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110
110
23. T 에이전시 (4)
경기 후의 소감을 말하는 평범한 인터뷰가 아니었다.
크리스 앨런이라는 차세대 스타가 만들어진 과정이 크리스의 입에서 흘러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기자들이 마구잡이로 손을 들기 시작했고, 회견장은 도떼기시장처럼 변했다. 크리스의 옆에 앉아 있던 라이언 긱스는 나를 재미있다는 듯 보다가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대고 한마디 했다.
“이런 식이면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기자들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역시 수십 년을 축구계에서 굴러 온 사람다운 테크닉이었다.
기자들은 손을 든 채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크리스는 그 중 중국인으로 보이는 한 여성을 가리켰다. ‘어린 나이에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지···.’ 라는 질문으로 크리스에게서 내 이름을 꺼낸 기자다.
“실례가 아니라면 조금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크리스는 스태프와 긱스를 번갈아 봤고, 둘에게서 모두 동의를 받았다. 저 사람들은 왜 저런 걸 동의해 줘.
“그동안 답답해서 미치는 줄 알았어요. 사람들은 제가 이룬 모든 게 전부 제힘이라고만 생각하더라고요.”
“그럼 그분이···.”
“네. 아디다스에서 촬영한 다큐멘터리에서도 나왔다시피 저는 저번 시즌에 축구를 그만둘 생각이었거든요. 태가 아니었다면 분명히 그만뒀을 겁니다.”
여기에 있다가는 불똥이 튈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내 이름을 아는 웨일즈의 스태프나 선수들도 몇 있었으니까.
나는 조심조심 회견장을 빠져나가 휴대폰 실시간 영상으로 인터뷰를 체크했다.
크리스가 계속 얘기 중이었다.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때 저는 골키퍼였고, 키도 작아서 이 이상 못할 거라는 말을 듣고 자랐었으니까요.] [크리스 선수가요? 믿어지지가 않는데요? 내년에는 골든 보이 수상(만 21세 미만의 발롱도르)도 유력하다는 말이 나오는데···.]복도를 다 지나 웨일즈 드레싱룸 옆의 라운지의 구석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아주 커다랗고 진한 선글라스를 껴 얼굴을 가렸다.
크리스 자식, 나오기만 해 봐라.
[저도 마찬가지에요. 지금 제가 여기 있는 게 믿어지지가 않네요.]크리스가 가볍게 웃었고, 기자들이 따라 웃었다.
[계약이 해지되면 뭘 하고 살아야 하나 막막해하고 있던 제게 태는 느닷없이 나타났어요. 마치 저를 도와주러 온 구세주처럼요. 에이전시의 신입사원이나 다름없던 태는 자신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5만 파운드를 망설임 없이 주면서 저한테 딱 1년만 계속해 보자고 말해줬어요. 저한테 월드클래스가 될 재능이 있다고 말하면서요. 아직도 그 눈빛이 잊히지가 않네요.]나 그때 아까워하기는 했었는데···. 음. 입꼬리가 제멋대로 실룩샐룩한다. 민망해서 그런 걸 거다. 암.
승부조작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까 봐 걱정했지만, 크리스는 그 내용을 피해 이야기를 전개했다.
크리스는 내게 포지션 변경과 몸을 만드는 걸 목표로 프로그램에 나가자고 권유받았던 얘기를 시작으로 유명해진 후 팀을 구하고, 불타는 승부욕에 지나친 훈련을 하던 자신을 진정시켜줬던 나에 대한 얘기를 하며 중간마다 웃음을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긴장하지 않고 편안하게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에이전시 일을 하며 틈틈이 신경을 써줬던 건데, 크리스는 내 도움을 자신의 전부인 듯 얘기하고 있었다.
지가 열심히 해서 그렇게 잘 풀린 건데. 나는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고.
이야기는 리버풀에 해트트릭을 꽂아 넣고, 리버풀과 계약을 체결한 것과 오늘의 성공적인 국가대표 데뷔전 얘기까지 왔다. 모든 일이 내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거라고 크리스는 반복해서 강조했다.
질문 한 번 없이 크리스의 얘기를 집중해서 듣던 기자들은 이야기가 끝났다는 사실에 아쉬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기자회견은 일반적인 시간인 5분가량을 넘어서 20분에 다다라 있었다.
한 기자가 손을 들었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해주실 수 없나요?] [다 얘기하려면 밤새워야 해요. 곧 출국해야 해서요.]스태프들이 종료 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마지막 질문 받겠습니다.]기다렸다는 듯이 한 동양인 기자가 손을 들었다.
[태현석이라는 사람, 이름을 보니 한국 사람인 것 같은데 맞나요?]클로즈업된 얼굴을 보니 한국 기자로 보였다.
[네, 맞습니다. North가 아니라 South Korea요. 그럼 이만···.]크리스는 북한과 한국을 헷갈려하지 않는다. 내 교육의 결과다. 왠지 모르게 방금의 인터뷰에서도 뿌듯해하는 느낌의 어조가 났다.
[아, 그리고 태가 얼마 전에 에이전시를 차렸습니다. 이름은 T 에이전시이고, 저도 거기 소속입니다. 축구 선수로서 본격적인 발을 디디기 시작한 저와 갓 독립한 태가 앞으로 잘해나갈 수 있도록 많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크리스는 더 질문을 받지 않고, 긱스와 함께 자리를 나섰다.
크리스는 드레싱룸에서 짐을 챙겨 바로 나왔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짙게 웃으며 다가왔다.
“어때요? 홍보까지 했는데.”
“정체 안 숨겨도 된다고 하긴 했는데··· 음··· 그런 얘기까지 하냐···.”
얼굴을 마주하니 민망해져서 툴툴댔다.
크리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사람들은 다 제가 잘해서 이렇게 된 줄 알잖아요. 그게 얼마나 미안했는데요.”
“뭘 미안해?”
“태는 스스로 얼마나 대단한지 좀 알아야 해요.”
크리스는 검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에린과 비슷한 느낌의 똑 부러지는 모습이었다.
쌍둥이긴 쌍둥이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말문이 막힌 나는 크리스와 나란히 걸으며 크리스의 신이 난 목소리를 들었다.
“이제 태는 진짜 내 에이전트잖아요? 그러니까 제 부담을 좀 나눠 들어줘야 겠어요. 인터뷰랑 광고 같은 건 시키는 것만 할게요. 저는 하나도 신경 안 쓸 거예요. 제가 얼마나 할 게 많은데요.”
“할 게 뭐가 있는데?”
“많죠.”
크리스는 손가락을 하나씩 피며 말했다.
“골든 보이, 유로 우승, 월드컵 우승, 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우승, 리그 올해의 선수상, 리그 득점왕, 리그 플레이메이커 상, 발롱도르, 피파 올해의 선수상, 월드컵 골든볼···.”
크리스는 가방을 어깨에 고쳐 매고 양손을 다 들어 보였다.
“받아야 하는 상은 다 받아버릴 거예요.”
“득점왕도 받고 플레이메이커상도 받겠다고?”
“꿈은 커야죠.”
워낙 당당하게 말해서 말문이 막혔다. 나는 크리스의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웨일즈의 버스에 크리스와 같이 올랐다.
버스는 바로 공항으로 향했고, 선수와 스태프들은 국가별로 다른 비행기를 탔다.
가장 먼저 수속을 마치고 사라진 베일은 프리시즌 기간에 식사 한 번 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크리스와 함께 영국행 비행기 수속을 마친 나는,
-때, 때, 때, 때, 때!
갖가지 전화와 문자에 고통받고 있었다. 첫 통화는 세바스티앙이었다.
“시끄러, 그만 불러. 왜.”
-크리스 자식 바꿔 봐요!
“크리스는 왜, 얘 지금 짐 챙기러 갔는데.”
-선수 쳤잖아요! 그리고 에이전시에 자기만 있는 것처럼 얘기해놨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저도 인터뷰해도 돼요? 할 말 진짜 많은데!
그런 것 때문에 화난 거냐.
“안 돼. 절대 안 돼. 크리스 하나로도 지금 휴대폰에 불난 것 같다고.”
-으아아아, 때! 지금 편애하는 거예요?
“편애는 무슨.”
-왜 저한테는 월드클래스 될 거라고 얘기 안 해 줬어요? 네? 네?
순간 말문이 막혔다. 다행히 머리가 빨리 회전해줬다.
“··· 너는 그런 말로 꼬실 필요도 없이 처음부터 내 선수였잖아.”
-···오.
먹힌 것 같다. 내가 한 말이지만 소름이 돋는 말이었다.
-말이 좀 늘었네요, 때. 일단 알겠어요. 아, 그리고 로이 감독님이 에이전시 언제 차린 거냐고, 자기도 관심 있다고 돌아오면 한번 만나자고 하던데요? 뭐라고 전해줄까요?
로이라, 좋지.
현재 능력 별 여섯 개의 유망한 감독인데다가 잠재 능력도 아직 안 나왔으니 일곱 개일 가능성도 있고, 나이도 30대 초반에 성격도 좋고, 일밖에 몰라 사고도 안 칠 것 같고···.
-때?
“돌아가면 연락드린다고 해줘.”
-알겠어요.
세바스티앙과의 전화는 시작일 뿐이었다.
일단 문자 폭탄.
[더 선의 블레이크 기자입니다···.] [데이브레이크의 롬멜 포터 기자입니다. 태현석 씨 맞으시죠? 다름이 아니라···.] [데일리메일의 ······.]전화와 통화 중 전화 표시가 상태 바에 반복해서 떴고, 휴대폰의 화면은 계속해서 번쩍거렸다. 에이전시 일을 하며 이곳저곳에 연락처를 돌렸었는데 그 효과인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예상했던 상황이었기에 지침은 어느 정도 정해 놨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지만, 내게는 에이전시의 이름을 알리고 이미지를 좋게 굳힐 기회로 보였다. 한여름에게는 에이전시 홈페이지를 미완성인 채라도 일단 게시하라고 했고, SNS 계정도 몇 개 만들었다.
그리고 100% 들어올 게 확실한 내 인터뷰는···.
“네, 엘리자베스.”
-역시, 제 전화는 받는다니까요?
휴대폰 너머로 엘리자베스의 기분 좋은 목소리가 들렸다. 스카이스포츠의 기자들로 예상되는 목소리들이 엘리자베스 주변에서 웅성대는 게 들렸다.
“엘리자베스, 뭐 해요?”
-사람들이 저랑 현석이 친하다니까 안 믿잖아요.
“하아··· 인터뷰 때문에요?”
-당연하죠. 인터뷰가 아니라도 지금 당장 기사 낼 수도 있어요. 저만큼 현석을 잘 아는 기자는 또 없잖아요.
“그건 그렇네요.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약속부터 잡을까요? 다른 기사들은 제가 얘기하기 전에는 안 내줄 수 있죠?”
-물론이죠!
친한 기자들을 더 만들 긴 해야겠지만, 그건 나중이고 일단은 공신력이 있으면서도 안전한 엘리자베스에게 첫 기사를 맡길 생각이다. 앞으로 관계도 더 돈독히 해야겠지.
-왜 이렇게 뚜뚜 거려요?
“계속 문자가 와서요.”
-인기인 다 됐네요. 크리스보다 더 인기 많아지면 어떡해요?
“제가 사양합니다.”
하나 멈추면 하나 켜지고 하나 멈추면 하나 켜지고. 왜 에이전트들이 휴대폰을 여러 개 들고 다니는지 알 것 같았다. 엘리자베스와 약속을 잡는 중에도 휴대폰은 틈틈이 울렸다.
영국에 가면 휴대폰도 최소한 한 개는 더 맞춰야 할 것 같았다.
이어서 레온과 베니시오, 조던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영국 인터넷 기사에 짤막하게 크리스의 키다리 아저씨 태현석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들이 생성되고 있다고 했다. 월드컵 떡밥 말고는 쓸 것도 없었는데 이때다 싶을 거다.
셋 중에서 레온은 특히 세바스티앙처럼 자기도 인터뷰하고 싶다고 떼를 써서 말리기 힘들었다. 베니시오는 허허 거리며 필요할 때 불러달라고 했고, 조던은 에이전시에 필요한 선수가 있나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정리해야 했다. 기다리던 사람에게서 연락이 온 참이었다.
최국종 편집장님 [현석아 이거 보면 연락 좀 해줘라.]
나는 비행기 시간을 확인하고 전화를 걸었다.
최국종은 해외축구기사를 취미로 번역하던 어린 시절, 해외 기사 자료를 주고받으며 친하게 지내던 기자였다.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 삼아 최국종의 신문사인 스포츠 코리아의 번역을 도맡기도 해서 밥도 많이 얻어먹었었다.
에이전트가 되겠다고 내가 회사를 관뒀을 때, 갓 편집장이 됐던 최국종은 부담 없이 하고 오라고, 혹시 실패한다면 기자 자리 하나 마련해 주겠다고 얘기해줬을 만큼 괜찮은 사람이었다.
최국종에게 전화를 건 건 이유가 있었다.
요즘같이 해외축구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이 때, 한국인 에이전트가 최고의 유망주를 데리고 있다는 소식이 한국에 알려지면?
보나 마나 별의별 기사가 다 올라올 거고, 루머 같은 게 돌 수도 있다. 그리고 기자들이 가족들을 귀찮게 할 수도 있고, 누나가 엄청나게 신경 쓸 게 훤히 보였다.
그럴 바에야 내가 깔끔하게 인터뷰를 하는 편이 나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최국종이 전화를 받았다.
-어 현석아.
“오랜만이에요. 최 기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