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9
9화
“헛!”
비록 완전히 들어 올리지는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효과는 충분했다.
청상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딱 벌리고 있었고 직접 해낸 청우는 환희에 찬 표정이었다.
그저 자세만 바꾸어 주는 정도로 생각했겠지.
청우의 명문에 손을 대었을 때, 진무가 슬며시 자신의 내공을 전해 준 것은 알지 못할 것이다.
누가 그랬던가. 손은 눈보다 빠르다고.
“사숙!”
딱!
“아얏!”
“돌 하나 움직여 놓고 좋아하기는. 제대로 들지도 못했잖아.”
“…….”
약간의 허세.
청상은 더욱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청우야.”
“예!”
“이제 잡아 와라.”
“뭘요?”
누가 저 새끼 눈치 좀 어떻게 못 하나.
“……토끼.”
“아! 예!”
청우가 초급 수준의 제운종을 시전해 숲속으로 뛰어들고 난 다음, 진무는 대충 흙을 밀어 바위를 빼낸 곳을 메꿨다.
청상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이미 놀라움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직이다. 몸이 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먼저 말을 걸면 지는 것이다. 그걸 아는지 청상도 쉽게 말을 걸어 오지 않았다.
흐흐, 어린놈의 도사 새끼. 내가 네놈 머리 꼭대기에 있다, 이놈아.
진무는 여유롭게 나무를 모으고 모닥불을 만들었다.
타닥, 타닥.
불이 탈 때쯤 청우가 토끼 한 마리를 잡아 왔다.
그리고.
능숙하게 나무에 걸어 불 위로 올렸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고기의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 코끝을 자극했다.
“사숙, 다 익은 것 같은데…….”
네가 더 몸이 달아 있으면 어떡하냐, 청우야.
진무는 침까지 질질 흘리는 청우를 무시하고 청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휙.
진무와 눈이 마주치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으나 목울대로 침 넘어가는 모습이 선명한 게, 내심 귀엽기까지 했다.
좋아, 반쯤 넘어왔다.
“먹을래?”
“아니요! 제자가 되어 어찌 선대께서 정한 십계를 어긴단 말입니까!”
짜식. 청우와는 달리 제법 대가 있다. 육식을 해도 된다고 발표까지 난 마당에 저리 거절을 하다니.
“그래? 흠, 희한하군. 육식을 하고 나면 청우처럼 훨씬 힘이 좋아질 것인데…….”
“…….”
살짝 놀라는 표정.
흐흐흐, 그래, 차근차근 넘어와라. 나의 타락 수하 이 호야.
청상은 토끼가 뼈만 남길 때까지 고개 한번 돌리지 않았다.
“자, 그럼 수련을 시작해 볼까?”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청우가 토끼 잔해와 모닥불을 치우고 난 뒤.
“어이, 거기 청상. 그냥 서 있으면 심심할 텐데, 어디 청우랑 대련이라도 해 볼 테냐?”
“예에?”
청상의 얼굴이 굳어지고, 청우의 눈은 동그래졌다.
“말도 안 됩니다. 청상 사형은 저와 비교할 수 없이 강합니다. 이미 유운검을…….”
“유운검?”
청상을 향해 피식 웃어 주고 쐐기를 박아 넣는다.
“청우야. 네가 이겨.”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는 말에 청상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린 채 진무를 노려보았다.
청우가 자신을 이길 것이라고?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었다.
무당의 도명(道名).
그 이름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았다.
흔히들 무당의 제자를 구분하는 일대(一代), 이대(二代), 삼대(三代)와 같은 세대 구분.
같은 시기에 도적에 이름을 올리더라도 도명을 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의 구분은 명확했다.
도명을 받았다는 것은 직계를 뜻한다. 즉, 무당의 상승 무공을 익힐 자격을 받은 자다.
과거 무당이 성세를 이룰 때도 도명을 받은 제자는 수뇌에서부터 삼대를 아울러 수백을 넘지 못했다.
하물며 몰락해 가는 지금은 고작 백 명이 채 되지 못했다.
도명을 받았다는 것은 그 자질과 실력을 무당이 인정하고 있음을 뜻했다.
물론 청우 역시 도명을 받은, 그리고 자신과 같은 ‘청(淸)’자 배 항렬의 제자였다.
하지만.
‘청자 배에서도 최하위. 이제 막 무형지기(無形之氣)를 발현하는 청우가 이미 충검(充劍)을 넘은 나를 이긴다고?’
충검이란 검에 기를 담는 것을 말한다.
일대제자들의 눈에는 그리 대단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충검에 이른 무인은 이대제자들 사이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인정을 넘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말일진대, 저 확신에 찬 진무의 표정은 뭐란 말인가?
비록 진허를 이겼다고 하지만 직접 본 것은 청우뿐이었다.
즉, 진무의 실력은 무당의 고수 중 아무도 제대로 본 사람이 없었다.
‘명진 사조의 도동이었던 자.’
하지만.
들리는 바에 의하면 무당의 검공을 변형시킬 정도로 재능이 뛰어나다 했다.
십계를 어겼음에도 고작 해검지 마목 보수라는 징계 같지도 않은 징계를 받았다.
존장과 장로들의 인정을 받은 자. 그리고 눈앞에서 고작 자세만 바꿔 준 것으로 청우가 저 바위를…….
청상의 시선이 진무가 타고 앉은 바위에 닿았다.
“어때? 해볼 거야?”
“…….”
청상은 가늘어진 눈으로 진무를 노려보았다.
“거, 새끼. 얼굴 뚫리겠네. 왜? 쫄리냐? 질까 봐?”
자신보다 한 살이 어린 사숙.
도문에 몸담았다는 자의 말투가 시정잡배와 다름없다.
“제가 그리 우스워 보입니까?”
“어.”
단호하다.
그 단호함에 저도 모르게 어금니가 절로 갈리고 눈에서 불길이 일었다.
“청우는…….”
“칠성권(七星拳)을 익혔지.”
적수공권(赤手空拳)이라는 말이다. 청우는 아직 검공을 모른다. 아니 배우지 못했다.
“잘 아시는군요.”
“그럼. 누구보다 잘난 내가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데.”
“한데도 저와 대련을 시키겠다는 말씀입니까? 저는 유운검법을 익히고 있습니다.”
“근데?”
“…….”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다.
무엇을 익히고 있는가는 일대제자들은 몰라도 입문 단계의 이대제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아직은 자신이 익힌 무공 이외에는 사용할 수 없다.
즉, 어떻게 해도 청우와 자신의 대결은 검과 권의 대결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너 설마? 무기 하나 쥐었다고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
“…….”
“유운검법 오 성? 풉!”
누가 봐도 비웃음 가득한 표정.
“청우가 이긴다니까.”
대놓고 자신을 무시하는 진무의 말에, 청상이 한기를 풀풀 날리며 매섭게 째려보았다.
청우는 계속 좌불안석인 표정이었다.
“내 검에는 눈이 없소.”
내? 없소? 이 새끼가 속 좀 긁었다고 말 자꾸 짧아지는 것 봐라.
“허세는……. 누가 들으면 무당 최강의 고수인 줄 알겠다.”
“…….”
“할 거야?”
“좋소!”
청상이 콧김을 뿜어 대며 근처에서 쓸 만한 나뭇가지를 구해 들었다.
“어? 너 뭐 하냐?”
“왜! 뭐 문제 있소?”
진무가 당연하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청상의 허리를 가리켰다.
진검.
“하, 사형제와의 싸움에 진검을 쓰라고?”
“그래야 하지 않을까?”
“됐소!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사형제 간에 진검을 쓰는 것은 십계로 엄격히 금하고 있음이오.”
“또 십계냐? 쯧, 후회할 텐데…….”
“시끄럽소!”
하나하나 발끈하는 모습이 역시 꽤 귀엽다.
“뭐, 좋아.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다.”
“흥!”
청상의 모습에 빙긋이 웃은 진무가 청우를 불렀다.
“청우야.”
“예?”
진무는 청우의 귓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요렇게 해서…… 이렇게. 그다음엔 요렇게…….”
“……!”
듣고 있던 청우가 얇은 눈을 깜박거렸다.
“지, 진짜요?”
청우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자 진무가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게 가능한…….”
“이 자식이 자꾸. 야, 너 진짜 나 못 믿어?”
“믿습…….”
“그럼 해.”
“……예.”
청우가 어깨가 축 늘어뜨리며 앞으로 나섰다.
“청우야.”
“예?”
“가르쳐 준 대로 안 하면 뒈진다.”
진무는 친절하게 움켜쥔 주먹을 청우의 눈앞에 대고 살살 흔들자 청우의 표정이 핼쑥해진다.
이미 맞아 본 경험이 있으니.
“그리고 지면 앞으로 고기는 없을 줄 알아.”
“예……? 헉, 옙!”
‘고기.’라는 말에 청우의 눈빛이 달라졌다.
역시 인간에게는 동기 부여가 필요한 법이지, 암.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진무가 흐뭇하게 웃으며 팔짱을 끼는 동안 청우가 자세를 낮추고 두 주먹을 앞으로 뻗은 기수식을 취했다.
청상이 보기에는 그저 그런 초식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작하기 전에 있었던 진무의 귓속말. 무슨 말을 해 준 것일까?
칠성권(七星拳)을 익히지는 않았으나 기본적인 투로나 공격의 방향은 청자 배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칠성권의 핵심은 발경(發勁).
대성하면 발경만으로 집채만 한 바위도 부술 수 있다.
‘하나 대련이다. 청우의 초식 운용은 아직 모자람이 많다. 하물며 청우에게 발경은 무리!’
청상은 비웃음을 가득히 머금고 검을 가볍게 돌려 기수식을 취했다.
괜히 왔다.
뭔가 혹시 얻을 게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올라가자.
그 전에 이 물정 모르는 어린 사숙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청우와 청상이 서로를 노려보며 기세를 끌어 올리는데.
“야, 니들 뭐 하냐? 안 하냐?”
“…….”
턱을 괴고 앉은 진무의 말에 청우의 신형이 북두보(北斗步)를 밟았다.
쿵!
거칠게 지면을 밟은 청우가 단숨에 전진해 왔다.
‘허!’
생각보다 움직임이 빠르고 좋았다.
도저히 청자 배의 최하위 실력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간결한 움직임이었다.
근래 진무에게 배우고 있다더니 꽤나 효과가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북두의 움직임에 따라 전진해 변화가 시작되는 자리.
‘지금! 맥을 끊는다.’
청상의 손에 들린 나뭇가지가 구름이 흘러가듯 부드럽게 휘었다.
산중을 흘러가는 구름처럼 슬쩍 물러났다 뻗어진 나뭇가지가 청우의 몸을 감싸…….
사라졌다.
분명 문곡의 자리에서 공격이 시작되어야 했다.
그랬어야 하는데.
뒹굴.
“……!”
굴렀다.
앞구르기를 하듯이 굴러 검격을 피한 청우가 청상의 측면에서 솟구쳐 올랐다.
‘나, 나려타곤?’
구르기에 이어 펼쳐진 칠성권의 기본 권각, 승룡퇴(乘龍退).
퍽!
다급히 펼쳐 낸 검을 물리며 솟구친 발을 막아 낸 팔꿈치가 시큰거렸다.
그리고 또 구른다.
청상이 다급히 방향을 틀었지만 이미 옆으로 구른 청우가 몸을 솟구치며 연환 타격을 펼쳤다.
퍽, 퍽, 퍽!
강렬한 주먹이 연신 그의 옆구리를 노리고 들어온다.
노리는 곳은 검을 든 손 쪽.
교묘하다.
아무래도 검을 들고 있으니 방어가 자유롭지 못했다.
다섯 번의 공격 중에 두 번이 옆구리에 적중되었다.
생각보다 청우의 공격이 날카롭고 빨랐다.
‘크윽……!’
강하진 않았지만, 얼굴이 찡그려질 정도는 되었다.
무인, 아니 명문의 제자가 되어 나려타곤을 펼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고.
더욱이 검을 쥔 손의 측면을 집요하게 노려 오자 공격은커녕 방어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청상이 당황하고 있는 동안 청우도 사력을 다해 열심히 구르고 있었다.
진무가 속삭인 것은 유운검의 공략법.
청우야. 굴러.
무조건 검을 쥔 손의 측면으로.
뜬금없이 구르라니?
그런데 먹힌다!
그 대단해 보이던 청상이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공격을 위해 솟구치는 청우를 막아 낸 청상의 동작이 커졌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한 탓에 부드러워야 할 유운검에 과도한 힘이 실렸다.
바로 진무가 말한 순간이었다.
쿵!
청상의 좌측을 잡은 청우의 오른발이 지면을 눌러 밟고 상체가 비스듬하게 선다.
어깨와 등.
철산고(鉄山靠)였다.
쩌어엉!
청상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크게 다섯 걸음이나 밀려나 겨우 중심을 잡았다.
“…….”
마지막 순간 가까스로 허리를 비틀며 청우의 목덜미를 찌른 나뭇가지는 손잡이만 남기고 박살이 났다.
졌다. 진 것이다.
연속해서 구르는 동작으로 유운검법의 공격이 무력화되었다.
한동안 멍한 표정을 지은 청상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져, 졌…….”
따악!
“아극!”
청우가 두 손으로 제 이마를 잡고 얼굴을 찡그렸다.
“이런 멍청한 자식!”
진무가 청우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