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106
106
22. 기회 뒤에 숨겨진 것 (11)
처음 봤다. 대표의 얼굴이 저렇게 오랫동안 굳어진 것은.
애써 본래의 얼굴을 찾은 대표가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여태까지 있었던 일 전부, 대표님이 했다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대표는 페이스를 되찾은 건지 이제는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통 모르겠는데.”
“레온··· 아니, 저를 프로젝트에 합류시켰던 것부터 시작이었겠죠.”
대표의 눈썹은 조금도 꿈틀대지 않았다.
“대표님은 세바, 레온, 조던, 베니시오가 저를 따라 떠날 거라 예상하고, 저를 프로젝트에 합류시켜 아르헨티나까지 보내버린 후, 이들에게서 최대한의 수수료를 뽑아내기 위해 무리한 계약을 진행했습니다.”
“내가?”
“네, 실제로 저랑 이들은 그런 얘기를 한 적도 없는데 말이죠.”
세바스티앙이나 레온은 거짓말이지만, 조던과 베니시오는 내게 호감을 갖고 있긴 해도 나를 따라 떠나겠다는 얘기를 한 적이 결코 없었다.
대표의 눈썹이 그제야 작게 실룩였다. 모르는 내용이었을 테니까.
“처음에는 저도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레온에게 재계약을 했다는 얘길 듣긴 했지만, 레온은 막 포지션을 변경해 활약하고 있던 만큼 재계약에 적당한 시기였기 때문이죠. 그런데 조던과 베니시오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재미있군, 계속해 봐.”
“조던은 부상 후 갓 복귀한 상황인데도 구단에게 재계약을 요청하는 무례한 짓을 저질렀고, 베니시오는 대단한 활약이 아닌데도 시장 상황을 이용해 재계약을 진행했습니다.”
“잠깐, 자네가 하는 말에는 큰 오류가 있어.”
대표가 내 말을 끊고 들어왔다. 나는 무슨 말이 이어질지 순식간에 깨달았다.
“그건 내가···.”
“내가 한 일이 아니다. 브루노 카르도주가 자기 의사대로 한 일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려고요?”
그래서 말을 끊어버렸다. 주도권은 계속 내게 있어야 한다. 대표는 입을 뻐금거리다가, 내 말을 긍정했다.
“···맞아.”
나는 서류가방에서 복사해온 서류를 꺼내 대표에게 보였다.
“이게 뭔지 기억하시나요?”
“에이전시에서 브루노에게 전해준 서류가 아닌가.”
“에이전시가 아니죠. 브루노는 대표님에게 직접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게 그거 아닌가.”
“아니죠.”
나는 미리 표시해놨던 내용을 보여줬다.
“대표님은 이 서류를 통해서 브루노를 움직였습니다. 브루노가 저를 싫어한다는 걸 이용해 베니시오, 레온, 조던의 재계약을 추진하게 만들고, 대표님은 모르는 일이다. 식으로 넘어가려고 했죠.”
멈칫했던 대표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상력이 과하군. 추측이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건 어른이면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대표가 내 서류를 뺏어들고 흔들었다.
“나는 그저 선수들의 정보를 건네줬을 뿐이야.”
나는 그를 빤히 바라봤다. 그도 내 눈을 피하지 않았다. 한참 후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신가요?”
“그래,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나 했더니 억측만 늘어놓다니··· 계속 그럴 거면 자네와 더 이야기할 이유가 없는데.”
나는 대표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걸 차근차근 보여줘 심적으로 완전히 옭아맬 생각이었다.
“그럼 세바스티앙 얘기는 어떤가요?”
“세바스티앙? 그걸 왜 나한테 얘기하나?”
대표는 방금까지의 말로 내가 심증만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동안은 허초였다. 이제는 허초로 방심한 틈을 타 실초를 찔러넣을 차례였다.
“대표님은 세바스티앙의 의사를 저를 통해 먼저 확인하셨죠.”
“또 그 망상을 시작하려는가? 됐네.”
“들으면 달라지실 텐데요. 대표님은 세바스티앙이 인터뷰와 SNS로 이적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 걸 이용하기 위해서, 언론과 심부름꾼을 움직이셨죠.”
대표의 눈이 평소보다 두 배는 커졌다. 심부름꾼이라는 단어 때문일게 틀림없었다.
“언론을 이용해 팬들을 사랑하고, 브라이튼에 남겠다는 세바스티앙의 순수한 말을 겉과 속이 다른 선수로 만들어버려 팬들을 기만한 선수로 만들었고, 심부름꾼을 이용해 서포터들 사이에 그 내용이 더 잘 퍼지도록, 저 강한 행동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상상이 지나치군 미스터 태. 추측뿐 아닌가.”
대표는 평소보다 심하게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상상이요?”
휴대폰을 켜 준비해놨던 영상을 작동시켰다.
대표와 검은 양복의 남자가 마주 앉아서 이야기하는 순간의 장면을.
대표 [오늘이면 기사가 나올 거네, 브라이튼에 남겠다고 인터뷰를 하고 SNS까지 했던 세바스티앙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이적이 임박했다는 기사 말이야.]
영상이 재생되는 동안, 대표가 입술을 깨물며 휴대폰과 나를 번갈아 노려보았다. 얼굴이 점점 붉어지며 꾹 쥔 주먹도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말이 없어진 대표. 나는 1분가량 영상을 보여주고는 화면을 종료했다.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을 때까지, 대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 하하, 하하하.”
그저 웃을 뿐이었다.
부자연스러운 웃음소리를 내는 대표의 모습이 평소의 대표와는 다른 민낯을 드러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 정말, 자네는 늘 계산 밖이야.”
대표는 손뼉까지 치면서 이어 말했다.
“내가 자네를 묻어버리면 그만인 일 아닌가? 왜 이렇게 용감하지?”
그동안의 일을 인정하는 한 마디의 말이었다. 나는 주머니를 만지고는 대표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대표는 절대 날 해치지 못한다.
“대비 하나 안 하고 왔을까요. 제 연락이 없으면 여러 곳에 이 영상이 뿌려질 겁니다.”
대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에이전시를 키워 왔다. 그것도 십여 년 동안.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에이전시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걸 이 세상 누구보다 두려워할 사람이었다. 위험요소가 있는 이상 절대로 나를 건드릴 수가 없었다.
대표는 웃는 것 같기도 하고 화난 것 같기도 한 기괴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왜 그러셨습니까?”
“왜 그랬냐고?”
대표는 이제 거짓말을 하지 않을 생각인 것 같았다. 목소리에 평소보다 더 진한 감정이 배어있었다.
“에이전트와 선수, 자네는 누가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나?”
“동등한 관계죠.”
말할 필요도 없는 문제다.
“그래, 그게 맞지. 하지만 현실은? 중소 에이전트와 선수들의 관계는?”
나는 대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선수들은 에이전트를 돈 벌어주는 기계처럼 보네. 자신들의 욕심이 무리하다는 생각은 않고, 요구만 앞세우고 달성하지 못하면 해고해버리지. 에이전트는 을이고 선수는 갑이야.”
대표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동등한 관계, 몇몇 에이전트들은 그게 가능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건 특별한 경우일 뿐이네. 먹히거나, 먹는다. 그 중간은 없어. 동등한 관계? 선택받은 이상주의자들의 얘기일 뿐이야.”
대표는 토해내듯 말했다.
“하지만 유명 에이전시, 최고의 에이전트들은 다르더군.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었네. 그래서 에이전시를 키웠지. 최고가 되면 선수들이 을이 되는 한이 있어도 기어들어올 테니까.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어. 에이전시가 커지니 선수들이 먼저 내게 손을 내밀었어. 이론은 어느 정도 증명됐고, 이제 멘데스 녀석까지 넘어서면서 이게 이 바닥 생리라고, 너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그걸 녀석에게 보여줄 타이밍이 왔는데···.”
“그렇다고, 그런 불법적인 일을 저질러서···.”
“불미스러운 일로 진행해서 문제다? 불법으로 일을 진행해서 문제다? 아무도 모른다면 상관없지 않나. 들키더라도, 적당한 변명만 준비하면 충분하지. 선수들은 에이전시가 얼마나 나쁜 일을 많이 저지른 지에는 관심 없어. 얼마나 거대한 이적과 재계약을, 얼마나 많이 이뤄냈는지만 궁금해할 뿐이야.”
대표에게 무슨 과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표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게 다네.”
나는 대표를 노려봤다. 대표는 한점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당신 과거가 어떻든, 세바스티앙에게 해를 입히려고 했던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비즈니스를 말씀하셨던 대표님은 제가 많은 걸 배워야 하는 사람으로 보였지만, 지금의 당신은 전혀 아니에요. 당신은 스스로의 욕심만 채우려고 하고 있어요.”
대표가 나를 비웃었다.
“뭐, 자네가 이해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네. 자네도 멘데스 같은 선택받은 인간 같으니까.”
“선택?”
“끝나지도 않을 얘기는 집어치우지, 뭘 원하나? 감옥이라도 가 줄까?”
대표는 더 얘기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많이 생각했다.
케이티의 도움을 받고, 작별인사를 한 직후에는 대표를 그냥 두고 원하는 것만 얻어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대표가 오늘 저지른 짓을 보니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도의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내 선수, 세바스티앙을 건드리려고 한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차를 타고 오며 결정했던 계획, 첫 번째 배움을 돌려줄 시간이었다.
“감옥에는 안 가셔도 됩니다.”
“뭐? 그럼 돈이라도 필요한 건가?”
“아뇨, 당신이 저를 데리고 했던 첫 계약, 그때 제게 했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나는 세바스티앙의 첫 재계약을 말했고, 대표는 눈을 가늘게 뜨고 기억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가 기억할 때까지 기다려 줄 생각은 없었다.
“브라이튼이 인종차별 건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걸 제가 바로 활용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을 때, 당신은 약점은 쥐고 있는 게 좋다고 하셨었죠. 약점을 쥐고 늘 주도권을 갖고 있으라고.”
대표의 눈이 커졌다.
“배운 대로 하겠습니다.”
대표의 약점을 쥐고 골수까지 빨아먹을 것이다.
대표가 십여 년 동안 이룩한 네트워크는 내가 아주 잘 써줄 생각이었다.
“···내 목줄을 쥐겠다?”
“그런 거죠.”
나는 아까의 대표처럼, 비릿한 느낌이 나도록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당장은 두 가지 요구조건만 지켜주신다면 입 다물고 있겠습니다.”
대표가 이를 가는 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먼저 첫 번째, 가벼운 요구조건을 말하겠습니다.”
고양이에게 잡힌 후에 발악하는 쥐 같아 보여서 별로 무섭지 않았다.
“저는 새 에이전시를 차릴 생각입니다.”
대표는 대답 없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 다음 말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제스티푸테에 들어가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완벽한 에이전트를 쫓으려다가 또 얽매일지도 몰랐다. 멘데스가 좋은 사람 같아 보여도 결국은 타인이니까.
조금은 부족하더라도 나는 직접 부딪히는 쪽을 택할 생각이었다.
“사실 대표님 말대로 레온이나 세바스티앙은 제가 독립하면 저를 따라오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조던이랑 베니시오와는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어요.”
나는 검지를 흔들며 말했다.
“저를 포함한 제가 원하는 직원과 선수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 풀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런···!”
“동의하지 않으면 굳이 데려갈 생각은 없습니다. 무조건 뺏기는 건 아닐 테니 염려 마시길.”
나는 대표의 대답을 듣지 않았다. 어차피 수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조건, 이 조건이 아주 중요합니다.”
나는 중지까지 폈다. 손이 브이 자를 그리고 있었다.
나는 세바스티앙을 위해 인터뷰와 SNS업로드를 지시했고, 대표는 그걸 폭탄으로 만들어 역으로 세바스티앙과 나에게 되돌려줬다.
그 실전에서의 가르침을 대표에게 돌려줄 생각이었다.
“당신이 꼬아놓은 베니시오와 세바스티앙의 이미지, 에이전시를 희생하더라도 전력으로 수습해 주십시오.”
대표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것까지가 제 거래 조건입니다.”
내가 본 것 외에도 기자들도 이용했을 테고, 맨유나 브라이튼의 수뇌진과도 닿아 있을지 몰랐다. 그 정성 들인 공작으로 만들어 낸 결과를 자신이 수습하게 생긴 것이었다.
“기한은 다음 경기 전까지입니다.”
대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개를 젓지도 않았다.
“그동안 잘 배웠습니다.”
나는 대표실을 나왔다.
케이티가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어서 대표의 방에서 쨍그랑하고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열심히 일하던 미디어 팀이 벌떡 일어나더니 나와 대표의 방을 번갈아 봤다. 상황 파악이 되질 않는지 그들은 끝까지 어리벙벙한 얼굴이었다.
나는 케이티와 함께 에이전시 밖으로 나왔다.
불이 듬성듬성 켜진 에이전시는 처음 설레는 맘으로 왔을 때와는 다르게 마냥 빛나 보이지만은 않았다.
“케이티, 저는 대표님이 이 정도 일을 저지르려고··· 아니 저질렀을 줄은 몰랐어요. 이건 범죄잖아요.”
케이티는 체념한 듯이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당신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겠죠. 저는 대표님을 감옥에 보내지 않기로 했어요.”
그녀가 고개를 휙 들었다.
“대신, 당신 덕에 만든 약점을 쥐고 윌리엄을 쥐고 흔들 생각이에요.”
케이티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렇게 하세요. 고마워요.”
“···에이전시가 무너지면 도미닉, 심슨, 스벤 같은 사람들도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어버리는 거잖아요. 저기 있는 마리나도 그렇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잘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테니···.”
그녀의 고맙다는 말에 당황해서 이 얘기 저 얘기 늘어놓았다. 내 횡설수설한 말을 끝까지 들은 케이티가 작게 말했다.
“미안했어요.”
에이전시로 돌아가는 그녀를 잠깐 지켜본 나는 몸을 돌려 에이전시에서 멀어졌다.
다음 날부터 나는 독립 준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