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117
117
25. 기회를 움켜쥐려면 (1)
밀월의 감독, 비토리아 리찌는 문을 부서질 정도로 세게 닫았다. 쾅하는 소리가 문 밖 복도까지 울려 퍼졌고, 문 안쪽의 구단주실에서도 짜증 섞인 소리가 새어나왔다.
‘휴가인데··· 엿 같네.’
리찌는 휴가 기간인데도 불구하고 다음 시즌 선수 영입 건으로 단장과 구단주와 함께 회동을 가졌고, 그 결과로 구단주가 여전히 개 같은 놈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여름이적시장, 크리스 앨런 영입 실패 건으로 리찌는 구단주에게 불같이 화를 냈었다. 구단주는 그 이후 한 시즌 내내 리찌에게 말을 건 적이 없었다.
오늘도 별말 않을 거라 생각했다. 팀원들이나 서포터들에게 정이 들어 버려서 적당한 지원만 있으면 다음 시즌까지는 해보자는 생각도 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영입 선수를 A부터 C플랜까지 구성한 명단을 넘기자마자 나온 구단주의 투덜거림에 의욕이 싹 달아나 버렸다.
“이 정도나 영입해야 한다고? 지난 시즌에 영입한 선수들은?”
“C플랜도 실패해서 이적시장 하루 남기고 급하게 영입하지 않았습니까. 구단주님이 돈, 돈 하는 바람에요.”
“급하든 뭐든 결국 자네가 요청한 거 아닌가. 그러면 성과를 내야지. 플레이오프 순위에도 못 들어가 놓고···.”
“뭐요?”
구단주는 이때를 기다린 모양인지 뻔뻔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리찌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고, 중간에 낀 밀월의 단장, 제이콥은 우물쭈물하며 둘을 진정시키려 하고 있었다.
“저기, 잠시···.”
“내가 영입해달라는 선수에 돈만 안 아꼈어도 승격 직행이었습니다! C플랜까지만 영입해줬어도 플레이오프까지 무난했고요!”
“지나간 일에 만약을 들이대는구만. 그런 얘길 누가 못하나?”
리찌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우리 팀에 오겠다고 몸값까지 깎은 크리스 앨런 영입을 망친 게 누구였죠?”
한 마리 맹수 같은 리찌의 눈빛에 구단주가 움찔하더니 시선을 피했다.
리찌는 몇 마디 더 퍼부으려다가 책상을 쿵 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아니 앞으로 보지 말죠. 당신도 저처럼 지랄하는 감독은 싫을 거 아닙니까.”
“그래, 그러지.”
구단주는 리찌를 쳐다보지 않았고 구단주의 뒤통수를 노려보던 리찌는 성큼성큼 걸어 문을 세게 닫으며 나갔다.
그렇게 해서 지금이 된 거였다.
리찌가 복도를 반쯤 걸어나갔을 때, 구단주와 단둘이 남겨졌던 제이콥이 문을 급하게 열고 따라나왔다.
“정말 그만둘 거야? 아니지? 선수들은 어쩌고.”
“미안, 나 더는 여기서 일 못하겠어. 내 계약기간 1년 남았지?”
“조금만 더 해 보면···.”
제이콥이 더 말하기 전에 리찌는 말을 끊어버렸다.
“지난 시즌부터 그래. 영입 얘기할 때마다 사사건건 툴툴거리고 원하는 선수를 영입해주는 것도 아니고, 나 이제 다른 팀 찾아볼 거야.”
선수들과 서포터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팀에 붙일 정이 싹 사라져버렸다.
제이콥은 고개를 떨구며 원하는 데로 하라고 중얼거리며 멀어져갔다. 리찌는 그의 등에 대고 말했다.
“제이콥, 너도 그냥 그만둬.”
제이콥은 고개를 젓고는 복도에서 사라졌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세리에 B에서 2위를 수성하고 있던 자신을 꼬드겼던 제이콥은 꿈 많아 보이는 남자였다. 밀월에 리찌가 오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함께 멋진 팀을 만들어보자고 했던 그 말에 설득돼 여기까지 온 거였다.
제이콥은 좋은 친구이자 좋은 단장이었지만, 결국 단장일 뿐이었다.
리찌는 진심으로 제이콥이 다른 곳에서 제 능력을 발휘하길 바랐다. 물론, 그러기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제이콥은 밀월의 골수팬이었으니까.
리찌는 1년 반 동안 함께했던 감독실에 들어서며 깊디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짐을 정리할까 생각하다가 그냥 내일 정리하기로 한 그는 소파에 주저앉았다. 일단은 멍하니 있고 싶었다.
리찌는 자신의 사무실을 고개만 돌려 쭉 훑어봤다.
라운드별 분석 자료, 선수 면담 자료, 선수별 훈련 일지 등 그동안의 노력의 흔적이 보였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결국 플레이오프까지 닿지 못했다.
“후···.”
아예 소파에 드러누운 채 리찌는 휴대폰을 켜 축구 기사들을 아무 생각 없이 읽었다.
몇 주 뒤로 다가온 월드컵과, 다음 주에 치러질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기사 외의 특별한 기사는 없었다.
“아···.”
아니, 특별한 기사가 있긴 했다.
크리스 앨런이 곧 리버풀 입단식을 가질 거라는 기사였다. 기사 안에는 챔피언십리그 플레이메이커상을 받고 환하게 웃고 있는 크리스 앨런이 보였다.
잘하고 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아쉬웠고, 실제 리그에서 맞붙었을 때는 속에서 천불이 났다.
구단주 놈이 욕심만 안 부렸었어도. 크리스는 짧은 기간일지라도 자신의 페르소나가 될 수 있는 선수였는데.
그리고 그때, 휴대폰이 진동하며 화면에 전화가 왔다는 알람이 떴다.
“음?”
[태현석 – 크리스 앨런의 지인]크리스 앨런 영입 때 크리스의 후견인 비슷한 위치라고 말했던 사람이었다. 최근에 기사에서도 본 적이 있었다. 사실 이 사람이 크리스의 진짜 에이전트였고, 다른 포지션에서 뛰던 크리스를 발굴해 지금까지 키워낸 사람이라고 했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능력 있고 젊은 축구인이라는 내용도 함께 있었었다.
“에이전시를 차렸다고 했었지···.”
‘밀월에 팔 선수가 있는 건가? 아니면 밀월에서 빼가고 싶은 선수라도? 에이전시에서 영입하고 싶은 선수라던가···.’
리찌는 고민 끝에도 아무런 대답을 얻지 못했다. 그는 열 번째로 울리는 휴대폰에 손을 갖다 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제 떠나기로 했으니까, 무슨 상관이냐.’
-아, 받으셨다. 안녕하세요. T에이전시의 태현석이라고 합니다. 런던에 계신다는 얘기를 들어서 전화 드렸는데, 바쁘신가요?
선한 목소리에 깔끔한 발음이 이어진다. 리찌 자신과 축구 가십을 즐겁게 떠들던 얼굴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괜찮아요. 한가합니다.”
리찌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답했다.
-그럼 혹시 저녁에 시간 되시나요? 저녁 식사나 술 한잔하면서 이번 시즌 얘기나 했으면 하는데···.
리찌는 술이라는 말에 순식간에 넘어갈 뻔했다. 평범한 자리는 아닐 테고, 뭔가 목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리찌에게 태현석은 큰 거 한 방을 날렸다.
-제가 사겠습니다. 비싸고 독한 걸로.
“오케이, 어디에서 만날까요?”
*
“크아, 좋다.”
리찌는 독한 보드카를 맥주잔에 따라 마시고 있었다.
얼굴이 금방 빨개지고 초점이 왔다갔다하는 걸 보면 술이 강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는데. 내 정신을 빼앗는 게 하나 있어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비토리아 리찌]-잠재 능력 : ☆☆☆☆☆☆☆
리찌가 별 일곱 개짜리 잠재력을 가진 감독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리찌를 오늘 영입할 수도 있다고는 생각했었지만, 의욕은 그렇게 크지 않았었다. 뉴캐슬에 중개하는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자리에 나왔었다.
하지만 이 한 줄의 정보가 내 마음가짐을 바꿔버렸다.
“눈빛 좋네요. 그때랑은 분위기가 아주 달라졌는데요?”
“그런가요?”
“네, 그때는 날 것 느낌이 났다면 지금은 정제된 느낌? 그리고··· 날 탐욕스럽게 보는 그 눈이 특히··· 크흠. 왜 그렇게 쳐다보시죠? 저 남자 싫어합니다. 여자가 좋아요.”
“저도 그런 취향은 없어요.”
내 단호한 대답에 리찌가 킬킬거리며 술을 한잔 더 따라 마셨다. 나도 분위기를 맞춰 주기 위해 적당히 따라 술을 머금었고. 으, 독하다. 한여름을 데려올 걸 그랬나.
“무슨 일 있으신가요? 기분이 안 좋아 보이셔서.”
내 물음에 리찌는 바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는 술술 말한다.
“엿 같은 구단주 새끼랑 인제 그만 일하기로 했거든요. 방금까지 된통 싸우고 나온 참입니다. 이제 좀 속이 시원하겠네요.”
“네?”
잠깐 놀랐다가, 기회라는 걸 깨닫고 뉴캐슬에 관한 얘기를 바로 꺼내려다가 리찌의 눈빛에 복잡한 감정이 실려 있다는 걸 깨달았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 걸리시는 거라도 있나요.”
리찌가 어깨를 으쓱했다.
“선수들이랑 서포터랑 단장이랑 스태프랑··· 그냥 구단주 빼고 다요.”
리찌는 뭐가 걸리는지 하나씩 다 언급하기 시작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열과 성의를 다해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중간마다 한숨까지 쉬어가며 속내를 토로하던 리찌는 단장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 피식 웃고는 말을 마무리 지었다.
“내가 일 년 만에 보는 사람한테 무슨 얘기를 하는 거래.”
“저도 제가 이런 얘기를 들어도 되나 싶었지만··· 그래도 진지하게 들었습니다.”
“그건 고맙네요.”
씩 웃은 리찌는 더는 술에 손을 대지 않았다.
“뭐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그만두는 건 그만두는 겁니다. 구단주도 날 안 잡겠다고 했으니 새 팀을 찾아봐야겠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서양인이다. 정이 있긴 하지만 자기 자신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그렇게 행동하는.
“그러고 보니 미스터 태는 무슨 일로 날 찾아온 겁니까? 어차피 떠날 거, 괜찮은 선수 몇 좀 소개해줄까요? 아니면 저한테 추천해 줄 선수가 있어서 온 거였나요? 그런 목적이었다면 오늘은 허탕이네요.”
리찌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리찌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리찌에게 소개시켜줄 팀이 있어서 온 겁니다.”
“나요?”
예상하지 못했던 말인 듯 리찌는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되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말을 이었다.
“뉴캐슬의 구단주님이 자기 팀을 맡아줄 2부 리그 최고의 감독을 데려와 달라고 제게 부탁했습니다. 저는 그게 감독님이라고 생각했고,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여기에 온 겁니다. 혹시 관심 있으신가요?”
“저기, 잠깐···.”
리찌가 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2부 리그 최고의 감독이라고요?”
“네.”
“음··· 그건 참 기분 좋은 말이기는 한데··· 뉴캐슬이요?”
리찌의 눈빛에는 불신이 그득했다.
“방금 얘기했잖아요. 구단주 때문에 고생했다고. 나한테 그 고생을 또 하라고요?”
리찌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렇지, 뉴캐슬의 구단주가 자금 지원을 안 해준다는 건 언론으로도 널리 퍼진 사실이다. 이제 ‘전 구단주’가 될 마이크 말이다.
“아뇨, 아뇨. 뉴캐슬에는 새 구단주님이 부임하실 겁니다.”
“새 구단주?”
나는 새 구단주라는 말을 하며 목소리를 낮췄고, 리찌 또한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관심을 드러냈다.
“최고의 지원을 약속하신 분입니다. 아직 인수가 끝난 게 아니라 누구인지까지는 밝힐 수 없지만, 밀월의 짠돌이 구단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지원을 해 주실 겁니다. 올해 안으로 승격하는 걸 목표로 하시고 있으니까요.”
“흐음···.”
리찌가 진지한 얼굴로 자신의 턱을 만지작대기 시작했다.
“만남을 주선해 드릴 수 있어요. 직접 얘기해보시고 생각하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리찌의 고민은 계속됐고, 내게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리찌가 계속 머뭇거리는 걸 지켜보던 나는, 혹여나 그의 마음이 이탈리아로 기울까 걱정돼 경기장에서 늘 드러났던 그의 불같던 성격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영국에서 실패했다는 딱지를 달고 돌아가실 건가요?”
“뭐요? 실패?”
예상대로, 고민을 멈추고 발끈하는 리찌 앞에서 나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니면 저와 뉴캐슬과 손잡고 영국, 아니 세계 최고의 감독이 되어보시겠어요?”
내 말에 리찌가 황당해했다.
“갑자기 무슨 세계 최고입니까. 뜬금없이.”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사실 방금 이지만.
“감독님은 지금 능력도 굉장하지만, 앞으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으시다고.”
황당함 게이지가 치솟았는지 리찌는 나를 미친놈 보듯이 바라봤다.
한참 후에야 그가 입을 열었다.
“세계 최고의 선수라면 모를까 세계 최고의 감독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처음 들어보네요.”
“그러게요. 저도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어떡해요. 사실인걸.”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말이 잠깐 샜는데 저는 리찌가 뉴캐슬로 갔으면 좋겠어요. 지금 뉴캐슬은 리찌라는 선장만 얻는다면, 당장 프리미어리그에서도 강등당하지 않을 전력을 갖춰요. 챔피언십에서 승격? 리찌만 들어가면 쉬운 일이죠.”
“···이제 좀 민망하기 시작하는데 그만 띄우시죠.”
“사실이라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적극 추천하는 거고요. 당신도 지원 잘 해주는 구단주와 함께 명예회복 한번 해보고 싶지 않아요?”
“끈질기네요.”
“아까우니까요.”
내 진위를 파악하듯 눈을 맞추던 리찌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이야기는 해 보죠.”
“감사합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그리고, 뉴캐슬을 소개해주는 것 말고, 아까부터 하고 싶어 속에서 근질거리던 말을 드디어 꺼냈다.
“그리고 혹시 에이전시에 소속되는 건 어떠신가요?”
“미스터 태의 에이전시요?”
“네. 정말, 정말 탐이 나거든요.”
내 눈앞에 앞으로 월드컵 우승이나 챔피언스리그 우승, 리그 우승을 일궈낼 가능성을 가진 감독이 있었다.
리찌가 허탈한 듯 하, 하고 짧게 웃는 소릴 냈다.
“왜 자꾸 띄우나 했더니··· 그 얘길 하려고 그랬던 거였군요.”
“저는 진심이었어요.”
틈도 없이 이어지는 내 말에 리찌는 잠깐 맹한 표정으로 날 보더니 하하하하 소리를 끊임없이 내며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냈다.
분위기가 좋은데, 이렇게 바로 영입을···.
“그건 나중으로 미루죠. 저는 아직 미스터 태의 능력을 모르겠는걸요. 우리 만난 지 세 번째 밖에 안 됐어요.”
“아···.”
리찌의 말이 맞았다. 그럼 이번 뉴캐슬 이적을 토대로 계속 연락하는 식으로 하면···.
하지만 리찌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그러니까 태, 당신이 믿을 만한 사람이고 그만큼 능력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에이전시에 들어가겠습니다. 오늘, 당신과의 대화는 꽤 즐거웠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