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120
120
25. 기회를 움켜쥐려면 (4)
파비안스키의 에이전트, 야닉 노위스키는 오늘 들어 열 번째로 걸려온 전화를 끊었다.
“끝이 없네 끝이 없어. 야, 아스날에서도 연락 왔다. 어때? 관심 있냐? 친정팀이기도 하잖아.”
“싫어.”
파비안스키의 단호한 대답에 야닉은 눈썹을 찌푸렸다.
“왜? 스완시에 있을 때보다 돈도 많이 주고, 유럽대항전도 나갈 수 있는데?”
“많이 뛸 수 있는 팀, 그거면 돼.”
“그럼 첼시도 싫겠네?”
“당연하지. 경쟁 상대가 쿠르투와잖아, 후보는 카바예로고. 아스날도 마찬가지야. 체흐에 오스피나, 싫어.”
“경쟁은 당연한 거잖아.”
야닉의 투덜거림에 파비안스키는 별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그런 거에 겁먹고 말고 할 연차는 아니지. 그냥 귀찮아서 그래.”
“나는 첼시가 아주 마음에 드는데. 쿠르트와가 이번 시즌에 이적할 수도 있다고···.”
“추측일 뿐이잖아. 야닉. 내 나이가 몇인지 잊었어?”
야닉은 패드를 잡고 게임에 빠져있는 친구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자신과 동갑인 1985년생, 33세의 나이로 골키퍼라는 포지션의 특성상 아직 전성기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그게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몰랐다.
아마 이번 이적이 마지막 이적이 될 것이다.
“유럽대항전 나가는 팀 좋지. 그런데 그 좋은 팀에서 못 뛰면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나는 은퇴 시즌에도 풀타임으로 뛰고 싶어.”
파비안스키는 챔피언스리그에 매해 출장하던 200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의 아스날에 소속돼 있었다. 2011년에는 잠시 주전을 맡았던 적도 있지만, 들쭉날쭉한 경기출장 때문에 몸을 꾸준히 만들기 어려웠고, 실수투성이었던 자신의 모습은 그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그 이후, 스완지시티로 도망치듯 이적한 그는 매 시즌 풀타임으로 뛰면서 자신은 유럽대항전에 나가는 것보다는 축구 선수로서 필드 위에 서 있는 게 가장 행복하다는 걸 깨달았다.
“미안,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다.”
야닉이 파비안스키의 옆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네 실력이면 유럽대항전에서도 충분히 활약할 수 있으니까··· 너무 아까워서 그랬지.”
“괜찮아.”
“그럼 네가 원하는 조건을 정리해볼게. 1순위는 출장 기회, 2순위는 은퇴 후를 대비한 돈, 3순위는 리그와 팀 수준, 이거 맞지?”
“오케이. 정확해.”
파비안스키는 게임 속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조종해 폴란드의 골문으로 강한 슈팅을 날렸다.
게임 속 파비안스키는 호날두의 감아 차기를 멋지게 막아냈다. 그리고 휘슬이 울리며 게임이 끝났다.
“캬, 잘한다.”
“이제 게임 좀 그만 하고 얘기 좀 들어봐. 며칠 뒤면 월드컵 소집이잖아.”
파비안스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전까지 계약을 마무리하는 건 무리일까? 그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좋은 제안을 줘야 계약이 빨리 진행되지. 일단 전화 온 곳들 리스트업해서 너한테··· 어 또 전화 왔다.”
파비안스키는 야닉이 다시 전화에 빠지자 새 게임을 잡기 시작했다.
야닉의 목소리를 배경음 삼아서.
“아, 네. 이름은 들어본 적 있습니다.”
슬쩍 본 야닉의 표정이 떨떠름했다.
“뉴캐슬이요? 2부 리그는 좀···.”
파비안스키는 게임 속 뉴캐슬의 등급을 확인했다. 별 다섯 개 만점에 세 개 반. 게임에서도 어중간한 등급이었다. 강등되면 별 세 개 정도로 떨어지겠지.
“챔피언스리그에 나가는 팀들의 제안까지 받고 있는 우카시입니다. 더 얘기할 필요는 없을··· 네? 뭐라고요?”
뉴캐슬이나 스완지나 도긴개긴이다. 뉴캐슬에 가느니 스완지에 남는 게 더 좋은 선택이 될지도 몰랐다. 당연히 거절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야닉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파비안스키는 게임 시작 버튼을 누르지 않고 야닉의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음··· 그렇게 나요?”
야닉의 미간 주름이 짙어졌다.
“상의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네. 감사합니다.”
“뭔데?”
통화가 끝나자마자 파비안스키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야닉은 복잡한 얼굴이었다.
“너 많이 뛸 수 있는 팀에 가고 싶다고 했잖아. 돈이 두 번째라고 했고··· 팀 수준은 세 번째고.”
“응, 그랬지.”
“2부 리그는 어떠냐?”
“조건이 어떻길래?”
야닉이 이렇게 반응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자신의 친구이기도 했지만, 경력이 꽤 쌓인 에이전트이기도 했으니까.
“뉴캐슬에서 기본 주급 10만 파운드를 보장하겠단다. 옵션 빼고. 그리고 선발 20회 미달 시 연봉을 보상금으로 지급하겠다는 조항까지.”
“뭐?”
자신이 원하는 주전 보장에 주급까지 지금의 두 배 정도를 보장한단다.
파비안스키는 들고 있던 패드를 떨어뜨리며 앉은 채로 야닉에게 다가갔다. 푹신한 러그 위에 패드가 뒹군다.
“구단주 때문에 망해가는 구단 아니었어? 뭐 그렇게 비싸게 부른데?”
“그러게 말이다. 한번 얘기는 해 볼래?”
파비안스키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렸다.
야닉은 다시 휴대폰을 켜 방금 당돌한 제안을 해 온 사람의 이름을 저장했다.
[태현석]그리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
“만나서 반갑습니다. 예전에 한 번 본 적 있죠?”
“아, 그··· 미슐린타트 옆에 붙어있었던···.”
“기억해주시네요. 감사합니다.”
파비안스키의 에이전트인 야닉의 제안으로 나는 파비안스키의 집에 방문했다.
어제, 전화를 걸고 나서 10분도 안 돼서 만나자고 연락이 와, 나는 런던에서 웨일스에 있는 스완지 주까지 밤새 차를 몰아야 했다.
숙소에서 한숨 잤고 지금은 오후였다.
야닉이 내게 말했다.
“일 처리가 빠르시더군요.”
현 구단주인 마이크에게 위임장을 받은 마가렛은 파비안스키의 강등 후 바이아웃으로 설정된 500만 파운드를 망설임 없이 입금하겠다는 공문을 보냈다. 파비안스키와 야닉도 구단에서 통보받은 모양이다.
나는 미소를 지은 채로 말했다.
“네, 협상 권한을 위임받았거든요.”
“그럼 그때 했던 말이 진짜···.”
“공식 제안이죠.”
마가렛은 파비안스키에게는 주당 15만 파운드까지, 혹시 파비안스키의 이적이 틀어질 때 선회할 벤 포스터에게는 주당 5만 파운드까지 제시 하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요청한 세부조항도 마음에 들어 하지는 않았지만 수락해줬다. 프리미어리그 상위권 골키퍼를 2부에 데려오려면 이 정도 리스크는 감수해야 한다는 내 말을 들어줬다.
15만 파운드까지 꽉꽉 끌어 써서 마가렛에게 실망감을 안겨 줄 생각은 없었기에 10만 파운드로 딱 선을 긋고 시작한 거다.
그만큼만 해도 파비안스키가 현재 받는 주급의 두 배 가까이 되니까.
“조건은 어제 말씀드렸던 것과 같습니다. 10만 파운드의 주급에 선발 출전을 보조해주는 조항까지요.”
내가 큰 틀의 계약을 짜고, 파비안스키가 수락한다면 뉴캐슬의 변호사들이 세부 조항을 수정해주겠다고 했다. 마가렛의 최종 컨펌을 받아야 하겠지만, 어지간하면 수락해 줄 거다.
야닉은 여전히 의심하는 눈이었다.
“뉴캐슬에 무슨 돈이 있어서 그렇게 과감하게 나오는 겁니까? 무리하다가 임금 체납이라도 한다면···.”
“절대 아닙니다.”
팀에 와달라고 부탁하는데, 팀 사정을 어느 정도는 말해야 되겠지.
“뉴캐슬에는 새 구단주님이 부임하실 겁니다.”
“새 구단주요?”
파비안스키는 가만히 우리 둘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방금까지 야닉에게 주로 얘기했지만, 여기서 설득해야 하는 건 선수 본인, 파비안스키였다. 먼저 헬퍼 정보를 토대로 주급과 주전 보장 제안을 내놓아 파비안스키의 흥미를 끌었으니 이제 마음을 완전히 가져올 차례였다.
팀 수준보다 뛰어난 선수를 데려올 때는 돈도 필요하지만, 이것도 필요하다.
바로 팀의 비전 말이다.
“누구인지까지는 언급하기 어렵지만, 3년 동안······.”
마가렛이 리찌에게 말했던 3년 동안 매년 1억 파운드씩 지원, 3년째에는 유럽클럽대항전 순위를 목표로 하는 마가렛의 마스터플랜을 설명했다. 리찌에게 한 부 받은 다음 시즌 팀의 운영방향도 함께 말이다.
파비안스키의 눈이 더 반짝이기 시작했다.
거의 됐다 싶었는데, 그의 에이전트 야닉이 끼어들어 왔다.
“야, 야. 너는 왜 벌써 넘어가버리려고 하냐. 저기요. 지금 좋은 말만 하는데 만약에 그 프로젝트에 실패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예상했던 질문이다. 그러니까 대답도 준비돼 있다.
“1년 내로 승격하지 못하면, 250만 파운드 릴리즈(방출) 조항을 넣도록 하겠습니다.”
내 반응속도에 미리 준비해 왔다는 건 충분히 깨달을 수 있겠지. 마가렛은 이 조항을 넣겠다고 했을 때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파비안스키를 데려올 수 있을 거라는 말에 결국 수락해줬다.
야닉은 얼떨떨한지 더듬더듬 말했다.
“···구단주가 그걸 허락해 줍니까?”
“새 감독도 허락해 줬는걸요? 그만큼 뉴캐슬의 새 구단주님과 감독님이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겁니다. 어떻습니까, 우카시?”
나는 야닉에게서 파비안스키로 말의 방향을 바꿨다.
아까부터 착실하게 듣기만 하던 파비안스키가 입을 열었다.
“제가 2부 리그에 갈 거라고 생각하세요?”
“네. 조건만 맞는다면요. 저는 그 조건을 가져왔고요.”
내 단호한 대답에 파비안스키는 재밌다는 듯 내 얼굴을 관찰했다.
“제 뒷조사라도 하셨나요? 저를 다 아시는 것처럼 말하는 거나, 제가 혹할만한 조건만 들고 온 거나···.”
“그럴 리가요.”
나는 자연스럽게 보이려 애써 웃었다.
파비안스키 옆의 야닉 또한 복잡한 얼굴이었다. 이어지는 그의 말에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꼬투리 잡을 게 없네요. 어때? 우카시?”
파비안스키는 나를 관찰하던 걸 멈추고 미소를 머금은 채 야닉에게 답했다.
“재밌어 보여. 만나서 얘기는 해 보면 좋겠는데.”
“들었죠?”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야닉이 말한다.
“이 조건 그대로 변동이 없다는 조건 하에, 새 구단주와 감독이라는 사람을 만나보고 결정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전달하겠습니다.”
*
“파비안스키와 정식으로 사인했어요. 선수만 잘 보는 줄 알았는데 협상에도 탁월할 줄은 몰랐네요. 돈도 10만 파운드밖에 안 쓰고.”
“과찬이세요. 10만 파운드도 너무 많죠. 더 나은 에이전트가 움직였더라면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했을 겁니다.”
“겸손이 지나치면 좋지 않아요. 아무튼, 커미션 입금된 건 확인했죠?”
“당연하죠.”
마가렛이 부드럽게 웃는다.
마가렛은 내게 차와 디저트를 내주며 진척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리찌 영입과 파비안스키 영입 절차를 마무리 지었고, 각 구단과의 협의로 이적 발표를 자신의 부임날짜로 미뤘다고 말해줬다.
뉴캐슬의 기존 구단주는 자신의 권한을 대부분 마가렛에게 넘겼다고 했다.
마가렛은 현재 대행권을 받아 단장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단장 또한 거의 구했다고 말했다.
“스티브 월시가 올 것 같아요. 이번 시즌 에버튼의 부진을 책임지고 사퇴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미스터 태처럼 눈이 좋은 단장이니 나중에 영입 건 논의하기도 좋을 거예요.”
“진짜 괜찮은데요?”
스티브 월시는 레스터 시티의 기적 같은 우승을 이끈 3인방, 캉테, 마레즈, 바디를 하부 리그 때부터 관찰해 영입한 인물이다.
그는 협상력보다는 선수의 자질을 볼 줄 아는 유능한 단장이었다.
이제 할 일도 다 끝났고, 나중에 이것저것 물어볼 생각에 즐거워하고 있는데, 마가렛의 다음 말이 내 신경을 빼앗았다.
“빅 사이닝만 마무리 지으면 바로 발표하려고요. 아, 그리고 리찌가 선수 하나를 더 데려오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그러라고 했어요.”
“두 명이면 된다고 하지 않았나요?”
“필요한 거 없냐고 물었더니 꼭 필요한 건 아닌 데 있으면 도움될 만한 선수가 있다.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영입하라고 했죠.”
“···쿨하시네요.”
마가렛은 부인하지 않았다.
“재정에 문제가 될 정도로 비싼 선수가 아니니까요. 자세한 건 리찌가 직접 말할 거예요.”
“모든 구단주가 다 마가렛 같으면 좋을 텐데요.”
밀월의 구단주가 문득 머릿속에 떠올랐다.
“적당히 띄우세요 태. 그런다고 커미션이 늘어나는 건 아니라고요.”
마가렛의 말에 나는 소리 내서 웃었다. 마가렛도 마찬가지.
그러고 보니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리찌와 파비안스키 때문에 뒤늦게 물어본다.
“그런데 그 빅 사이닝이라는 게 대체 누굴 말하는 건가요? 이름도 알려주면 안 돼요?”
마가렛이 은근한 웃음을 지었다.
“팬들에게 구단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고, 구단의 미래까지 보장해주는 엄청난 영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