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do business in full auto RAW novel - Chapter 17
풀 오토로 사업합니다 017화
017
이사(1)
오후 1시 무렵.
드디어 모든 공정이 끝났다.
오늘의 작업은 매우 단순한 노동의 반복이었다. 조류가 강한 물살 아래로 들어가 피스만 박으면 끝나는 간단한 일이다.
작업이 끝나자 아침보다는 표정이 밝아진 이서경이 물개박수를 쳤다.
짝짝짝짝!
“고생하셨어요!”
“하하하! 고생은 뭘요. 그냥 들어가서 피스만 박고 나온 건데요.”
“그게 어려워서 고민이 많았죠. 우리 일이라는 게 그래요. 간단한 일들은 해당 회사에서 직접 처리하지만, 어려운 작업들은 의뢰를 하죠. 그렇다고 거절할 수 있나요? 절대 그럴 수 없어요.”
이서경은 지금까지 대기업들의 하청업체 직원으로 살아오면서 쌓인 울분이 많은 것 같았다.
흔히 한국에 만연하고 하청이 큰 문제라고들 이야기한다. 본청에서 수주를 받아 어느 정도 이익을 떼고 하청을 주면 중간 업체에서도 이익을 떼고 하청을 주는 식이다. 그러니 관리 부실이나 공사 부실이 나타나는 것이겠지.
물론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다.
입에 풀칠을 하게 해 준다면 하청의 하청이 아니라 수많은 하청을 거쳐 내려오는 일도 맡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이야기를 들어 주는 중이었으니 간단한 추임새와 공감은 해 주어야 한다. 흔히 여자들이 원하는 게 그런 거니까.
“아, 그렇습니까? 정말 고심이 많으셨겠군요.”
“물론이죠. 고층 빌딩 청소나 여기 수중 작업도 그래요. 어디 간단한 일이던가요? 늘 이런 식이에요. 거절하면 다음 의뢰는 없다는 식이고 그나마 거미줄처럼 깔려 있는 관리 하청도 줄줄이 파기될 판이죠. 비위 맞추랴, 일 처리하랴, 접대하랴, 정말 거지 같아서.”
역시 그날인 건가?
아까까지 서 있던 리무진이 이동하고 난 이후에는 좀 표정이 편해졌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입이 터져 버린 이서경의 이야기에 대충 장단을 맞춰 주며 언데드의 눈을 통해 시계를 본다.
‘언제까지 저럴 거야? 오늘 이사도 해야 하는데.’
일을 끝내자 좀 급해졌다.
“하하하! 사는 게 다 그렇죠. 뭐, 이 팀장님이 고생하시는 것도 회사에서 이해를 할 겁니다. 이제 남은 공정이 뭐죠?”
“아! 죄송해요. 워낙 쌓인 게 많다 보니. 이제 남은 공정은 간단한 검수죠. 아까도 괜찮았으니 금방 끝날 거예요.”
이서경은 다리 난간에서 죽치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직원들을 부른다.
“다리 전체 검수하세요. 빈틈없어야 해요. 회장님께서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계시니까요.”
“네!”
직원들의 군기가 바짝 들어가 있다.
그래, 저게 바로 이서경의 모습이지.
그럼 슬슬 돌아갈 준비를 해 볼까?
“헤헤, 이 팀장님. 입금은……?”
나는 더욱 낮은 자세가 된다.
일은 문제가 안 되는데 원래 돈을 받는 것이 어렵다. 당일 입금이라고 이서경이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원래 사람 사는 게 약속대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그렇게 말하고 입 닦는 경우도 많이 봤다.
하지만 나름 튼실한 회사는 다른 것 같다.
“아! 확인만 되면 바로 입금돼요.”
“감사합니다.”
“뭘요. 저희는 사장님 같은 분을 만나서 쉽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네요. 저희 직원들을 대표해서 감사드려요.”
“이거 황송합니다.”
이건 으레 하는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황송하다.
그녀로 인하여 이번 일도 진행할 수 있었다. 1억이라는 큰 공사를 누가 신생 업체에 내어 준다는 말인가.
아무리 신기술이 있다고 했어도 사회의 보편적인 인식을 보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로 인하여 경력도 쌓고 돈도 번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고마운데?
장비의 정리를 끝내고 차에 올라타기 전에 슬쩍 그녀에게 흘렸다.
“나중에 밥이라도 한번 대접하고 싶군요. 제 아내가 외국인이지만 상당히 한식을 잘합니다.”
“아! 그럼 초대를 해 주시는 건가요? 그 귀여운 소녀까지 있는 거고!?”
이서경은 갑자기 흥분한다.
아, 잠시만. 그렇게 콧김까지 뿜어내면 내가 좀 곤란해지잖아? 그 냉철함의 표본 이서경이 맞아?
아무래도 이건 보류를 해야 할 것 같다. 내 딸이 저런 아줌마에게 노려지는 것을 방치할 수는 없지.
H그룹 본사.
이강노 회장은 한참이나 서류의 바다에 빠져 있다가 한철수 본부장의 보고에 잠시 고개를 들었다.
“회장님. 교량 보수 공사가 끝났다고 합니다.”
“오, 벌써 말인가?”
“예. 아무래도 기술력이 있어서 그런지 상당히 빠르게 일을 처리한 것 같더라고요.”
사실, 한철수도 다 닦아의 기술력에 놀랐다.
영상을 보았는데 그건 이 세상 기술이 아닌 것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보시겠습니까?”
“허허허! 간만에 관심 있는 사업가가 나타났는데 봐야지.”
앞선 기술력에 감탄한 것은 이강노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아직 호기심의 단계.
만약 이강노 회장이 정말로 마음을 먹는다면 물량 공세에 기술 지원 러시가 들어갈 것이다. 다 닦아의 대표 이유성이 이강노 회장의 후보군에 들어간 것은 확실했다.
이강노는 화면을 보면서 혀를 내두른다.
“여기 조류가 심하다지 않았나?”
“사실 그 때문에 모아 건설로 하청을 준 겁니다. 잠수함이 들어가야 하는데 십중팔구는 부서져 나오거든요.”
“어떻게 조류를 견딘 건가. 그것도 장시간 말일세. 사람이 들어가면 그냥 휩쓸려 나가지 않나.”
“그러니 놀라운 일이지요. 래시가드를 보시면 산소통도 없습니다. 뭔가 물속에서 자체적으로 숨을 쉴 수 있도록 고안이 되어 있다는 거죠.”
“허허허허. 놀라운 일이야.”
이강노는 오랜만에 눈이 호강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강한 호기심이 들었다.
도대체 저 사업가는 이런 좋은 기술로 얼마나 발전된 회사를 꾸려 나갈 것인가.
“저 친구가 예전에는 뭘 했다고 했지?”
“한정식집이랍니다. 혹시 금손이라고 아십니까?”
“아니, 거긴 회식 때문에 자주 가던 곳 아닌가?”
“거기 대표였답니다.”
“불가사의하군. 그렇다고 따로 전공을 한 것도 아닌데 저런 기술을 개발하다니……. 천재인가?”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딸도 천재라고 일대에서 소문이 자자합니다.”
회장의 관심이 쏠리니 실장 겸 본부장의 입장에서는 간단하게 조사를 했다. 그리고 그 딸이 천재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게다가 그 아내는 영국 왕족이랍니다. 코튼 백작가 계승 서열 1위였죠. 이유성 사장과 결혼을 강행하는 바람에 계승 서열이 박탈되었답니다. 다만 현 계승자가 사망하면 자연스럽게 다시 계승권이 돌아옵니다. 영국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죠. 그래도 한국에는 소문이 퍼지지 않게 영국 왕실에서 케어를 해 준 모양입니다.”
“……그 친구 정체가 뭐야? 나중에 혹시라도 아내가 작위를 계승하면 대체 어떻게 되는 건가? 복도 많은 사내로군.”
“지금은 사업가죠.”
“허어. 하여간 내 눈 호강을 시켜 주었으니 그에 알맞은 선물을 주어야겠지. 너무 쓰면 자만에 빠질 우려가 있으니.”
이강노는 간단하게 2억을 써냈다.
그 액수를 보더니, 한철수가 식은땀을 흘리며 만류했다.
“회장님. 0 하나 빼시죠? 충분히 자만에 빠질 만한 금액입니다만.”
“허허, 그런가? 내가 흥분해서 과했군. 요즘 손이 떨려서 원.”
회장이 백지수표에 써낸 2천만 원은 바로 현금으로 전환되어 이유성 사장의 통장에 꽂혔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그러면서도 하나의 걱정거리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입금이었다.
H그룹에서 보증하고 빌딩 청소에 대한 대금도 꼬박꼬박 지급했던 모아 건설에서 지급하는 건이었지만, 하도 없이 살다 보니 1억이라는 큰돈이 이런 간단한 작업으로 정말로 들어올지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지이잉.
10분마다 차를 멈추고 휴대폰을 들여다보기를 한 시간.
농협의 이름으로 문자가 왔다.
[Web발신]농협 입금 120,000,000원. 11/14 14:20 094-01****81 모아건설 잔액 122,421,291원
“왔구나!”
짜릿한 손맛이 느껴졌다.
일단 8자리가 통장에 꽂혔다는 건 최소한 1억은 넘는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대체 추가로 이체된 2천만 원은 뭐지?
“엉?”
그리고 내 눈을 확인한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어려운데 돈을 더 주는 경우도 있던가?
계약서에도 1억으로 되어 있었고 이서경도 몇 번이나 확인을 했다.
“신종 보이스 피싱인가?”
그렇게 의심을 했지만, 입금자를 보면 그게 아니다. 분명히 늘 들어오던 명의가 들어 있다. 무엇보다 돈을 직접 쏴 주는 피싱 사기도 있다던가?
돈이 더 들어오니 별의별 의심이 다 들었다.
곧바로 이서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팀장님?”
-안 그래도 연락드리려 했어요. 2천 더 들어가서 놀라셨죠?
“당연하죠. 공짜로 2천이 더 들어왔는데 안 놀랄 사람이 있겠어요? 당연히 놀라죠. 놀라 자빠질 뻔했네.”
-그거 H그룹에서 수당을 합산한 거예요.
“웬 수당이래요?”
-검사 결과가 좋으니 수당을 준 모양이네요. 확실한 건 H그룹에서 직접 내려온 돈이니 안심하고 쓰셔도 돼요.
“오오!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어요. 다음에 초대해 주신다는 약속은 꼭 지켜 주셨으면 좋겠어요.
“아, 그건.”
바로 전화가 끊어진다.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는 여자다.
내가 찝찝해하니까 아예 기정사실로 만들어 버리는 느낌이다. 우리 수정이가 그런 매력이 있기는 한데…….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에게 계속 도움을 받으려면 어쩔 수가 없는 건가.
언제 아내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다.
돈도 받았으니 힘차게 움직여 볼까?
8마리의 언데드와 함께 쪽방촌을 오른다.
당연히 언데드는 다 닦아의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휘이잉.
여전히 황량한 거리, 바닥에는 낙엽이 굴러다닌다.
이곳에 와서 과거를 비춰 보니 때때로 새삼 돈의 무서움을 느낀다. 돈이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지 않던가.
수중에 30만 원만 남아 있었을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살이 다 떨릴 지경이다.
큰길을 경계로 하여 아예 다른 세상의 모습. 뒤에 산들이 둘러싸고 있어 바람은 또 얼마나 오지게 부는지 체감온도는 더 내려간다.
산 중턱에 이르렀다.
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었고 을씨년스러움마저 느껴졌다. 아마도 뒤에 공동묘지가 있어 음기가 흘러들어오니 더욱 그리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지난 1년을 보냈다.
다 쓰러져 가는 판잣집에 보일러까지 고장 났고 화장실마저 공용이다. 이런 곳에서 네 식구가 살았다니. 믿겨지지 않는다.
갑자기 눈이 높아진 건가?
신축 건물에 들어왔다고 과거의 기억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겠지.
하나하나 사업 실패의 흔적들을 둘러보다가 상념에서 깨어난다.
“그렇지만 과거에 너무 얽매이는 건 좋지 않지. 나는 지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노력해서 올라가면 되는 거야.”
바로 언데드에게 명령을 내렸다.
폐기물 차도 산 아래에 불렀다. 이곳에서 대부분은 버리고 옷가지와 몇 가지 가재도구만 챙겨서 이사할 생각이었다.
짐을 싸고 보니 버릴 것투성이다.
하나같이 낡아 빠진 옷과 집기들.
“오늘, 새집에서 새롭게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