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102
102
22. 기회 뒤에 숨겨진 것 (7)
“이것 봐라···.”
화면에 뜬 헬퍼의 추가 정보가 알려주고 있었다.
베니시오를 담당하고 있는 에이전트는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태? 리아 방에 있습니까?”
“나갈게요.”
베니시오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렸다. 나는 아드리아나에게 찡긋하고 함께 밖으로 나왔다.
현관으로 나가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오, 미스터 태.”
브루노 카르도주, 호세 알메이다 이적 건 때부터 나를 대놓고 싫어했던 놈이었다.
저번 대표의 방 앞에서 모른척했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태도였다. 반길 만큼 사이가 좋은 건 아닌데 활짝 웃는 모습이 날 만나서 아주 기쁜 모양이다.
“한창 프로젝트에 들어가 있을 때 아닌가? 무슨 일이야?”
“나가서 얘기 좀 할래요?”
“응? 우리 사이에 그럴 필요가 있나.”
브루노는 능글맞게 말했고, 베니시오와 가족들은 내가 왜 저러나 하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손해일 텐데요?”
내 담백한 말에 브루노가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손해? 무슨 손해?”
큰 손해가 있을 거다.
방금 헬퍼에 추가된 정보는 브루노를 당장 옭아맬 수 있는 자료였으니까.
[브루노 카르도주]-호세 알메이다 이적시 스포르팅에서 불법 수수료를 받았다.
나는 브루노에게 다가가 베니시오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브루노는 더러운 것이랑 붙는 것처럼 홱 하고 떨어지려다가 내 입에서 나온 말에 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수수료.”
“뭐?”
무슨 소리를 하냐는 얼굴이다. 그럼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확실히 알려줘야겠지.
“호세의 수수료. 스포르···.”
사람 표정이 이렇게 삽시간에 질릴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스포’까지 발음한 순간 브루노의 얼굴이 새하얘졌고, ‘르’가 나오는 순간 그는 내 입을 막으려 하며 소리까지 쳤다.
“다, 닥쳐!”
역시 늘 정확해. 고맙다, 헬퍼야.
“그,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나, 나가서 얘, 얘기하자고.”
브루노는 더듬거리며 나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우릴 따라나오려는 베니시오에게 얌전히 있으라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
브루노는 밖에 나오자마자 삼류 악당처럼 덜덜 떨고 있었다. 반격할 기세는 없었고, 그저 막막한 얼굴이었다.
“대체 어떻게···.”
“왜 그렇게 떨어? 에이전트가 수수료 받은 게 큰 문제야? 당연한 권리잖아?”
“다 알면서 그런 식으로···.”
“불법으로 받았으면 모를까···.”
브루노가 입술을 깨물었다.
영어에는 우리나라처럼 반말과 존댓말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억양과 단어선택으로 얼마든지 반말처럼 말할 수 있다. 나는 그동안과는 다르게 브루노에게 빈정댔다.
브루노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나는 웃고 있고 브루노는 굳어있다. 우리 둘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길게 얼굴을 맞대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기에, 나는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바로 협박에 들어갔다.
“대표나 FPF(Federacao Portuguesa de Futebol, 포르투갈 축구 협회)가 알게 되면 어떨까? UEFA(유럽 축구 연맹)도 좋고, 풋볼리스크도···.”
“그, 그만! 원하는 게 뭐야!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고!”
브루노는 주변을 계속 둘러보고, 베니시오의 집 쪽을 보기도 하며 불안함을 산만함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걸 내가 알려줘야 하는 건가··· 그럴 의무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
사실 모르지만.
“내 질문에 착실하게 답해준다면 모른 척해줄 수도 있어.”
“정말··· 인가?”
이 정도로 굽히고 들어오는 걸 보니까 정말 크게 해 먹은 모양이었다. 그의 동공에서도 진도 5가 넘어 보이는 지진이 일어나고 있었다.
시작부터 배에 죽창을 꽂아 넣은 대화였기에 나는 조금도 떨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순간의 나는 포식자였다. 브루노는 대표 같은 포식자가 아니라 포식자 흉내를 냈던 초식동물인 거고. 그러니까 이런 약점 한 마디에 변명도 못하고 빌빌 기는 거겠지.
“착실하게 대답해. 첫 번째 질문이야. 네가 레온, 조던, 베니시오의 재계약을 전부 맡은 거야?”
브루노는 다섯 번이나 끄덕였다.
“내가 아르헨티나로 가고 나서?”
“아르헨티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에이전시에서 부딪힌 날부터 맡게 됐네.”
진짜로 역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면··· 두 번째 질문. 대표가 너한테 뭘 시켰어?”
“시키다니?”
“······ 선수들을 맡기면서 아무 말도 안 했어?”
쉽게 갈 수 있다고 무의식중에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대표가 재계약 지시를 하지 않았다는 말에 잠깐 멈칫했다가 침을 삼키는 척하며 말을 바꿨다.
“아··· 그냥 서류를 넘겨주면서 그동안처럼 자유롭게 해 보라고···.”
“자유롭게? 우리 에이전시가 원래 그런 거야?”
“그래, 대표님은 에이전트 하나하나에 간섭 안 해. 협력이 필요할 때 말고는 자율적인 판단에 맡기지.”
“그럼 그거 내놔.”
“뭐··· 아.”
눈치가 없으면 에이전트를 할 수 없다. 브루노는 내가 뭘 말하는지 눈치를 채고 손을 바쁘게 움직여 가방에서 서류 몇 뭉치를 꺼냈다.
대표가 브루노에게 건넨 서류에는 재계약을 직접 지시하는 내용 따윈 없었다. 세 선수의 프로필과 스탯, 계약상황, 스폰서상황 같은 기본적인 정보가 먼저 보였다. 이어서 재계약이나 이적을 할 때, 도움이 될 만한 시장 상황이나 다른 선수들과 비교할 수 있는 스탯 자료들이 유난히 많이 들어있는게 특이했다.
해리가 소속된 클라이언트 서비스 팀에서 작성한 개인정보에 세 선수 모두 나와 깊은 유대감을 맺고 있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재계약 때 내 도움을 받으라는 조언 같아 보였다.
나는 내 눈을 피하는, 똥 씹은 얼굴을 한 브루노를 바라봤다.
다른 에이전트들이 받았을 때는 스폰서를 구하거나 재계약을 추진할 때 평범하고 유용한 선수관리 자료다.
하지만 이 자료가 날 싫어하는 에이전트 손에 들어간다면? 그렇다면 이 내용은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질까.
직접적인 지시는 없었다. 다만, 당장 별 어려움 없이 재계약을 시도할 수 있는 자료들이 이상할 정도로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선수들을 억지로 재계약시킨다면 성과도 얻을 수 있고, 선수를 곤란하게 만들어 나를 화나게 할 수도 있었다. 내가 나중에 얻을 성과를 가로챈다는 기분도 들 수 있었다.
내가 화내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는 브루노를 상상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랑 친해 보여서, 그래서 이렇게 막무가내 재계약을 진행한 거야?”
“아, 아니···.”
“솔직히 말해.”
“···.”
브루노가 고개만 끄덕였다.
나에 대한 브루노의 나쁜 감정을 이용해 행동을 이끌어냈다. 살아있는 사람을, 꼭두각시 조종하듯 말이다.
머리가 아파져 왔다. 멘데스의 말대로 당사자들은 당한 줄도 모르는 방식이었다.
내 표정이 점점 나빠졌는지, 브루노는 부르르 떨고 내게 매달렸다.
“미안, 잘못했네. 내가 어떻게든 해 볼 테니까, 수수료 건은 제발···.”
“일개 에이전트가 어떻게 한다고? 조던은 운이 좋다 쳐도, 이미 베니시오의 이미지는 다 망가졌는데?”
“···.”
브루노의 표정이 굳어졌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지로 막아야 했다. 당장 궁지까지 몰아서 적을 둘로 만드는 건 좋지 않았다.
“약속대로 솔직히 말해줬으니 그렇게 하지. 대신, 오늘 일은 대표에게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다, 당연하지.”
불법 수수료는 대표 몰래 받은 것이기도 해 어차피 못 말하겠지만, 으름장 한 번 늘어놔 봤다. 어느 정도의 시간은 벌 수 있겠지.
나는 브루노가 넘겨준 서류를 그의 눈앞에서 흔들며 말했다.
“이거 내가 가져가도 되지?”
끄덕이는 브루노를 보고 나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말하지 못한 게 생각나 다시 고개를 돌렸다.
브루노는 제자리에 허탈한 듯 서 있었다. 그동안 자신과 접점도 없던 내가 어떻게 그의 비밀을 알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 테니 패닉에서 벗어나긴 쉽지 않을 거다.
“내가 연락할 때까지 베니시오의 재계약은 미뤄 둬.”
브루노는 불안한 눈을 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베니시오의 집 문을 열고 바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가 남아있든 물러나든 관심도 없었다. 현관에 들어서니 복도에 베니시오와 가족들이 옹기종기 머리를 내민 채 날 보고 있었다.
“오늘은 그냥 돌아가기로 했어요. 계약도 잠깐 미루기로 했고요.”
“그런가요?”
“베니시오, 저랑 얘기 좀 해요. 음··· 한 30분만 있다가요. 생각 좀 정리해야 해서.”
나는 현관을 지나 내 캐리어를 가져다 놓은 손님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빈 노트를 펼치고 펜을 들었다.
앞으로의 지침을 확실히 정해야겠다.
일단 브루노, 봐주는 척했지만 절대 봐줄 생각 없다. 저번에 미디어 팀의 마리나가 너무 엘리자베스와만 친한 게 아니냐고 했으니, 지금 문제가 해결되면 새 인맥을 만드는데 브루노를 이용하면 될 것 같았다.
나는 포켓에 넣어놨던 녹음기를 꺼내 종료버튼을 눌렀다. 잘 편집하면 되겠지.
불법 수수료를 받은 에이전트를 떡밥으로 이번에는 공신력 있는 언론이 아닌 더 선이나 데일리메일, 데이브레이크 같은 황색언론 기자 하나와도 연을 만들어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브루노에게서 받은 서류를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었다. 자세히 살피면 꼬리는 무리더라도 꼬리의 끝 정도는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서류에는 객관적인 자료들만 그득했다.
내가 당장 대표에게 이걸 들고 따진다면, 그저 에이전트가 선수의 가치를 더 잘 알 수 있게 제공한 자료라고 해 버리면 내 할 말이 없어지는 자료들이었다.
무리하게 재계약을 진행한 건, 브루노 스스로의 판단이라고 떠넘겨버리면 되는 것이었고.
거기에 대표는 내가 눈치를 챘다는 걸 알고 더 정교한 수를 짜서 시도하겠지.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세바스티앙에게서 온 전화였다.
“세바?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 생겼나 해서 목 뒤가 굳어지려 했다.
-큰일은 아니고요. 맨유 이적 팀이 집에 찾아와서요. 개인적으로 온 거라고 해서 차 한 잔 주고 잘 돌려 말해서 내보냈어요.
나는 소리 없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래? 잘했네. 나 오늘 영국 왔거든? 볼일만 보고 한번 들를게. 할 얘기가 많다.”
-무슨 얘기요?
세바스티앙과 몇 마디를 더 나누다가 나는 할 일이 있다는 말을 하고 빨리 전화를 끊었다.
문제가 하나 더 얹어졌다.
맨유의 이적 팀까지 방문한 걸 보니 대표가 수면 아래에서 세바스티앙의 이적을 진행하고 있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이거··· 어떻게 잡는다.”
세바스티앙의 의향을 공표하면서 잘 처리했다고 생각했는데 대표에게는 어중간한 수였던 모양이었다.
대표의 행동을 완전히 막을 수 있는 행동을 하거나, 대표를 쥐고 흔들 수 있는 약점을 잡아야 일이 풀리던 할 것 같았다. 어중간하게 들어갔다가 대표가 꼬리 자르기를 해 버리면 닭 쫓던 개가 될 뿐이었다.
나는 약속했던 시간을 초과하며 생각과 정리에 들어갔고, 밤에 베네시오와 이야기를 한 후 다음날 바로 런던으로 향했다.
지이잉. 나는 휴대폰의 진동을 느끼며 대표의 방으로 들어섰다.
대표는 날 보며 평소보다 눈동자가 조금 더 큰 눈동자를 한 채 물어왔다.
“응? 미스터 태, 독일에 있는 거 아니었나.”
자비를 들이고 스벤과 미슐린타트의 입단속을 한 보람이 있었다.
“타트 씨가 휴가를 줘서요. 오랜만에 세바스티앙이랑 밥 좀 먹으려고 왔어요. 에이전시에서 자료도 좀 받으려고요.”
“그래?”
세바스티앙의 이야기가 나오자 대표의 눈썹이 살짝 꿈틀댔다.
“미슐린타트의 칭찬이 자자해. 역시 프로젝트를 맡기길 잘했어.”
당연하게도 언제 그런 기색을 비쳤냐는 듯 표정을 갈무리하며 물어오는 그였다.
“대표님이 프로젝트를 맡겨주신 덕이지요. 정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그래, 에이전시에서 필요한 자료가 뭔가?
대표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정말 궁금한 기색이었다.
“유럽에 있는 우리 에이전시 소속 선수들의 자료 좀 다 받아가려고요. 독일 끝나면 다른 곳도 돌아보고 싶어서요.”
“그래? 그래 주면 고맙지.”
프로젝트에 빠진 척 연기했고, 대표는 속아 넘어간 것 같았다. 나는 대표와 겉치레에 가까운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고 휴가를 즐겨야겠다고 둘러대며 방을 나섰다.
그리고 대표의 따끈따끈한 새 정보를 확인했다.
-30분 전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빌어먹을.”
급해 죽겠는데 이런 쓸데없는 정보라니.
한 번에 얻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했지만, 복권 긁었을 때 꽝이 나온 것보다 더 기분 나빴다. 낚시당한 것 같잖아.
대표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헬퍼의 정보가 필수불가결 했다. 오늘이 안 된다면 내일, 내일이 안 된다면 모레, 계속해서 정보를 누적해 쓸모 있는 정보를 얻을 때까지 에이전시를 들러야 했고, 외적으로는 이적을 방해해야 했다.
휴가는 조금 더 남았고, 여름이적시장까지도 아직 기간이 남았다.
앞으로도 시간이 날 때마다 프로젝트 핑계를 대며 에이전시에 들를 생각이었다. 오늘처럼 꼭 방에 들어갈 필요는 없으니, 가까이서 정보 정도만 얻어도 충분했다.
대표의 의심을 받지 않아야 하니 컨설턴트 팀의 아는 직원에게 선수들의 자료를 받으러 발걸음을 뗐다. 그때 내 어깨를 잡는 가는 손이 있었다.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지이잉.
“미스터 태?”
“네? 어, 케이티?”
고개를 돌리니, 늘 자리에 앉아만 있던 대표의 심복, 케이티 큐빗이 나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