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do business in full auto RAW novel - Chapter 36
풀 오토로 사업합니다 036화
036
영국으로(2)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
“전적으로 당신의 뜻에 따르고 싶어요. 저는 이미 집안과 인연을 끊었어요. 철저하게 당신과 아이들만 바라보며 살아가기로 뜻을 굳혔죠. 지금까지 가난이나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그런 물질적인 것들은 언젠가 극복될 것이라고 믿었고 혹시라도 당신이 재기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여겼어요. 저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물질적인 것들이 아니니까요.”
즉, 아내는 정신적인 가치에 모든 것을 둔다고 이야기하는 거다.
만약 아내가 파문을 당하고 곧바로 소송을 진행했다면 어떨까. 아마도 코튼가의 재산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할 수 있었을 거다.
코튼가는 중세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유서 깊은 가문이다.
당연히 중세 무렵부터 하던 가족 사업이 있었고 대영제국 시절에는 수많은 이권들에 개입하기도 했다.
과연 그들이 쌓아 놓고 있는 재산이 적을까?
전 세계에 부동산을 보유한 것은 물론이고 영국의 그 유명한 K그룹이 바로 코튼가의 소유였다. 아직도 영국은 잘나간다. 브렉시트을 시작으로 전 세계 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면 영국의 저력이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런 가문에 소송을 하였다면 아마도 평생 쓰지 못할 돈을 가져오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나에게도 의중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당신이 원한다면 제가 코튼가에 지분을 요구할 수도 있어요.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당신이 조금이라도 물질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돈이야 먹고살 만큼 있잖아? 괜히 그런 식으로 당신의 자존심을 깎고 싶지 않아. 당신은 그저 내 아내로 있으면 돼.
딴에는 멋있게 보이려고 했던 말일 수도 있겠다.
그 당시에는 나도 큰 사업체를 물려받기 위하여 수업을 하고 있었다. 돈이 궁색하지는 않았다는 거다.
물론 코튼가에서 지분을 받았다면 어마어마한 돈을 상속받았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큰돈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다.
최소한 사업이 망하고 가족들이 굶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을 했었지. 그렇기에 어려웠던 시절에 영국으로 날아가려 생각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거다.
그리고 코튼가에서 했던 짓을, 나에게 망신 주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절대 아내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다만 제임스의 말이 계속 걸린다.
어떤 부모님이라도 임종을 지키지 않았을 때의 후회는 평생 가슴에 남는다.
과연 그 후회와 멍에를 아내가 짊어지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문득문득 생각나서 괴로워하는 것보다는 가는 것이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까지 결심하기는 나도 쉽지 않았다.
“가는 것이 맞다고 봐.”
“여보…….”
“처삼촌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어. 그 멍에를 평생 감당하는 것보다는 깔끔하게 다녀오는 거야. 어차피 우리는 그 가문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들이야. 그저 당신을 낳아 주신 어머니에게 예의를 표하는 거지. 그분이 당신과 나에게 모질게 군 것도 사실이야. 하지만 말이야.”
나는 말을 끊고 녹차를 쭉 들이켰다.
소주를 두 병이나 마셨더니 목이 자꾸 타들어 갔다.
“당신을 낳아 주셨기에 지금 당신이 내 앞에 있는 거잖아. 그게 나에게는 가장 큰 선물이야.”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 결정을 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나는 그렇게 말해 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오늘의 결정을 후회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코튼 성에 입성하는 순간부터 후회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런 잠깐의 후회는 견딜 수 있었다. 아내가 평생 후회하는 광경을 보게 하느니, 잠깐의 치욕은 참을 수 있었다.
“영국으로 가자.”
이른 아침.
영국행 비행기는 바로 예매를 하였지만, 오늘 밤 티켓밖에 남지 않았다.
곧바로 예매를 한 후에 출근 준비를 했다.
각 광역시에 인부들을 뿌렸지만, 서울과 인천이 남아 있었다. 오전 안에 일과를 끝내고 오후에는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바로 공항으로 갈 준비를 해야겠지.
어제의 일이 있었지만, 아침의 분위기는 예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아내가 감정을 잘 절제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참 대단한 여자와 결혼을 했다. 여자의 감정이 이렇게 흔들리지 않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다.
도리어 내 감정이 흔들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나도 아내에게 반쯤 동화되어 큰일에는 감정이 잘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원래 부부가 오래 살면 닮아 간다고 하지 않던가.
“우웅……. 아빠?”
“수정아!”
“수정이가 잠이 덜 깨서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야? 아빠는 분명히 광주에 있다고 했는데.”
“아니야. 어젯밤에 수정이 보고 싶어 왔지!”
“헤헤! 빈말인 줄 알면서도 기뻐!”
“인마. 빈말이라니. 정말이야.”
“그럼 오늘 아무런 일도 없는 거야?”
“아니. 잠깐 외가에 갈 거야.”
“응?”
수정이의 안색도 어두워진다.
어른스러운 수정이는 대충 가정사를 알고 있었다.
하도 반대가 심해서 처가와는 인연이 끊겼다고 이야기를 했었지. 영특한 수정이는 당연히 이해를 하였고 말이다.
“엄마. 괜찮아?”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가 결정한 일이니까, 괜찮아.”
“와! 정말 우리 엄마지만 아빠는 결혼을 잘한 것 같아. 헤헤, 그런 천사가 엄마인 게 기쁘기도 해.”
아내는 수정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거면 됐다.
가족 간의 유대는 탄탄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수정이도 별로 처가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수정이가 갓난아이였을 때는 몰라도 지금의 수정이라면 충분히 국제법을 들먹이면서 고깝게 구는 사람들을 협박하는 것도 가능하겠지.
“아빠는 잠깐 출근했다가 오후에 올 테니까 그때까지 수정이도 준비하고 있어. 엄마 도우면서 말이야.”
“응! 그래도 가는 김에 여행도 하는 거지?”
“어, 그렇지. 하루 정도면 괜찮아.”
“와! 신난다!”
사실 여행까지 갈 생각은 없었다.
그냥 코튼 가문만 들러서 장모님의 임종만 지킬 생각이었는데 수정이가 또 저렇게 나오니 간 김에 여행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런던 구경을 좀 하는 건데 하루 정도야 시간 뺄 수 있지.
가는 데 하루, 여행 하루, 오는 데 하루. 그렇게 되면 빠듯하지만, 탐사 일정에는 차질이 없을 것 같다.
식사를 마친 후에 외투를 입었다.
아내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옷매무새를 고쳐 주었다.
“그럼 다녀오세요. 일단 본가에 대한 일은 생각하지 말고 계세요. 일에 지장이 가면 안 돼요.”
“하하! 물론이지.”
출근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오늘 처가에 대해 신경을 쓰지 말라고?
그게 말이 쉽지 벌써부터 가슴이 선득한 것이 느껴진다.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마 예전같이 직접 언데드를 조종하려 하였다면 사고가 일어났을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언데드가 떨어져서 박살 나는 대형 사고가 일어났겠지.
하지만 지금은 악령들이 언데드에 깃들어 그럴 염려는 없었다. 그저 부지런하게 움직이기만 하면 오전 내에 일을 끝낼 수 있을 정도였다.
빠르게 남산타워의 배치를 마치고 인천으로 향하려 했다.
빨리 일을 처리할수록 빨리 집에 돌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점심 정도는 가족들과 함께한 후에 비행길에 오를 수 있겠지.
남산타워를 나오는데 웬 검은 정장에 코트를 입은 남자가 다가왔다.
“뭐 또 어디에서 보낸 깡패인가?”
NK그룹에서는 나에게 호의를 보이기로 약속했다. 그 약속을 전부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깡패 족속들이 약속을 뒤집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충분히 들었다. 복수를 하기 위해 암살자를 보낸다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그런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혹시 다 닦아의 이유성 사장님 되십니까?”
“그렇습니다만.”
“문화관광부 이순신 프로젝트 담당자 오상식이라고 합니다.”
“담당자요?”
명함을 내미는데 사무관이다.
사무관이면 5급 공무원이었고 경찰로 치면 경정과 동급이지. 한 급만 더 올라가면 경찰서장과 같은 수준.
이것만 보아도 정부에서 얼마나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청업자인 나에게까지 사람을 다 보내고 말이다.
“무슨 일이신지?”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시계를 본다.
아직 9시밖에 되지 않았다. 인천의 일을 처리한다고 해도 점심 전까지는 집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15분 정도면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군요.”
“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근처 카페.
오상식은 다소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먼저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코튼가의 안주인께서 위독하시다고 들었습니다.”
“저를 감시하고 있었다는 소리로 들리는군요.”
“감시라니요? 사실 리사 부인은 저희 한국에서 귀빈으로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그분께서 완강하게 거절하셔서 가끔 안부나 확인하는 정도였지요. 사실, 정부 지원 프로젝트도 검토하고 있었습니다.”
정부에서도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하던 참이었던 것 같다.
영국 왕족이 한국에 귀화했다. 인연이 끊겼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그래도 천륜이 그리 쉽게 끊기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정부에서도 알았던 것 같다.
“그럴 거면 진즉 도와주실 것이지.”
“죄송합니다.”
“어쨌거나 할 말이 뭡니까?”
“이번에 탐사를 하신다고 하셔서요. 어떤 방식으로 탐사를 하게 될지 간단하게 보고서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아, 그건 곤란합니다.”
“여기도 절차라는 것이 있어서. 부탁 좀 드립니다.”
“기밀입니다. 아무리 정부라고 해도 회사 기밀까지 내어 달라고는 못 하시겠죠. 적절한 장비로 적절하게 잘 탐사하겠습니다.”
“흠…….”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귀신을 사용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대충이라도 안 될까요?”
“탐사 장비를 이용한 탐사라고만 알아주세요.”
“직접 개발하신 탐사 장비입니까?”
“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까지 거절을 하였으면 그도 알아먹었을 거다.
“그렇게 보고하겠습니다.”
그는 순순히 물러났다.
설마 정부에서는 아내 눈치를 봐서 이 정도로 하고 넘어가는 건가?
혈통의 힘이 새삼 대단하다는 것을 느낀다.
알게 모르게 영국 왕실과 정계, 심지어는 영연방과 미국의 정계에까지 관련이 있었기에 정부에서 저리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나야 뭐, 그렇게 알아서 물러나 주면 고마울 따름이었고.
시계를 바라본다.
몇 가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20분은 지나 있었다.
“빌어먹을. 15분이라고 하더니.”
지금은 5분도 아깝다.
가왕 시간을 보낼 것이라면 가족과 보내고 싶었지, 별로 상관도 없는 사람과 시간을 오래 보내는 건 사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