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99
99화
“아, 내가 말 안 했냐?”
“…….”
“나 무당 제자야. 일대제자 진무.”
아……. 그러셨구나.
백표와 백여린이 멍한 표정으로 눈을 끔벅거렸다.
근데 왜 고기를 처먹지? 술은? 말투는? 싸가지는?
백가장으로 오기 전에는 사파인들을 족치고 나서 돈도 털었다.
그런데 어디를 어떻게 봐야 무당의 도산데?
“음, 니들이 의아한 건 알겠는데 왜 언짢은 눈빛이냐? 눈깔을 확 파 줄까?”
“아, 그게 아니라.”
“말이 되지 않는…….”
백표와 백여린이 동시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진짜 웃기고 있다. 지는 얼마 전까지 사람 죽이는 살수였으면서.
“뭐가 말이 안 돼? 겉모습 어쩌고 하더니.”
진무가 피식 웃었다.
그러곤.
“그건 그렇고 도통 모르겠네. 결국은 심문을 해 보는 수밖에 없나?”
진무가 얼굴을 찡그리며 일어났다.
“백표.”
“……예?”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눈을 끔벅이던 백표가 고개를 올려 진무를 쳐다보았다.
“가자.”
“……어딜요?”
“고문해야지.”
“…….”
“이 새끼들 무릎뼈를 으스러뜨리고 눈깔을 뽑아서라도 자백을 받아야겠다.”
“…….”
“혹시 잘 아는 고문 기술자 없냐? 그 뭐라더라, 진실을 실토하게 하는 약물이라던가? 뒈진다고 위협하면 뭔가 말하려나?”
앞서 걸으며 중얼거리는 진무의 모습에 백표와 백여린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은 똑같았다.
무당의 제자라고? 정파라고? 니가? 어디가? 어떤 부분에서?
* * *
백가장의 뇌옥.
한동안 비어 있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여섯 사람이 각기 나뉘어 갇혀 있었다. 패력당과의 싸움에서 백가장을 습격해 온 복면인들이었다.
철컹.
문을 열고 들어가자 뇌옥 안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참 완벽하게도 묶어 뒀네.”
진무가 그들의 모습을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사지를 벽에 달린 사슬로 묶고 혹시나 자결을 하지 않을까 입마개도 채웠다.
거기다 점혈까지 해 두었으니 죽으려고 노력을 해도 절대로 죽을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다.
진무는 다른 이들을 지나쳐 자신을 목인겸이라고 밝힌 자의 앞으로 다가갔다.
진무를 알아보고 노려보는 눈빛.
“호오, 눈으로 욕하는 새끼는 처음이네.”
그렇게 느껴졌다. 속으로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하는 듯한 눈빛.
보는 순간부터 어찌나 요동을 치는지 사슬이 벽에 부딪히며 철그렁대는 소리가 뇌옥 안을 가득히 울린다.
끼이익.
문을 열고 가까이 다가간 진무는 잠시 고민을 했다.
심문을 하자면 입마개를 벗겨야 하는데 혹시 혀를 깨물고 자진하면 어찌하나? 스스로 죽고자 한 놈이니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턱뼈를 뽑아 놓으면 말을 못 할 것이고.
이빨을 죄다 뽑을까?
그건 너무 잔인했다. 명색이 무당의 도산데.
지켜보는 눈도 있으니 그 방법은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흐흠.”
진무가 목인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 그렇지!”
혀를 깨물지만 않으면 된다. 말할 정도만 되면 된다.
진무는 목인겸의 가까이로 다가가 턱 언저리를 슬쩍 어루만졌다.
그의 손이 닿은 것은 혈 자리가 아니었다.
얼굴의 수많은 근육 중 하나인 저작근(咀嚼筋). 턱을 당겨 이와 이를 맞닿게 하는 근육만 약화시켜 씹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전부도 필요 없다. 몇 개만 끊어 버리면 된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진무의 눈빛이 사악하게 변했다.
툭, 투툭!
손가락이 양쪽 턱 언저리를 가볍게 때리자 목인겸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부릅떠졌다.
“크어어어…….”
외상은 없으나 진무의 손가락에 근육이 생으로 끊어지는 고통을 받게 된 목인겸은 짐승처럼 울부짖기 시작했다.
백표와 백여린은 혹 그가 어떤 혈도를 누른 건가 의아해했다.
“자, 대충 준비는 된 것 같네.”
진무는 히죽 웃으며 목인겸의 입마개를 벗겨 냈다.
“이, 이노오음, 자라리 주겨라(이놈, 차라리 죽여라)!”
“어? 젠장, 근육을 너무 많이 끊어 버렸나?”
진무가 얼굴을 찌푸렸다.
뭐라고 하고는 있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뭐, 어쩔 수 없지. 지금부터 물을 테니까 잘 생각하고 대답해.”
“다처라(닥쳐라)!”
“…….”
핏발 선 눈을 부릅뜨고 괴성을 질러 대는 목인겸을 진무가 지그시 바라보다가, 중지를 꺾어 그의 이마를 튕겼다.
따악!
“크아아악!”
목인겸의 머리가 뒤편 벽을 처박고 튕겨 나왔다.
“죽을라고.”
진무가 짧게 짜증을 냈다.
뼈와 살이 뒤틀리고 근육이 끊어진다는 분근착골(分筋錯骨)과 같은 방법도 있었지만, 진무는 즉각적인 고통을 주는 것을 좋아했다.
이런 식으로 제대로 한 방 맞으면 뇌가 흔들리고 짜릿한 고통이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더욱이 지켜보는 눈이 있으니 더없이 선한 고문법이 아닌가.
“묻는 말에만 대답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크으으.”
“니들 어디 소속이야?”
“…….”
따악!
“대랑이라는 노인네 어디 있어?”
따악!
“뭐 하는 새끼들이야?”
따악!
진무의 중지가 신명 나게 튕겨지고, 그때마다 목인겸의 머리는 벽을 처박고 튕겨져 나왔다.
“오라버니?”
“응?”
“혹시 저거 딱밤인가요?”
“……아무래도.”
신종 고문술이다.
튕기는 방법이 탄지공을 날리는 모습과 비슷했지만, 딱밤이었다.
사지를 묶어 놓고 딱밤을 때린다. 여기까지는 좀 살벌하긴 했지만 장난같이 보일 수도 있었다.
문제는 때리는 사람이 강기의 고수라는 사실이다.
손가락 하나로 금강석을 후벼 팔 정도로 강력한 무공을 가진 사람의 딱밤은…… 보기만 해도 소름 끼쳤다.
“진짜 무당의 제자일까요?”
“……글쎄.”
“…….”
딱! 따닥! 딱!
백표와 백여린이 두려움 가득한 표정으로 소곤거리는 사이 진무의 손가락은 계속해서 튕겨지고, 목인겸은 사지가 묶인 채로 이마에 뿔이 돋아나고 있었다.
* * *
놈이 아는 게 별로 없었거나 고문이 부족했는지 알아낸 게 별로 없었다.
소검의 정체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그저 대랑의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하부 조직에 불과했고, 그들이 받은 명령은 ‘무혈’을 확보하는 것뿐이었다.
단지, 정신을 잃기 전에 ‘청성’이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청성?
그들이 어째서 청성을 언급하지?
청성과 소검 무혈.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차피 다음 목적지가 청성이니 가 보면 뭔가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도 없이 맞은 딱밤에 혼절해 버린 목인겸에게서는 더 이상 알아낼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몇 차례 깨워도 보았으나 ‘청성.’ ‘무혈.’만 되풀이했다.
처소로 돌아온 진무는 한숨을 내쉬며.
“작은 조직은 아니란 말이지? 대단하네. 탄기급의 무인을 하부 조직으로 거느릴 정도라니.”
그들과 같은 자들이 몇이나 되냐는 말에 목인겸은 ‘많다.’라고만 대답했다. 정확한 수는 알지 못했다. 저작근을 잘라 버려서 말한다 해도 잘 알아들을 수도 없었지만.
“결국, 전문가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겠네.”
딱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무풍개 양소방.
그가 대랑이라는 자와 관련된 세력을 뒤쫓고 있다고 했으니 뭔가 알 터였다.
하지만 굳이 양소방을 만날 필요는 없다. 괜히 귀찮기만 하지.
“백표.”
“예! 은공!”
진무가 부르자 백표가 화들짝 놀란 모습으로 대답했다.
이 새끼는 왜 갑자기 이렇게 정자세일까? 예전의 싸가지 없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무언가에 겁을 집어먹은 눈빛이었고, 그 시선은 진무의 손을 향해 있었다.
“혹시 인근에 개방도들이 있을까?”
“예. 아마도.”
“좋아. 불러와.”
“알겠습니다. 한데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뭔데?”
“패력당에서 손님이 와 있습니다.”
“손님?”
“예. 노영찬이 만나 뵙고 싶다며 직접 찾아왔습니다.”
“흐흠.”
잠시 고민을 하던 진무가 가볍게 말했다.
“좋아. 불러와. 백가장주도 함께.”
“예!”
어차피 손댄 이상 자신이 해결해 줄 생각이었다. 그냥 놔두면 분명히 또 패권 어쩌고 싸움질을 할지도 몰랐다.
그동안 채기법으로 내공을 다진 백표의 실력을 봤을 때, 어디서 고수라도 초빙하지 않는 이상 둘 모두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사이좋게 지내면 될 걸 왜 싸우고 지랄들인지. 쯧쯧.”
진무가 혀를 차며 목인겸과 그의 조직들에 대해 고민하는 사이에 백표가 패력당에서 찾아온 손님들을 데리고 왔다.
노영찬을 비롯해 패력당의 수뇌부와 백가장의 장로들이 모조리 몰려와 후원이 가득 찰 정도였다.
백가장에서 준비한 의자에 양측이 서로를 마주 보며 나누어 앉았고, 그 중심에 진무와 백여린, 노영찬이 있었다.
“밥 먹었어?”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대인.”
“괜찮긴. 손님이 왔으면 뭐라도 먹을 걸 내와야지.”
진무가 백표를 힐끗 쳐다보았다.
“구워.”
“예!”
진무의 말에 벌떡 일어나 고기를 자르는 모습에 백가장의 장로들이 얼굴을 찌푸렸으나 그 누구도 입을 떼지는 않았다.
치이익.
잘려진 고기가 익어 가는 사이 진무가 노영찬을 바라보았다.
“계속할 거야?”
“……예?”
“백가장과 싸우는 거 말이야.”
“……그게.”
“그만해라.”
“…….”
이번에는 패력당의 수뇌들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무슨 동네 애들 싸움 말리는 것도 아니고 그만하라니.
그저 말로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싸움의 결과에 계림의 수많은 이권이 달려 있었다.
“그래. 쉽게 판단할 수는 없겠지. 백가장도 그렇고, 패력당도 그렇고. 근데 그 때문에 다들 못 먹고 사는 건 아니잖아?”
“그건…….”
노영찬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왜? 기분 나빠?”
“그게 아니라.”
“기분 나쁘면 지금이라도 칼을 들어. 무림인이 뭐 별게 있겠어?”
“…….”
“말이 없으면 그만두는 것으로 알지. 그럼 이제 백가장도 어느 정도 양보를 하지?”
“그게 무슨 말입니까?”
“계림의 이권.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었잖아. 대충 적당한 선에서 양보해. 저들도 얻는 게 있어야 할 거 아냐?”
“안 됩니다!”
진무의 말에 백여린이 발끈하며 말했다.
“안 돼?”
“예. 저들에게 영역을 내어 주면 계림의 민초들이 심한 고통을 겪습니다.”
“어떤 고통?”
“저들은 필시 사람들에게 횡포를 부려 돈을 뜯어낼 것이 틀림없습니다.”
백여린이 노영찬을 노려보는 모습을 진무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니들은?”
“……예?”
“저들은 돈을 뜯고, 그럼 니들이 뜯어 가는 것은 뭐지?”
“…….”
“백가장도 돈 받잖아. 객점, 주루, 상단. 다들 백가장에 잘 부탁한다며 돈을 주잖아.”
“그것과는 다릅니다. 그들은 그저 백가장을 후원하는 마음에.”
“개소리하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