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108
108
23. T 에이전시 (2)
“예상보다 많이 빼가진 않았네요.”
“각자 사정이 있는 거니까요.”
케이티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 가지고 온 파일 철을 내게 넘겼다.
“자, 오늘로 끝이에요. 미스 써머에게 확인해달라고 하면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선수들의 계약 해지 관련 서류들과 나와 한여름의 계약 해지 서류가 이 안에 들어있었다. 나는 한 장씩 적당히 넘겨보고는 가방에 바로 집어넣었다.
케이티는 여전히 서류가방에서 무언가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한동안은 좀 힘들 거예요.”
“뭐가요?”
“이거···.”
파일 철이 하나, 둘, 셋··· 계속 나온다.
“이건 세바스티앙과 베니시오의 집세와 공과금에 관한 거고요, 이건 조던의 자산관리 내용이에요. 조던은 자산관리사를 하나 붙여주는 게 좋을 거예요. 기존에 일하시던 분의 연락처도 여기 넣어놨어요. 그리고···.”
“잠깐, 잠깐만요.”
나는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케이티의 말을 적으며 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 녹음기도 켰다.
“파일철 하나마다 각 선수의 재산내역과 납세 내역이 있어요. 필요하다면 이쪽 사람도 연결해 줄게요. 또 이건···.”
장난 아니다. 장난 아니게 많다.
케이티는 선수마다 어떤 스폰서계약을 맺고 있는지, 여름 이적시장에 출연 예정된 광고는 무엇이 있는지, 이건 구단과 협의해야 하는 거고 이것들은 개인 자격으로 받은 내용이라고 설명해주기도 했다. 마지막으로는 선수들이 각 구단과 어떤 계약을 맺었는지에 대한 상세한 자료와 함께 계약서를 넘겨줬다.
“바짝 고생해놓으면 알아서 잘 굴러가니까, 열심히 해 봐요. 도움 필요하면 연락줘요.”
나는 미슐린타트에게 A매치 데이 이후로 협업을 미뤄야 할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미슐린타트는 내게 이유를 듣고는, 아쉽지만 그렇게 하자고 답해줬다. 추가로 내가 아르헨티나에서 추천한 수비수와, 독일에서 추천한 선수 중 하나인 얀을 사리 감독이 영입해달라고 결정했다는 소식을 알려줬다.
그 덕분에 이적이 상당 부분 진행돼 스카우트 범위가 줄었다고, 이제는 영국 내에서 선수를 찾으면 된다고 전달하며 A매치 데이 이후에 보자고 말했다.
나는 세바스티앙의 집안일을 돕던 가정관리사와 재계약을 체결하고, 조던은 가정관리사와 자산관리사 두 쪽 모두와 재계약을 시작하며 업무에 들어갔다. 집세나 공과금, 스폰서 입금 건, 구단과의 거래 등 여러 건에 관해서도 선수들에게 계좌를 확인하고 EW에이전시에서 우리 에이전시로 자금의 흐름을 수정하며 은행을 들락날락하는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한여름 또한 나를 도와 법률 자문뿐만 아니라 별의별 잡일들을 다 해내야 했다.
헷갈리는 게 있을 때마다 해리나 케이티에게 전화해 묻고 또 물었다. 둘은 꼼꼼하게 선수관리를 위해 해야 할 것들을 알려줬다. 나는 앞으로 구멍이 나지 않도록 그들의 말을 전부 기록했다.
이런 일에는 헬퍼가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다.
처음 하는 일인데다가 그게 한 번에 몰아닥치니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A매치데이가 됐다.
나는 크리스와 함께 출국하려 했지만, 업무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설마 크리스의 A매치 데뷔전도 못 보는 건가 했는데, 한여름이 자신에게 맡기고 다녀오라고 한 덕에 뒤늦게 중국으로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
크리스의 A매치 데뷔전으로 긱스에게 확답받은 경기는 차이나컵 결승전, 우루과이 전이었다.
차이나컵은 아깝게 월드컵에 진출 못한 국가들을 중국이 큰 대전료를 줘 3월 A매치데이 기간에 소규모 토너먼트로 치르는 대회였다.
참가팀은 웨일즈, 체코, 우루과이, 중국.
이 대회는 중국의 내년 1월 아시안컵 대비를 위해서라는 말이 있기도 했는데, 웨일즈에게 6-0으로 당하면서 오히려 자국민에게 욕만 먹는 중이었다. 경기력을 다지기는커녕 사기만 떨어진 경기가 됐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2006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우승시킨 명장이자 현 중국대표팀 감독인 마르첼로 리피 또한 경기력에 불만을 표했다.
중국 축구 협회가 웨일즈에 지급하는 대전료는 자그마치 100만 파운드(약 15억 원). 친선 경기 대전료라고 하기에는 무척 큰 비용이었지만 이에는 조건이 있었다.
중국 축구 협회는 웨일즈의 스타플레이어, 가레스 베일과 아론 램지가 안 나오면 대전료를 깎겠다고 했다.
가레스 베일이 안 나오면 10만 파운드(약 1억 5천만원)을 깎겠다고 했고, 아론 램지가 안 나오면 약 5만 파운드(약 7천 5백만원)을 깎겠다고 했다.
여기에 더해서 크리스가 안 나와도 5만 파운드를 깎겠다고 해, 크리스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긱스는 대전료를 원하는 웨일즈 협회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약한 부상의 램지는 아예 명단에서 제외했고, 크리스 또한 후보 명단에만 넣어놓고 중국전에 출전시키지 않았다.
“약속이었잖아요? 아론은 뭐라 하던데 크리스는 협회에서도 이해하고 넘어가겠다고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 경기가 치러지는 난닝 광시 스포츠센터에서 웨일즈 국가대표 선수들은 한창 구장 적응 훈련 중이었다.
나는 긱스와 나란히 서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시차 적응이 덜 돼서 그런지 머리가 조금 띵 했지만 견딜만했다. 무엇보다 웨일즈 트레이닝복을 입고 가레스 베일과 패스를 주고받는 크리스를 보니 평소보다 컨디션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결승은 우루과이네요. 이야··· 재밌겠어요.”
긱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옆에서는 재밌겠지만 저는 죽을 맛이에요. 차라리 체코가 올라왔으면 좋았을 텐데. 웨일즈 감독을 맡고 처음으로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긴장돼서 잠을 못 자겠습니다.”
웨일즈와 중국 반대편에서는 우루과이와 체코가 대결했다. 우루과이가 2-0으로 체코를 꺾고 결승전에 올라와 있었다.
우루과이는 4-4-2 전술을 즐겨 쓰는데, 두 명의 스트라이커와 두 명의 중앙수비수가 괴물들로 이뤄져 있었다.
맨 앞에서는 바르셀로나와 파리 생제르망의 핵심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즈와 에딘손 카바니가 합을 맞추고, 뒤에서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도 합을 맞추는 디에고 고딘과 호세 히메네즈가 단단하게 수비를 굳힌다.
히메네즈는 좀 부족할지라도 나머지 셋은 헬퍼로 볼 필요도 없는 별 일곱 개짜리 선수들이었다. 수아레즈는 요즘 폼이 죽어 여섯 개로 떨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월드클래스 선수들은 경기에서 어떻게든 영향력을 발휘한다.
“크리스는 어떤가요?”
“잘하죠. 아주 잘해요.”
내 물음에 긱스가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의 눈은 왼쪽 윙어이자 리버풀 소속인 해리 윌슨과 무언가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는 크리스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크리스는 똑똑해요. 어디다 놔도 제 몫을 할 거라고 봅니다. 이번에는 아론이 없어서 중앙을 맡기지만··· 나중에는 공격수를 맡겨볼 생각이에요.”
“너무 무리만 시키지 마세요.”
“태가 눈 똑바로 뜨고 있는데, 당연하죠.”
가벼운 농담을 나누고 긱스에게 크리스 칭찬을 듣고 있는데 내 어깨를 잡는 손이 있었다.
“푸하, 언제 왔어요?”
연습 경기에서 교체돼 나온 가레스 베일이 입에 머금고 있던 음료수를 잔디밭에 뱉고 말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베일을 맞았다. 익숙해지긴 하더라도 유명 선수와 이렇게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입가가 제멋대로 움직인 거다.
“내일이면 작년부터 시작한 제 작업이 결실을 보는 날이네요. 어때요, 크리스 잘하죠?”
베일은 묘하게 신이 난 목소리였다.
경기장에 여전히 남아있는 크리스는 윌슨과의 원투플레이 후에 반대쪽의 우드번에게 찬스를 줬고, 우드번은 강한 슈팅으로 골문을 갈랐다.
“그렇네요. 적응은 잘하고 있나요?”
“제가 데리고 다니려고 했는데··· 저거 봐요.”
크리스는 골을 넣은 벤 우드번과 원투플레이를 해낸 해리 윌슨의 사이에 끼어 어깨동무한 채 웃으며 떠들고 있었다.
“질투 날 정도라니까요. 같은 팀 소속이라고 아주 자기들끼리만···.”
베일의 투덜거림에 나는 작게 웃었다.
“아직 이적도 안 했는데··· 걱정 하나 덜었네요.”
리버풀에서 텃세라도 있으면 어떡하나 했는데, 리버풀의 두 유망주인 윌슨과 우드번이 크리스를 신경 써주고 있다는 게 보여 국가대표 적응에 더해 차후 소속팀 적응까지, 두 배로 안도감이 들었다.
베일은 몇 마디 더 떠들다가 코치가 불러 사라졌다. 긱스 또한 조 앨런의 플레이를 조언하러 자리를 떠났다.
벤치에 앉아 가만히 구경하고 있으니 크리스가 휴식을 받아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태! 언제 왔어요?”
“지낼만한가 보다?”
“당연하죠.”
크리스는 트레이닝복에 새겨진 붉은 용, 그러니까 웨일즈의 국기를 만지작대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최고예요. 유니폼도 받았는데, 두근거려서 미칠 것 같은 거 있죠. 저 오늘 잠 못 자면 어떡하죠?”
풀햄으로 이적했을 때보다 훨씬 기뻐 보인다. 리버풀 이적이 확정됐을 때보다도 훨씬.
크리스의 목소리에는 설렘이 잔뜩 묻어있었다.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내일 경기는 자신 있고?”
“당연하죠!”
너무 들뜬 것 같은데, 이러다 사고 나지.
“디에고 고딘이랑 히메네즈가 있는데?”
바르셀로나가 무패행진 중이긴 하지만, 프리메라리가 최소실점팀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다. 그 중심에 있는 선수가 디에고 고딘이고, 히메네즈는 로테이션 급 선수로 그 수비진에 기여하고 있었다.
내일 경기에서 디에고 고딘 만큼은 분명한 월드클래스였다. 당연히 크리스도 그걸 알고 있을 거다.
크리스는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차분하라고 하는 말이죠? 걱정 마세요. 저 지금 누구보다 차분해요. 어떻게 공략할지 머릿속으로 몇 개 짜놨다고요.”
“그래?”
“네, 뭣보다 최고의 선수랑 같이 뛰니까···.”
크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베일을 흘끔댔다.
같은 팀 선수의 플레이를 전부 활용하는 크리스의 특성상 잘 하는 선수가 옆에 있으면 시너지가 배가 되니 생략한 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베일은 정말 최고예요. 제가 생각한 대로 움직이기도 하고, 제가 생각 못한 방식으로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기도 하고··· 슈팅이나 패스도 헤딩도 잘하고, 드리블에다가··· 못하는 것도 없고···.”
이 정도면 콩깍지가 씐 수준인데.
직접 뛰어보니 팬심이 더 커진 모양이었다.
크리스는 베일 얘기를 더 하려다가 의료스태프에게 끌려갔다.
나는 웨일즈 대표팀의 훈련을 끝까지 보고 숙소로 돌아갔다. 내일 경기를 더 집중해서 볼 수 있도록, 푹 잤다.
*
크리스가 뭘 준비했는지는 바로 알 수 없었다.
왜냐면 웨일즈가 뭘 해보기도 전에 우루과이가 선제골을 넣었기 때문이었다.
전반 10분. 우루과이의 팬도 아니고 웨일즈의 팬도 아닌 중국 관중은 두 월드클래스 선수의 멋진 플레이에 환호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들의 중앙수비수 히메네즈가 롱패스로 웨일즈의 측면을 노렸고, 수아레즈는 근육이 터지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의 방향전환으로 수비수 두 명을 일순간에 제쳐냈다. 카바니는 수아레스가 패스할 걸 예상한 듯 수비라인을 타다가 갑자기 쇄도했다.
수아레스는 카바니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딱 떨어지는 패스를 줬고, 카바니는 골키퍼와 1대1 상황에서 강한 슛으로 골망을 뒤흔들었다.
크리스는 무표정하게 그들이 세레머니하는 걸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