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do business in full auto RAW novel - Chapter 6
풀 오토로 사업합니다 006화
006
첫 수주(2)
“허억!”
눈이 번쩍 뜨인다.
심장이 뻐근한 느낌과 함께 매우 청량한 느낌이 온몸에 감돌았다.
마치 0도에 가까운 사이다를 1.5리터 마신 기분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렇게 마셔도 속이 쓰리지 않다면? 그러한 청량감에 몸을 떤다.
눈을 뜨자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컴컴하여 빛조차 잘 들지 않은 무덤가의 풀들이 또렷하게 윤곽을 드러냈고 풀벌레 우는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주변의 귀신들도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원혼들이 모조리 빨려 들어가자 일반 영혼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중이다. 명색이 지박령인지라 그 자리를 떠나지는 못하고 몸만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것을 보니 상당히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심장의 서클을 관조해 봤다.
서클은 두 개로 분할되었고 순식간에 주변의 흑마기를 흡수하여 몸집을 불렸다.
오히려 서클이 하나일 때보다 두꺼워진 서클이 두 개나 만들어졌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클 안에서 잠들어 회전하고 있는 뭔가가 보였는데 신경을 끄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그것들이 수집된 악귀들인 것 같다.
“서클이 두 개가 됐네.”
“저, 정말?”
“확실하게 느껴져. 귀신도 더 잘 보이고 세상이 환해진 걸 보니 무슨 고양이가 된 느낌인데?”
“와아! 아빠 짱!”
수정이는 견딜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나에게 파고들었다.
역시나 수정이는 나에게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같은 흑마법사로서 동질감, 혹은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수정이의 눈빛이 한결 사랑스러워져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됐든 이제야 아비로서 뭔가 보여줄 수 있어 기분이 좋아진다.
“이걸로 확실해!”
“뭐가?”
“아빠는 마신의 축복을 받았어요. 이대로라면…….”
“이대로라면?”
“헤헤. 세상을 지배하는 흑마법사가 되지 않을까?”
“하하하하! 세상을 뒤엎는 흑마법사는 무슨. 여기 괴물이 산다면 모를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건 확실하잖아?”
“그건 그래.”
꼬끼오~!
첫닭이 울었다.
수정이의 말에 따르면 첫닭이 울고 난 이후에는 수련을 해도 가성비가 좀 떨어진다고 한다.
문득 꽤 시간이 지났음을 깨달았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라고 느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내가 깨어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밤마다 공동묘지를 어린 딸과 찾는다는 사실을 아내가 알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참사가 벌어질 거다.
내려가는 길에 수정이가 물었다.
“아빠. 오늘 유치원도 쉬는 날인데 같이 가면 안 될까?”
“응? 그건 왜?”
“수정이가 어른들한테는 잘 먹히잖아? 아마 내가 가면 가격 조정도 어려울걸?”
“음?”
“어쩌면 계약금도 받아 낼 수 있을지 몰라.”
가격 조정 불가에 혹했다가 계약금이라는 말에 굴복하고 말았다.
내 수중에 남은 돈은 10만 원 안팎.
시급하게 생활비 조달이 필요했다.
오전에 시장에 가서 간단하게 장을 보고 수정이가 입을 만 원짜리 원피스를 하나 샀다.
이렇게 하자 수중에 남은 돈은 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내 각오는 상당히 비장해졌다.
더 이상은 돈을 빌려주는 사람도 없었고 막노동을 한다고 해도 일이 없어 나가지 못하는 판국이다.
아기 분유는 생각보다 빨리 떨어지고 쌀도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있었다. 만약 오늘 계약금을 받지 못하면 일이 끝날 때까지 굶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절박함은 난생처음이다.
빚에 쫓겨 다니기는 했어도 이렇게 쌀까지 떨어진 적은 없었는데…….
육아 수당이며 양육 지원금이 나오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한다. 잘못하면 굶어야 하는 정말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었다.
수정이에 대한 꽃단장에 들어간다.
아내는 수정이의 머리를 빗겨 주면서도 몇 번이나 물었다.
“여보. 정말 수정이를 데려가도 되겠어요?”
“괜찮을 것 같아. 마침 알아보니 회사에 놀이방 시설도 잘되어 있더라고.”
“응! 나, 놀이방에서 놀고 싶어!”
수정이는 눈을 반짝반짝 빛낸다.
아내 역시 수정이가 천재라는 사실은 안다. 하지만 수정이는 아내 앞에서 최대한 그런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지금처럼 말이다.
7살짜리 어린아이가 놀이방에서 놀고 싶다고 한다. 우리 형편에 유료 시설에는 데려갈 수 없었지만, 회사 놀이방이라면 사정이 좀 다르다.
교통카드도 충전되어 있으니 가자면 못 갈 것도 없다.
“여보?”
아내가 나를 바라본다.
‘아이를 사업에 써먹어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수정이는……. 모델 뺨치니까.’
오드아이라서 놀지 말라고 하는 유치원의 엄마들은 정말로 수정이가 오드아이여서 놀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항상 구멍 난 허름한 옷을 입기 일쑤인 수정이는 가난한 집 딸내미라고 찍혀 있다. 예전에 내가 잘 나갈 때도 아이들이 하도 신기해하니까 렌즈를 끼고 다녔을 뿐이지 그게 뭐 괴물이라거나 귀신에 쓰였다거나 하는 말들 때문은 아니었다.
즉, 수정이 외모 정도면 오드아이도 신비롭게 포장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항상 허름한 차림이던 수정이도 때 빼고 광을 내었더니 연예인이 한 수 접어주고 갈 지경이었다.
영국 왕가의 유전자라 이건가?
순간적으로 딸아이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려던 것을 참았다.
“괜찮아. 그냥 애가 놀고 싶어서 그런 거야. 그렇지, 수정아?”
“응!”
아내는 수정이의 꽃단장을 끝내고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수정아. 오늘 아빠는 중요한 일 때문에 가는 거니까 절대 귀찮게 굴면 안 돼?”
“헤헤. 그냥 수정이는 놀이방에서 잘 놀고 있을게요. 거기 관리인 언니들도 있으니까 괜찮아요.”
‘관리인이 있었나?’
뭐, 있겠지.
수정이 정도라면 내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서라도 알아냈을 거다.
“그래. 조심히 다녀와.”
“네!”
나도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역시나 마지막은 아내가 넥타이를 매어 주는 것이었다.
“잘 다녀오세요.”
“그래.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집은 걱정 마세요. 남자가 집안일에 신경 쓰면 큰일을 못 한다고 오래전에 어머님께서 그러셨죠.”
“그래.”
아내는 아직도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한다.
장례식장에서 3일 내내 아내는 목 놓아 울었다.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고개를 한 차례 흔들고는 수정이와 함께 길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오는 내내 사람들의 시선에 시달렸다.
애가 몇 살이냐, 국제결혼을 했냐, 애를 연예인 시켜라 등등 오지랖 넓은 아줌마나 할머니들이 집중적으로 물어왔고 학생들이나 웬만한 여자들도 수정이를 보며 아주 난리를 피웠다.
그러면서도 수정이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내가 아빠 맞냐는 거였다.
수정이는 그때마다 “우리 아빠 맞아요! 제가 혼외자식이거나 입양되거나 한 것이 아닌 아빠와 유전자가 99% 일치하거든요?”라고 대답했다.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다가 뭔가 감정이 상하면 바로 그런 식으로 대응했다.
어쨌거나 다사다난한 지하철을 지나 신설동 모아 건설 본사 앞에 도착했다.
“뭐야, 이거? 꽤 크잖아?”
“검색해 봤는데 코스피 상장 기업이던데요?”
“아, 그래?”
“잘하면 내년 안에 대한민국 50대 기업 안에 이름을 올려요. 이쪽 CEO가 로비에 탁월한가 봐요. 그러면서도 기업 이미지를 지키기가 쉽지 않은데.”
“…….”
내가 말을 말자.
수정이가 정보를 습득하는 수준은 그야말로 놀라울 지경이다. 어떤 지식이라도 흡수를 해 버리니 머지않은 미래에 내 지식이 추월당할 것이다.
수정이와 함께 회사 로비로 향한다.
웅성웅성.
바로 이곳 직원들이 수정이를 쳐다보며 한마디씩 한다.
“어머? 어떻게? 인형인가 봐.”
수정이는 여기서 바로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헤헤.”
“몇 살이니?”
한 여직원 무리의 접근이었다.
수정이는 손가락을 7개 폈다.
“7살이요!”
“정말 귀엽네! 이거 과자 사 먹으렴!”
“네! 감사합니다!”
수정이는 주는 돈을 절대 거절하지 않고 주머니에 챙겨 넣으면서 배꼽 인사를 한다.
나도 보조를 맞춰 준다.
“하하하!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데 정말 아이 아버지 맞으세요?”
“물론입니다.”
그렇게 멀어지는 여자들. 그녀들은 한마디 하는 걸 잊지 않았다.
“엄마 유전자가 되게 뛰어난가 보네.”
“미녀와 야수가 틀림없을 거야. 어디서 납치한 거 아니야?”
갑자기 어깨가 처지는 이 기분은 뭐지?
수정이가 내 손을 꽉 잡는다.
“너무 상심하지 마. 아빠가 평범한 거에 비해서 엄마 외모가 뛰어난 건 사실이잖아? 그래도 수정이는 아빠를 사랑해.”
“오냐.”
“헤헤, 어쨌든 용돈도 벌고 좋아! 과자 사 먹어야지~!”
물어물어 18층에 도착했다.
평범한 회사처럼 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었고 한쪽에 전무이사의 사무실이 보인다.
사람들의 시선은 일시 집중.
평소와는 다르게 수정이가 꽃단장을 하니 눈이 돌아가는 거겠지.
“수정이는 화장실에 갔다 올게.”
“같이 안 들어가고?”
“나중에 들어가는 것이 극적인 거 아니야? 드라마에서 그러던데?”
“아아.”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정이는 화장실로 달려갔고 나는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와요.”
꽤나 꼬장꼬장한 목소리다.
“청소업체 다 닦아에서 나왔습니다.”
나는 들어가자마자 90도로 허리를 접었다.
집무실 책상에는 상무이사 오덕수라는 명패가 놓여 있었고 어지럽게 서류들이 널려 있다.
척 봐도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풍겼다.
그 팀장이라는 여자도 그랬는데 전무이사는 한술 더 뜨는 위인이라는 생각이다. 그래도 나름 사업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 봤기에 그럭저럭 파악이 끝난 상태다.
오덕수 이사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로 서류를 처리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제 L타워 관리실로 찾아왔다는 분이 바로 당신입니까?”
“아, 예. 그렇습니다. 저희 신기술로 귀사에서 관리하는 빌딩들을 번쩍번쩍하게…….”
“앉으십시오.”
“아, 예.”
역시나 만만치 않은 느낌.
지금 이곳이 전쟁터였다면 오덕수는 내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다. 그만한 힘과 권력이 있다는 뜻이지.
오덕수는 아주 편안한 자세로 소파에 몸을 파묻는다.
다소 피곤해 보이기는 하지만 만만해 보이는 인상은 결코 아니다.
“어제 대충 이 팀장에게 이야기는 들었겠지만 만만한 일이 아니에요. 돈? 위험수당 끼어 있으니 많이 주겠죠. 그런데 돈만 밝히다가는 골로 갑니다. 우리도 나름 종합 건설사로 관리부서를 따로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려워요.”
“문제없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인명 피해가 발생해도 우리 회사에는 아무런 보상도 없습니다. 오직 귀사의 고용보험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물론이죠.”
고용보험? 들기는 해야겠지.
다만 직원이라고 등록된 사람은 나 혼자가 될 거다.
아직 실험은 하지 않았지만, 족히 12마리 정도의 언데드는 부릴 수가 있을 거다. 여기에 수정이의 언데드까지 가세를 하면 14마리.
빌딩을 하나씩 청소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숫자다.
“후불이라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일체의 비용 없이 명시된 금액만 지불하는 것으로 계약서를 작성하죠. 어떠십니까?”
“당연히 그러셔야죠.”
“설마 이제 와서 계약금 달라는 말씀은 안 하시겠죠.”
“안 될까요?”
“이거 말씀이 다르시군요. 후불이라고 들었는데 계약금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십니까?”
뭔가 추궁당하는 느낌이다.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당장 계약금이 없으면 입에 풀칠조차 하지 못한다. 가족의 생계가 달린 문제였다.
벌컥!
그때였다.
수정이가 울상을 지으며 들어온다.
“아빠~! 길을 잃어버렸어요.”
정말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천사 같은 소녀가 들어오자 방 안이 환하게 빛나는 느낌이다.
오덕수의 눈빛이 변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갑자기 봄날에 눈이 녹듯이 경계심이 사르르 녹아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