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125
125
26. 두 번째 프리 시즌 (3)
나는 수저를 내려놓고 가방을 뒤적였다. 조별리그 기간에 받았던 명함을 꺼내 내용을 확인했다.
[CASA Sports] [루이즈 알베즈 디아즈]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에이전트라고 작게 메모도 돼 있었다.
이 사람 맞지? 인상 좋은 아저씨 같던 에이전트.
밥을 먹다 말고 갑작스럽게 명함을 꺼내 별의별 표정을 짓는 내가 이상했는지, 호나우지뉴와 줄리우는 나를 힐끗 보고 있었다.
나는 들고 있던 명함을 줄리우에게 내밀며 물었다.
“이 사람 맞아요? 에이전시는 여기 맞고?”
줄리우가 명함을 받아들더니 일 초 만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를 날 빤히 바라본다. 이걸 왜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기색이다.
바로 대답해 줄 여유는 없었다.
내 머리는 지각 직전에 몰린 회사원의 차 엔진이 돌 듯 전력으로 돌고 있었다.
술술 잘 풀린다 했는데 이런 암초를 만날 줄이야.
당장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계약을 잠시 멈추라고 해야겠고, 개인적인 조사 이후 이 내용이 맞다면 계약을 완전히 멈추게 해야 했다.
그럼 가브리엘 마르케스가 빠진 자리는?
나는 고개를 들어 줄리우를 바라봤다. 줄리우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입술을 달싹이는 중이었다.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현재 능력이 별 다섯 개였고, 잠재력이 여섯 개였다.
줄리우는 한 달 정도의 경기력 회복 훈련만 거친다면 단번에 여섯 개로 뛰어오를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나이가 서른인 게 좀 걸리긴 하지만 유럽대항전에 나가는 브라이튼에게는 충분히 좋은 카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대표 및 유로파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도 출전해봤던 선수이니 경험과 실력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선수지.
그렇게만 된다면 브라이튼의 영입 계획에 문제도 안 생기니 아주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단, 예전에 일으켰던 문제가 정말 그의 말대로 에이전트의 농간에 의해서였다는 게 확인이 돼야겠지만.
“명함이 있는 걸 보니···.”
줄리우가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몇 주 전에 루이즈의 선수랑 제가 아는 구단을 연결해줬거든요.”
나는 바로 답했고, 줄리우와 호나우지뉴의 표정이 복잡미묘해 졌다. 나랑 그 에이전트가 아는 사이라는 게 불편한 걸까? 뒷담화를 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니.
“괜찮아요. 저도 두어 번밖에 못 본 에이전트였어요. 그리고 두 분 말을 아직 완전히 믿는 것도 아니고.”
둘이 뭐라 하기도 전에 나는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아볼 게 있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봐야 할 것 같아요. 나중에 다시 전화 드려도 될까요? 꼭 다시 연락드릴게요. 중국에는 몇 번 더 들러야 하거든요.”
“아··· 네.”
둘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런던은 지금 오후였고, 나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정보를 빨리 물어다 줄 사람에게 부탁을 마쳤다.
그리고 비행기에 타기도 전에 그곳에서 전화가 되걸려왔다. 불과 2시간 만의 전화였다.
-그 에이전시 소속이었던 선수들에게 물어봤고, 그 에이전트와 거래했던 구단들에게 물어봤는데요.
“빠르네요.”
-뭘요. 대표님이 미스터 태의 요청은 최우선으로 처리하라고 예전에 말해둔 게 있어서 어렵지는 않았어요. 아무튼, 그 에이전트 소속 선수들은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구단과 트러블이 발생했어요. 피해자는 대부분 남미 쪽 구단이라 유럽에는 소문이 잘 안 났네요.
상대방은 EW에이전시의 케이티 큐빗이었다. 케이티는 내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트러블의 70% 이상이 그 루이즈라는 에이전트가 엮여있는 일이었어요. 다 선수가 일으킨 트러블에 초점이 맞춰줘서 언론에는 한두 줄 나가는 게 다였지만요.”
“그렇군요.”
-남미에서 꽤 유명한 에이전트다 보니 공식 자료는 아니고 들은 소문도 있는데···.
“뭔데요?”
다급히 묻자 케이티의 차분한 목소리가 돌아온다.
-돈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요. 이건 개인적인 조언인데 그런 에이전트랑 팀 연결해주면 나중에 골치 아파질 수도 있어요. 구단과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말이죠.
“아··· 고마워요.”
웃는 것 같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뭘요. 요즘 잘 나가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대표님이 잘하나 두고 보자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뭐, 이런 얘기는 됐고, 다음에도 필요하면 연락해요. 그리고 부탁했던 연락처 말인데요···.
나는 수첩을 꺼내 케이티가 불러주는 번호를 받아 적었다. 그리고 감사하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후···.”
브라이튼에 똥을 떨궈놓을 뻔했다.
가브리엘은 괜찮은 선수지만, 선수는 죄가 없지만 나는 로이와 세바스티앙이 더 중요했다.
나는 아직 태국에 있는 로이에게 밤늦은 시간에 전화해서 미안하다 하며 이 에이전트의 실상을 알렸고, 케이티에게서 받은 연락처들로 전화를 걸었다.
*
월드컵 16강전을 몇 개 보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베니시오의 사우스햄튼 때문이었다. 다른 선수들처럼 큰 광고는 아니고, 구단 자체에서 하는 광고촬영이었지만 프리시즌을 잘 보내고 있나 안부나 물을 겸 해서 들렀다.
레온의 스토크도 중국에 왔지만 레온은 중국에 없었다. 레온은 늦은 휴가를 떠났다. 왜냐면 잉글랜드가 16강에서 떨어졌으니까. 최종스코어는 1-1, 승부차기로 아깝게 떨어졌다. 레온은 그렇게 분해하지는 않았다. 과분하고 좋은 경험이었다고 4년 뒤에도 또 들르고 싶다고 내게 개인적인 소감을 말했다.
베니시오와 점심을 먹은 후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줄리우에게 연락해서 받아낸 주소로 가던 길, 풋살장에서 훈련하고 있는 줄리우를 발견했다. 그는 중, 고등학생 정도 나이로 보이는 중국 소년들과 함께였다. 공을 차는 폼을 보니 길거리에서 노는 선수들은 아니고 축구를 정식으로 배운 선수들 같아 보였다.
나는 풋살장의 벤치에 앉아 훈련을 구경했다.
집에 안 있고 왜 여기 있나 잠깐 생각해봤는데, 들르겠다고 말했던 시간보다 두 시간 일찍 와서 그런 것 같았다. 나도 참 정신이 없다. 이적시장이 끝나면 괜찮아 지려나···.
슬슬 훈련이 막바지로 치달았고, 줄리우가 나를 발견했다.
줄리우는 자신을 도와주던 소년들에게 무어라 하고 헉헉거리면서 내게로 달려왔다.
“열심히 하고 있네요. 저 선수들은···.”
“아르바이트 비를 주고 고용한 지역 클럽의 유소년 선수들입니다. 혼자 훈련하는 건 한계가 있어서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히 있던 줄리우가 우물쭈물하며 묻는다.
“빨리 오셨네요.”
“교통에 문제가 생길 걸 생각해서 여유 있게 잡았던 거거든요. 생각보다 수월하게 왔네요.”
줄리우는 벤치 옆의 가방에서 수건과 음료수를 꺼내, 수건을 목에 걸고 음료수를 꿀꺽꿀꺽 마셨다.
그가 음료수를 내려놓자마자 입을 열어 천천히 말했다.
“집까지 갈 것도 없고, 여기서 얘기하죠.”
줄리우의 표정에 불안감이 서린다.
“동정심만으로는 움직일 수가 없어요.”
내 말에 줄리우가 삽시간에 시무룩해졌다.
이런 얼굴을 바꾸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이지.
“백 퍼센트 확신은 못하겠는데, 제가 팀을 하나 추천해줄까 하는데요.”
줄리우의 눈이 동그래졌다.
“동정심 말고, 가능성이 보이니까 함께하려는 거예요.”
헬퍼의 정보도 그렇고, 발렌시아의 전 단장이라는 사람과의 통화도 마쳤다. 정말로 오해가 맞단다.
그리고 줄리우의 사람됨을 확인하기 위해 5년 전 발렌시아의 코칭스태프나 구단관리사, 영양사 같은 스태프들과도 16강을 보는 틈틈이 확인했고.
착한 청년이라고, 순수한 청년이라고.
문제를 일으키긴 했지만,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모든 사람이 줄리우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팬들은 별로 안 좋아하겠지만 그를 가까이서 봤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가브리엘 대신 줄리우를 집어넣어도 될 것 같았다.
“다만 할 게 조금 있고, 번거로운 과정이 있을지도 몰라요. 5년 동안이나 묵은 오해니까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유럽 축구 팬들의 대부분이 나처럼 줄리우를 트러블 메이커로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1년 장기 부상 후에 프리미어리그의 팀에 돌아온 그를 신뢰하지 못하는 팬들의 떨떠름한 시선도 있을 것이다.
트러블 메이커에 대한 공식적인 해명은 발렌시아의 전 단장에게서 합의를 받아 놨고, 팬들의 떨떠름한 시선은 일단 로이를 설득한 후 경기에 몇 번 출전시키면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줄리우는 여전히 멍청한 얼굴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나는 가볍게 웃었다. 줄리우는 머리를 꾸벅 숙였다.
앞으로의 일정에 관해 얘기해보려는데, 갑자기 전화가 한 통 왔다.
[똥덩어리]루이즈 알베즈 디아즈, 내가 브라이튼에 투척할 뻔했던 똥덩어리에게서 걸려온 전화다.
마침 잘 됐다.
“네, 태현석입니다.”
-미스터 태, 브라이튼이 갑자기 계약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당신이 무슨 일인지 알아봐 주면 안 될까요?
그렇겠지, 내가 요청한 거니까.
루이즈는 인사도 없이 용건을 늘어놓았다.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렸다.
-잘 진행 되다가 갑자기 이러니 새 선수를 구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미스터 태가 소개해준 건데 이렇게 되면···.
“음.”
-미스터 태?
“알겠습니다. 그 얘기도 알아보고 알려 드릴게요. 아, 그리고 다른 계약 얘기로도 한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딱 맞게 전화하셨네요. 어디 계세요?”
-다른 계약 얘기요?
“네.”
8강까지 올라간 남미 팀들 덕에 루이즈는 아직 러시아에 남아 있었다.
루이즈는 모스크바의 한 호텔 레스토랑에서 나와 한여름을 맞이했다.
“새 계약 관련 얘기라니 뭔가요? 여기까지 찾아오다니, 그렇게 큰 건인가요?”
기대가 한 아름 담긴 목소리다.
푸짐하고 선해 보이는 인상 아래 뱀이 똬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니, 선한 인상도 선한 인상으로 보이지가 않는다.
윌리엄 대표도 그렇고 이 업계에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여름아. 그것 좀 꺼내줄래?”
함께 온 한여름이 서류를 꺼냈다.
“그게 뭡니까?”
“루이즈, 당신 정말 악질적이시더라고요.”
“네?”
루이즈의 표정이 무슨 개소리를 하느냐는 듯한 빛이 서렸다.
“줄리우 말입니다.”
줄리우라는 말이 나오자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가 이내 원래 표정으로 돌아온다. 호감형의 얼굴로.
이런 사람을 처음 상대하는 것도 아니라 나는 내 페이스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오래 상대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속전속결로 나가자.
“본인은 계약이 완전히 해지됐다고 알고 있던데, 깔끔하지가 않더라고요. 새 팀을 찾으면 에이전시 계약이 부활하는 조항이 들어있더라고요.”
“···뜬금없이.”
“제가 오늘 하자고 했던 얘기가 줄리우 얘기였어요.”
루이즈의 눈동자가 정신없이 흔들렸다. 대처할 틈도 없이 쭉쭉 얘기했다.
“자잘한 조항들까지 깔끔하게 없애자고요. 그거 말하려고 왔어요.”
혹시나 해서 한여름의 도움을 받아 줄리우의 에이전시 계약서를 다시 훑어봤다.
그리고 역시나, 머리 좋고 남 등쳐먹는 사람들이 그렇듯 줄리우에 대한 루이즈의 마수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한여름의 말을 빌자면 공식 법규의 틈을 이용해 교묘하게 짜였다고 했다. 불법적인 부분들은 소송을 걸면 몇 년 동안 질질 끌 수 있는 내용이고.
“그쪽도 안 깨끗한 거 다 아는데, 그냥 여기서 깔끔하게 해약해 주세요. 제가 줄리우에 관심이 생겨서요.”
“줄리우요?”
나는 루이즈의 눈을 보는 걸 멈추지 않고 있었다.
루이즈의 눈이 반짝이더니 무언가 생각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무슨 자격으로? 줄리우가 다 서명한 건데?”
“발렌시아에서 선수에게 반드시 전해야 할 이적 내용을 전달하지 않은 거나, 중국에서도 에이전트로서 제대로 활동하지 않은 것, 직무유기로 충분히 해약할 수 있어요.”
“소송을 하겠다?”
다시 여유 있어진 루이즈다.
“고작 에이전트 하나랑 변호사 하나가? 그러면 피곤하지 않을까.”
루이즈가 비틀린 웃음을 짓는다. 이제야 진짜 표정이 나온다.
처음부터 거래를 생각하지 않고 온 게 다행이었다. 저런 사람한테 조금의 이득을 준다면 앞으로도 계속 찝찝할 뻔했다.
“그냥 거래를 하지. 내 에이전시 소속 선수들 몇을 풀럼이나 브라이튼에 소개해 준다면··· 아니, 들어보니 아스날과도 거래를 텄던데 아스날에 한 선수만 주선해줘도···.”
머리를 굴리는 것 같더니, 이거였구나.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혼자가 아닙니다.”
“뭐?”
이렇게 세력으로 눌릴 때를 대비해 보험을 들어놨지.
“법적 싸움으로 가도 이길 자신 있습니다. EW에이전시의 법무팀이 저를 도와줄 테니까요. 한번 제대로 붙어보실래요?”
여유만만 했던 루이즈의 안색이 한순간에 나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