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103
103
22. 기회 뒤에 숨겨진 것 (8)
“몇 번을 불렀는데 대답이 없어서요. 잠깐 라운지에서 커피 한잔할래요?”
“네에?”
예의 없는 행동이라는 건 알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일 년 동안 공적인 얘기 외에는 한 마디도 걸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말을 걸면 누구나 이런 반응을 보일 거다. 봐라, 나만 이상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다. 사무실의 몇 직원들도 나와 케이티를, 정확히 말하면 케이티를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들로 보고 있었다.
물론 케이티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싫어요?”
“아뇨, 괜찮습니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들어 봐서 나쁠 건 없지.
라운지에 도착해서 차 한잔을 마시기도 전에, 나는 되물을 수밖에 없는 얘기를 들었다.
“뭐라고요?”
케이티는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도록 입가에 손을 댄 체 다시 한 번 속삭였다.
“대표님이 세바스티앙을 이적시키려고···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을 쓰려 하고 있다고요.”
“잘못들은 게 아니었네요.”
나는 맥이 탁 풀려 의자에 비스듬히 기댔다.
케이티가 이런 얘기를 해준다는 것 자체가 너무 뜻밖이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녀는 대표의 사람이지 않은가. 내 반응을 보던 케이티가 무언가 깨달은 듯 입을 손으로 막으며 말했다.
“설마··· 알고 있었던 거예요?”
그녀가 이렇게 다양한 표정을 가진 사람이었다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잠깐 멈칫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케이티는 내가 그 건을 알고 있다는 걸 확신한 것 같았다. 더해서 또 다른 질문까지 던졌다.
“혹시 재계약 건도?”
“···네.”
이제는 거짓말을 한다고 먹힐 때가 아니었다.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왜 그런 얘기를 해 주시는 거죠?”
나는 바로 질문을 던졌고, 케이티는 아무런 대답 없이 차를 홀짝였다.
평소처럼 차가운 얼굴로 돌아온 케이티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찻잔을 손에 쥔 채 입술을 달싹였다.
무슨 의도지? 대표의 수족으로서 나를 떠보기 위해 이런 질문을 한 걸까?
머릿속이 복잡해 케이티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케이티가 입을 머뭇머뭇 뗐다.
“···제가··· 당신을 돕는다면···.”
“미스 큐빗.”
그때 케이티를 보좌하는 붉은 머리의 남성이 라운지 입구에서 케이티를 불렀다.
“대표님께서 찾으십니다.”
“이것만 정리하고 바로 갈게요.”
케이티는 자신의 찻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는 한 모금 남은 차를 마신 후에 케이티의 뒤를 따라 식기세척기에 잔을 걸어놓았다.
그리고 케이티는 나를 스쳐지나가면서, 사무실의 아무도 듣지 못하게, 작은 목소리로 귓가에 물어왔다.
“토요일 새벽에 시간 있어요?”
유혹이 아닌 도움을 청하는 것 같은 목소리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케이티는 한마디를 더 남기며 대표의 방으로 향했다.
“연락할게요. 이 근처에 있어야 해요.”
다시 라운지 탁상에 앉은 나는 굳게 닫힌 대표의 방과 빈 케이티의 자리를 번갈아 봤다.
방금 나를 도와주겠다고 한 거지?
그녀를 믿어도 되는 걸까?
생각은 잠시, 늘 이런 결정의 상황에서 내게 도움을 주었던 앱을 구동했다. 한 번도 접촉한 적이 없었던 케이티의 정보가 내 손에 들어왔다.
[케이티 큐빗]EW에이전시에서 일하고 있다는 누구나 아는 쓸데없는 정보는 치우고, 아래의 두 가지 정보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윌리엄 보일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의 일을 후회하고 있다.
케이티와 윌리엄의 관계, 그리고 오늘의 행동을 읽어낼 수 있는 두 개의 정보 말이다.
*
“왔나? 평소보다 늦었네.”
“저도 차 한 잔 할 시간은 있어야죠.”
“그래? 누구랑?”
“···혼자서요.”
평소답지 않게 케이티의 답이 늦었다. 하지만 대표는 서류에 빠져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나랑만 마시지 말고, 가끔은 다른 직원이랑도 마시면서 얘기도 좀 하고 그래.”
“관심 없어요.”
“하하, 이것 참···.”
“그 얘기 하려고 부르신 건가요?”
케이티의 말에 대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쪽에다 연락 좀 해달라고. 약속장소는 3번 집. 약속시각은 일요일 정오로.”
대표의 말에 케이티의 하얀 아미가 찌푸려졌다.
“지금이라도 그만두실 생각은 없나요?”
대표는 웃음을 감추고 케이티를 바라봤다.
일 분 가량이 흐르고 대표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케이티를 설득하려는 듯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케이티, 당신도 알잖아. 내가 멘데스를 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멘데스가 헤매고 있는 지금이 바로 그 기회라고. 모든 성과를 다 모아야 할 시기에 내년이면 우리 에이전시를 떠날 선수가 있어. 당연히 무리해서라도 더 뽑아내야 하는 거 아닌가? 에이전시를 위해 말이지.”
“···.”
케이티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대표는 타이르듯 말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야. 맨유에서도, 브라이튼에서도 마찬가지지. 세바스티앙 본인도 모를 거고, 미스터 태도 마찬가지야.”
케이티는 당장 고개를 젓고 싶은 걸 억지로 참고 있었다.
“당신은 내 최고의 파트너잖아. 요즘 따라 왜 그러는 거야?”
“아슬아슬하긴 했어도 선을 지키셨으니까요. 그동안은 피해를 입은 줄도 모르고 지나갈 수 있었지만··· 이번 일은 아니잖아요. 너무 급해요.”
“목표가 눈앞에 보이는데 침착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대표는 케이티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알겠어요.”
케이티는 방을 나섰다. 그리고 컨설턴트 팀에서 자료를 건네받으려 기다리는 태현석을 발견하고 자리에 멈춰 서 생각에 잠겼다.
*
나는 자료를 받자마자 곧장 브라이튼으로 악셀을 밟았다.
팀 훈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있던 세바스티앙이 나를 반겼다.
“표정이 별로인데 무슨 일 있어요?”
“있긴 한데··· 네가 신경 쓸건 아니야.”
브라이튼의 현재 순위는 8위, 한 단계만 올리면. 승격하자마자 유로파리그에 진출이라는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 그 선봉장에 서 있는 세바스티앙이다. 축구 외적으로 절대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세바스티앙이 내 말에 고개를 기울였고, 나는 자신감 있는 미소를 지었다.
“별일 아냐.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해결할 거고.”
나를 한참 바라보던 세바스티앙은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줬다.
“알겠어요.”
“그래서 말인데···.”
나는 세바스티앙에게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알려달라고 말했다. 세바스티앙은 평소보다 더? 라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세바스티앙은 나를 믿는 건지, 내가 대답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안 건지 다른 얘기를 꺼냈다.
“안 그래도 고민이 있었는데요.”
“고민?”
“곧 3월 평가전이잖아요. 저 이번에 명단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브라이튼이 아닌 국가대표 얘기였다.
앞으로 3개월 정도 후면 월드컵이 열리는 만큼, 이번 3월 평가전은 월드컵 예비명단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선수에게 중요한 명단이었다.
“너 트로피에 관심 없다고 하지 않았어?”
세바스티앙이 맨유 이적을 거부하면서 했던 얘기였다. 세바스티앙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월드컵은 다르죠. 나가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는 대횐데. 모든 축구선수의 꿈이라고요. U-20 월드컵에서 뛸 때도 얼마나 좋았는데요.”
“그래? 솔직히 이번에는 좀 힘들지 않을까나···.”
“때도 그렇게 생각해요?”
세바스티앙이 울상이 됐다.
시즌 초반 강등권 팀을 8위로 이끌고 있는 세바스티앙이었지만, 스페인 대표팀에는 월드클래스 괴물들이 너무 많았다.
스쿼드에 10명 정도 더 추가한다면 모를까 세바스티앙이 대표팀에 승선하려면 시즌 초반의 활약을 시즌 내내 보여준다든가, 스페인 팀으로 이적한다든가, 빅클럽에 가서 챔피언스리그 같은 큰 경기에서도 활약하는 수밖에는 없어 보였다.
브라이튼에서는 워낙 특출난 기량이기에 여러 롤을 맡고 있지만, 대표팀에서는 클래식 윙어 이상으로는 활약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스타일은 스페인 대표팀의 전술에도 맞지 않았다.
하지만 입으로는 다른 얘기를 했다.
“선수단이 워낙 쟁쟁해서 그렇지 기대는 해 봐도 되지 않을까? 루카스 바스케츠나 이아고 아스파스보다 네가 못한다는 생각은 안 들거든.”
“···그럴까요?”
세바스티앙의 얼굴에 희망이 차올랐다. 나중에는 실망으로 물들지도 몰랐지만, 대표팀 감독의 의향은 모르는 거니 발표 때까지는 이렇게 희망을 품게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다음 시즌부터는 대표팀에 선발될 수 있도록 이적하거나··· 아니, 이적은 싫다고 했지. 그렇다면 로이와 상의해서 스타일을 바꾸는 방법도 있다.
아직 세바스티앙의 문제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되나 싶은 생각에 픽 웃었다. 대표에 대한 머리아픈 생각만 하다가 이런 즐거운 생각을 하니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는 걸 부정할 수가 없었다. 나는 세바스티앙에게 말했다.
“이번에 못 나가더라도 다음에는 꼭 나갈 수 있게 도와줄 테니까, 떨어지더라도 너무 상심하지는 마. 너는 충분히 대표팀에 들 정도로 잘하고 있으니까.”
“그런가요?”
세바스티앙은 내 말을 몇 번 곱씹고는 씩 웃으며 한 마디를 보탰다.
“그건 좀 든든하네요.”
세바스티앙에게는 아직 아무 일도 없어 보였다. 세바스티앙의 여자친구나, 주변 선수들과 코치진들에 대한 얘기를 더 나누고 저녁까지 먹은 후에, 나는 런던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출발하기 직전, 내 차 앞까지 따라온 세바스티앙이 진지한 얼굴로 말해왔다.
“처음에 했던 얘기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제 문제죠?”
“···.”
“믿고 있으면 되는 거죠?”
다른 얘기를 하면서 희미해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세바스티앙의 마음을 편하게 하려고 미소를 지은 채 주먹을 쥐고 창문 쪽으로 내밀었다.
“그래, 너는 훈련에나 집중하면 돼.”
세바스티앙이 내 주먹을 맞부딪히며 답했다.
“알겠어요.”
미슐린타트가 보고 싶다고, 볼일 끝났으면 빨리 돌아오라는 메시지까지 보냈지만, 그에게서 받은 휴가일은 일주일, 나는 휴가 일수를 꽉꽉 채우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나는 대표의 시선을 흐리기 위해 아스날에 방문해서 스카우팅 팀과 새로 영입할 선수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했고, 매일 에이전시에 갖가지 핑계로 들러 대표의 정보를 얻었다.
해리를 만나러, 한여름과 점심 먹으러, 도미닉이나 심슨에게 선수에 대한 자문을 구한다는 핑계들이었다.
굳이 얼굴을 맞댈 것도 없이 근처에만 다가가면 헬퍼가 정보를 추가해주니 대표의 의심도 덜 받아도 되고, 편리했다.
하지만 편리의 대가인지 평일 내내 대표의 몸무게 같은 쓸데없는 정보의 향연이 이어졌다.
그렇게 토요일이 됐다. 휴가도 이틀밖에 안 남은 상황이라 복귀한 후에는 어떤 식으로 정보를 얻어야 하나 하는 막막함부터 들었다.
토요일에도 대표는 에이전시에 출근해 있었고, 나는 토요일에도 출근해야 한다고 했던 한여름을 찾아 점심을 먹자며 에이전시에 들렀다.
지이잉.
한여름, 케이티, 대표의 정보가 순서대로 들어왔다. 케이티는 나에게 눈으로 인사하고 다시 일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한여름의 정보는 재끼고, 케이티, 대표의 정보를 순서대로 살피는데, 대표의 정보에서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인고의 끝에 드디어 유용한 정보가 들어온 것이었다.
[윌리엄 보일]-내일 정오, 3번 집에서 세바스티앙 이적계획을 진행하기 위해 심부름꾼을 만날 예정이다.
대표의 계획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정보였다. 나는 신난 나머지 한여름의 옆에서 다리를 떨다가 얌전히 좀 있으라고 한 소리를 들어 라운지로 도망치듯 나왔다.
흥얼거리며 라운지의 한 탁자에 앉아서 정보를 다시 훑어보던 나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음··· 3번 집이 어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