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do business in full auto RAW novel - Chapter 124
풀 오토로 사업합니다 124화
124
구조 조정(2)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자선 사업가가 아니었다.
기회가 있으면 꼰대들을 쳐내야 한다.
이슬기가 조용히 속삭였다.
“저자가 오세곤 이사입니다. 영업이사이며 회사 내에서는 가장 큰 라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우그룹과의 관계는?”
“이직 명단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역정을 낼 만도 했다.
“그럼 이만하겠습니다. 별도의 발표가 있기 전까지는 지금처럼 일해 주시기 바랍니다.”
“끄응.”
아주 곤란해하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그래도 그들에게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정말 돈에 걸맞은 능력을 갖추고 실적이 충분한 사람이라면 굳이 찍어 낼 필요는 없다. 그런 자들은 다 안고 갈 생각이었다.
수 무역 본사로 이태진 부장이 호출되었다.
회사 내 정보부를 맡고 있는 이태진은 상당히 유능한 자였다.
정보 공작이나 정보 수집에 능하였고 그에 대한 성과도 척척 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찾으셨습니까.”
“어서 오세요.”
군인 출신이라 그런지 내 앞에서 각을 잡고 서 있었다.
좀 편하게 있으라고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그 자세가 편하다고 이야기를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대충 이야기는 들으셨을 겁니다.”
“구조 조정을 하신다고요.”
“여기 구조 조정 명단입니다. 수 그룹으로 가는 자들은 뺐습니다. 부장급 이하 인사들도 뺐지요. 결국, 이사급 인사들을 정리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쉽게 물러날 것 같지가 않습니다.”
“구린 부분을 털어 낼까요?”
“그래 주세요.”
“걱정 마십시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 영업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를 받기 마련이죠.”
이태진은 무심한 듯이 핵심을 찔렀다.
영업하는 사람들일수록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뇌물 한 번 받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암암리에 뇌물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 부분만 잡아내면 숙청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조사 부탁드립니다.”
“맡겨 주십시오!”
이태진은 자신감 어린 표정으로 집무실을 나간다.
“저 정도는 되어야 인재라고 할 수 있지.”
“알고 보면 이태진 부장이 일은 참 잘하는 것 같아요.”
“돈을 줘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 있고, 그 돈을 주고 부려먹는 것이 억울한 사람이 있지. 그냥저냥 묻혀 가려 하는 자들 말이야. 나는 그런 사람들을 경멸한다.”
“저는 어떤가요?”
“이 비서? 나에게 과분한 존재지.”
“그럼 연봉이라도 올려 주시는 것이 어때요?”
지금 나에게 연봉 협상을 시도하는 건가?
나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세실을 다른 곳에 투입하게 해 주면 당장 올려 주지.”
“됐어요! 내 참.”
“그건 또 싫은가 보네.”
“연봉을 깎으세요, 차라리.”
지금도 세실은 회사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을 것이다. 기계처럼 말이다.
오세곤 이사는 아주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늘 이유성 회장이 하는 꼴을 보니 반드시 고액 연봉자들을 찍어 내려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아무래도 언론플레이를 시도해야겠어.”
“하지만 이사님, 일이 잘못 풀리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어쩌겠나?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야지.”
“후우.”
“악독한 놈이 CEO가 되었어. 이번 기회에 고액 연봉자들을 쳐내려 하는 거야. 명분도 없이 말이야.”
“명분은 있습니다. 실적이 저조한 사람들이 명단에 올랐지 않습니까.”
“자네의 실적은?”
“평범합니다만.”
“대상자겠군.”
“큭.”
한재철 부장은 인상을 확 찌푸렸다.
원래 무역 회사의 영업률은 높은 편이었으니 보통이라고 말하는 한재철 부장은 그저 정치에만 신경을 쓰고 회사 일에 무심하다는 뜻이었다.
그런 사람을 찍어 내겠다고 이유성은 선언하였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곧 당할 것이다.
“아는 기자를 만나 보겠습니다.”
“후우. 회장의 다른 지시는 없었나?”
“연수원에 연락을 했더군요.”
“연수원?”
“신입 사원을 대거 채용할 모양입니다.”
으드득!
사실, 대기업에서 명퇴하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다.
슬슬 젊은 시절의 두뇌가 퇴화하고 연봉은 높아질 즈음이 되면 물갈이를 한다. 하지만 천우무역에는 그런 물갈이들이 없었다.
결국, 그것이 경영 실패의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그리고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이유성 회장은 깡그리 이사들을 쳐내고 물갈이를 시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을 거다.
“계속 그런 식이면 어쩔 수 없지. 회사에 타격이 가겠지만……. 항해사들을 움직이자고.”
“알겠습니다, 이사님.”
이유성 사장은 기술직 직원들은 쳐내지 않으려는 것 같다. 이사급 인사들을 쳐내서 자금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술직은 움직인다.
기술직 직원들은 구하기도 힘들었다. 먼바다를 항해하는 항해사들을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들을 움직인다면 이유성 사장도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점심 무렵.
회사 전반에 대한 업무를 보고 있는데 한 사람이 찾아왔다.
천우무역의 창립 멤버이자 현 수 무역의 최고령 안철희 본부장이다.
안철희 본부장은 무역 전체의 업무를 총괄하였고 천우그룹의 부름이 있었으나 거절하고 이 회사에 남은 사람이다.
회사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것은 물론이고 혁혁한 공로를 세워 온 노가신과 같은 인물.
당연히 구조 조정 대상자에서는 빠져 있었으며 이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나 역시 안철희 본부장을 무시하기는 힘들다.
“회장님, 식사하셨습니까?”
“이제 먹어야죠. 함께 드실까요?”
“허허허. 그래 주신다면 감사한 일이지요.”
동네 할아버지와 같은 인상에 은퇴가 점점 가까워져 오는 나이였다.
앞으로 5년 정도 후면 은퇴를 해야 할 나이였으나 눈에는 정기가 어려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앞으로 10년은 함께 일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5년이면 회사가 자리를 잡는 데에는 별문제가 없지.’
마침 잘 됐다.
함께 밥이나 먹자고 찾아온 모양이었으니 식사를 하면서 회사 전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식 좋아하십니까?”
“한국 사람치고 한식 싫어하는 사람 없지요.”
“가시죠. 이 비서?”
“네, 회장님.”
“이 비서까지 세 사람 예약하도록 해,”
“알겠어요.”
“신선로를 잘하는 집이 있습니다.”
“제가 사도록 하겠습니다. 가시죠.”
“그럴 수야 없죠. 제가 사겠습니다.”
“허허허.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우리는 근처 한정식 식당으로 향했다.
양재동에서 한식으로 소문이 나 있는 천향각.
한때는 내가 전에 운영했던 금손과 경쟁 관계에 있었으나 나는 무리한 확장으로 망했고 천향각은 위기의 순간에 내실을 다지며 그 이름을 굳건히 했다.
인공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VIP룸에 안철희 본부장과 자리했다.
가야금 소리가 울려 퍼지는 한적한 분위기다. 서울 한복판에 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이나 한가로운 전경.
안철희 본부장에게 식사를 권한다.
“여기 음식들이 꽤 괜찮습니다. 신선로 하나로 세상을 평정했다고 할까요.”
“금손은 모든 음식들이 맛있었지요. 그런 곳이 사라지다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제 실책이니 어쩔 수 없죠. 무리하게 욕심을 낸 탓에 그리됐습니다.”
“시대를 잘못 탄 것이지요.”
나도 안다.
확장에 열을 올렸으나 금융 위기의 여파로 쫄딱 망해 버렸다. 그런 일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전국에 체인을 가진 식당을 경영하고 있지 않았을까.
물론 식당 사장보다 지금의 처지가 훨씬 나았다.
“그 때문인지 가업을 버리지 못하고 요식업에 손을 대고 있습니다.”
“가업을 잇는다는 건 숭고한 정신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 정신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요.”
어쩐지 이강노 회장과 오버랩 된다.
이강노 회장 역시 그런 말을 했었다. 한철수 본부장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성공한 경영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신선로의 풍미를 느끼며 밥을 먹는데 안철희 본부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오늘 제가 주제넘게 회장님을 모시고자 한 것은 한 가지 문제 때문입니다.”
“어떤 문제인가요?”
나는 자세를 바로 했다.
지금까지 경영이나 사생활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대부분 가벼운 대화였다.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것을 보니 상당히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았다.
“오늘 실무자들은 불안감에 떨고 있습니다. 중역들을 쳐내는 것도 좋지만 그들의 힘은 상당합니다. 잘못하면 상당한 숫자의 기술자들이나 실무자들이 빠져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리되면 회사 전체에 무리가 오겠지요.”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예상을 했었다고요?”
안철희 본부장은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이 정도는 내 손바닥 안에 있었다.
“대표적으로 오세곤 영업이사가 있겠습니다. 회사에 미치는 영향력이 꽤 대단하다고 하더군요. 그가 움직이면 많은 항해사들과 기술자들이 빠져나갈 것이라고 봅니다.”
“허어.”
“하지만 그렇다고 그 기술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흠. 무역 회사는 영업을 큰 가치로 생각하는 회사입니다. 기술적인 부분은 분명히 크지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무시할 정도는 아닙니다. 기술자들이 사라지면 당장 선박의 운용이 멈출 겁니다.”
“바라던 바죠.”
“바라던 바라……. 뭔가 대안이 있으신 것 같군요.”
“저에게는 인간을 뛰어넘는 AI 기술이 있습니다.”
“……!”
안철희 본부장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아무리 세상이 발전했다고 해도 AI 기술이 그만큼이나 발전하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안철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외람되지만 그런 기술은 현존하지 않습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죠.”
손짓을 하자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변종 뱀파이어 귀족이 달려온다.
바람같이 달려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주인님을 뵙습니다.”
“이쪽은……. 리나라고 하죠.”
“리나입니다.”
이름은 없었지만, 즉흥적으로 지었다.
매우 아름다운 외모에 라틴계로 한번 만들어 보았다.
남미 미녀 특유의 육감적인 몸매가 돋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안철희 본부장이 외모에 흔들리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번에 개발한 AI입니다.”
“음. 그러니까 회장님께서는 AI로 직원을 대체할 작정입니까?”
“네.”
“허허허. AI는 상황 판단에 있어 인간을 쫓아올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인류는 모든 일자리를 잃고 말겠죠.”
“인류의 일자리를 빼앗을 생각까지는 없습니다.”
“하오시면.”
“제가 운영하는 회사에만 이 같은 AI를 배치할 생각입니다.”
“AI가 인간을 대신할 수 있을까요?”
아주 합당한 의심이다.
내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이슬기도 처음에는 의심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실이 없으면 안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연봉 인상까지 포기할 정도 아니던가?
지금까지 조용히 식사를 하던 이슬기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본부장님도 써 보세요. 그럼 다 알게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