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do business in full auto RAW novel - Chapter 19
풀 오토로 사업합니다 019화
019
신기술(1)
11월 말.
장장 한 달에 걸친 빌딩 청소가 끝났다.
처음 시작을 할 때만 해도 보름 정도를 예상했었는데 아무리 빨리 청소를 해도 시간이 꽤 걸린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H건설에서 100층 위쪽만이 아니라 50층부터 100층까지의 청소도 모아 건설을 통하여 의뢰를 하였기에 그만큼의 시간이 걸린 거다.
그렇게 H빌딩을 청소하고 있을 때, L그룹과 S그룹에서도 같은 수준으로 의뢰를 했다.
하여간 이 바닥에서 있다 보니 재벌들의 경쟁의식에 대한 부분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는데, 일단 그들은 남들이 하면 다 한다는 주의였다.
하는 짓들이 초등학생보다도 더했는데, 저쪽에서 이만큼을 했으면 이쪽에서는 최소한 그 수준에 맞추거나 좀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지어진 3개의 랜드마크들은 그런 어처구니없는 경쟁의 산물이었다.
물론 그로 인하여 내가 돈을 버는 것이었지만, 자세히 파고들어 보면 그런 사소한 경쟁의식에서 출발을 했다.
마지막 50층까지 끝나고 짐을 정리하였을 때, 이서경이 옥상으로 올라왔다.
날씨는 한층 더 추워지고 H빌딩 옥상은 숨쉬기도 힘들 지경이라 완전무장을 한 후에 나타났다.
“고생 많으셨어요!”
“일단 들어오세요.”
언데드야 추워도 상관없었지만, 이런 날씨에 밖에 있으면 동상에 걸릴 수도 있다.
따듯한 사무실로 들어오자 이서경의 양쪽 볼이 붉게 물들어 간다.
그녀는 난로에 한참 동안 불을 쬐며 몸을 녹였다.
“날씨가 장난이 아니네요. 이런 한겨울에도 청소를 할 수 있다니……. 정말 기술력이 대단하세요.”
“부동액으로 닦는 거니 그런 겁니다. 별다른 기술도 아니죠.”
“부동액값만 해도 장난이 아니었겠는데요?”
“다 남으니 하는 일이었습니다.”
당연히 거짓말이다.
미쳤다고 건물 청소에 부동액을 쓸까? 그러자면 어마어마한 돈이 깨졌을 거다.
이 역시 흑마법으로, 다크 워터라는 마법이 있다. 얼음을 물로 만들어 사용하지만, 혹한의 날씨에도 얼지 않는다.
물탱크 전체를 이 다크 워터로 채워 청소를 하였기에 얼지 않은 것뿐이었다.
이서경으로 인하여 꽤 많은 돈을 벌었으니 역시 식사에 초대를 해야 하는 걸까.
“오늘로 끝났네요. 그 귀여운 아이도 못 보겠네요.”
이서경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이 말을 빙빙 돌리고 있었다.
원래 이런 여자가 아니었는데?
역시나 이건 식사에 초대를 하라는 압박이다.
“하하하! 식사에 초대한다는 말을 깜빡했네요.”
“정말인가요!?”
난로 앞 의자에 앉아 있던 이서경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마터면 불에 데는 줄 알았다.
그녀는 콧김을 뿜어내며 눈을 치켜떴다.
“언제요? 저녁에요? 아니면 지금? 내일?”
“빠, 빠른 시일 내에요.”
“와아! 잘 차려입고 가도록 할게요.”
그녀의 눈이 반달로 휘어졌다.
이렇게 기쁘게 웃는 모습은 처음 본다. 회사 내에서는 아직도 얼음 마녀로 통하는 모양인데 도저히 지금의 얼굴을 보면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
최소한 나에게 있어 이서경은 마음씨 따듯한 사람이었다.
“그럼 제가 온 이유를 밝혀야겠네요.”
‘역시나.’
이 여자, 안 그래 보이는데 꽤 복잡하다.
그러니까 원래부터 의뢰를 넣을 생각이었는데 초대해 준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안 그래도 연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연장인가요?”
“재계약이라고 해 두죠. 남산타워와 부산타워, 대구타워 등 서울을 비롯해서 총 8개 도시의 랜드마크 타워를 관리해야 해요. 그중에서 고층 청소를 의뢰하려 했죠.”
“오! 그렇습니까?”
기대감이 차오른다.
이번에는 기업이 아니라 각 지자체에서 의뢰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면 원래부터 모아 건설이 관리를 하고 있었거나.
괜히 50대 기업에 들어간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시국에도 모아 건설은 성장하고 있었다.
“의뢰금은 건당 1,500만 원이고 총 1억 2천이네요. 지금과 같은 기술력으로 바로 진행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한겨울에도 청소를 할 수 있냐는 거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당연합죠. 문제없어요.”
“그럼 바로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할까요?”
“그 상무와 작성하는 것이 아니었나요?”
“상무님은 바쁘셔서 제가 위임을 받았어요. 그러니 이 자리에서 작성을 해도 돼요.”
“하하, 그러죠.”
벌써부터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요즘에는 그냥 빌딩 청소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돈이 들어오고 있었다. 예전에 잘나갈 때와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일단 먹고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거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시공은 며칠 후에 들어가기로 했다.
“아! 그리고 오늘 만나 보실 사람이 있어요. 사장님께서 원하신다면요.”
“예? 당연히 중요한 일이라면 만나 봐야 하는데……. 대체 누가요?”
“H그룹 구조본부장님이…….”
“뭐라고요!?”
나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무리 사무실이 따듯해도 기본적으로 냉기가 돌아서 입이 굳어져 있는데 순간적으로 입이 쩍 벌어질 지경이었다.
H그룹 구조본부장.
H그룹에는 후계자도 있었고 자식들이 각 회사를 맡아 운영하고 있었지만, 구조본부장은 실질적인 2인자라는 말이 있었다.
도대체 왜 H그룹 본사에서 나를? 그것도 회사의 2인자가 말이다.
“제가 뭘 잘못했는지?”
“전혀요.”
“그럼 뭐가 마음에 안 든대요?”
“같은 맥락의 말씀이네요. 아니에요.”
“대체 왜요? 저는 가난해서 별로 털어먹을 것도 없습니다만…….”
“하여간 이게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사업하시려면 높은 사람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요?”
아내에겐 미안하지만, 갑자기 이서경의 등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이 이만큼 먹고살게 된 것도 이서경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미래에 대한 포석까지 깔아 주었다.
나도 모르게 이서경의 손을 붙잡았다.
“감사합니다, 천사님!”
“별말씀을.”
“제 인생에서 팀장님을 만난 것은 가장 큰 행운이군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그럼 따님을 제게 주실래요?”
“죄송하지만 그건 안 되겠는데요.”
나는 급하게 정색을 했다.
그리고 잠시 우리들의 사이에서는 아주 미묘하고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엘리베이터 안.
이서경은 아직도 몸이 오들오들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겨울마다 새삼스럽지만, 국내 빅3 그룹에서 랜드마크로 세운 빌딩의 옥상들은 하나같이 지옥이었다.
사실 관리업체의 팀장만 아니었다면 저런 지옥을 뚫고 올라갈 이유도 없었겠지. 그나마 사무실에 있어서 다행이지, 안 그러면 얼어 죽었을 거다.
이서경은 드디어 이유성 사장의 집에 초대받았다. 빠른 시일 내라고 한다.
사장의 딸들을 생각하니 입이 헤벌쭉 찢어진다. 그러다가 사무실에 이르러 급하게 표정을 가다듬었다.
이제 사무적인 모습으로 돌아가야 할 때였다.
돌아오자마자 회사 전화로 한철수 구조본부장에게 전화를 했다.
옛날 사람들이라 그런지 휴대폰보다는 사무실 전화를 선호하는 그들이었다.
-날세.
“본부장님. 약속 잡았습니다.”
-나를 만나겠다고 하던가?
“물론이죠. 감히 누가 부르셨는데 가지 않겠어요?”
-허허허! 자네가 내 얼굴에 금칠을 하는군. 사실 내가 직접 나설 일까지는 아닌데 회장님께서 그 친구 인성을 좀 보고 오라고 하셔서 말이야.
“예!?”
이서경은 이유성이 회장의 관심을 받게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제 은퇴할 나이가 다가오는 이강노 회장은 돈이 있을 만큼 있었으며 한국에서는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재계 1위의 위업을 달성했다. 그러고 나니 예전에 비하여 개인적인 방침을 바꾸었는데, 그게 바로 차기 유력 기업인의 육성이었다.
전도유망한 젊은 기업인을 육성하여 대한민국의 허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 자신의 여생 동안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 거다.
그런 이강노 회장이 이유성 사장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아직 본격적인 공세를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만약 이강노 회장이 이유성에게 손을 뻗기 시작한다면 ‘다 닦아’라는 회사명을 바꾸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
이강노 회장은 어느 정도 이유성 사장의 기술력이 검증되었다고 봤고 이제는 인성을 시험하려 하고 있었다.
“이유성 사장님이 낙점되신 모양이네요.”
-그럴지도, 혹은 아닐지도. 아무리 전도유망하다고 해도 인성이 바르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고 보는 게 회장님의 생각이야. 한때 잘나갈지 몰라도 결국에는 인성이 바른 사람이 성공하지.
“그렇군요.”
누구에게나 통용된다고는 볼 수 없는 이강노 회장만의 신념이 돋보인다.
-하여간 고생했네.
“아닙니다. 제가 고생을 한 것이 아니라 이유성 사장이 고생했죠.”
-허허허! 안타깝군. 자네도 회사 나와서 사업을 하는 것이 어떤가? 거기 있는 것이 좀 아까워 보이는구먼.
“송충이는 뽕잎을 먹고 살아야죠. 저는 제 주제를 알아요.”
-그런가? 아쉽게 됐군. 이만 끊네.
“네, 본부장님.”
이서경은 전화를 끊고 식은땀을 훔쳤다.
이강노 회장의 오른팔이자 회사의 실질적인 2인자인 한철수 본부장에게 잘못 보였다가는 인생 자체가 꼬인다.
이유성 사장이 약간 걱정되기도 했다.
“일이 잘못 풀려서 오늘 초대가 무산되는 건 아니겠지?”
그리고 그녀에게는 또 다른 걱정이 생겼다.
H그룹 본사.
여의도에 위치하고 있는 H그룹 본사는 초창기부터 사용하였다는 상징성 때문에 이전을 하지는 않고 있었다.
독불장군에 약간은 보수적인 면이 돋보이는 이강노 회장의 신념이 보인다.
“아……. 나는 어쩌다 여기에 온 건가.”
설마 신기술 때문은 아니겠지?
내가 가진 기술은 대량 복제가 불가능하다. 아니, 세상에 선보일 수도 없었으며 그냥 내가 직접 사업을 하지 않는 이상은 팔아먹을 수가 없는 기술이었다.
슬슬 H그룹에서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면 기술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대한민국 재계 1위 본사에서는 알 수 없는 기운까지 흐르는 것 같았다. 터가 좋아서 그러는 걸 수도.
“후우.”
심호흡을 한 번 한다.
이강노 회장의 오른팔이라고 불리는 본부장이었지만, 다 똑같은 사람이 아니던가?
바로 본부장의 집무실이 있는 39층으로 향한다.
40층이 회장의 집무실. 그리고 그 바로 아래가 바로 대한민국을 주무르는 H그룹의 실질적인 실무 책임자가 일하는 곳이다.
엘리베이터 앞에 웬 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본부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아, 예.”
아주 무거운 분위기.
39층 전체의 중력이 다른 곳과는 완전히 다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발걸음이 매우 무겁다.
도대체 본부장은 무슨 말을 하려고 부른 걸까?
이렇게 부른 것을 보면 사업 제의가 확실한데……. 그렇다고 일개 신생 업체의 사장을 부른다고?
‘정말 이해를 못 하겠네. 단순히 노망이 든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가운데 드디어 한철수 본부장과 마주할 수 있었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한철수 본부장.
그런데, 이 노인네 반응이 왜 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