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85
85화
“야! 하라니까?”
“안 됩니다.”
쓸데없이 고집이었다.
“왜!”
“은공의 말씀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사악한 무공을 익혔으되 마음만은 여전히 정파의 도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제 자신을 위해서 죄도 없는 이들의 기운을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아니! 채기를 한다고 사람이 죽는 게 아니야. 얼마나 빨렸는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회복이 된다니까?”
“그래도 안 됩니다. 은공.”
“이……!”
고집불통에 융통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놈 같으니!
도와주기로 마음먹지 않았으면 당장에 저놈의 아가리부터 찢어 버렸을 텐데.
아니 분명 지난밤에는 살육에 미친 짐승 놈 같은 눈빛이더니, 막상 기운이 다하자 세상에 이런 정파 놈이 없고 지랄이다.
진무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밤이 지나고 휴식을 취한 백표는 원래의 비실비실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기초공을 배워 조금의 내력을 쌓았으나 말라붙은 땅에 빗방울 조금 떨어졌다고 전부 해갈되진 않는 법.
그는 여전히 비실비실하고, 끝도 없이 애처로웠다.
젓가락 하나 들어 올리면서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도대체 그런 몸으로 발골은 어떻게 한 거냐?”
“이것과 그것은 다릅니다. 은공.”
다르겠냐?
“본가의 도는 결을 타는 것이라 한 줌의 숨으로도 수십 번의 검격을 펼칠 수 있습니다.”
백표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자랑을 했다.
그래. 잘났다…….
이 자식도 빨리 떼 버려야 되겠다.
하지만 이제껏 마음먹은 것을 포기해 본 적은 없었다. 도와주기로 했으니 끝까지 돕는다.
그리고 약간 더 신경 써서 백가장까지만 데려다주자.
양의심공을 얻기 위해 청성으로 가는 길이기는 하지만 뭐 백 년이나 숨겨져 있던 게 갑자기 사라질 리도 없고.
약간 돌아갈 뿐이다.
그 후에 자진을 하건, 칼 맞아 죽건 아무 신경도 쓰지 않을 셈이었다.
‘젠장, 장사까지만 배로 이동하고 마차를 구해야 할지도 모르겠네. 망할 놈 때문에 아까운 생돈이 날아가게 생겼어.’
진무가 속으로 천우명을 향해 욕설을 내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짤랑.
진무가 한숨을 푹푹 내쉬는데 객점의 주렴이 달그락거리며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죽립을 쓴 거한과 노인.
평소 주변을 감시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 진무가 힐끗 쳐다보았다.
‘제법 단련이 잘된 놈들이네. 단단해. 특히 저 노인네, 기운을 감추는 게 아주 제법이군.’
하지만 그들을 보는 순간 백표의 눈이 부릅떠졌다. 심지어 힘도 없으면서 벌떡 일어나기까지 한다.
“어? 왜?”
“살주……?”
백표의 말에 진무의 고개가 다시 돌아갔다.
백표가 살주라고 불렀다면 그는 분명 삼살당의 주인일 것이다. 그리고 거한은 죽립을 썼으니 가끔씩 보았다는 살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 그들이 찾아왔다는 것은?
진무는 빠르게 객점 안을 재차 훑으며 기감을 퍼트렸다. 나름 기세를 감추고 있었지만 진무가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 이것들 봐라?’
백표와 실랑이한다고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이곳저곳에서 손님들이 나가고 들어오기를 반복하더니 어느새 이 모양이었다.
점소이, 뒤편에서 밥 처먹는 노인네, 이 층의 남녀 등등, 하여간에 죄다 살수로 채워진 객점 내부.
참 각양각색으로 숨었다. 무슨 숨은 살수 찾기도 아니고. 들키지나 말든가.
이 정도면 동정호에서 활동하는 이름난 살수를 모조리 동원한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의 목표는 진무와 백표일 터였다.
‘허, 미친놈들이네. 백주에 버젓이 찾아와? 살수라는 새끼들이?’
진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노인과 죽립 거한이 다가왔다.
“앉아도 되겠소?”
진무가 어리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법 예의를 차린다. 싸움이 아닌 협상을 원한다는 뜻이리라.
필시 백표를 내놓으라 하겠지.
참 간도 크다.
진무의 경지는 지난밤에 팔 하나를 놓고 간 놈에게 들어서 이미 알고 있을 터. 그럼에도 이만한 살수들을 불러 객점을 채웠다는 것은 협상이 되지 않는다면 죽이겠다는 뜻임이 틀림없었다.
미친 새끼들. 지들이 뭐라고 검강의 고수를 노린단 말인가? 제대로 만나 본 적도 없을 거면서?
검강의 고수는 정사 전 무림을 뒤져도 스물을 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홀로 거대 문파 하나에 해당하는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살막 같은 거대 집단도 아니고, 양패구상을 결심하고 움직이는데 동정호에서 살수질을 하는 놈들이 떼로 검강의 고수를 노려? 이미 어디에 어떤 놈이 살수인지 죄다 알겠는데?
생각할수록 기가 찼다. 노리려면 시간이나 주지 말았어야 했다. 기감을 퍼트릴 시간, 위치를 파악할 시간.
“알고 찾아와 놓고 뭘 묻고 그래? 앉아.”
“고맙소.”
노인이 자리에 앉고, 흑립의 거한은 그 옆으로 호위하듯이 섰다.
“삼살당주 범용이오.”
“그런데?”
“…….”
진무의 반응에 범용 노인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약관에 강의 경지에 오른 눈앞의 고수. 하지만 만일을 대비해 수십 명의 살수들이 그들을 노리고 있었다.
진무의 예상처럼 협상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해서든 죽일 생각이었다.
“귀하께서 우리의 과오를 용서했다 들었소.”
“지랄하네. 수틀리면 다 죽일 수도 있어. 그냥 어제는 기분상 자비 좀 베푼 거지.”
빈정거리며 말했지만, 범용 노인은 표정 하나 구기지 않았다.
준비한 것이 있으니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지.
“삼살당은 귀하와 은원을 맺기를 원치 않소.”
“누구 마음대로? 공격은 니들이 먼저 시작했는데?”
코웃음을 치자 죽립 거한이 싸늘한 눈초리로 진무를 노려보았다.
이게 제 놈 주제도 모르고.
“하하, 이것 봐라? 해보자는 거야?”
“……!”
진무의 눈빛이 변했다.
그 순간.
쿠구구구.
엄청난 기의 압력이 죽립 거한을 짓눌렀다.
“크으.”
거악이 짓누르는 듯한 충격에 죽립 거한이 자신의 모든 내공을 끌어 올렸음에도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꽉 다문 입술 사이로 혈선이 그어지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여길 일이었다. 하지만 범용 노인은 그 살인적인 압기(壓氣)의 여파를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협상 실패. 범용은 곧바로 공격 신호를 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그 손 올리면 니들 여기서 싸그리 다 뒈지는 거야.”
살기등등한 눈빛과 함께 퍼져 나간 기운이 객점을 가득 채웠다.
“크으윽.”
“으으윽!”
이곳저곳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초립뿐 아니라 자신이 준비했던 살수들이 한 놈도 빠짐없이 진무가 퍼트린 기운에 제압되었다.
그리고 엄청난 기운을 끌어 올렸음에도 진무는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싱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이, 이런.’
이제까지 무표정하기만 했던 범용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미친 새끼. 내가 지금 장난하는 줄 알아?”
“…….”
“그렇게 우스워 보이나? 어떤 놈부터 황천길 보내 줄까? 백표 얘 뒤쪽에 있는 놈? 아니면 저쪽 옆에 있는 년?”
진무가 하나씩 짚어 낼 때마다 사색이 되었던 범용의 얼굴이 꺼멓게 죽어 갔다.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대, 대협, 무례를 용서하시오.”
범용이 급히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용서? 그래, 어제 그놈은 오른팔을 내놓던데, 니들은 뭘 줄 거지?”
진무의 살인적인 눈빛에 범용은 마른침을 삼켰다.
애초에 그를 노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검강의 고수를 만나 보지 못했던 무지가 동정호 살수들의 씨를 말릴지도 모를 사태를 초래하고 말았다.
범용은 재빨리 자신의 품에서 묵직함이 느껴지는 전낭을 꺼내 탁자에 올렸다.
“이것은 그저 제 서, 성의입니다. 허락하신다면 이 길로 살수업을 접겠습니다. 용서를…….”
“…….”
진무가 힐끗 전낭을 쳐다보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묵직한 게 내심 기분이 좋다. 생각지도 않은 공돈이 생겼지 않은가?
살수질이야 뭐 계속하든 말든 전혀 상관없었다. 백표만 건드리지 않으면.
안 그래도 백표 때문에 마차를 구해야 했는데…… 어? 잠깐.
범용, 죽립 거한. 그리고 객점 안의 수많은 살수들.
전부 나쁜 놈들이었다.
그것도 아주아주 나아쁜 놈들.
범용이 내민 전낭을 서둘러 챙기고 백표를 힐끗 쳐다본 진무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씻은 듯 사라지는 압박감.
곳곳에서 막혔던 숨이 터져 나온 뒤, 진무의 나긋한 말이 이어졌다.
“좋아. 두 가지 요구 조건만 들어주면 서로 없었던 일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범용은 속으로 안도했다.
목숨은 건졌다.
“예? 그게 무엇인지?”
“하나는 더 이상 백표에 대해 신경 쓰지 말 것.”
이 마당에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또 하나는 아주 사소한 거야. 사소한 거. 그냥 모기한테 물려서 피 좀 빨렸다고 생각하면 돼.”
“……?”
* * *
진무가 동정호를 지나던 그때, 용봉회의 개최로 전 무림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정무맹 예하 모든 문파의 시선은 무한에 집중되어 있었다.
용봉회에 참가한 자들은 대부분 각 문파의 이대제자거나 차남이었기에 그 나이가 적게는 십 대 후반에서 많아도 서른을 넘지 않았다.
즉, 차세대 후기지수들이라는 뜻이다. 이미 두각을 드러내며 알려진 자들과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자들.
용봉회에 자신들의 제자와 자식들을 참가시킨 이들은 각종 정보 조직을 동원해 참가자들의 신상 정보를 모으고 서열을 매기기 시작했다.
용봉회의 목적 자체가 용봉관에 입관할 무생들을 단계별로 선발하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그 지위 고하와 파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참가한 무인들의 급수는 소정의 시험을 통해 갑을병정(甲乙丙丁)의 네 단계로 나누어졌고, 이는 곧 용봉관에서의 수련 연차가 된다.
기초 단계인 정무반(丁武班), 연마 단계의 병무반(丙武班), 심화 단계의 을무반(乙武班).
그리고, 최상위이자 용봉관의 핵심이라 불리는 갑무반(甲武班).
다른 곳과는 달리 갑무반에 선발되는 무인은 오직 여덟.
그렇기에 다른 이들과 완전히 대접이 달랐다. 수련 방식은 물론 기본 대우부터가 달랐고, 무엇보다 그들을 수련시키는 교관들의 이름이 상상을 초월했다.
특히 갑무반의 무인 중 일부는 용봉관주 등여평에게 직접 무공을 사사할 수 있었으며, 그중 가장 뛰어난 자는 검성 철지량의 가르침까지 주어질 예정이었다.
어디까지나 소문이었지만 정무칠성이 직접 무공을 사사한다는 말도 은밀하게 돌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갑무반에 선발된다는 것만으로도 해당 문파에게 삼생의 영예가 될 것임이 분명했다.
때문에 나름 이름 좀 있다는 자들 모두가 갑무반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치열하게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 * *
“저쪽은 화산의 현선입니다. 이대제자임에도 벌써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을 익혔습니다.”
제갈산산의 말에 청상이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람은 해남의 이백의라는 자인데 해남일검류(海南一劍流)를 익힌 쾌검수입니다.”
“그렇군요.”
“구파는 이미 저 둘에 의해 남과 북으로 갈려 파벌이 형성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예.”
“그리고 저쪽 창천의(蒼天衣)를 입은 자가 남궁창위입니다. 그 옆이 황보웅이구요. 오대세가는 저 둘을 중심으로 또 다른 파벌이 생길 겁니다.”
용봉회가 시작된 지 이틀 차.
참가한 무인들의 등급을 정하는 시험이 시작되었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제갈산산은 연무장에 모인 사람들을 하나씩 가리키며 그들의 신상과 성격, 무공 내력까지 상세하게 설명했다.
한둘이 아니었다.
이름 있는 문파에서는 최소 다섯에서 열 명에 달하는 인원을 용봉회에 참석시켰기에 그들의 신상을 모두 꿰듯이 안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단하십니다. 그 많은 것을 어찌 그리 다 아십니까?”
“하하, 제갈가는 학사의 가문입니다. 이 정도는 조사를 해 둬야 남들보다 뒤떨어지는 무공의 격차를 줄일 수 있죠.”
“와, 정말 대단하네요. 제갈소저께서 그리 말씀하실 정도로 저들이 그리 대단하다니. 사숙께서 항상 저희들에게 모자란다 타박하신 데는 이유가 있었군요.”
청우가 제갈산산의 말에 눈을 휘둥그레 뜨며 감탄한다.
하지만.
‘격차라…….’
청상은 빙긋이 웃기만 했다.
제갈산산의 말은 겸양에 불과했다. 그녀의 무공은 자신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다.
세속에 관심이 없다 해도 현기의 경지가 얼마나 대단한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가장 신경을 써야 할 것은 이 여인이구나.’
제갈산산의 눈빛에 어린 자부심. 스스로 강하다 생각하는 자들만이 가지는 눈빛이었다.
“청우야.”
“예, 사형!”
“사숙께선 표주를 떠나셨다.”
“압니다.”
“지금의 정무맹에 무당의 이름을 대표하는 것은 너와 나 둘뿐이다.”
“…….”
“무당은 물론 사숙과 오룡궁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행동하거라.”
“예!”
청우의 대답에 제갈산산이 묘한 눈빛으로 청상을 바라보았다.
‘또 한 명의 천재라는 것인가? 흠, 당대 무당에 복이 많구나.’
제갈산산이 바라보는 청상은 그랬다.
흔들림이 없는 자. 차분하고 냉정한 자.
진무라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 괴물에 의해 그 빛이 가려져 있었을 뿐.
그의 무위에 대해서는 이미 겪어 알고 있었다.
자신과 용봉관주 등여평만이 알고 있는 청상과 청우의 수준.
그들은 이미 나름 유명세를 타는 이들과도 엄청난 격차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나 청상은 약관에 현기를 깨달은 천재 중의 천재였다.
분명 금번 용봉회에서 일대 파란을 일으킬 것이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