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87
87화
사이한 빛으로 물든 눈깔이 매섭게 빛났다.
스스슷.
빠르다.
지독한 쾌도라고 표현함이 마땅하다.
또한, 도의 움직임에 처음과 끝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그 흐름이 자연스러웠다.
짧게 파고든 검이 순식간에 가죽과 근육 사이를 가른다.
“……아!”
지켜보던 진무는 절로 감탄사를 뱉으며 손뼉을 쳤다.
볼수록 대단한 도법이었다.
촤촤촤촤!
마치 옷이 벗겨지듯이 가죽이 분리되고 부위별로 살이 잘려 나간다.
얇게 썰린 고깃점이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진무 앞에 내밀어졌다.
“와!”
눈앞에 놓인 선홍빛의 자태에 진무가 떨리는 손으로 젓가락을 가져갔다.
쯔압. 쯔압.
어?
이, 이게 정말?
진무의 동공이 잘게 떨렸다.
이것이 진정 늘 청상과 청우를 데리고 구워 먹었던 멧돼지 고기란 말인가?
핏기를 머금었으되 잘린 방향마다 결이 살아 있으니 그 풍미가 어떠한 음식보다 뛰어났다.
“대단해!”
진무는 놀란 눈빛을 감추지 못하고 탄성을 질렀다.
머릿속에서 펑 하고 폭죽이 터지는 것만 같았다.
“크크크.”
사이한 웃음소리.
진무의 칭찬에 잔인한 송곳니가 드러날 정도로 웃으며 칼날에 묻은 피를 혀를 핥아 내리는 백표.
채기법으로 멧돼지의 기운을 빨아먹고 난 뒤 그 육신을 썰어 낸 그는 흔하디흔한 고깃점을 천하일미로 바꾸어 놓았다.
굽지도 않고.
이게 정녕 육회의 맛인가?
사악한 표정으로 자신이 고기를 대접하겠다던 그를 의심했던 것이 내심 미안했다.
이놈은 진짜다.
도법이 가히 천하제일이었다. 분명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만큼 뛰어날 것이다.
그는 정말이지…… 천하제일의 발골사.
진무는 감동한 표정으로 양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크크크.”
사악하기 짝이 없는 웃음소리가 영 거슬리게 귓가에 맴도는 것만 빼면.
평소에는 명문 정파 어쩌고 하면서 점잔을 빼는 놈이 채기법만 하고 나면 사악한 성격으로 변한다.
무턱대고 칼을 드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뭐 어떠랴?
맛있는데.
이런 식이라면 멧돼지 한 마리를 혼자 먹어도 될 것 같다. 역시 이놈을 데려다주기로 결정한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어떻습니까? 은공.”
어떻긴. 눈물 안 흘렀냐? 감동받아서 울 지경이다.
“크크크, 본가의 난파풍도의 장점입니다. 결을 따라 흐르니 적들은 목숨을 잃고 나서야 칼에 맞은 것을 알게 되지요.”
굳이 그렇게 싸늘한 살기를 풍기며 자랑할 것은 아니었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 주자.
“크크크, 그럼 다음은.”
백표가 고기 한 점을 미리 달구어 놓은 돌 위에 올렸다.
치이익!
순식간에 겉면이 익어 가고 고소한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침이 저절로 넘어갔다.
“……아!”
저 끓어오르는 육즙. 먹고 싶다.
막 진무가 참지 못하고 젓가락을 가져가는데.
“하, 이게 뭐야?”
어디선가 들려오는 텁텁한 목소리.
“어디서 고기 굽는 냄새가 맛있게 퍼진다 했더니, 이 자식들 감히 우리 앞마당에서 허락도 받지 않고!”
짐승 가죽을 기워 대충 옷처럼 걸친 다섯 명의 사내들이 나타났다.
흔히 사람들이 녹림이라 부르는 자들.
참 시기적절하다. 이 망할 놈의 중원은 어째서 산자락마다 산적 떼가 출몰을 한단 말인가.
“두령님. 고깃값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암, 이 산에 사는 건 죄다 우리 것이니 받아야지.”
지랄도 풍년이다.
하지만 그딴 놈들 신경 쓸 게 뭐란 말인가?
눈앞에서 고기가 익어 가고 있는데.
그리고.
“어이, 거기 술이냐?”
진무가 산적 중 하나의 손에 들린 도자기 병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어.”
너무도 당당한 말투에 산적이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역시 바늘에는 실! 고기에는 술이다!
진무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그들은 불쌍한 민초의 돈이나 뜯어먹는.
“산적이지?”
“…….”
“나쁜 놈들이네.”
뜬금없이?
“백표.”
“예. 은공!”
진무가 부르기도 전에 백표는 사악한 눈빛에 살기를 줄기줄기 뿜어내며 방금까지 고기를 저미던 칼을 움켜잡았다.
“빨어.”
파앙!
허락과 동시에 그가 핏빛 야수처럼 산적들을 덮쳐 갔다.
사악하기 그지없는 놈.
말리지 않으면 포를 뜨고 뼈와 살을 분리할 것이 틀림없다.
“죽이진 말고…….”
산적을 걱정하는 듯 말하면서도 진무는 고기에서 눈조차 떼지 않았다.
“녀석들에게도 나중에 먹여 주면 좋으련만. 혹시 이 사숙을 걱정하는 것은 아닌지.”
진무가 이제 막 용봉회가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사질들을 떠올렸다.
청상아, 청우야, 걱정 말거라.
이 사숙은 고기 끝내주게 잘 먹고, 나쁜 산적들을 혼내 주면서 즐겁게 가고 있으니.
진무에겐 맛난 고기.
백표에겐 잘 차려진 생기.
그리고 산적들에게는 억세게 재수 없는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 * *
취리릭! 땅!
날카롭게 뻗어진 검이 목표의 반격에 부딪혀 튕겨 나갔다.
“탈락!”
시험관의 매서운 일갈에 응시생의 표정이 애처롭게 변하고 어깨가 축 늘어진다.
용봉회의 이 차 시험이 시작되었다.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정무반의 시험이었기에 이틀이라는 시간이 쉴 새 없이 지나갔고, 미리 통과한 이들은 긴 휴식을 끝내고 병무반 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쯧쯧, 초식의 활용도가 어찌 이 모양인가? 이거 원 수준 떨어져서는.”
병무반 총 교두 한태석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정무반의 시험은 총 세 가지였다. 내력, 기초 진법, 기본 학식.
말 그대로 기초만 되는 이들을 뽑는 것이다. 그럼에도 반절이 떨어져 나갔다.
일단 어중이떠중이는 걸러진 셈이었다.
그리고 이어 두 번째, 병무반에 뽑힐 자들부터는 본격적인 무공 실력에 대해 평가가 이루어졌다.
각자가 익힌 무공 초식을 얼마나 능숙하게 활용하느냐.
그런데.
“쯧쯧, 아주 형편없구만!”
한태석은 짜증이 났다.
이런 식으면 죄다 정무반으로 돌려보내야 할 판이었다.
“저기, 총교두님.”
“뭐야?”
“이게 좀.”
병무반 교두 중 하나인 장팔상이 응시생들이 작성한 신상 정보 하나를 슬쩍 들이밀었다.
“뭔데 그래?”
“무당의 제자입니다.”
“무당? 근데?”
“이게 성적이…….”
장팔상의 말에 한태석이 빼앗듯이 신상 정보를 받아들었다.
무당파 이대제자 청우.
기초 진법, 낙방.
기본 학식, 낙방.
“뭐야 이거? 이런 멍청한 새끼가 병무반에 어떻게 올라왔어? 무슨 무당 장문인 제자야? 든든한 집안 출생이라도 돼?”
어이가 없었다.
세 가지 시험 중 두 가지를 낙방했는데 병무반 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주다니.
“남 교두가 무조건 응시하게 해 달라고 하도 부탁을 해서 일단 보결로 응시하게는 했는데.”
“남로환이?”
“예. 다른 건 몰라도 내력이 수준급이랍니다.”
“수준급?”
“예. 정무반 시험에서 철판을 아예 뚫어 버렸다는데요?”
“…….”
장팔상의 말에 한태석이 조금 놀란 표정으로 고민하다가.
“흠. 좋아. 데려와 봐.”
“예!”
한태석의 말에 장필상이 즉시 대답하고 뛰어갔다.
잠시 후 그가 데려온 세 명의 무인.
힘이 잔뜩 빠져 울상을 짓고 있는 뚱뚱한 청우의 뒤를 따라 청상과 제갈산산이 함께였다.
“힘내요. 그래도 보결이 어디예요.”
제갈산산은 청우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를 했고.
“쯧, 어찌 이리도 멍청하단 말이냐! 어찌 이리도 공부를 게을리했어. 낙방이라니, 사숙의 이름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지.”
청상은 싸늘한 표정으로 나무라고 있었다.
“야, 왜 셋이냐?”
한태석이 짜증스럽게 장팔상을 쳐다보았다.
“그게, 청우는 특별 시험 격이고 나머지 둘은 아직 차례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 잘됐네. 셋 다 내가 시험하지.”
“총교두께서요?”
“그래. 다들 바쁘니까.”
“알겠습니다. 하면 순번을 조정해 놓겠습니다.”
장팔상이 물러가고 한태석이 청우를 불렀다.
“네가 보결, 청우냐?”
“예. 무당의 이대제자 청우입니다.”
힘이 쭈욱 빠진 목소리.
청우는 보결이라는 말에 더욱 울상이 되었고, 제갈산산은 다시 위로를 건넸으며, 청상은 눈을 질끈 감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뭐, 자신감 잃은 아이를 위로하는 엄마와 못마땅해하는 아빠의 느낌이랄까?
무당 제자와 제갈세가의 딸. 참으로 특이한 조합이었다.
호북을 두고 무당과 제갈이 이어 온 경쟁 관계는 무림의 모두가 아는 사실이거늘, 어찌 저리 친근해 보인단 말인가?
그런데 어째 주변의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병무반의 시험을 치르러 온 이들이 그들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아직 시험을 치르지 않은 이들은 물론, 한창 시험 중인 이들까지 집중하지 못하고 그들을 힐끗거리는 것은 어째서인가?
‘하긴, 철판을 뚫었다고 했으니. 뭐 확인해 보면 되겠지.’
한태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청우.”
“……예. 사형.”
“언제까지 죽을상을 할 것이냐? 사숙의 가르침을 허사로 만들 셈이냐? 다시 뵈올 때 부끄러워서 얼굴이나 들겠느냐?”
“…….”
“위축되지 말고 가진 바 최선을 다하라.”
청상의 질타 어린 응원에 청우가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한태석의 앞으로 나섰다.
청상의 말이 맞다.
지금 떨어져서는 진무를 볼 낯이 없다. 아니, 그 이전에 사숙의 성격이라면 분명 죽도록 맞을 것이 틀림없었다.
청우가 자세를 취하자 한태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뒤뚱거리며 나서는 움직임이 흡사 공 구르는 듯하다. 무공을 익혔는지도 의심이 갈 만큼 둔한 모습. 하지만 시험은 치러야 하니.
“남로환 교두의 부탁으로 특별히 치러지는 시험이다. 본래의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으니만큼 허투루 치를 수는 없는 일. 해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내 직접 확인할 것이니 준비하라.”
“예!”
청우가 실눈을 살짝 치켜뜨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시험은 간단하다. 나의 허리에 묶인 붉은 끈을 빼앗으면 된다. 자신 있는 무공을 택하라.”
“무당의 칠성권입니다.”
“칠성……권.”
“가장 자신 있는 무공입니다. 저는 이것만 배웠고 이것만 익혀 왔습니다.”
그 말에 한태석의 얼굴이 살짝 찡그려졌다.
너무 유명한 무공이다.
동네 무관 꼬마에게 무엇을 배우냐 물으면 삼재검과 육합권을 한다는 것처럼 칠성권은 무당 권법의 기초였다.
상승 무공이 아니라 칠성권만 배우고 익혔다 하니…… 알 만하다. 이런 자를 내공 좀 강하다고 특별 시험까지 보게 하다니.
약간이나마 기대했던 한태석의 얼굴에 실망감이 어렸다. 그것은 잠시나마 집중해서 보고 있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실망스러웠다. 분명 어디서 영약 비스무리한 쪼가리 하나 먹고 내력이나 급하게 키워서 왔겠지.
이런 준비되지 않은 이대제자를 보내올 정도니 무당이 망하고 있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라 생각했다.
“해 보게.”
“예!”
한태석은 오른손을 뒤로 돌렸다. 실력의 격차가 있으니 한 손만 사용할 생각이었다.
병무반의 시험에서는 내력 사용이 금지되어 있었다. 순수하게 무공을 얼마나 열심히 익혔는가, 초식을 얼마나 참오하여 연마하였는가를 확인한다.
아무리 강한 무공을 익혔다고 해도 초식을 제대로 응용하지 못하면 한태석의 허리춤에 있는 붉은 끈을 빼앗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후우.”
청우가 가볍게 숨을 고르며 첫 초식의 자세를 잡았다.
그러곤.
파앙!
“……!”
뒷발이 지면을 강하게 밀어 내는 순간 공기가 터져 나가고, 청우의 몸이 순식간에 한태석을 향해 쇄도했다.
‘어헛! 뭐가 이리도 빠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