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do business in full auto RAW novel - Chapter 4
풀 오토로 사업합니다 004화
004
기반 잡기(2)
서울 송파구 신천동에 위치하고 있는 L타워.
지상 123층에 높이 555m에 이르는 한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듣기로는 공사 기한만 6년 이상 걸렸다고 하지. 공사 비용은 4조 원.
단순하게 따져도 전 세계에서 5번째로 높은 건물이다.
그런 상징성 때문인지 S그룹과 H그룹도 앞다투어 신천동에 고층 건물을 건축하였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재벌들의 무분별한 경쟁 때문에 고도 200미터가 넘어가면 빌딩과 빌딩 사이에서 발생하는 바람, 즉 빌딩풍이 활성화되는데, 한때는 이것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하였다.
현재는 3개의 거대한 빌딩들이 삼각형으로 우뚝 솟아 있는 형국이었고 주변 건물들에서 바람이 타고 올라가 삼각형에 갇힌다. 그런 강한 빌딩풍 때문에 유지 보수에 꽤나 애를 먹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는 수식어와는 어울리지 않게 상층부로 가면 꽤나 지저분한 모습이었는데 도저히 사람이 매달려서 작업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미루고 미루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인간은 감정이 있는 동물이다. 전쟁터에 나가지 않는 이상 목숨 걸고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까?
빌딩으로 들어와 화장실에서 옷을 점검한다.
방금 뽑은 따끈따끈한 명함까지 장착하고 관리실로 향한다.
‘하면 된다.’
이렇게 직접 영업을 뛰어 보기는 처음이었다.
잘나가던 시절에는 워낙에 입소문이 자자하여 영업 따위는 뛸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은 난생처음이라는 뜻이다.
관리 업체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조사를 해 봤다.
L그룹에서는 L건설에 관리하청을 줬고 L건설에서는 모아 관리라는 곳에 하청을 줬다.
즉 나에게 일을 맡겨 줄 수 있는 업체는 바로 모아 관리라는 회사였다.
항상 팀장급이 상주하면서 건물을 유지 보수한다고 하니 이곳으로 찾아오는 것이 답이 아닐까 싶다.
똑똑똑
사무실의 문을 두드린다.
보일러실 바로 옆이라 그런지 시끄러운 기계음이 들렸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 꽤나 음침한 분위기까지 흐른다.
예전 같았으면 기분이 나빠서 돌아 나갔을 수도 있지만, 흑마법을 익히고는 어쩐지 친근해진 느낌이다.
“들어와요.”
“음?”
꽤나 날카로운 고음의 목소리다.
관리자가 여자였던가?
그럼 조금 까다로울 수도 있겠다. 아내와 같은 천사는 이 세상에 드물기에 대부분의 여자들은 겉으로는 친절해도 속으로는 깐깐하게 구는 경향이 있었다. 한식집을 하면서 터득한 노하우라고 할까.
그리고 그런 여자들을 상대하는 건 또 내 전문이지.
“들어갑니다.”
내부에는 직원이 몇 명 있었는데 남자 직원 몇 명과 여직원 둘이다.
왼쪽 벽에는 관리 일정이 적혀 있었으며 오른쪽 벽에는 건물의 3D 도면이 거대하게 붙어 있다.
그리고 가장 상석으로 보이는 곳에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썩 예쁘다고는 볼 수 없었지만, 나름 지적인 분위기가 풍긴다고 할까. 다만 얼굴에 짜증이 약간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직선으로 팀장에게 다가가 인사를 한다. 명패에 팀장이라고 쓰여 있으니 팀장이 맞겠지.
그녀가 안경을 고쳐 쓰며 날카롭게 묻는다.
“어디서 오셨죠?”
“이런 곳에서 왔습니다.”
나는 오늘 판 명함을 내밀었다.
[건물 외벽 청소 전문 업체 ‘다 닦아’ 대표 이유성]“…….”
업체명이 조금 촌스러웠나?
어차피 오래 쓸 곳도 아니고 임시로 업체를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됐다.
번듯하게 사업자 등록증이라도 있어야 이런 큰 기업과는 거래를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뭐든 증거 자료를 중요하게 생각했으니까.
더불어 업체라는 수식어가 들어가 있으면 회사 이윤이라는 것도 있었기에 개인적으로 뛸 때보다는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다.
여자의 목소리가 좀 더 날카로워진다.
“그런데요?”
“우리나라 트레이드마크인 L타워의 외벽에 관리가 필요할 것 같아서 이렇게 방문을 드렸습니다.”
“딱 보니 신생 업체인 것 같은데 우리가 뭘 몰라서 청소를 하지 않는 줄 알아요?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가세요.”
역시 쉽지는 않다.
기업 실적이라고는 전혀 없는 신생 업체를 그냥 써 줄 만큼 이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어디 남의 돈 먹기가 쉽던가.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지. 가족의 생계가 달린 문제다.
“빌딩풍 때문에 고도 200m 이상부터는 청소가 어렵다는 걸 잘 압니다.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희는 다릅니다. 신기술이 있기에 절대적으로 청소를 완료할 수 있죠.”
“신기술?”
그제야 여자는 관심을 보인다.
당연히 뻥이다. 신기술 같은 것이 있을 턱이 있나.
그냥 외줄 하나 매고 언데드의 정체가 탄로 나지 않도록 무장시킨 후에 매달아 놓으면 그게 신기술이다.
‘아니, 흑마법이니 신기술은 신기술인가?’
속으로 키득거리고 있는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하게는 어떤 기술인가요? 생전 외벽 청소하는 데 신기술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데요.”
“그게, 회사 기밀이라……. 하지만 맡겨 주신다면 아주 번쩍번쩍 광이 나게 밀어 드리겠습니다! 아주 깔끔하게 말입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댁을 뭘 믿고요? 뭔 유령회사 같은 느낌인데.”
망원동 묘지 근처에는 회사가 없다. 그런 곳을 주소지로 적어 두었으니 단순한 개인 업체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당연히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그래서 비장의 카드를 준비했다.
“모든 것은 후불! 후불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불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흐응.”
여자는 낮은 비음을 낸다.
역시나 높은 자리에 오른 여성일수록 상대하기 힘든 경향이 있다.
그녀는 고개를 들더니 명함을 내밀었다.
[(주)모아 건설 관리팀장 이서경]‘단순 하청이라 생각했는데 나름 종합 건설사였나.’
“일단은 알겠어요. 상부에 보고해 보죠.”
“감사합니다.”
큰 회사일수록 체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번 일은 이서경 팀장의 손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모양이다.
나는 허리를 90도로 꺾고는 사무실을 나온다.
고객은 왕이다. 돈을 주고 가정의 생계를 꾸려 나가게 해 준다는데 어떤 까다로운 고객이라도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L타워를 방문하고 S빌딩과 H빌딩까지 모두 들렀다.
빌딩풍을 만들어 내고 있는 건물 관리자들을 만나고 오는 길이었다.
그러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각 빌딩들은 그들 산하 건설사가 관리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하청을 모아 건설로 밀어주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내가 잘 모르는 로비나 기술적인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세 빌딩의 특징은 크기와 모양이 비슷하다는 것이었고 빌딩풍이 분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내외부의 보수에 탁월한 건설사를 찾다가 모아 건설로 발탁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니까, 모아 건설에서 연락이 오면 세 개의 빌딩 모두를 청소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저녁이 다 될 때까지 마당을 서성거렸다.
최소한 건물 하나에 1회 청소비로 천만 원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청소가 하루 이틀 안에 끝날 것도 아니고 위험수당을 생각하면 그 정도도 양반이라 할 수 있겠지. 아무리 가격을 후려쳐도 3천만 원이라는 거금이 들어온다. 지금의 내 상황에서는 가뭄의 단비이다 못해서 감로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거액의 돈이 걸려 있으니 좀처럼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수정이가 유치원을 마치고 돌아온다.
“아빠!”
“오, 수정아!”
내가 데리러 가는 날도 있었지만, 부모가 가지 않으면 유치원 차로 아이를 데려다준다.
수정이는 내 품에 폭 안겼다.
뽀뽀를 한 번 한 후에 아내에게도 쪼르르 달려가 뽀뽀를 했다. 저렇게 보면 영락없는 애인데 말이야.
수정이는 총총걸음으로 달려와서 내 손을 잡았다.
“아빠! 과자 사 줘!”
“응?”
“천 원 안에서 고를 테니까 사 줘!”
수정이가 떼를 쓴다.
아내를 바라보니 그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래, 가자! 안 그래도 바람 좀 쐬려고 했거든.”
우리 부녀는 나란히 집을 나선다.
어린아이 포스를 뽐내던 수정이는 밖으로 나오자 진지한 표정을 했다.
가끔 드는 생각이지만 도대체 이게 내 유전자를 받고 나온 딸이 맞는 건지 의심이 든다. 아, 그렇다고 아내를 의심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내 유전자를 의심한다는 거지.
“아빠, 오늘 어떻게 됐어요?”
“그건 모르지.”
“일단 사업자 등록하고 L타워에 방문한 거는 맞아요?”
“그래. 조건은 다 말을 했으니 연락이 오든 말든 하겠지.”
“신기술에 대해서는 언급했고요?”
“당연하지.”
“흑마법은 이 세상에 없는 기술이에요. 그러니까 신기술이지. 헤헤.”
수정이는 진지한 표정을 풀었다.
단순히 지금 사업의 진행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하였던 모양이다.
나는 한 차례 수정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머릿결이 느껴진다.
“후불로 한 천만 원 정도는 불렀어?”
“그건 협상을 해 봐야지.”
“앞으로 수련을 더 열심히 해야겠네. 우리 아빠 바빠지는 거 아니야?”
“네가 룬어를 빨리 해독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해.”
“엥. 아빠, 저는 유치원생이에요. 그런 거 몰라요.”
“장난하냐! 네가 어딜 봐서?”
수정이는 귀엽게 혀를 쏙 내밀었다.
“헤헤, 해독하고 있는 중이야. 유치원에서도 낱장으로 필사를 해서 해독하고 있어!”
“음? 유치원서 배울 건…….”
“수정이는 거기서 배울 게 1도 없어. 에휴. 공짜니까 그냥 다니는 거지.”
깜빡했다. 수정이는 그냥 어깨너머로 배운 영어와 일본어, 프랑스어를 구사한다. 딱히 영재교육을 시킨 것도 아닌데 4살에 영어를 마스터하고 5살에 일본어와 프랑스어를 마스터했다. 그밖에 다른 언어들도 쉽게 배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정도는 필요할 때 배우면 금방이라고.
역시 돌연변이 천재 유전자는 다른 건가.
요즘 초등학교에는 어디 유치원 나왔는지도 따진다고 하니 다니는 이유도 있었고 솔직히 우리 집에 있는 것보다는 유치원 밥이 낫다.
어떻게 하다 보니 동네 마트 앞에 이르렀다.
“아빠, 과자~!”
과자를 산다고 나왔으니 진짜 하나 사기는 해야지.
수정이는 자갈치를 집어 들었다. 제길. 나도 자갈치 좋아하는데.
우리 부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수정이는 한마디를 남겼다.
“잘될 거예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아빠를 믿고 있는 건 엄마뿐만이 아니거든요.”
수정이는 과자 부스러기를 입가에 묻히면서 손가락을 쪽쪽 빨았다.
아이고, 내 딸아. 저럴 때 보면 영락없는 어린아이가 맞기는 한데……. 내 딸인데도 매력적이기까지 하니 크면 어떻게 될지 참으로 걱정이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가 아이를 업고 마당으로 달려온다.
“여보!”
“무슨 일이야?”
리사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차분한 아내가 이 정도의 반응이라면 엄청난 일이 발생했다는 뜻이다.
“모아 건설에서 연락이 왔어요.”
“모아 건설!?”
“네. 잠시 아이와 바람을 쐬러 나갔으니 연락을 드린다고 했어요.”
“이런! 휴대폰으로 전화할 것이지 하필이면 집 전화로 해서는. 알겠어.”
나는 곧바로 모아 건설 팀장에게 연락을 했다.
“이 팀장님?”
-전화했는데 나가셨더군요?
“네. 딸아이가 집에 와서 말이죠. 하하하!”
-내일 본사로 오세요. 거기서 저희 전무님이 뵙자고 하네요. 자세한 협상은 본사에서 하시죠.
“그, 그렇다면 의뢰를 하시는 건가요?”
-네. 다만 협상을 해야 한다고 하시네요.
“감사합니다!”
-그럼 또 뵙죠.
이서경 팀장은 지극히 사무적인 말투를 고수하다가 끊었다.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폭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