고 들어 봤는지 모르겠구먼. 손에 잡힌 것은 기검술이라고 한다네. 허허.”
“…….”
철지량이 온화하게 웃는다.
어이, 잠깐만 이 사람아!
지금 웃음이 나오냐?
그런 건 원래 악당을 죽이기 위해 영웅이 대서사시의 마지막에서 쓰는 최후의 절초 같은 걸로 등장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어리디어린 약관의 도사를 상대로 일흔 살이나 처먹은 노괴가 이기어검술을 펼쳐?
“허헛, 놀랐나 보구먼. 걱정 말게. 자네의 성취를 보니 서른도 되기 전에 나만큼 이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구만. 미리 경험해 본다 생각하게.”
미친, 지금 그걸 배려라고…….
그냥 지기 싫어서 이러는 거잖아, 이 속 좁은 새끼야.
하여간에 엿 됐다.
망할 노괴가 아주 날을 잡은 모양이었다.
이러다간 정말로 정무맹 의실 신세를 지게 될지도 몰랐다.
“자, 그럼 어디 한번 받아 보게! 하하하!”
슈아아앙!
잘도 처웃으며 저런 무공을.
진무는 펄떡거리는 생선처럼 생동감 넘치게 허공을 가르는 검격에 기겁하며 내달렸다.
깡! 까강!
쉴 틈이 없었다.
오롯이 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검격이 쉬지도 않고 진무를 몰아쳤다.
진무가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자신이 아는 무당의 모든 검공을 쏟아붓는 내내, 망할 철지량은 멀리 편하게 서서 손가락이나 까딱거릴 뿐이었다.
진무는 내심 이를 갈았다. 바로 이것이 이기어검술의 무서운 점이었다.
첫 번째는 의외성.
허공을 자유롭게 떠다니기에 어디서 날아올지 모른다.
두 번째는 움직임에 제약이 없다.
모든 검공이 시전자의 상상 그대로 펼쳐진다. 그리고 그 상상하는 게 하필이면 검성 철지량이다.
진짜 씨발…….
“하하핫! 이것도 받아 보게!”
하지 마.
“오호! 대단하군! 정말로 대단해! 으하하핫!”
하지 마! 이 개새끼야!
울고 싶은 진무와는 반대로 철지량은 신이 잔뜩 나 있었다.
전력은 아니지만 이기어검술을 펼치고 있음에도 진무가 버텨 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당의 모든 검공에 신법, 장법, 권법, 각법 등을 총망라해서 뒤섞고 엮어서 마치 새로운 무공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이거 정말 대단하네! 몸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가 없구만!”
파앙!
움직였다.
지금도 아슬아슬하게 피해 내는 게 고작인데 철지량이 순도 십 할에 달하는 시퍼런 기검을 손에 쥐고 진무를 향해 뛰어들었다.
아, X 됐다.
땅!
수십 초의 검격을 막아 내었으나 그것이 한계였다.
목 뒤를 노려 오는 검격을 쳐 내는 순간 비틀린 진무의 복부에 묵직한 일격이 틀어박혔다.
“끅!”
하마터면 토사물이 올라올 뻔했다. 그 한 방의 권격에 중심이 무너진 것이다.
하지만…… 누가 그냥 당할 줄 알고!
입을 꽉 다물고 고통을 참아 낸 진무가 악착같은 집요함으로 비틀렸던 상체를 되돌리며 팔꿈치를 휘두르는 순간.
쩍!
뒤이은 철지량의 수도(手刀)가 진무의 목 뒤를 내리쳤다.
망할. 아직은 무리인가.
진무는 끊어지는 의식 너머로 철지량을 향해 자신이 아는 모든 욕설을 퍼부었다.
“…….”
맥없이 허물어지는 진무의 모습을 보던 철지량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마지막 순간에 펼쳐진 일격에 섬뜩함을 느꼈다.
그의 단중혈의 한 치 앞에서 멈췄던 진무의 팔꿈치 끝자락.
준비 동작이 없는 일장.
양소방이 말했던 그들의 무공.
수도로 그의 공격을 끊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몰랐다.
‘허, 그 상황에서?’
살을 내어 주는 대신 뼈를 친다. 육참골단(肉斬骨斷)의 수법이다.
상처를 입으면서 적의 명줄을 노리는 방법은 말로는 쉬워도 막상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나 자신의 주먹을 그대로 얻어맞고서라니.
무공이 아니다. 본능적인 한 수였을 것이다.
‘마치 야수처럼.’
진무는 무당의 도사가 아니라 마치 산정을 마음대로 뛰어다니는 짐승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허! 고작 약관에 불과한 녀석이.’
철지량이 자신의 발아래 쓰러진 진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허허. 이거 말년에 노력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다니. 십 년, 아니 오 년 안에 무당의 이름이 전 중원을 울릴지도 모르겠어. 이 녀석으로 인해서 말이지…….’
철지량의 얼굴에 다시금 미소가 지어졌다.
“맹주님.”
등여평과 제갈협진, 제갈산산이 서둘러 다가왔다.
“대군사.”
“예. 맹주님.”
“진무 도장을 잡을 순 없을 것 같네.”
“예?”
철지량의 말에 제갈협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맹주님!”
생각했던 것보다 진무의 무위는 훨씬 더 뛰어났다.
앞으로 그들이 나아가야 할 목표에 반드시 필요한 무인이었다. 용봉관이 아니더라도 차후 모습을 드러낼지 모르는 ‘궁’이라는 자들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군사. 야수는 우리에 가두어서는 안 되는 법이라네.”
철지량이 얼굴 가득히 미소를 머금었다.
“이 녀석은 그런 녀석 같구먼.”
무엇을 느꼈던 것일까?
제갈협진은 물론 등여평조차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를 맹에 둔다면 훨씬 더 이득이.”
“그렇겠지. 일월마교나 사패천과의 싸움. 그리고 ‘궁’이라는 자들에 대비하는 데도 도움이 되겠지. 하나, 굳이 가둘 필요는 없다네. 어차피 그는 무당지검이 아닌가? 그냥 뛰어놀게 두세나.”
“…….”
철지량은 제갈협진의 어깨를 두들겨 주며 제갈산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산산.”
“예. 맹주님.”
제갈산산이 걸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한분가로 데려가 쉬게 하게. 그리고 깨어나거든 내가 진무 도장의 인사를 아주 잘 받았다고 전해 주게나. 하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