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126
126
26. 두 번째 프리 시즌 (4)
“EW에이전시라고?”
네가 그런 곳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느냐는 물음이 담긴 얼굴이다.
루이즈가 의심이 잔뜩 스며든 목소리로 한 단어를 내뱉는다.
“거짓말.”
“원한다면, 시험해 보실래요?”
“···.”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을 내 얼굴을 본 루이즈는 한층 더 복잡해진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내가 워낙 자신 있게 나오니 긴가민가한 것 같았다.
머릿속이 복잡할 거다. 진짜일지 가짜일지 당장 확인할 수도 없는데 내가 계속,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고 쪼아대니 더.
루이즈는 내 얼굴을 살피고, 생각에 잠기는 행동을 반복했다. 더해서 자신의 음료를 정신없이 홀짝였다.
음료가 다 떨어질 때까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더 기다려주기는 시간이 아까웠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굳이 번거로운 소송전까지 갈 생각은 없었다.
“고작 에이전트 하나가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당신에 대해 어떻게 알아냈겠습니까? 머리가 있다면 충분히 알 수 있을 텐데요.”
나와 눈이 마주친 루이즈는 내 시선을 피하고는 손을 조금씩 떨며 잔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내용물을 입에 털어 넣으려 했는데, 음료 몇 방울만이 루이즈의 입으로 떨어졌다. 자기가 다 마셔버린 것도 잊어버린 것 같았다.
루이즈가 씹듯이 욕지기를 내뱉었다.
“빌어먹을··· 점원!”
루이즈는 탄산음료 하나를 주문하며 점원에게 짜증을 부렸다. 영문을 모르는 점원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점원이 탄산음료를 가져오자 루이즈는 빼앗듯이 받아내 500mL에 달하는 탄산을 단번에 마셨다.
점원이 질린 표정으로 물러났다. 팁을 많이 주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루이즈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준비는 해 왔겠지?”
기다렸던 대답이다.
대화 내내 조용히 있던 한여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가방을 뒤적이더니 서류를 한 부 꺼냈다. 줄리우의 새 해약 서류다.
“하아···.”
루이즈는 서류 내용을 쭉 읽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자기 합리화를 하듯 중얼거린다.
“어차피 폐품이니까 상관없어.”
폐품?
“이 녀석이 뭐가 마음에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얘기는 여기서 끝내지. 앞으로 언급도 안 했으면 좋겠군. 자, 그럼 사업 얘기를 해 보자고. 가브리엘은 어떻게 된 거야? 소개해 줬으면 끝까지 책임져야 할 거 아냐?”
본색을 숨길 것도 없다 이거지. 막말이 아주.
나는 최대한 퉁명스럽게 들리도록 싸늘하게 말했다.
“인성도 없고 선수 보는 눈도 없네요.”
“뭐?”
나는 그가 한 단어도 놓치지 않도록 또박또박 말하기 위해 노력했다.
“브라이튼에서 가브리엘은 필요 없다네요. 문제 일으키는 에이전트 소속 선수를 데려가고 싶지 않다고.”
루이즈가 벙찐 얼굴을 했다가, 얼굴이 확 붉어졌다.
깨달은 모양이다. 내가 자기에게 오기 전 브라이튼에게 사실을 그대로 고해바쳤다는 걸.
루이즈가 멱살을 잡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이 자식이···.”
예상대로였다. 몸을 반쯤 일으킨 루이즈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나는 정장 재킷의 어깨 부분을 매만지고는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루이즈에게 말했다. 머리에서 김이 올라오는 것 같은 환영이 보인다.
“그리고 줄리우가 폐품이라고요? 어떻게 에이전트를 하고 있는 건지··· 선수 보는 눈이 정말 없네요. 저는 가브리엘이 빠진 자리에 줄리우를 추천할 겁니다. 몇 년 뒤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줄리우가 가브리엘보다 더 뛰어난 선수거든요.”
“뭐라고?”
나는 루이즈를 노려보고는 몸을 돌렸다.
“가자.”
식사에는 포크 한 번 대지 않았다. 한여름이 옆을 따라오며 말한다.
“장난 아니게 노려보는데? 괜찮아?”
“어쩔 수 없지 뭐.”
한여름의 말을 들으니 왠지 모르게 뒤통수가 따갑게 느껴졌다. 뒤에서 이를 악문 목소리가 들린다.
“잘 되나 보겠어.”
오늘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잃기만 한 루이즈의 저주였다.
뭐, 이뤄지지 않을 저주겠지만.
그리고 나는 식당에서 나오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모스크바는 저녁이니 콜롬비아는 이제 아침이겠지.
다행히 상대방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가브리엘, 태현석이라고 합니다. 일본전 후에 만났었는데··· 기억하시죠?”
-···아, 네. 무슨 일로···.
아직도 졸음에 잠겨있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콜롬비아는 레온의 잉글랜드처럼 16강전에서 떨어지고 다들 늦은 휴가를 막 시작한 참이었다.
가브리엘은 첫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도 펼쳐 많은 관심도 받아 하늘을 나는 것 같은 하루하루일 텐데, 내 말을 듣고 기분이 많이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당신의 에이전트에 대해 몇 가지를 알려 드리고 싶어서요.”
-그게 무슨···.
나는 간략하게 루이즈가 저질렀던 일들과 피해자들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가브리엘의 목소리가 점점 잠에서 깨어나는 게 느껴졌다.
-음···.
연이 닿았고 괜찮다 생각했던 선수라 최소한의 호의는 베풀고 싶었다. 루이즈가 일하는 방식을 보니 쥐도 새도 모르게 당할 것 같았고, 피해자가 된 후에야 깨달으면 너무 늦는다.
마지막으로는 에이전트 문제로 브라이튼 이적이 파투났다는 사실도 알렸다.
-이해가 잘···.
믿지 못하는 말투다. 이해는 한다. 잠에서 깨자마자 잘 지내던 에이전트가 폭탄이라는 폭탄 같은 소리를 들었는데 바로 이해하는 놈이 미친놈이지.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개인 메일을 알려주신다면 제 말에 대한 근거 자료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왜 저한테···.
“저는 가브리엘 선수를 괜찮게 봤으니까요. 그리고 협상이 결렬된 이유 정도는 알려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루이즈는 보나 마나 제 욕을 할 것 같으니까··· 아무튼, 당장은 못 믿으시겠지만, 혹시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말씀해주세요. 그럼 저는 이만.”
결국 선택은 본인이 하는 거다.
나는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
“가브리엘 대신 구해온 선수가 전직 브라질 국가대표팀 수비수라···.”
“경력이 엄청나죠.”
“십자인대로 수술에 재활까지 일 년··· 회복한 지 석 달 정도 된 선수에··· 팀도 없고··· 나이는 서른···.”
“음.”
“현석, 미쳤어요?”
로이의 물음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필드 위의 줄리우는 브라이튼의 선수들과 섞여 연습경기 중이었다.
나는 줄리우와 정식으로 계약했다. 이제 줄리우는 에이전시의 여섯 번째 선수다. 그리고 첫 번째 중앙수비수이기도 했다.
“어이쿠.”
로이가 헛웃음을 친다.
줄리우가 세바스티앙의 뱀드리블에 농락당한 후 제자리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넘어지는 모습이 마취총에 맞은 것 같아 보였다.
“현석이 아니었다면 같이 훈련하는 것도 무리였을 거예요. 괜찮은 선수를 데려온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저 정도면 계약 못 해요.”
로이가 냉정하게 말했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라 이거지.
하지만 줄리우는 정말 좋은 선수인데. 비록 한 달 정도의 예열기간이 필요하지만.
나는 손가락 네 개를 피며 말했다.
“4주, 딱 4주 동안만 데리고 있으면서 테스트해 보면 안 되나요? 분명히 장담하는데 로이는 기간이 다 차기도 전에 계약하고 싶다고 난리를 치게 될 거예요.”
헬퍼에서 한 달을 말했으니 일, 이 주 정도면 기량이 올라온 게 눈에 보일 것이다.
“···내가요?”
하지만 현재의 줄리우는 다시 한 번 세바스티앙에게 농락당하고 있었다.
로이가 진심이냐는 듯 내 눈을 빤히 바라봤다. 저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지.
“네.”
내가 미친놈이고.
브라이튼의 선수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게 반복되자, 줄리우의 표정도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줄리우한테는 따로 얘기해 자신감을 채워줘야겠고, 지금은 로이를 설득해야 했다.
“제가 데려온 선수들은 다 괜찮았잖아요.”
“그건 그렇죠.”
“진짜 후회 안 할 거라니까요?”
“크흠···.”
로이는 반신반의한 눈빛으로 줄리우를 다시 봤다.
나는 로이를 설득하기 위해 계속 말했다.
“반다이크까지는 아니더라도 시즌 시작할 때쯤이면 크리스 스몰링, 정확히 말하면 폼이 좀 떨어진 코시엘니 정도 실력은 보여줄 거예요.”
“뭡니까 그 애매한 표현은.”
여전히 떨떠름한 기색이다. 내가 그동안 보여준 게 있으니 믿어보고는 싶은데 지금 보이는 줄리우의 기량이 애매하니 나오는 괴리로 보인다.
“그 정도만 돼도 엄청난 거죠. 계속 그런 식이면 풀햄으로 데려갑니다? 저는 로이한테 저 선수가 맞을 것 같아서 이렇게 추천하는 건데.”
나는 로이가 잘 볼 수 있도록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줄리우는 브라질리언 답게 발재간이 좋은 중앙수비수다. 발렌시아 시절에는 개인기술을 이용한 화려한 수비,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공중에서 힐킥으로 걷어내는 것 같은 플레이를 즐겼다.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수비수 네스타 처럼 말이다.
더불어 패스 실력이나 볼 키핑 능력도 준수했다.
그렇다 보니 공격적인 플레이를 추구하고자 하는 로이에게 딱 맞는 선수라는 생각이 들었고, 풀햄이 아닌 브라이튼으로 먼저 들른 거였다.
“유럽 대항전에도 나가는데 경험 많은 선수가 하나라도 더 필요할 거 아니에요? 줄리우는 챔피언스리그에도 나가봤고 유로파리그에도 나가봤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도 나가봤는데···.”
정말 로이가 설득이 되지 않는다면 요카노비치를 설득할 생각이었다.
그게 안 된다면 뉴캐슬로 가서 4주 훈련만 함께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할 생각이고.
로이가 팔짱을 풀며 말했다.
“좋아요.”
결국 로이가 내게 갖고 있던 신뢰가 이긴 모양이다.
“태 말대로라면 테스트 기간 내면 충분히 기량을 회복할 수 있다는 거죠? 발렌시아 시절 모습으로?”
“네. 그렇죠. 진짜 후회 안 할 거라니까요? 나중에 영입하게 될 때도 자유계약이라 이적료도 낮고요. 그리고 줄리우의 폼이 안 올라온다면 제가 열심히 뛰어서 괜찮은 선수 찾아와줄게요.”
로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분명 진짜인데 사기꾼이 된 기분이다.
“알겠어요. 같이 훈련만 하면 되는 거죠?”
“가능하면 연습경기에도 출전시켜주시고, 각종 경비도 구단에서······.”
“그 정도야.”
로이가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필드에서는 막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고 있었다.
나는 로이에게 후회 안 할 거라는 말을 다시 한 번 하고는 세바스티앙과 줄리우를 손짓해 불렀다.
“제가 정말 할 수 있을까요···.”
침울해져 있는 줄리우 옆에서 세바스티앙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나와 줄리우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입단 테스트도 못 받을 것 같은데요··· 폼이 이 정도로 떨어졌을 줄은··· 제가 미스터 태에게 민폐만 끼치는 건 아닐지···.”
줄리우가 땅을 파고 들어가자 세바스티앙이 끼어들었다.
“괜찮아요. 공식 훈련한 지도 일 년이 넘었다면서요.”
“일 년, 그렇죠 일 년이나 재활훈련만 했죠. 그 이후에도 유소년 애들이랑 훈련만··· 공백이 너무 길었던 거예요. 후··· 저 복귀할 수 있을까요.”
세바스티앙의 위로에 줄리우는 더 침울해져만 갔다. 나는 자기보다 20cm 정도 더 큰 줄리우의 어깨를 토닥이고 있는 세바스티앙에게 말했다.
“네가 뱀드리블이랑 알까기해서 그렇잖아.”
“아니, 저는 그냥. 그 정도일 줄은 몰랐··· 죄송합니다. 때!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어떡해요.”
세바스티앙은 줄리우의 표정이 굳어지는 걸 알아채고 빠르게 말을 바꿨다. 이어서 내게 따지고 드는데 얼굴이 벌개져 있다.
나는 피식 웃고는 줄리우와 세바스티앙에게 수건과 음료를 넘겼다.
먼저 세바스티앙에게 말했다.
“앞으로 한 식구가 될 거야. 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잘 도와줘. 영어는 아직 미숙하시거든.”
세바스티앙이 놀란다.
“정말요? 그동안 중개해준 선수들이랑은 계약 안 했잖아요.”
“계약할 만한 선수니까.”
잠재 능력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 어릴 때 보여줬던 퍼포먼스라면 별 일곱 개가 이상하지 않은 선수였다. 나이도 아직 서른, 수비수의 전성기가 타 필드플레이어보다 조금 더 늦다는 걸 생각해보면 투자할 가치는 충분했다.
한 달 뒤 되찾을 별 여섯 개로도 충분하기도 했다.
세바스티앙의 줄리우 보는 눈이 달라졌다. 침울한 줄리우에게서 뭔가를 찾으려는 것처럼. 그리고 줄리우도 내게 조심스럽게 물어온다.
“팀에 적응이라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