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79
79화
발골을 끝내고 의자에 구부정하게 앉은 모습이 마치 모든 것을 하얗게 불사른 듯한 모습이었다.
꿀꺽, 꿀꺽.
그리고 항상 그의 일터에 놓여 있는 싸구려 백주.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이 술은 왜 그리 좋아하는지. 우칠은 그가 취하지 않은 날을 본 것을 손에 꼽을 정도였다.
“형님, 그렇게 마시다간 죽어요.”
“…….”
“밥도 잘 안 드시면서 술은 뭐 하러 그렇게 먹는담?”
우칠의 걱정스러운 말에 백표가 슬쩍 고개를 든다.
“헉! 으이구, 그 눈빛 좀.”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백표의 눈빛은 너무 무서웠다. 마치 죽음이 그의 곁에 서려 있는 것처럼 소름이 끼쳤다.
사이할 정도로.
그렇기에 사람들은 뒤에서 그를 두고 걸어 다니는 시체라고 부를 정도였다.
“으휴, 진짜. 차라리 안주라도 좀 먹어요.”
“귀 울린다. 그만 꺼져.”
무뚝뚝하기 짝이 없는 말투.
세상 누구라도 정이 가지 않을 성격에 무서운 분위기까지.
“쳇, 좀 좋게 말하면 덧나나? 그러니 친구가 없는 거잖아요.”
“…….”
“이러니 그 실력을 갖추고도 이런 변두리 푸줏간에서 일하지. 좀 사근사근하면 안 돼요?”
고기 담긴 광주리를 챙기는 우칠의 말에 백표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다.
“가.”
“쳇! 가요, 가.”
백표의 말에 우칠이 얼굴을 찡그리며 품에서 전낭 하나를 탁자에 던졌다.
“내일 또 올게요.”
“…….”
“어이구. 말을 말자, 말을 말아.”
백표는 우칠이 가든 말든 인사도 하지 않았다.
우칠이 광주리를 들고 사라지는 뒷모습에 백표는 멍하니 앉아 술병만 연신 입으로 가져갔다.
꿀꺽, 꿀꺽.
백표의 일상은 언제나 똑같았다.
일어나 반 시진(1시간) 가까이를 걸어 출근을 한다.
집이 먼 것은 아니다. 남들은 일각(15분)이면 충분할 거리였으나 몇 걸음에 한 번씩 쉬는 백표의 걸음이라 그랬다.
그리곤 그의 업무가 시작된다. 작업량은 우칠이 일하는 여와루(女媧樓)에서 필요한 만큼이 전부였다.
어차피 그 이상은 무리였다.
뛰어난 발골 실력을 가졌으나 백표를 아는 이들은 다른 일을 맡기지 않았다.
더 많은 일을 했다가는 송장을 쳐야 할지도 모르니까.
최고의 칼 솜씨를 가졌으나 심각하다 못해 걱정될 정도로 체력이 모자란 발골사.
그게 백표였다.
“하아…… 하아…….”
술병을 놓은 백표는 퇴근을 위해 겨우 일어나서 우칠이 놓고 간 전낭을 집어 들었다.
“…….”
움켜쥔 손안에 느껴지는 동전이 아닌 또 다른 무언가.
백표는 또 힘겹게 전낭을 연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담긴 구겨진 쪽지를 들었다.
네 번이나 접어 놓은 종이를 펼친 그의 눈동자에 차가운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
발골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눈빛이었다.
짐승이 아닌 사람을 죽여 본 이들이 가진 반들거리는 그것.
“…….”
쪽지의 내용을 모두 읽고 난 뒤 백표는 무심한 표정과 멍한 눈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곤 퇴근을 시작했다.
힘겹게…….
백표의 집은 우시장의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다.
소며 돼지, 개, 닭을 비롯해서 각종 가축들을 모아 놓은 곳이라 사람이 살기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산다고 해도 판자를 짓고 살아가는 빈민들뿐이었다.
가축들의 분뇨와 사체들이 풍기는 악취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었다.
끼이익.
녹슨 경첩이 신경을 거슬리는 소리를 내었지만, 백표는 아랑곳 않고 문을 열었다.
그리곤 이내 불이 꺼진다.
사람이 없는 곳.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곳.
백표는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 그 모습 그대로, 죽은 듯이.
그런데 잠시 후.
잠에 든 줄 알았던 백표가 자신의 거처를 빠져나왔다.
딱 봐도 헐렁해 보이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희한한 것은 들어갈 때 열었던 문이 분명한데 녹슨 경첩의 갈리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
백표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고 어디론가로 향했다.
우시장의 뒷골목.
수없이 많은 쇠창살 우리가 빼곡하게 자리를 잡아 답답하게 느껴지는 그 좁다란 골목에 도착한 백표.
음머, 음머어.
깨어져 버린 고요에 잠에서 깬 짐승들이 미친 듯이 울어 대기 시작했다.
저벅. 스윽. 저벅. 스윽.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들려오는 소리. 지면을 끌 듯이 걷는 발소리의 스산함에 순식간에 울음소리가 잦아든다.
어째서인지 발길 닿은 철창 안의 가축들이 꼬리를 뒷다리 사이로 말아 넣고 겁에 질린 듯 대가리를 처박았다.
몇몇 놈은 부들거리며 오줌을 지리기도 했다.
턱.
그중 한 곳에 닿은 백표의 걸음.
흑우였다.
소 중 덩치가 가장 크다는 녀석이었다.
음무우.
백표와 눈이 마주친 흑우가 눈깔을 동그랗게 뜨고 겁에 질린 듯이 물러나자 묶은 고삐가 팽팽히 당겨진다.
“크크크.”
그 모습에 백표의 입이 살짝 벌어지고 스산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백표의 손이 천천히 철창 안으로 뻗어졌다.
콱.
흑우는 그의 손이 목덜미를 움켜쥐었음에도 꼼짝도 하지 못했다.
뿌득, 뿌드득.
기괴한 소리.
흑우의 몸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뿌드득.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툭.
떼어진 백표의 손.
철창 안의 흑우는 마치 들판에 버려져 말라 버린 것처럼 가죽만 남아 있었다.
백표를 바라보던 눈동자 또한 생기를 잃은 회색빛으로 변해 있었다.
“후우.”
그런데 이상한 것은 백표였다.
커졌다.
헐렁했던 옷이 꽉 낄 정도로.
“큭, 이만하면 되었나? 사람이 더 좋은데. 뭐, 흔적이 남으면 안 되니까.”
숨쉬기조차 불편해 보였던 그의 목소리에 힘이 넘쳐 흘렀다.
그리고.
파앙!
딱 맞는 옷을 입은 백표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가축우리가 가득한 그곳에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 * *
서걱!
“큭!”
황의 장포의 중년 사내가 피가 터져 나오는 자신의 목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깔끔했다.
묶지 않은 머리칼을 휘날리는 살수는 별안간 나타났다.
술에 취한 채 인적이 드문 골목에 접어들었고, 부랑자인 줄로만 알았던 사내를 스치는 순간이었다.
그의 송곳니가 하얗게 빛나는 순간 짧게 그어진 투박한 느낌의 네모반듯한 칼.
그게 사내가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털썩.
쓰러지는 눈동자에 그를 호위하던 무인 다섯도 똑같이 쓰러진 모습이 비춰졌다.
“죽었니?”
매우 짧고 간결한 한마디.
감정 한 올 묻어나지 않는 그의 목소리.
백표였다. 이전의 마른 몸이 아닌 건장하리만치 단단해 보이는 육체를 가진.
“흠, 또 확인을 못 했네. 청사관 판관 이덕삼?”
황의 장포의 사내, 아니 시체 옆에 쪼그려 앉아 뱉은 질문이었으나 대답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맞겠지, 뭐. 아니면 내일 또 죽이면 되고.”
백표는 싱긋이 웃으며 일어났다.
그런데.
그의 시선이 골목 어귀를 향했다.
겁에 질려 주저앉은 여인 하나.
살해의 현장을 목격당하고 말았지만, 백표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되레 웃으며 물었다.
“봤니?”
“으으으.”
“봤구나?”
두려움의 표정이 역력한 여인이 눈을 부릅뜨고 도망치려는 듯이 버둥거렸다.
하지만 후들거리는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저런, 너도 죽어야겠다.”
“……!”
여인은 엷게 벌어지는 백표의 입가에 맺힌 웃음에 사력을 다해 일어났다.
그 순간.
파학!
여인의 목덜미에 얇은 혈선 하나가 그어졌다.
“미안, 목격자를 남기면 안 되거든.”
백표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며 어둠 속으로 스며들 듯 유유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털썩.
여인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 * *
“오랜만이군.”
막 배편을 이용해 동정호에 도착한 진무는 나루에 내려 드넓은 호수를 바라보았다.
강 위에 뜬 수많은 향락선과 시인 묵객을 실은 관광선.
대낮부터 취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취객과 나룻가 인근에서 고기를 파는 상인, 흥정을 하는 사람들.
강가를 따라 빼곡하게 채워진 수많은 주루.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참 많이도 싸웠는데.”
동정호에는 추억이 많았다.
이권을 위해 일어난 수많은 싸움의 중심에 그가 있었고, 매일을 칼부림으로 살았다.
“쯧, 진즉에 차지했어야 하는데.”
진무가 혀를 찼다.
중원의 모든 강에서 제왕이라고 했던 수채 놈들에게 맡겨 둔 것이 실수였다. 직접 나섰어야 했는데.
장강 수로의 핵심이 바로 이 동정호였다.
모든 상단의 배가 그곳에 모인다. 장강 수로를 지나는 이들은 무조건 그곳을 지나다녀야만 했다.
그걸 차지하면?
모르긴 몰라도 몇 개의 성에서 뽑아 먹을 이득은 될 터였다.
“뭐, 이젠 상관없지. 나중에 어차피 중원 전역이 다 내 것이 될 텐데. 하하핫!”
진무는 호탕하게 웃으며 나루를 빠져나왔다.
무한을 출발한 진무의 목표는 중원의 오대도문이었다.
다른 곳은 필요하지 않았다.
중원 여행은 이미 팔십 년 동안 수도 없이 해 봤다. 딱히 신기할 것도 없었다.
양의심공 후반부를 찾아내기도 부족한 시간에 뭐 하러 그딴 걸 한단 말인가?
중원 오대도문.
무당, 화산, 곤륜, 청성, 공동.
다섯 곳이다.
물론 과거에는 한 곳이 더 있었다고 들었다.
중원 도문의 시초였다는 전진. 지금은 망해서 없다.
어쨌든 진무는 그 다섯 곳을 찾아가기 위해 무한에서 배를 탔다.
그 시작은 사천의 청성이었다.
청성을 시작으로 청해의 곤륜, 감숙의 공동과 섬서의 화산까지 원을 그리며 최단 거리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일단 돈 좀 찾고.”
진무는 일단 동림전장 동정호지부에 들를 생각이었다.
무당스럽지 않은 검도 하나 구해야 하고, 옷도 하나 사야 했다. 도포가 아닌 흑의 무복을 입고 나선 걸음인데 영 기분이 칙칙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황삼이었다.
그래, 황삼을 입자. 그나마 제일 무난한 색상이 아니던가?
막 전장을 향해 가던 진무의 앞에 한 떼의 사람들이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 뭐야? 왜 길을 처막고 있어? 이쪽이 지름길인데.”
얼굴이 찡그려졌다.
이 지름길을 이용하지 않으면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관인들이 창날을 세운 채 오가는 이들을 막고 있었고, 행인들이 몇 겹이나 둘러싸여 구경을 하고 있었다.
“이런 젠장. 괜히 이쪽을 택했나?”
진무의 기억에 이쪽 방향에서 그나마 빠른 길로 돌아가자면?
“그쪽은 냄새가 심한데.”
피혁을 사고파는 시장통이 분명했다.
“어쩔 수 없지.”
괜한 시비는 사양하고 싶었던 진무가 행인들을 피해 길을 옮기는데 사람들의 소곤거림이 들려왔다.
“또 죽었다며?”
“그래. 같은 놈이라지 뭔가?”
“거, 그놈 대단하네. 장 판관이면 관에서도 알아주는 고수 아냐? 더욱이 같이 죽은 게 그의 수하들이라며?”
“맞어. 무림인들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는 그…….”
“히야, 그 살수 놈 정말 간도 크지. 근데 누가 청부했을까?”
“어디 한두 놈이겠어? 장 판관 저 새끼 잘 죽었다고 생각하는 놈이 못해도 백은 넘을 게야.”
“하긴, 못된 짓을 좀 많이 했나 그래.”
“근데 여자도 하나 죽었다던데?”
“여자?”
“음.”
“목격자네. 목격자야.”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살수 놈이구만.”
갖가지 추측이 난무한다. 모두가 각자의 결론을 만들어 내며 너도나도 속삭여 대었다.
‘살수? 뭐, 동정호니까.’
진무는 그들의 말을 들으며 피식 웃었다. 예나 지금이나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곳이었다.
주인이 없는 곳. 늘상 다툼이 많은 곳. 원한을 진 놈들이라고 어디 한둘이겠어?
더구나 통제되지 않는 무림인들이 잔뜩이다.
관? 절대로 통제할 수 없다.
객점과 주루가 수백 곳에, 도박장까지 합하면 추산이 안 된다. 검은돈이 넘쳐 난다는 뜻이다.
관인들이라고 별수 없다. 아니, 쥐꼬리만 한 녹봉을 받는 놈들이니 훨씬 더 타락하기 쉽다.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을 테니 살수와 같은 청부업자들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으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진무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그곳을 지나갔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진무가 지나가고 싶지 않았던 우시장 어귀에 들어섰다. 한참이나 떨어져 있음에도 악취가 코를 찔렀지만, 사람들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잘만 북적거렸다.
‘저놈들은 다들 어떻게 참는 거지?’
진무는 고개를 저으며 사람이 적은 곳을 찾아 방향을 잡았다.
그곳에서도 이런저런 잡다한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이런 씨발! 또 이 모양이야.”
“왜 그래?”
상인들이다. 하나는 화가 잔뜩 나 있었고 하나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아니 뭔 구미호가 사는 것도 아니고. 이거 봐, 또 이 꼴이라니까?”
상인이 짜증스럽게 말라비틀어지다시피 한 흑우의 시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을 지나며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돌리던 진무의 걸음이 문득 멈췄다.
어?
“어제까지 말짱했다니까? 근데 밤새 이리되었어.”
“허, 귀신이 곡할 노릇이구만.”
상인이 신경질적으로 흑우의 사체를 발로 찼다.
그런데 그 옆으로 진무가 다가와 앉아 소의 사체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뭐요?”
잔뜩 열 받아 있던 터라 진무를 향해 내뱉는 말이 곱지 않았다.
뒤적뒤적.
진무는 상인의 물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체를 이리저리 살폈다.
“아니 뭐냐니…… 컥!”
상인이 눈을 부라리는 순간 진무가 벌떡 일어나 그의 울대를 잡아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