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77
77화
제갈세가 무한분가.
“……그리 전하라 하셨어요.”
“…….”
진무가 깨어났을 때, 제갈산산이 전해 주었다.
인사 잘 받았다. 철지량의 말이었다.
“그리곤 후에 다시 보잔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싸우면 가진 바 전력을 처음부터 다해 주겠다고.”
다소곳이 앉은 제갈산산의 말에 진무가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았다.
그사이.
“정말로 사숙께서 검성 어른과 비무를 하셨단 말입니까?”
청상이 제갈산산을 향해 물었다.
“예. 그것도 호각지세(互角之勢)였어요.”
“호, 호각!”
청상은 물론 청우까지도 작은 눈이 찢어지게 부릅떴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사숙! 검성과 호각이라니요!”
청상이 주먹을 움켜쥐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했다.
그 눈빛에 더해진 존경심에 진무가 피식 웃고 말았다.
호각지세? 그리 보였나?
말도 안 된다.
졌다. 그것도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검성에게 처참하게 진 것이다.
진무의 첫 패배였다. 아니, 무월각의 노인네와 양소방이 있으니 세 번째인가?
아니다.
진무가 자신의 모든 전력을 사용한 것은 철지량뿐이었다.
사실 그에게 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일월마교, 사패천, 정무맹. 중원의 삼 대 세력을 통틀어 검에 있어서는 최고수인 그였다. 지는 게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건만, 진무는 그 사실이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길. 아직 멀었네.’
철지량의 이기어검.
그 너머에 심검(心劍)이라는 것이 있기는 했으나 아직 누구도 이르지 못했기에 다들 이기어검을 검공의 실질적인 마지막 단계라 불렀다.
혁련무강이었던 때에도 이루어 보지 못했던 경지였다.
만류귀종(萬流歸宗)이라는 말이 있으나 무조건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검강을 쓰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은 원래 익숙한 것에 더욱 뛰어난 능력을 보이기 마련이다.
혁련무강은 권장으로 절대의 경지에 이른 무인이었다. 철지량과 한창 싸웠을 때도 권장을 사용했고, 그것으로 이겼다.
그렇기에 그는 검으로 철지량을 이길 수는 없었다.
무당 무공의 종류는 너무도 다양했다. 검공 이외에도 수백 종의 무학이 장서각 안에 잠자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 검공이 가장 강하다. 그렇기에 중원 검공 중 화산과 더불어 무당을 최고로 꼽았다.
문제는 진무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진무의 몸으로 철지량을 쓰러뜨릴 날이 온다면 그것은 검공이 아니라 권장에 의한 것이리라.
‘양의심공의 후반부를 얻어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생긴 셈이군. 철지량, 다음에 볼 때는 반드시 이겨 준다.’
진무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청상, 청우.”
“예! 사숙!”
가슴이 벅차오른 둘이 진무를 향해 힘차게 대답했다.
아, 얼마나 자랑스러운 사숙인가? 평생을 따라가리라!
“나는 지금 당장 표주를 떠날 생각이다.”
“예! ……예?!”
청상과 청우는 깜짝 놀란 표정을 했다.
뭐가 이리도 갑작스럽단 말인가?
떠날 것은 알고 있었으나 아직 용봉회 개최가 사흘이나 남아 있었다.
“사숙! 아직 몸을 좀 더 추스르셔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고기를 섭취해 피로도 좀 푸시고.”
하아, 청우야.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다만.
“시끄럽고. 니들이나 걱정해라.”
“…….”
진무는 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가 표주를 나온 목적은 무당에서의 탈출이었다. 어쩌면 이제 다시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진무는 그동안 자신을 따라온 그들에게 작은 선물을 해 주고 싶었다.
한 번도 그래 본 적은 없지만 그들에게는 왠지 그냥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하 일 호와 이 호가 아니던가.
“청상, 너는 검공에 있어서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진무의 칭찬에 청상이 기쁜 표정을 지었다.
“검기를 수련해 기운의 범위가 계속 늘어난다고 해도 거리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
“기운은 어차피 이리 소모해도 그만 저리 소모해도 그만이니 잡아 두려 하지 말아라. 어차피 기운이나 검이나 사람을 상하게 하는 도구에 불과함이다. 던진다 해도 검이고 기운이다. 중요한 것은 형(形)과 힘을 유지할 만큼의 응축임을 명심해라.”
진무의 말에 청상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다시 벽에 막혔을 때 잊지 않고 되뇌면 깨달음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아!”
청상이 감탄사를 뱉었고 눈치 빠른 제갈산산의 눈이 동그래졌다.
가르침?
별안간? 뜬금없이?
그리고 그 가르침은 그럴듯한 글귀에 함축적인 의미를 담아 고민하게 만드는 종류가 아니었다.
쉽고 간결하다.
아직 그 정도의 경지가 되지 않았기에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감사합니다. 사숙! 이 은혜를…….”
청상이 감격함에 절을 올리려 하자 진무가 손을 들며 고개를 저었다.
“안 하던 짓 하지 마. 남사스럽게시리.”
“…….”
“처음에 말했듯 나는 너희의 스승이 아니고 너희는 나의 제자가 아니야.”
진무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청상의 마음은 벅차다 못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제갈산산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사승 관계가 아니었단 말인가?
진무가 어리다곤 해도 일대였다. 더욱이 무당지검이다. 제자를 들인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신분이다.
한데 사승 관계가 아님에도 가르침이 어떠한 구애도 없이 대화하듯 자유로웠다.
아무리 동문의 무인이라 해도 그러한 경우는 없다.
제갈세가에서는 절대로 경험하지 못할 일이었다.
본가의 가주인 제갈웅현조차도 자신에게 그리 편하게 가르침을 내려 주지 않았다.
무인의 깨달음이란 그런 것이다.
오랜 고통과 인내를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얻는 것이기에 타인에게 쉬이 전수하지 않는다. 그것이 제자라 할지라도 그에 맞는 준비가 되지 않는 한 전하지 않는다.
더욱이 외인(外人)이 있는 자리라면 절대로 하지 않는다.
감추고 또 감추는 것이 그러한 가르침이다.
‘대단하구나. 저것이 천년 무당의 분위기인가? 아니면 그저 진무 도장의 성격인가?’
제갈산산 역시 현기의 경지에 이른 무인이었다.
진무의 말은 자신에게도 엄청난 도움이었다.
기연이고 은혜나 다름없었다.
제갈산산이 감탄을 하든 말든 진무가 청상에게서 고개를 돌려 청우를 바라보았다.
“청우, 너는…… 음.”
진무가 잠시 말을 멈추자 청우가 칭찬을 기대하는 눈빛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음. 너는…….”
“…….”
“아! 우직하다.”
“……예?”
뭔가 좀 더 칭찬을 기대했던 청우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무리 칭찬을 하려고 해도 딱히.
“그래. 넌 우직해. 그러니 남들이 뭐라 하건 멈추지 말고 나아가라. 너는 다른 것과는 맞지 않다. 곁눈질하지 않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면 분명 권공으로 이름을 날릴 수 있다.”
“예! 사숙!”
자신을 가장 잘 따랐던 천우명이 생각났기에 그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해 주었다.
그 역시 우직했기에 한 방향으로 올곧게 나아갔고 결국은 사패천 최강의 무력 단체였던 철검단의 수장이 되었다.
진무의 말이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었지만 청우가 힘차게 대답했다.
“그래, 열심히 수련해라.”
“알겠습니다.”
“청상.”
“예, 사숙.”
“청우 잘 보살피고.”
“…….”
나지막한 진무의 말이 이별 인사처럼 들렸기 때문일까? 시무룩해진 청상의 눈에 옅은 습막이 차올랐다.
하지만 가야 할 길이 자신들과 다르기에 막을 수도, 잡을 수도 없었다.
청상은 천천히 일어나 절을 올렸고, 청우도 그를 따라 했다.
이때만큼은 진무도 막지 않았다. 스스로도 자세를 고쳐 앉으며 그들의 인사를 받아들였다.
조금 기분이 좋았다.
“사숙, 다시 뵈올 때까지 건강하십시오.”
하지만 그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이런 진심이 담긴 인사를 받아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일까?
진무는 왠지 코끝이 시큰해지는 기분에 퉁명스럽게 말했다.
“지랄한다. 내가 죽냐?”
“예?”
“걱정 마라. 이놈들아. 그리고 알지? 다시 봤을 때 마음에 차지 않으면 둘다 뒈진다. 이번엔 진짜로 모가지를 따 버릴 거야.”
매섭게 눈을 부라리며 으름장을 놓는 모습에 청상도, 청우도, 심지어 제갈산산까지 피식 웃고 말았다.
“읏챠! 그럼 가 볼까?”
“예? 벌써 가십니까?”
“그럼! 당연하지.”
“하지만 아무런 준비도 없이.”
“준비는 옘병. 검 하나만 있으면 되지.”
그리고 전장에 맡겨 둔 돈이 잔뜩인데 뭐가 걱정이란 말이냐.
진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청상과 청우도 따라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됐어. 뭘 따라 나오려고 그래?”
“아니 그게.”
“내 말 못 들었어?”
“예?”
“성에 차지 않으면 진짜로 모가지를 딸 거라니까?”
“…….”
다시 만나게 될지는 모르지만.
진무는 웃으며 말했지만 청상과 청우에게는 왠지 진심처럼 들렸다.
진무라면 왠지.
“나가.”
“……예.”
아쉬운 듯 어물쩡거리는 둘을 향해 진무가 사악한 표정으로 눈을 부라렸다.
“시간이 많은가 보네.”
“…….”
“그럼 좀 더 수련을 시켜 주고 갈까?”
“……아, 아닙니다. 사숙!”
손가락을 꺾으며 우두둑 소리를 낸 진무가 눈을 부라리자 청상과 청우가 기겁한 표정으로 뛰어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제갈산산이 눈을 곱게 휘며 웃었다.
젠장, 자꾸 이러면 안 되는데 웃는 모습은 하여간에 제일 예쁜 요물이었다.
“뭐? 왜?”
“그냥, 부끄러워하시는 것 같아서.”
“뭐?”
“그냥 그렇게 느꼈습니다. 사질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시는 것이 낯간지러워서 일부러 내보내신 건 아닐까 하는.”
“…….”
눈치 빠르기는.
제 마음을 들켜 버린 진무가 입맛을 다셨다.
청상과 청우. 명진과는 또 다른 인연이었다.
사파인으로 살며 인연이라는 것을 맺어 본 것은 천우명이 유일했다.
그 외에는 언제나 혹시나 뒤통수를 치지 않을까, 목숨을 노리지는 않을까를 걱정한 의심의 대상이었으니까.
“이제 어디로 가십니까?”
“청…….”
하마터면 대답할 뻔했다.
무서운 년.
갑자기 치고 들어오다니. 그것도 저런 미소와 목소리로.
빨리 떼 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알려 줘야 하지?”
“예?”
“굳이 알 필요 없잖아.”
“뭐, 그렇네요. 어쨌든 진무 도장의 말씀이 제게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갈산산이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흥, 멍청한 두 녀석을 잘 봐 달라는 뜻이라 생각해라.”
진무가 피식 웃으며 벽 한편에 세워 둔 검을 끌러 허리 뒤춤에 매었다.
“가십니까?”
“그래.”
“부디 영웅으로 가시는 걸음이 언제나 옳은 방향을 향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영웅 같은 소리 하네.”
제갈산산의 말에 진무가 피식 웃었다.
영웅? 그딴 거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간다면 차라리 악당의 길을 갈 것이다. 그편이 훨씬 더 성격에 맞으니까.
사패천주 혁련무강.
그는 드디어 무당이라는 제약에서 벗어나 중원으로 가는 원대한 일 보를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