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do business in full auto RAW novel - Chapter 1
풀 오토로 사업합니다 001화
001
흑마법(1)
3개월 전, 사업이 망했다.
단순히 망한 것이 아니라 아주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서울에서 3대째 운영하던 한식당 ‘금손’은 내 대에서 절정으로 번창하여 전국에 5개 점포로 확장하였고 식당을 10개로 확장하는 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영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전 세계 경제가 얼어붙으면서 소비심리가 위축됐고 경기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고급 음식점들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그건 내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로 확장하던 점포들의 공사는 중단됐고 5개의 식당 중 서울 본점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문을 닫았다. 그리고 1년 전에는 마지막 점포까지 문을 닫은 후에 빚더미에 앉았다.
가게를 모조리 처분하였지만 내 수중에는 3억 원이라는 빚만 남게 되었다.
통장 잔고 30만 원. 딸린 식구 3명.
고급 주택에서 아파트로, 전세로, 월세로, 결국에는 달동네까지 밀려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사업이 부도나던 시기 즈음에 태어난 막내딸까지.
최악의 상황이다.
“응애!”
아기가 악을 쓰며 울어댄다.
아름다운 영국인 아내 리사는 아기를 안고 달래며 울상을 지었다.
“여보. 애가 배가 고픈가 봐요. 분유 좀 사다 주실 수 있어요? 한 끼 정도는 젖 물리면 되니까요.”
어제 분유가 떨어졌다.
남아 있는 30만 원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한 달 전에는 생활비 때문에 사채까지 끌어다 썼는데 이번 달 이자는커녕 입에 풀칠을 하기도 벅차다.
“갔다 올게.”
“오시는 길에 수정이도 좀 데려오시구요.”
“그래.”
그나마 육아 수당에 출산장려금 덕분에 아이 분유라도 먹일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진즉에 굶겼어야 한다.
세상에 이렇게 못난 아비가 어디 있단 말인가?
30대 중반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나는 인생의 쓴맛을 태어나 처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달동네를 내려와 을씨년스러운 거리를 걷는다.
거리가 휑한 것을 보면 경제가 어렵기는 한 모양이다.
요즘 경기가 IMF 시절보다 심각하다는 소리들을 한다. 국제 금융위기가 어디 한두 건인가 싶지만 블랙 프라이데이나 리먼 브라더스 사태에 비견되는 위기가 터지면서 내수 경기 자체가 아작난 상황이었다.
현재에 이르러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한국은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집에서 대놓고 푸념을 할 수 있느냐?
그건 또 아니다.
나의 아내 리사는 무려 영국 왕족 방계 출신이다. 지금이야 왕가와 인연은 끊어졌지만 현 상황의 출발점이 브렉시트이기에 경기가 어렵다고 푸념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잘나가던 시절에 온갖 방법으로 접근, 결혼에 골인하며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그때에는 서울에 고급 주택도 있었고 좋은 차에, 좋은 옷에 아주 호시절이었지.
물론 아내가 내 돈을 보고 결혼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랬다면 사업이 망했을 때 이혼 서류부터 들이밀지 않았을까.
틱.
분윳값을 계산한다.
“4만 5천 원입니다.”
“분유 한 통에 4만 5천 원인가요?”
“가격표 못 보셨어요?”
살짝 짜증을 내는 점원에게 현금을 내밀었다.
얼마 전 이자가 몇 개월 정도 밀려 신용 불량자가 되었기에 신용 카드나 체크카드 따위는 쓰지 못한다.
이러다가 파산 신청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만약 파산을 하면? 선대에서부터 내려오던 유일한 재산인 무인도도 빼앗기겠지.
나에게 남은 유일한 재산.
아직까지 압류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이자가 밀린 지 몇 개월이 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공시지가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그밖에 경매에 내놓아 봤자 판매가 되지 않는다는 것, 경제 위기가 닥치면서 정부에서 어느 정도 압류에 여유를 둔 것 등의 이유가 있었다. 그래도 자리는 좋은 편인데 주인이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그럭저럭 무인도를 팔면 빚은 갚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매물로 내놓았으니 팔리기만 기다리는 수밖에.
30만 원 중에 4만 5천 원을 지출하고 큰딸이 다니는 유치원 앞에 도착했다.
유치원 앞에서 나는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긴 백금발을 허리까지 기르고 있는 소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 괴물아!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눈동자 색깔이 다르면 악마래!”
“악마는 죽여야 해!”
가슴이 쓰려 온다.
이게 말로만 듣던 집단 괴롭힘인가?
왕따, 혹은 이지메 등등으로 불리는 행위.
이곳으로 이사 오고 난 이후로 몇 번이나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제법 잘나가던 시절에는 무자극 서클렌즈로 가려 주기도 했고 좋은 옷을 입히며 아이가 빛나던 시절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오히려 이곳에 이사 오기 전에는 오드아이가 신비의 상징이라며 아이들이 잘 놀아 주기도 했었지.
하지만 사업이 망하고 수정이의 옷이 후줄근해지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괜히 색안경을 끼고 수정이를 보기 시작한 거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렌즈들은 워낙에 고가라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사 줄 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그깟 30만 원 따위야 그냥 쓰고 말았지만, 지금은 전 재산인지라 함부로 사용할 수가 없다.
나서야 할까?
아니다. 여기서 나서면?
아이들 싸움에 어른이 직접 개입하였다가는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괜히 아이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그때의 감당은…….
“나는 참 못난 아비로구나.”
자괴감에 몸을 떨고 있을 때, 수정이가 자기 주먹 3배는 되어 보이는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때릴 테면 때려 봐. 여자아이나 괴롭히는 찌질한 새끼들아. 대갈통이 확 부서지고 뒈져 봐야 정신을 차리지?”
“…….”
잠시 깜빡했다.
오드아이 중에 천재가 많다고 하던데 수정이도 그런 종류가 아닐까 싶었다.
희귀한 유전자, 돌연변이의 일종인 오드아이를 가진 수정이다. 머리가 정말 비상했기에 가끔은 나도 감탄을 할 때가 있었다.
생각하는 수준은 성인이나 다름없었고 고교 수준의 수학 문제도 막힘없이 푼다.
아마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다면 다시없을 영재가 탄생하겠지만 내 사정에 영재교육은 무리가 있겠지.
수정이의 살기가 장난이 아니다.
나도 깜짝 놀랄 지경이니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다들 엉덩방아를 찧고 울음을 터뜨린다.
여기에 화룡점정.
자기 아이들을 데리러 왔던 부모들이 깜짝 놀라 달려와서 뭐라고 하면 수정이는 한 방 제대로 먹여 주었다.
“얘! 부모님 어디 계시니!? 어디서 어린 지지배가 폭력을 써?”
“폭력이요? 저는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있어서 생명의 위협을 느꼈어요. 여기 보이시죠? 댁네 아들이 저에게 집단 폭력을 행사해서 생긴 상처인데 어디 진단서 떼서 법정 공방으로 가 볼까요? 참고로 3주 이상 진단서를 떼 줄 수 있는 병원은 이미 수배를 해 두었어요. 저희 삼촌이 잘나가는 변호사인데 연락할까요?”
저거 누구 딸이냐.
어른을 상대로 단 한 번을 지지 않는다.
“수정아!”
“아빠~!”
그렇게 살벌하게 어른들을 상대하던 수정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하더니 쪼르르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역시 아빠에게는 한없이 어린 딸이다.
“아이고, 우리 딸. 오늘 하루 잘 보냈어?”
“응! 애들이 집단 구타를 하려 하길래 짱돌로 혼내 줬어!”
“그, 그러냐.”
수정이는 유난히도 집단 구타를 강조하였다.
어떤 죄목이든 ‘집단’이라는 항목이 추가되면 합의금이나 형량이 추가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아동이라 법적 처벌은 하지 않겠지만, 역시 부모들의 다툼까지 가면 여러 가지로 유리하겠지.
행동 하나를 해도 몇 수를 내다보고 하는 수정이를 보고 있으면 내가 다 뿌듯하다.
수정이는 내 뺨에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아빠! 오늘 수정이가 잘했으니까 과자 먹을 수 있어요?!”
“어……. 그래.”
“신난다!”
아이와 어른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그러고 보면 수정이가 이렇게 행동을 하는 건 전부 계산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가는 길.
수정이는 손에 들려 있는 자갈치를 아주 맛나게 냠냠거렸다.
나도 자갈치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치사하게 애들 것을 빼앗아 먹을 수는 없지.
아, 부럽다. 도대체 나는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든 거지?
손가락까지 쪽쪽 빨아 가며 과자를 먹던 수정이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아빠, 요즘 힘들지?”
“어……. 그래.”
수정이에게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천재가 괜히 천재일까. 조숙하기까지 하여 애교를 피울 때를 제외하면 그냥 어른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도 아직 애기버프가 남아 있어 그런 모습까지 귀여웠지만 조금 더 크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어찌 변할지 걱정이다. 그냥 영원히 나의 아이로 남아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건 부모의 욕심이겠지.
“아빠!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 달은 고민했어요.”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실까?”
“아빠가 믿지 않을 수도 있어서. 조금 황당하다고 느낄 수도 있어서 말이에요.”
“해 봐. 믿고 말고는 들어 보고 결정할게.”
“우리 동네 골방 할아버지 있잖아요?”
“그 음험한 노인네? 아빠가 그 할아버지하고 놀지 말랬잖아.”
“돌아가셨는데.”
“아, 그래.”
조금 무안해진다.
요즘에는 일자리를 구한다고 매일 밖을 나돌아다니니 동네 돌아가는 사정을 내가 알고 있을 턱이 없었다.
그 노인네, 무연고로 보이던데 죽고 난 이후에 장례는 치렀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노인이 왜?”
“그 할아버지가 흑마법…… 아니 강신술의 일종을 알려 주었거든요?”
“강신술?”
“언데드를 부릴 수 있는 주술의 일종인데, 아빠가 마법에 성공하면 가게에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하하하!”
“에에에엣!”
나는 수정이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역시 애는 애인가?
오랜만에 정말 시원하게 웃었다.
강신술?
일종에 무협 영화에 나오는 강시를 말하는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스켈레톤?
아주 재밌는 발상이다.
그런 무임금 노동자가 탄생한다면 인건비가 80% 이상을 차지하는 이 세상에서 돈을 벌기가 아~주 수월해진다.
다만 이건 상상 속에서나 할 수 있을 법한 일로,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보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아! 나는 진지한데 정말 그러기야?”
“아이고, 배야. 수정아. 마음만 고맙게 받을게.”
“와, 아빠는 내가 이렇게 진지한 얼굴로 농담하는 것 봤어? 진짜라니까 그러네. 흥! 아빠 미워!”
수정이는 총총걸음으로 달려간다.
나는 웃음을 참으며 수정이의 뒤를 쫓았다.
“수정아, 같이 가자!”
“아빠 밉다니까! 아직까지 나를 애 취급하고.”
“하하하하! 애니까 그렇지?”
나는 가난하다.
아주 찢어지게 가난하다 못해서 파산까지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아주 힘들지는 않았다.
누구는 이런 상황에서 자살까지 생각을 한다던데 그런 것은 꿈도 꾸지 않는다.
나는 경제적으로는 실패하였지만, 성공적으로 가정을 꾸리지 않았던가.
새벽 인력 시장.
오늘도 새벽 5시에 일어나 막일을 하려고 하였지만, 역시나 공을 쳤다.
인력소장에게 따져 물으면 내게 기술이 없다고 오히려 타박이다. 웬만한 막일은 외국인 노동자를 쓰는 것이 저렴하고 부리기도 쉽다고. 이제 사업 말아먹고 막노동을 뛴다는 것도 옛말이다.
“아아. 세상이 너무 각박하구나.”
너털너털 집으로 돌아온다.
아내는 막내를 재우고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오셨어요?”
“여보, 미안해. 오늘도 일을 구하지 못했어.”
아내가 청소를 멈추고 다가온다.
리사는 내 얼굴을 한 번 쓰다듬는다.
“괜찮아요. 너무 상심하지 마요. 지금이야 이렇게 시련을 겪고 있지만, 당신은 재기할 수 있어요. 내가 알아요.”
“여보……. 내가 어떻게 이런 천사와 결혼을 했지?”
“당신의 성실함과 선함을 믿고 제가 먼 타향살이를 택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지나가는 시련에 슬퍼하지 말아요.”
아내와 눈빛을 교환한다.
뭔가 짜릿하게 전기가 통한다.
리사는 슬슬 눈웃음을 치면서 손을 뗐다.
“셋째는 곤란한 거 아시죠?”
“아아, 그렇지.”
나는 머쓱하게 뒤통수를 만지며 물러난다.
그럼 교차로나 보면서 또 일자리가 없는지 훑어봐야겠다. 교차로를 어디에 두었더라?
온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수정이 책상에서 교차로에 둘둘 말려 있는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쿵!
짜릿한 전기가 통하더니 순간적으로 책을 놓치고 말았다.
얼마나 두꺼운 건지 묵직한 충격이 전해진다.
책에서 느껴지는 소름 끼치는 기분.
“도대체…… 이건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