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112
112
24. 뜻밖의 기회 (1)
10분이 지났다. 나는 마지막 장을 읽고 보고서를 덮었다.
“지난 시즌 생각나네요.”
로이가 빙긋 웃는다.
로이가 아직 수석코치였고 나는 통역이었을 때, 비선 실세나 다름없던 로이는 이것과 비슷한 보고서를 갖고 있었다. 그때는 내게 이걸 보여주지 않았었는데 감개가 무량하다.
“어쩔 수가 없었다고요. 태를 확실히 믿을 수도 없었고요.”
“이해해요.”
로이도 그때를 떠올리는지 초점이 흐릿해졌다.
“일 년 동안 우리도 꽤 변했네요.”
로이는 예상순위가 꼴찌였던 팀을 유로파리그 진출이 가능한 7위로 이끌고 있는 30대 초반의 젊고 유망한 감독으로, 나는 1부 리그 선수 다섯을 데리고 있는 에이전트가 돼 있었다.
“변한 만큼 열심히 해야겠죠. 이거 가져가셔도 됩니다.”
보고서에는 로이가 다음 시즌을 위해 어떤 포지션의 선수들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적혀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의뢰죠. 이런 선수들을 찾아와 달라는.”
여러 팀에서 노리는 감독인 로이를 지키기 위해, 브라이튼의 수뇌부들은 영입 전권을 로이에게 쥐여줬다고 했다.
처음에는 재계약을 제안했다고 했는데 로이가 거절했단다. 어차피 다음 시즌까지 계약돼 있으니, 6개월쯤 남았을 때 이야기를 나눠보자면서. 사실 로이는 브라이튼에 애정은 있지만, 절대적인 수준은 아니라 빅클럽을 맡을 기회가 생기면 떠날 생각도 있다고 내게 말했다. 비밀이라고 하면서.
“아무튼, 저는 우리 스카우트 팀보다 태를 더 믿거든요. 태의 선수 보는 눈은 월드클래스잖아요.”
내가 선수만 잘 찾는다면, 한 구단의 선수 수급을 독점할 좋은 기회였다. 안 그래도 미슐린타트와 함께 선수들을 찾으러 돌아다닐 텐데, 동시에 진행하기도 좋아 보였다.
나는 본능에 따라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서 가볍게 대답했다.
“많이 데려올수록 많이 주시는 거죠?”
“당연하죠.”
슬슬 할 일이 없어진다고 투덜거렸던 한여름이 기뻐할 게 눈에 보였다.
“최선을 다해보죠. 그리고···.”
올바른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서는 로이가 다음 시즌을 어떻게 구상했는지 더 들을 필요가 있었다.
로이는 1년 전 그때와 다르지 않게 진지하면서도 신이 난 목소리로 자석 전술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어떤 전술을 사용할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태가 괜찮은 선수만 데려와만 준다면 포백으로 전환할 생각입니다. 수비만 했던 이번 시즌은 너무 지루했어요.”
지난 시즌 말미에도 로이는 펩 과르디올라의 신봉자답게 적극적인 전방압박 전술에 이은 공격적인 전술을 구사했었다.
“이 전술을 위해서는 중심을 잡아줄 선수가 최우선적으로 필요해요. 케빈 캄프는 중심을 잡는다기보다는 열심히 뛰어다니는 선수니··· 맨시티의 페르난지뉴나 스토크의 레온 캐머런 같은···.”
“레온이요?”
“아, 그 선수도 태가 데리고 있는 선수였죠. 레온은 어렵겠죠?”
로이의 물음에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걔는 평생 거기에만 있을 놈이에요.”
“아쉽네요.”
나는 로이가 가장 필요로 할 포지션의 순위를 매기며 로이와 계속 의견을 나눴고, 기대 하겠다는 얘길 들으며 구단을 나섰다. 그리고 또 한 감독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현석, 구단에 잠깐 들러줄 수 있습니까?
풀햄의 감독인 요카노비치였다.
*
“너 혼자서 할 수 있겠어?”
“다른 사람 시킬 수도 없잖아.”
“그건 그렇지.”
풀햄의 요카노비치 또한 내 눈을 믿는다고 하면서 로이 처럼 필요한 선수 목록을 건네줬다. 다음 시즌 승격이 거의 확정됐기에 그 기준은 프리미어리그 급 선수로 가득 차 있었다.
에이전시의 가장 중요한 일거리인 ‘선수와 구단 매칭.’이 한꺼번에 두 개나 들어왔다.
일거리가 많아 좋긴 했지만, 너무 많다보니 한여름이 걱정하는 중이었다.
“아스날이랑도 일하기로 했잖아.”
“너무 걱정하지 마. 병행할 수 있으니까. 아, 그리고 미슐린타트랑은 저녁에 만나서 일정 잡고, 시즌 끝날 때까지 하위권 팀들을 다 돌아볼 것 같아.”
“월급 못 받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
“미스터 태. 오랜만이네.”
거의 한 달 만에 만난 미슐린타트와 격한 포옹을 나눴다.
“이제 좋은 선수를 많이 찾아보자고.”
“어떤 선수를 찾는 거예요?”
“‘신사’ 정도 되는 선수면 좋지.”
미슐린타트가 장난스럽게 말했고, 나는 피식 웃었다.
‘신사’는 크리스의 별명이었다. A매치 데뷔전에서 상대 퇴장을 막은 녀석은 그동안 옐로카드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기록이 더해져 개리 리네커에 이은 그라운드의 두 번째 신사라고 불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내심 다행이었다. 호구 비슷한 이미지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미리 계약해놓길 잘했어. 이렇게 순식간에 유명해질 줄 누가 알았겠나?”
더불어 내 이름과 T 에이전시도 점차 유명해지고 있었다. 그만큼 임시 홈페이지에 게시해놓은 메일에 쏟아지는 문의도 그득했다.
“그러게요. 계약 천천히 했어야 했는데···.”
내 농담에 미슐린타트는 내 어깨를 턱 치며 으하하 웃었다. 나도 가볍게 웃고는 테이블에 앉았다.
미슐린타트가 산 정찬을 맛본 후에 우리는 업무로 들어갔다.
미슐린타트의 입에서는 먼저 세바스티앙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뛰어본 로테이션급 윙을 찾고 있어. 게임으로 치면 인사이드 포워드 롤의 왼쪽 윙어지. 인시녜 같은··· 아, 그러고 보니 로드리게스도 자네 선수였지?”
“네.”
“혹시 로드리게스도 왼쪽으로 뛸 수 있나? 발도 빠르고 기술도 좋고··· 기량도 훌륭하고. 그런 전술에서 뛰는 걸 못 본 것만 빼면 괜찮은데··· 어떤가?”
미슐린타트의 말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세바는 전형적인 클래식 윙어에요. 지금은 좀 다른 역할로 뛰고 있긴 하지만, 인사이드 포워드 롤에는 맞지 않습니다.”
“그런가?”
미슐린타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준비해놓은 자료를 꺼내며 본격적인 얘기로 들어갔다.
스벤의 선수인 얀을 후보급 인사이드 포워드로 영입하기로 하고, 내가 아르헨티나에서 추천한 수비수 루카스 마르티네즈 쿠아르타(Lucas Martinez Quarta)와 나폴리에서 조르지뉴를 데려오는 걸로 이적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사리는 기존 선수들을 거의 그대로 가져가되 대마초 파티 논란과 함께 기복 심한 플레이를 보이던 알렉스 이워비를 방출하겠다고 했다.
우리가 찾을 선수는 이워비가 빠진 자리에 들어갈 선수였다.
“원래는 빅네임 영입을 노려보려고 했는데, 사리 감독이 스태프진을 물갈이할 예정이라 예산이 많이 줄었네. 요즘 스태프들 몸값이 금값이야.”
“그렇다면 하위권 팀에서 찾아봐야겠네요. 강등당할 팀에서 찾으면 더 좋아하겠고요.”
“그렇지. 강등 후 방출 조항까지 있다면 금상첨화고.”
그 다음 날부터 나는 미슐린타트를 따라 강등이 유력한 팀들을 찾아다녔다.
강등 위기에 있는 웨스트햄, 허더스필드, 왓포드, 스완지시티, 강등이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WBA까지.
미슐린타트는 내게 선수들의 기량이 괜찮은지를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나는 헬퍼로 정보를 얻어야 했기에 무조건 1회는 접촉해야 했고, 선수와 만나서 얘기까지 나눠봐야 한다고 했다.
미슐린타트는 아스날의 A도 꺼내지 말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내가 구단 소속이 아니기는 하지만 나중에 논란이 될 수도 있다면서 말이다. 그리고 접촉해야 할 선수의 에이전시 연락처를 구해주는 식으로 도움을 줬다.
그 과정에서 꽤 많은 선수와 안면을 익힐 수 있었다.
지금 이적을 하지 않더라도, 호감도 쌓고 정보도 쌓아 놓으며 장기적으로 좋을 것이기에 나는 ‘반갑습니다. 태현석입니다.’하면서 적극적으로 인사를 하고 연락처를 남겼다.
여러모로 유익했지만, 미슐린타트가 원하는 선수는 없었다. 브라이튼이나 풀햄이 영입할만한 선수들은 몇 찾았지만 말이다.
아스날과의 협업이 이뤄지는 동안에는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4월 20일. 아스날의 아르센 벵거는 22년간의 감독직을 내려놓겠다고 공식적으로 인터뷰했으며 후임 감독에 대한 얘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미슐린타트의 얘길 들어보니 영입작업을 최대한 완료하고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4월 22일 FA컵 준결승, 크리스의 풀햄은 첼시를 상대했다.
하지만 팀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크리스가 내 관리에도 불구하고 결국 방전돼버렸고, 코어가 힘을 못 쓰니 풀햄은 4강이라는 성적으로 FA컵에서 탈락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날 아디다스에서도 연락이 왔다. 시즌 종료 후 방영되는 크리스의 마지막 다큐멘터리에 내 코멘트를 받고 싶다는 말도 함께. 나는 수락했다.
추가로 크리스와 장기적으로 용품 계약을 맺고 싶다고 해 현재는 조율 중이었다.
나는 크리스가 나이키의 킬리안 음바페처럼 시대를 대표하는 선수가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기에, 나는 똑같지는 않더라도 상당히 큰 금액을 부르고 있었다.
독일 에이전트 스벤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스벤은 내 제안을 일단 거절했다. 자기를 믿고 있는 선수들이 우리 에이전시에서 EW에이전시 만큼의 케어를 받을 수 있게 됐을 때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스벤의 말은 우리 선수들이 갖가지 곤란에 빠졌을 때도 적용되는 말이었다. 에이전시 규모를 빨리 더 키워 심슨이나 도미닉같은 직원들을 더 고용해 최대한 빠른 시간에 인프라를 구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위해서는 지금 주어진 일들을 잘 해내 자금을 많이 확보해야 했다. 여기서는 꼭 미슐린타트의 기대를 충족하는 선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세인트 제임스 파크를 내려다보았다.
세인트 제임스 파크, 뉴캐슬의 홈구장의 잔디에서는 뉴캐슬의 선수들이 딱 봐도 의욕 없는 몸놀림으로 뛰고 있었다.
서포터들은 갖가지 욕설을 쏟아내고 있었고, [Mike Out]이라는 걸개를 곳곳에서 흔들고 있었다.
뉴캐슬의 현 감독이자 챔피언스리그 우승 경력이 있는 감독 중 하나인 라파엘 베니테즈는 좌석에 앉아 지시 하나 없이 무표정하게 있었다.
“팬들 분위기 살벌하네요.”
옆에 앉아있던 미슐린타트가 내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한숨을 쉰다.
“저런 폼으로 뛰면 기량을 제대로 볼 수가 없는데.”
“괜찮아요. 어떤 선수를 봐야 할지 알려만 주시면 됩니다. 알아서 조사해올게요.”
내 말에 미슐린타트는 믿음직하다는 눈으로 날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번에는 괜찮아야 할 텐데, 자신감이 점점 떨어지는구만.”
“최고의 스카우트라는 사람이, 고작 제 얘기 듣고 그러시면 어떡해요?”
그동안 미슐린타트가 자신 있게 어떠냐고 물어본 선수들은 전부 꽝이었다. 미슐린타트가 투덜거린다.
“지내면 지낼수록 자네가 더 정확하다는 걸 깨닫는데 어떡하나? 무슨 눈에 스카우터를 달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답하기 난감한 질문이었기에 고개를 께작 거리면서 본격적인 질문을 던졌다.
“어떤 선수를 눈여겨보고 계세요?”
“저기, 아요세 페레즈.”
아요세 페레즈는 스페인 출신의 2선 좌측과 중앙을 볼수 있는 다재다능한 선수였다.
뉴캐슬 선수 중 몇 안 되는 열심히 뛰는 선수기도 했다. 오늘의 폼은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는 건지 중앙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었다. 인사이드 포워드 롤의 적성을 찾아야 하니 이번에도 직접 만나야 할 듯싶었다.
나는 뉴캐슬이 3-0으로 지고 있다는 스코어판을 슬쩍 보고 어깨를 움츠리며 작게 말했다. 주변 서포터들에게 들리지 않게.
“절대 강등당할 리 없다고 생각한 팀인데, 아깝네요.”
“그래?”
“네, 감독이 베니테즈에 스쿼드도 괜찮았잖아요.”
“그래봤자 구단주가 엉망이면 소용없지.”
나는 밀월을 떠올리며 미슐린타트의 말에 동의했다. 크리스만 데려갔다면 승격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 순위가 6위였나 그럴 거다.
나는 구장을 가득 채운 팬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뉴캐슬의 서포터들이 들고 있는 [Mike Out]은 구단주 마이크 애쉴리를 향한 팬들의 절규였다.
뉴캐슬의 구단주는 지난 여름이적시장부터 패악질을 부렸다. 팀을 매각할 생각이었던 그는 스폰서를 구할 노력도 하지 않았고 이적자금도 쥐꼬리만큼 쥐여줬다. 그건 자연스럽게 보강을 원하는 베니테즈와의 충돌을 낳았다.
어떻게든 베니테즈가 참고 넘어가려 했으나 구단주는 겨울 이적시장에 쓸만한 선수 몇을 팔아버리는 만행까지 저질렀고, 팀에 마가 낀 듯 몇 선수들의 부상까지 발생해, 베니테즈는 시즌 중반부터 손을 놓은 상태였다.
그렇게 뉴캐슬은 오늘, 강등을 확정할 것 같아 보였다.
선수들이 저렇게 힘없이 뛰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구단주는 지랄맞지 감독은 손을 놨지, 팬들은 야유하지, 남은 세 경기를 다 이기고 하늘에 빌어야 하는 상황 자체도 암울하지.
“뭐, 우리가 신경 쓸 건 아니지. 아요세 페레즈도 직접 만나 볼 거지?”
“늘 생각하는데 미슐린타트는 엄청 치사해요. 일은 제가 다 하는 것 같다고요.”
“내가 말 걸면 불법 접촉이잖나? 보수도 짭짤하게 주고.”
미슐린타트가 능글맞게 웃었다.
“자 여기 연락처 받아. 경기 끝나고 못 만나면 연락해서 만나면 될 거야.”
“네.”
미안한 마음은 있는지 미슐린타트가 말을 덧붙였다.
“선수만 확실하면 수수료도 구단에서 잘 챙겨 줄 거니까 잘 부탁해. 내년에도 또 함께 일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네네. 기대할게요.”
나는 건성건성 대답하고, 종료 휘슬이자 뉴캐슬의 이번 시즌 강등을 알리는 소리를 들으며 구장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한참 동안 기다려 아요세 페레즈가 개인 차를 몰고 나가려는데, 차 문을 두드리며 사인 받으려는 것처럼 다가가 명함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T에이전시의 태현석이라고 합니다.”
날 알아본 건지 수상한 사람 보듯 하던 눈이 풀어졌다. 언론의 힘이 이래서 좋다.
“혹시 이적에 관심이 있나 해서요. 그렇다면 여기로···.”
“네, 관심 있어요.”
아요세 페레즈가 내 말을 끊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