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94
94화
타닥, 타닥.
진무와 백표가 여유롭게 앉아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던 시간. 깊어 가는 밤에 취해 가던 그때, 백가장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갑작스러운 비에 빨래 걷는 아낙처럼 부산스럽게 움직였고 이곳저곳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백표가 바삐 지나가는 후원의 무인을 불러 세우자 짜증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패력당으로 사파의 무인들이 대거 모이고 있다는 전갈이오.”
가문으로 돌아온 장자에 대한 말치고는 무척이나 거슬리는 어투였으나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어차피 지금의 백가장에서 그를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
“뭐라고? 어째서?”
“어째서라니? 당연하지 않소. 그 망할 놈들이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 말이오!”
“……!”
이해가 안 되었다.
낮에 진무의 무위를 보았음에도 공격을 감행할 생각이란 말인가?
“이런! 장주는 어디에 있나?”
“지금 장로님들과 긴급회의를 시작하셨소. 바쁘니 그만 놓으시오.”
“망할.”
백표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모습에 진무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도 하지.
굳이 자세하게 살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과거에는 자신의 앞길을 막을 정도로 위세가 당당했으나 지금의 백가장의 세력은 너무 약했다.
그에 반해 패력당의 세는 강하다. 낮에 객점에서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꼭 수가 많은 것이 승리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일 층에 있던 패력당의 무인이 배는 더 많았다.
그리고 고수의 질에서도 차이가 났다.
그리고.
‘그 목인겸이라는 놈.’
진무는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패력당과 백가장의 수뇌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기운을 버텨 낸 놈이었다.
‘한데 생각해 보니 조금 익숙했단 말이야. 분명히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하지만 무림에서 활동한 것이 이 년이 되지 못하는 진무가 만난 사람들이라고 해 봐야 너무 뻔하지 않은가?
그런데 어째서 익숙할까?
얼굴이 아니라 그…… 느낌? 그런 무공?
그 순간 진무가 일그러진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그 새끼들!”
무월루의 노인네. 그리고 형주 인근에서 어린 소녀를 노렸던 놈들.
그놈들이다.
“아, 젠장! 왜 몰랐지?”
진무가 갑자기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리자 백표가 슬쩍 쳐다본다.
뭘 잘못 처먹었나? 지금 백가장이 공격받게 생겼는데 웃음이 나오냐?
백표가 언짢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고 쳐다보는데 진무가 자신의 검을 챙기기 시작했다.
“은공? 어딜 가시려고?”
이런 중요한 때에!
“패력당.”
“……예에?”
이건 또 무슨 개소린가 싶다. 갑자기 패력당은 왜 간단 말인가?
아니 잠깐, 설마 자신들을 돕기 위해서?
맞다. 분명 그럴 것이다. 객점에서도 백가장을 도와주지 않았던가.
지금의 백가장이 저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들의 세력권에 있는 군소 방파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패력당으로 간다는 것은 저들의 공격을 늦추려는 생각이 분명하다. 백가장에게 시간이라도 벌어다 줄 셈인 것이다.
아, 은공…….
갑자기 너무도 감격스러웠다.
“지금 즉시 무인들을 준비하겠습니다.”
“…….”
결연한 표정으로 투기를 피워 올리는 백표의 모습에 진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응? 왜? 혼자 갈 건데.”
“예?”
혼자?
진무가 강하다는 것은 안다. 그는 검강의 고수였고, 능히 일문을 상대할 수 있는 무공을 지닌 자였다.
하지만 패력당이 전쟁을 시작한 이상 저쪽에 분명 수많은 고수가 포진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만약 진무가 백가장을 돕기 위해 간다면 절대로 홀로 보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무인들을 편성해서…….
“간다.”
“아, 아니, 무인들을…….”
백표가 말을 채 마무리 짓기도 전에 산보라도 가듯이 손을 흔든 진무는 이미 몸을 날리고 없었다.
“이, 이런…….”
미친 은공이?
다급해진 백표는 지나가던 무인을 서둘러 불러 세웠다.
“은공께서 패력당으로 가셨다. 내가 뒤따를 테니 적의 습격에 대비해 본진의 경계를 튼튼히 하라고 전해!”
무인대를 편성할 시간이 없었다. 이렇게 되면 자신만이라도 진무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
제 할 말만 마치고 몸을 날리는 백표의 말을 곱씹던 무인은 눈을 끔벅거리며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둘이? 그 험한 델? 뒈지려구?
* * *
“뭣이?”
후원 무인이 전한 말에 장로들과 대책을 논의하던 백여린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패력당으로 갔다. 그것도 둘이서.
‘망할, 나이가 어려서 아직 사리 판단이 안 되는가.’
어찌 이리도 멍청하단 말인가?
오라비가 데려온 손님은 분명히 고수였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을 과신한다고 해도 적의 본진을 둘이서만 쳐들어가다니.
자신이 무슨 절대를 걷는 검강지경의 고수라도 된다 여기는 걸까?
자만이며 오만이다. 쓸 만하다 싶었더니 고작 혈기만 믿고 날뛰는 애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오라비까지 함께라니.
멍청한 것들이 쌍으로 생각 없는 짓을 저지르고 있었다.
“장주님, 어찌할까요? 은인께서 본진의 경계를 강화하라고 했다 하니.”
“멍청한 소리!”
외당 장로의 말에 백여린이 날카롭게 질책했다.
적의 의도를 파악하고 적절한 대처를 생각해도 모자랄 촉박한 시간이었다. 그 짧은 시간마저 오라비와 손님으로 인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머뭇거릴 틈이 없어졌으니 당장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십 년 만에 돌아온 혈육이 아닌가? 아무리 쓰레기 짓을 한다고 해도 적진에서 죽게 둘 수는 없었다.
“지금 즉시 무인대를 편성합니다. 각 장로는 스물씩을 데리고 패력당을 다섯 방향으로 산개하여 공격합니다. 중심은 제가 맡습니다. 대장로께서는 본진을 경계해 주십시오.”
“예! 장주님!”
장로들이 재빨리 대답하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장주님.”
뒤따라 일어나려던 백여린을 사마소가 불러 세웠다.
“패력당은 제가 다녀오리다.”
“예?”
“어찌 일문의 주인이 함부로 움직일 수 있단 말입니까? 주인이라면 마땅히 본진을 지켜야 합니다.”
“대장로.”
“잊으셨습니까? 십 년 전의 한을?”
“…….”
“전대 장주께서도 제일 앞자리에 나섰지요. 제가 그 모든 것을 지켜본 사람입니다. 다시 반복할 수는 없습니다.”
“…….”
대장로 사마소. 그는 십 년 전 백가장 혈사 때 장로들 중 막내인 자였고, 장로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였다.
그는 지금도 그때 자신이 다른 이들과 함께 죽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장주님.”
사마소의 부름에 백여린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대공자를 너무 미워하지 마시오. 그 역시 간악한 천우명으로 인해 그리된 것뿐이니.”
“…….”
잘 안다.
돌아온 그의 모습이 실망스러웠다고는 해도, 십 년 전까지의 백표는 누구보다 듬직한 백가장의 후계자였으며 자신에게는 둘도 없는 오라비였다.
그렇기에 지난 십 년간 찾고 또 찾았지 않은가?
그가 돌아와 백가장을 다시 일으켜 세우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꿋꿋이 버텨 온 것이다.
“그럼 다녀오겠소이다.”
사마소가 백여린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전각을 빠져나갔다.
탁.
전각의 문이 닫히고 안에 홀로 남은 백여린이 주먹으로 거칠게 탁자를 내리쳤다.
“빌어먹을…….”
* * *
계림 외곽, 백가장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작은 성곽.
“저기가 패력당입니다.”
백표가 담벼락에 몸을 숨긴 채 주변을 날카롭게 경계하며 소곤거렸다.
안다. 모를 리가 없다.
주위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작은 성곽. 딱 봐도 미적 감각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파의 건물이다.
“놈들의 움직임이 많습니다. 일단 경계가 소홀한 곳을 찾아…….”
이봐, 은공.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이미 걸어가고 있다. 뒷짐까지 지고, 너무도 여유롭게.
그 모습이 하도 당당해서 잠시 할 말을 잃어버린 백표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저런 미친놈이?
시간 벌기 하러 온 것이 아니었어?
그럼 당연히 기습을 해서 적의 시선을 끌고 도망치다 싸우기를 반복해야지, 뭐 저리 당당하게 정문으로 간단 말인가?
설마 정면 돌파해서 싸울 생각인가? 패력당에 몇 명이 있을 줄 알고?
전쟁을 시작했으니 분명 가능한 만큼 끌어모아 놓았을 텐데. 우리는 꼴랑 둘이서 왔는데.
그 와중에.
“뭐 해? 같이 갈 거면 빨리 와.”
해맑게 웃으며 손까지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정문 위사들이 전부 보고 있었다.
저 미친 은공 새끼 같으니.
백표는 속으로 갖은 욕설을 퍼부으며 어쩔 수 없이 그 뒤를 따라갔다.
“이게 무슨 미친 짓입니까?”
백표가 가까이 다가와 들리지도 않을 모깃소리로 소곤거렸다.
“미친 짓? 이게?”
“그럼 이게 정상입니까? 적진에 버젓이?”
“적진?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예?”
진무의 반응에 백표가 의아한 표정으로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진무는 그대로 정문 위사들에게 다가갔다.
“야.”
“……!”
“문 좀 열어. 노영찬이 좀 보러 왔다.”
“……?”
정문 위사 부웅탁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웬 뜬금없이 신박한 놈이란 말인가?
패력당은 계림 최대의 사파 세력이다. 그들은 전쟁을 막 시작한 참이었고, 기세는 흉흉하게 날이 서 있었다.
그런 와중에 새파랗게 어린 놈이 찾아와서 패력당주인 노영찬의 이름을 친구인 양 부르며 웃는다.
“이런 미친 새…….”
쩍! 부웅! 털썩!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먹에 맞은 부웅탁이 그 이름에 걸맞게 허공을 날아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물론 마지막 소리는 탁이 아닌 털썩이었지만.
“뭐, 뭐냐? 웬 놈이냐!”
순식간에 외부에 나와 경계를 서고 있던 무인들이 하나둘씩 진무와 백표에게 다가왔다.
스릉!
상황이 심각해지자 백표가 자신의 투박한 칼을 꺼내 들고 진무의 등 뒤를 지켰다.
“뭘 칼까지 꺼내고 그래?”
“…….”
지가 그런 상황을 만들어 놓고는.
“야, 문 열라고. 가서 노영찬이한테 내가 좀 보잔다고 전하라니까?”
“이런 개…….”
쩌억!
두 번째.
진무가 파리 쫓듯 손을 휘두르자 욕설을 뱉으려 했던 무인이 고개가 뒤로 꺾인 채 넘어갔다.
“거, 새끼들. 꼭 말로 하면 안 듣지.”
차자자장!
두 명이 힘도 못 쓰고 쓰러지자 패력당의 무인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고 살벌한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하아, 좋게 말로 해결하려고 했더니.”
진무가 짐짓 한숨을 내쉬는 동안 백표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주위를 노려보았다.
주위에 칼을 들고 위협하는 패력당의 무인들.
하지만 진무는 관대함을 보여 주기로 했다. 변방 말석이기는 해도 사패천에 이름을 올린 패거리가 아닌가.
“지금부터 딱 셋 센다. 하나.”
다시 말하지만 이건 정말 어이없는 상황이다.
찾아와서 문 열라고 하면 막 아무에게나 문을 열고 웃으면서 ‘어서 오세요.’ 할 사파가 어디 있단 말인가? 더구나 자신들을 먼저 공격한 상대에게? 하늘이 두 쪽 나도 그럴 리는 없었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노무 새끼가!”
슈가가각!
둘러싼 무인 중 하나가 거도를 힘차게 뿌려 내었다.
까강!
하지만 진무보다 백표가 빨랐다.
스스슷!
두 뼘이 채 안 되는 요리용 칼이 거도를 튕겨 냄과 동시에 진무의 앞을 막아서며 공기를 잘라 내었다.
“끄으윽…….”
목의 앞부분이 잘려 덜렁이는 무인이 피를 뿜으며 그대로 쓰러졌다.
“야! 죽이지 말라고. 싸우러 온 거 아니니까. 둘!”
진무가 백표의 잔인한 손속을 나무라며 숫자 세기를 이어 갔다.
“죽여!”
누군가의 외침이 신호가 되는 순간 사방에서 검격이 날아들었다.
‘제길,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인지!’
이래선 습격하는 의미가 없지 않은가?
백표가 칼의 손잡이를 힘껏 그러쥐며 기운을 모조리 뽑아 올렸다.
채기법에 의해 모인 기운. 진무가 가르친 기초공에 의해 연단되어 그의 단전을 채운 그것이 사지백해를 흐르자 눈동자가 시뻘겋게 물들기 시작했다.
“하압!”
기합성과 함께 휘둘러진 칼이 수백의 잔영을 만들어 내며 뿌려졌다.
바람마저 갈라 놓는다는 백가장의 비전도법, 난파풍도가 온전한 모습으로 펼쳐졌다.
잔인한 혈광을 머금은 눈빛과 함께.
까가강! 스스슷! 푸학!
어지럽게 휘저어진 검이 핏빛 기운을 머금고 지나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붉은 선혈이 뿌려졌다.
“셋!”
진무가 얼굴을 찡그리며 일 보를 내디딘다.
셋을 세겠다는 말은 지켰다.
이제부턴 전부 니들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