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do business in full auto RAW novel - Chapter 15
풀 오토로 사업합니다 015화
015
교량 보수(1)
“전혀요.”
“어째서요?”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사실, 이런 제안을 받은 게 처음은 아니다. 잘나가던 시절에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다.
어디 수정이뿐일까.
아내와 데이트를 할 때도 그런 러시들이 수도 없었다.
한때, 리사는 영국에서 취미 삼아 밴드 활동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제작사에서 정식으로 판을 내어 준다는 제안도 했었다고 한다.
“제 아이가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아이뿐만이 아니에요. 제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음……. 그렇군요. 큰돈을 벌 수도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더 안 되죠. 돈 때문에 아이를 팔아요? 혹시라도 수정이가 원한다면 모르겠지만 그 전에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그렇지, 수정아?”
“응! 나는 아빠 옆에 있는 게 좋아. 평생 함께 살 거야!”
수정이가 어린아이 모드로 들어간다.
어느 정도 꾸며진 거라는 사실을 잘 안다. 이렇게 연기를 할 때 보면 정말로 연예인을 시켜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이 들 정도.
하지만 반 정도는 진심이 아닐까.
“으헤헤.”
“입 찢어지시겠습니다.”
나는 헤벌쭉한 입을 닫는다.
갑자기 반쯤 정신을 뺀 놈처럼 행동했는데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부동산에 왔다면 방을 구해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닐까?
“험험.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그건 오전에도 말씀드렸을 텐데요? 보증금 500으로 투룸은 무리가 있어요. 수도권에서 구하시려면 한적한 곳으로 가셔야 할 겁니다.”
수정이에게 혼을 빼놓던 중개사도 진지한 얼굴로 돌아왔다. 물론 그래도 오전보다는 훨씬 표정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돈을 마련해 오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었죠.”
“돈을 마련하셨습니까?”
“네. 1억 정도 여유 자금이 있습니다.”
“허어. 이거 조금 당혹스럽군요. 오전에 그렇게 말씀을 하셨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사는 게 그렇죠.”
중개사는 머리를 긁적였다.
돈이 있는 고객이라면 굳이 박대할 필요가 없는 거다. 아까는 내가 불가능한 요구를 했기에 깍듯하지 않았던 것이고 말이다.
윤강식이 허리를 넙죽 숙였다.
“왕으로 모시겠습니다, 손님. 가시죠.”
“그럽시다.”
망원동 신축 빌라들만 돌아다녔다.
기왕 돈을 쓰면서 이사를 갈 거라면 신축이 낫겠지. 지어진 지 2년 미만의 빌라들 말이다.
흔히 이런 형태의 집을 다가구라고 부르며 원룸과 1.5룸, 투룸, 주인 세대(3~4룸)로 구성되어 있는 건물들이 많았다.
따로 명의가 분리되어 있는 빌라의 가격은 상당하였고 장기계약만 가능하다.
나는 서울에서 어느 정도 돈을 벌면 무인도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그러니 장기계약은 무리였고 다가구 주택의 투룸 중 단기계약이 가능한 곳만 보았다.
새삼 돈의 힘을 느낀다.
돈이 없을 때는 선택의 폭이 거의 없었는데, 이렇게 돈을 쥐게 되자 선택의 폭이 늘어나게 된 거다.
보증금은 3천에서 1억 수준.
보증금에 따라서 월세가 달라진다.
투룸 중에서도 거의 스리룸 급의 넓이를 가진 곳을 발견했다.
“……이곳은 지어진 지 1년이고 주인이 급하게 내놓았습니다. 다소 대출이 끼어 있다는 것이 부담이지만 보증금이 5천 정도면 크게 위험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남향이라 채광도 좋았으며 얼추 20평은 되어 보인다.
독거노인들이 즐비했던 판자촌에서 살 때 비한다면 레벨이 심하게 업 된 느낌.
역시 남자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건가 싶다.
비록 나는 늦게 개화를 한 편이었지만, 이렇게라도 능력을 펼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정아, 어때?”
“나는 아빠가 사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좋아!”
“아이고, 예쁜 내 새끼!”
수정이의 머리칼을 마구 헝클어뜨린다.
분명히 저것도 작업(?) 멘트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알면서도 입이 헤벌쭉해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기분이 한껏 업 된다.
“좋습니다. 아내를 데려와 보고 오케이를 하면 당장 계약하죠.”
“그럼 이사는 언제쯤…….”
“내일 바로 가능하죠? 저녁 즈음에 말입니다.”
“그럼 오늘 계약금을 거셔야 할 겁니다.”
“계약금은 보증금의 10%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지금 여유 자금이 딱 500이다.
빚도 갚고 이것저것 하다 보니 그 정도 돈밖에는 남지 않았다. 하지만 보증금으로는 충분한 금액이지.
그러다가 내일 수주에 실패한다면?
당연히 그런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3서클이 될까 말까 한 지금의 실력이라면 그깟 유속을 견디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고객님.”
아까보다 좀 더 정중해진 중개사였다.
보무도 당당하게 모텔로 들어왔다.
아내는 잠시 아기와 함께 모텔로 추위를 피해서 왔고 일단 끼니는 배달로 해결하고 있었다.
“여보! 나 왔어!”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역시나 아름다운 미소로 반겨 준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서 아주 고생이 많았지. 나는 항상 도둑놈이라는 소리를 들어왔지만, 사업이 망한 이후에는 날강도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만큼이나 아내의 고생은 찢어지는 것이었다.
“여보! 판자촌 생활 끝났어!”
“네?”
“오늘 계약을 따냈거든!”
“축하드려요.”
“당신도 기뻐해.”
“물론 기뻐요. 저는 이사를 간다는 사실보다는 당신이 재기를 하게 되어 기쁘네요.”
아내는 환하게 웃었다.
말은 안 해도 얼굴에 걱정이 쌓여 있던 그녀다.
한겨울에 보일러도 들어오지 않았으니 걱정이 많았겠지. 혼자 몸이라면 몰라도 아이가 둘이나 되었으니 말이다.
한동안 고민이 많았던 걸 안다. 좀 더 상황이 심각해지면 그녀의 본가인 코튼 백작가에 연락을 취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솔직히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려운 시국에 연락을 했다가 온갖 망신만 당하지 않았던가. 이미 리사는 나와 결혼을 하는 바람에 파문을 당했다. 백작가 계승 순위 1위에 있었던 그녀의 계승권은 당연히 박탈되었고 말이다.
“아이는 괜찮지?”
“네. 지금은 배부르게 먹고 자고 있어요.”
“좋아. 한번 가 보자고. 일단 당신이 좋다고 해야 하니까.”
“준비할게요.”
역시 아내의 감정은 흔들림이 없었다.
귀족가에서 자라서 그런지 예의나 말에도 품위가 있었고 어떤 일이 닥쳐도 무너지는 일이 없다.
오히려 내가 무너지려 할 때 그녀가 잡아 주었었지.
아내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아내를 이사할 집으로 데려왔다.
4층이었지만, 사는 데 별로 불편함은 없다. 5층 이상의 건물에는 엘리베이터 설치가 의무화되어 있었고 여긴 5층 건물이다.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지하철과 3분 거리에 있는 수정이의 유치원은 걸어가도 될 정도로 가깝다. 마트와 편의점은 물론이고 온갖 편의시설들이 몰려 있다.
리사는 좋다는 말보다는 내 주머니 사정부터 걱정했다.
“당신은 괜찮겠어요?”
“내가 왜?”
“무리하는 거라면 저는 원룸도 상관없어요. 보일러만 고쳐진다면 그 집도 괜찮고요.”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
나는 리사의 어깨를 잡았다.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 나를 믿고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가끔은 내가 나를 믿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믿어 주는 것이다.
“괜찮아. 반 정도는 여유롭게 남겨 두었어.”
“당신만 괜찮다면 괜찮아요.”
하기야, 아내는 원래부터 이런 사람이었지.
“좋아. 그럼 계약을 하고 올게. 오늘은 외식이라도 할까?”
“뭘 드시고 싶으세요?”
“오랜만에 소고기 어때?”
“우리 사정에 소고기라니…….”
“이제 살림이 펴졌어. 그러니까 충분히 먹어도 돼.”
사실 오늘 계약금을 내고 나면 개털이 된다. 하지만 내일이 되면 반드시 돈이 들어온다.
계약서도 작성했고 혹시나 몰라서 강화 스켈레톤이 심한 조류를 견딜 수 있는지 간단한 실험도 했다. 한강에서 가장 물살이 세기로 심한 다리에서 말이다. 그러니 된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니 소고기 정도는 사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수정이의 눈이 커진다.
그렇지 않아도 큰 눈을 가진 수정이가 저렇게 눈을 뜨면 가끔 귀신같을 때가 있다.
“우왕! 소고기!”
생각만으로도 이미 수정이는 침을 흘리고 있었다.
하기야, 우리 가족이 한우를 먹어 본 지가 대체 언제였을까?
수정이는 좋아서 방방 뛰었다.
이리저리 집 안을 돌아보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아빠, 고생했어요!”
“오냐.”
“여보 고생 많으셨어요.”
“내가 뭘. 당신이 고생 많았지.”
행복한 순간이다.
드디어 판자촌을 벗어나게 되었다.
정말 간만에 배 터지게 먹었다.
무려 한우 값으로 20만 원이 나왔지만, 별로 신경이 쓰이지는 않는다.
내일이면 1억이 들어올 테고 며칠 후면 2차 중도금이 들어온다. 그리고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빌딩 청소에 대한 잔금도 들어오겠지.
대략 한 달 만에 1억 4천만 원을 버는 건가?
정말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아내를 모텔에 데려다주고 잠시 수정이와 외출을 한다. 부동산 주인이 밤에도 계약이 가능하다고 하였기에 가는 중이다. 수정이는 자기도 간다고 떼를 쓴 거였고 말이다.
물론 수정이에게 할 말이 있었다.
“아빠, 이제 슬슬 앞으로 계획도 짜야겠어요.”
“그렇지. 나도 이렇게 가파르게 주가가 상승할 줄은 몰랐어.”
“흑마법이라는 학문이 이 세상 것이 아니라 그렇죠.”
“그럼 어디에서 나온 건데?”
“할아버지의 말로는 다른 세상의 거라는데 저도 잘 몰라요.”
그럴 것 같았다.
애초에 지구에서 흑마법이라니. 어떤 작용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구가 아닌 이계에서 넘어온 학문이라고 봐야 했다.
이제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절벽초가 필요할 때였다.
“수정아. 내일부터 바로 절벽초 구하기 작업에 들어갈 수 있겠지?”
“네! 바로 탐색조로 투입이 돼요.”
“계약하고 바로 가 보자고.”
수정이와 같이 나온 이유다.
앞으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3서클에 이르러야 한다.
3서클까지는 이런 꼼수로 오를 수도 있었지만, 4서클부터는 깨달음의 영역이라고 한다. 어쨌든 일단 목표는 다음 서클을 이루는 거다.
그걸 위해 절벽초가 반드시 필요한 거였다.
계약을 마치고 500만 원을 집주인에게 입금했다. 그러고는 차를 몰아 바로 망원동 공동묘지로 향한다.
절벽초가 있다면 망원동 묘지나 부근 야산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만약 이곳에서 발견하지 못한다면 타 지역으로 자리를 옮겨야겠지.
우리는 항상 오던 공동묘지를 찾았다.
탁탁!
수정이가 뭔가 일을 하기 전에 손뼉을 치는 어른처럼 손바닥을 마주치더니 기합을 넣었다.
“헤헷. 그럼 시작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