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do business in full auto RAW novel - Chapter 40
풀 오토로 사업합니다 040화
040
대영제국의 유산(2)
여기가 한국인지 영국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식단이다.
북엇국에 쌀밥, 몇 가지 나물들.
한식에 필요한 재료들은 마트에서 전부 사 올 수 있다. 게다가 여긴 런던 중심가. 24시 마트도 꽤 있었다.
아내는 어제 내가 과음했다는 사실을 알았고 새벽부터 일어나 식사를 준비한 것이 틀림없었다.
항상 그런 모습을 보여 주는 아내였지만, 그때마다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상 차리느라 고생했어.”
“뭘요. 당연한 일이죠.”
“이햐, 이게 바로 해장국이라는 거야?”
후르릅!
제임스가 국물을 떠서 넘긴다.
우리 집안 비법으로 끓인 북엇국이었는데 예전, 식당을 할 때를 보면 주말 아침마다 해장을 하는 사람들로 만원이 되기도 했었다.
그만큼이나 우리 식당의 북엇국이 끝내줬었지.
“캬! 시원하군!”
“신기한 일이죠? 뜨거운데 시원하다니.”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거든? 그런데 정말 시원해. 속이 확 풀어지고.”
“이걸 한국에서는 해장국이라고 합니다, 처외삼촌.”
“허허허. 이제 다음 날 속을 부여잡을 일은 없겠는데?”
“으이그! 어떻게든 술 마실 생각만 하죠?!”
처 외숙모가 핀잔을 한다.
생각해 보면 이들 부부에게 잔소리는 일상이었다. 어제 제임스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한때에는 저 잔소리 때문에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를 하기도 했었다지. 지금은 포기를 한 모양이지만.
“처외삼촌. 언제 한번 한국으로 오시죠? 한국 전통주 중에서 위스키에 버금가는 안동소주라고 있습니다. 곡주를 증류한 술인데 아주 끝내주죠.”
“흐흐. 그럴까?”
제임스는 처 외숙모의 눈치를 살짝 보며 실실거렸다.
어제 술을 그렇게 마셨는데도 불구하고 해장국 한 그릇 먹었다고 또 술 생각이 나는가 보다. 저 정도면 애주가를 뛰어넘었다고 봐야지.
아침 식사 시간은 화기애애했다.
물론 내심은 그렇지 않음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오늘이 장례식인데 어찌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을까.
런던 일정은 취소됐다.
나도 수정이도, 아내도 런던에서 한가하게 여행할 기분이 아니었던 거다.
비행기 시간도 내일에서 오늘로 조정했다.
가능하면 런던에 한시도 있고 싶지 않다는 것이 아내의 뜻이었다. 수정이와 나도 아내의 뜻을 존중해 주었고 말이다.
처외삼촌 부부는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미 식장으로 갔다.
런던 외곽의 성당에서 장례식이 진행된다고 한다. 지금쯤이면 시신이 안치되고 있지 않을까. 빨리 가면 운구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물론 그곳에 들르는 것도 어디까지나 아내의 선택이었다.
“한번 가 볼 거야?”
아내는 눈을 지그시 감는다.
굳이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심경이 복잡하다는 사실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과연 아내는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물론 어떤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나는 그에 따를 생각이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아내의 눈이 떠졌다.
“멀리서 한 번만 보고 가요.”
“그래. 알겠어.”
런던 외곽에 이르자 차가 더 막혔다.
“이게 뭔 일이래?”
“장례식 때문에 막히는 게 아닐까?”
수정이는 그렇게 짐작하고 있었다.
설마 장례식 때문에 차가 막힐까 싶었는데 정말로 그랬다.
각종 고급 차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쉽게 구할 수 없는 영국 R사의 세단들이 많이 보였다.
압권은 왕실의 차량이다.
왕의 품위를 손상시킨다면서 차고를 강제로 높인 그 유명한 세단 말이다.
“설마 여왕도 온 건가?”
“그렇지 않을까? 외할머니는 왕족이잖아? 방계 왕족이기는 해도 친척이 죽었는데 오는 게 정상이지.”
수정이의 말투가 딱딱해졌다.
분위기가 시종일관 우중충하다.
런던이란 우리 가족에게 그런 도시였다. 쓰라린 기억과 우리 가족을 배척할 것만 같은 그런 이미지 말이다.
실제로 영국 사교계는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아내에게는 멸시가 거의 사라졌지만, 나는 여기서 때려죽일 놈이 됐다. 감히 왕족을 죽도록 고생시킨 낯선 이방인 말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차가 막혔기에 운구 차량도 쉽게 진입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기사에게 부탁하여 가까운 언덕으로 이동해 달라고 했다.
성당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아내는 시신이 운구 되고 있는 광경을 두 눈에 담고 있었다.
수정이도, 나도, 아내도 잠시 묵념을 한다.
‘잘 가십시오. 그렇게 저를 괴롭혔지만, 어쨌거나 최후의 승리자는 저 아니겠습니까?’
장모님의 영혼은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에 아내의 용서를 받으면서 승천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세상에 미련이 없다는 뜻이겠지.
짧은 묵념이 끝난다.
“이제 집으로 가요.”
“그래. 집에 가자.”
아내에게 집은 이제 한국이다.
오늘따라 집이라는 단어 하나에 꽤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영국에서 하루를 보내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일등석이다.
시차가 바뀐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시차 적응을 해야 한다. 그 때문인지 아내도, 수정이도 꽤 피로해 보였다.
아내가 내 손을 잡았다.
“앞으로 다시 엮일 일은 없어요.”
“그러려나?”
“약속할게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과연 내가 세운선을 발견해 버리면 어떻게 될까? 상당한 화제가 될 것이 뻔하다. 그때가 되면 한 번 정도는 영국에 다녀와야 한다.
‘상관없나. 아내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받으면 아내가 영국에 갈 일은 없지.’
“제임스 삼촌은? 내가 초대도 했는데 말이야.”
“굳이 찾아오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제임스 삼촌도 안 오셨으면 좋겠네요. 저희만 잘살면 돼요. 괜히 오시면 본가 생각이 날 것 같아요.”
“그래.”
아직까지는 아내가 굳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일이 되면 아내의 옅은 미소를 볼 수 있을 거라는 사실 말이다.
한국에 도착한 후 시차에 적응하느라 하루 정도는 거의 집 안에서 뻗어 지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이 되어서야 우리 가족은 간신히 회복을 할 수 있었다.
월요일 아침,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 날이 시작된다.
“여보. 일어나세요.”
“으음…….”
“오늘 남해에 가신다고 했어요.”
“아, 그렇지.”
하품을 하고 일어난다.
일어나 보니 수정이가 비몽사몽 비틀거리며 식탁으로 나온다.
아내는 우는 아이를 업고 있었고 그 와중에도 밥상을 차리며 우리를 깨운다. 그리고 수정이와 나는 어제 수련을 한 여파로 골골거린다.
“하아아암!”
수정이는 식탁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수정아. 밥 먹으렴.”
“네, 엄마.”
그러면서 또 존다.
아내와 수정이가 씨름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괜히 웃음이 터져 나오려 했다.
나는 한 공기를 뚝딱 비웠다.
오늘 남해까지 내려가 탐사를 하려면 든든하게 속을 채워야 하는 것이다.
전투적인 식사를 마치고 이제 출근을 할 시간. 수정이도 유치원에 갈 준비를 마쳤다.
문득 넥타이를 고쳐 주는 아내의 얼굴을 바라본다.
영국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도저히 내가 알던 아내가 맞는 건지 의문이 들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예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은은하게 짓는 미소와 눈가에는 행복감이 스며 있는 여자. 도저히 애를 둘씩이나 낳았다고 볼 수 없는 찬란한 외모. 여신이 따로 없다.
전쟁과 같은 아침을 맞이하였지만, 아내의 마음은 그렇게 차분해 보일 수가 없었다.
“다녀올게.”
아내의 이마에 키스를 한다.
수아를 한 번 안아주고 구두를 신었다.
“다녀오세요.”
“엄마, 다녀오겠습니다!”
수정이도 인사를 한다.
“빠! 빠빠!”
수아는 벌써부터 손을 흔들었다.
그러니까 ‘아빠, 빠빠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괜히 히죽거리며 수아에게 손을 흔들었다.
드디어 평범한 아침의 시작이다.
오랜만에 수정이를 데려다주는 것 같다.
수정이는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켠다.
“드디어 엄마가 돌아온 것 같아!”
“그래. 그렇게 보이더구나.”
“며칠은 숨이 다 막혔다니깐? 내가 알고 있는 엄마가 맞긴 했던 걸까?”
“네 엄마는 여기 있지. 영국에 가면 다른 사람이 되고 말아.”
“앞으로 영국에는 가지 말자.”
“그게 되려나?”
“헤헤, 세운선 때만 잠깐 갔다 오면 되잖아? 아빠만.”
“흐흐. 그래야지.”
우리 부녀는 이미 세운선이 손안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코튼가에서는 도저히 발굴 가능성이 없는 골칫덩이를 떠넘겼다고 생각을 할 테지만 그게 아니었다.
수정이와 내가 조금만 더 조사하면 충분히 세운선을 찾아낼 수 있다. 어디 심해 절벽 아래에 잠들어 있다고 해도 말이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가고 싶지만, 지금은 여력이 없다.
“이건 묻어 두도록 하자. 조금 잠잠해지면 탐사를 가는 거야.”
“히히. 정말 기대된다.”
유치원 앞.
나도 그렇지만 수정이도 세운선에 대한 기대를 끌어 올리고 있다.
일단 그러자면 이번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무인도도 구매를 해야 한다. 대충 일을 마무리 짓고 난 다음에 생각해 볼 것이다.
“아빠! 다녀오겠습니다!”
수정이가 평소처럼 안겨 온다.
나는 딸아이를 번쩍 안아 들었다.
“다녀와라!”
“뽀뽀!”
수정이는 내 얼굴에 자기 얼굴을 마구 부빈다.
그래. 이게 일상이었지.
통영 앞바다.
추원포 항구 앞에는 웬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다. 어쩐지 다 와서 차가 막힌다고 했는데 여기 사람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뭐야? 사람이라도 죽었나?”
웬 기자들이 모여 있다.
재수 없게 탐사 시작하는 날에 추원포에서 시신이라도 발견이 된 것이 아닐까?
나는 위장된 탐사 장비를 언데드 두 마리에게 시켜 차에서 내렸다.
언데드들은 잠수복을 입고 있었고 나는 편안한 차림이었다. 정장에 바람막이를 두른 정도라고 할까. 당연히 바다는 더 추울 것이고 여기에 바람막이 바지도 하나 더 입었다.
기자들이야 어쨌든 나와는 상관없다고 여기고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유성 팀장이다!”
“어디?”
“엉?”
갑자기 사람들이 이쪽으로 몰려오기 시작한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갑자기 플래시가 쏟아지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빛이 너무 강렬하였기 때문이다.
졸지에 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웬 마이크들이 내 앞에 빽빽하게 들이밀어져 있었다.
“이번에 이순신 프로젝트의 탐사를 총괄하시는 이유성 팀장님 맞으신가요!?”
“아……. 그게.”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분명히 언론에 노출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 이유는?
언데드 때문이다. 최소한 5서클에는 이르러야 사람 형태를 가진 언데드를 뽑을 수 있었고 6서클이 되면 말하는 언데드를 뽑을 수 있다.
그전까지는 언론에 최대한 노출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정보가 샌 모양이다.
‘전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기 때문일까.’
최대한 조심을 한다고 했지만, 이건 이순신 프로젝트였다.
정부에서 현 시국을 극복하기 위하여 시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다. 당연히 정보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정부에서 힘을 쓴다면 H그룹에서 막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내 직급은 탐사팀장인 모양이다.
“맞습니다. 제가 바로 이유성 탐사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