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13
13
4. 탑 에이전트 (1)
브라이튼의 관중들이 모두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다. 브라이튼 & 호브 알비온 FC 어쩌구 하는 거 보니 공식 응원가인 모양이다.
노래를 배경음으로 선수들이 줄지어 입장했다.
아나운서가 선수들을 호명하기 시작했을 때, 타이밍 좋게 응원가가 끝났고, 관중 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상대 팀 선수를 호명하기 시작하자 환호성은 야유로 바뀌었다.
그리고, 선수들이 각 진영에 자리를 잡았고, 주심의 휘슬과 함께 관중들의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와아아아아아아!]브라이튼의 홈경기가 시작됐다.
상대팀은 울버햄튼 FC, 브라이튼과 마찬가지로 플레이오프 순위를 다투는 팀이라 그런지 초반부터 신경전이 치열했다.
봐라, 방금 리암 그랜트가 공이 아니라 상대 선수 정강이를 걷어찼다.
빡! 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퇴장이나 당해라.
기대와는 달리 카드도 안 나왔다. 브라이튼의 팬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심판의 주의로 끝. 역시 거친 축구의 나라 잉글랜드다.
세바스티앙과 같은 포지션에 출전한 리암 그랜트는 둔탁한 움직임으로 팀의 흐름을 자주 끊고 있었다. 헬퍼와 훈련 때 보니 스트라이커와 우측 윙어를 겸하는 것 같던데, 오늘은 우측 윙어로 감독이 쓰려 한 모양이다. 지금까지는 실패 같아 보이긴 했지만.
“부럽네요.”
“뭐가?”
나와 세바스티앙은 사람들의 눈에 뜨지 않도록 중앙 관중석의 맨 꼭대기에 앉아 있었다. 축구 게임을 할 때 보는 원거리 시점이었다.
“너도 저렇게 선수 걷어차고 싶어?”
세바스티앙은 픽 웃었다.
“저런 짓이라도 할 기회가 있다는 게요.”
명단 제외 선수라면 팀 벤치 바로 뒷좌석에 앉아야 했지만, 워낙 선수들이 불편해 하는 기색이 심해 여기로 도망쳤다. 경기 보다가 체할 수는 없잖아.
실력대로라면 팀 벤치가 아니라 저 필드 위, 정확히 말하면 리암 그랜트의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 게 바로 세바스티앙 로드리게스라는 선수인데.
실력이 아닌 다른 이유로 관중처럼 앉아있게 되다니 참 개 같은 일이다.
“뛰고 싶네요···.”
세바스티앙이 중얼거렸다.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닌 것 같아 나는 리암 그랜트의 실수를 기원하며 경기장을 바라봤다.
시끄러운 응원가를 멈춘 앞의 두 대머리 노인의 투덜거리는 소리를 엿 들으면서.
“로드리게스가 제 컨디션이었다면 지금 1위도 보고 있었을 텐데“
세바스티앙이 움찔했다.
“플레이오프 진출 순위가 어디야? 이 정도면 감지덕지지. 프리미어 리그에 갈 수도 있다고!”
“이놈 보게? 그걸로 만족해? 로드리게스가 있었다면 직행이라고 직행.”
“···그건 그렇지. 그 자식 먹튀하는 건 아니겠지?”
“초반 폼은 좋았잖아. 기다려 보자고.”
지금 브라이튼의 순위는 아슬아슬한 6위, 그렇지만 연승중이어서 최근 언론에서 무난하게 플레이오프 안에 들 팀으로 브라이튼을 첫 손에 꼽았다.
경기장에선 리암 그랜트가 큰 덩치답게 발재간보다는 몸으로 들이밀며 우측면을 뚫어내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선수를 매단 채 엉성한 크로스를 올린다. 당연히 중간에 수비에게 차단당해 역습을 당한다.
“어휴.”
세바스티앙과 비교하면 한수가 뭐냐, 이십 수는 아래다.
저런 실력이라 인종, 인종 지랄을 했던 걸까. 그래서 세바스티앙을 어떻게든 깔아뭉개려고 애썼던 걸까. 가장 비교당하는 동 포지션 경쟁자니까.
그러니까 열등감 때문이었던 거지.
···아니, 알 바 아니다.
저놈이 쓰레기 짓을 했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니까.
고개를 돌려 세바스티앙을 돌아봤다. 세바스티앙은 또렷한 눈으로 경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공격이 실패했을 땐 탄식도 내지르고, 위험할 땐 다른 관중들처럼 소리도 지르면서.
나는 그 과장된 행동에서 한 가지 바람을 엿볼 수 있었다. 세바스티앙이 저 곳에서 정말 뛰고 싶어 한다는, 그런 열망을.
여태까지 모은 증거들을 잘만 쓴다면 세바스티앙을 당장 다음 주에라도 저 필드 위에 데려다 줄 수 있다.
경기가 끝나 간다. 마무리를 지을 시간이 다가왔다.
세바스티앙을 호텔에 데려다놓은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통화가 연결됐다.
-꺄아아아!
-아빠!
화면에 떠 있는 이름을 다시 살폈는데, 제대로 건 거 맞다. 저번에도 이 번호로 통화 했었다.
-얘들아, 잠깐만, 아빠 전화 좀 할게.
드디어 휴대폰 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끌벅적한 배경음 사이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 현석. 무슨 일 생겼어?
“네, 해리. 중요한 일이에요. 지금 집이에요?”
-중요한 일? 어, 집이긴 한데···.
나는 케이티 큐빗이 아닌 해리에게 연락하는 걸 선택했다. 그녀가 내게 보여줬던 얼음같은 태도가 마음에 걸려서였다. 사비까지 써서 세바스티앙의 아침을 챙겨 달라 했던 해리가 상식적인 판단으로 더 신뢰가 갔다.
“노트북이든 뭐든 켜 주실래요? 방금 메일 보냈는데 그거 보면서 얘기할게요.”
-메일? 얘들아, 아빠 이것 좀 킬게.
아이들의 까르르 소리가 들리며 해리의 곤란해 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이들이 활기차네요.”
-하하, 그렇지. 노트북 켰어. 잠시만.
해리의 부드럽고 잔잔한 목소리가 들끓어 오르기 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게 뭐야?
“제가 직접 찍은 영상들, 녹음파일, 사진이랑 기록물들이죠?”
-아니 그게 아니라! 이렇게 당하고 있을 동안 왜 가만히만 있었던 거야! 세바 그 자식은! 너도 마찬가지야! 왜 나한테 진작 얘기 안 했어!
해리가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해리의 아이들이 놀란 듯 딸꾹질소리가 이어 들렸다.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에이전시에 보고하긴 했었는데 명백한 증거가 없다면 조치가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모아왔어요. 어때요? 이 정도면 충분하죠?”
-···.
해리의 목소리가 멎었다.
-케이티한테 연락은 했었다?
“네, 그랬어요.”
-···.
“가급적이면 대표님한테 직접 전해주시겠어요? 이런 말 하긴 그런데 케이티 큐빗 씨는 좀 꺼림칙해서··· 제가 직접 가져가고 싶은데 런던까지 왔다 갔다 할 여유는 없어서요. 그래서 해리한테 부탁하는 거예요.”
해리는 한참 동안 말을 못하다가, 우울한 목소리로 답했다.
-고생했다. 이 정도면 충분해, 충분할 거야. 충분하게 만들어야지. 보고하고 바로 연락 줄게.
“고마워요, 해리. 부탁할게요.”
*
태현석과 통화하고 5분 만에 해리는 외투를 걸치며 나갈 채비를 마쳤다.
안 그래도 근 이주 동안 세바스티앙과 신참이 신경 쓰여 잠을 몇 번 설쳤었는데, 이런 일이 있었을 줄이야.
“아빠! 또 어디가?”
“아빠아아아아,”
해리의 귀여운 두 딸이 통나무 같은 두 다리에 각각 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해리는 두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빠가 정말 급한 일이 생겼어. 아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애가 있어.”
“우리도 아빠가 필요한데. 또 나가면 언제 들어오는데···?”
“······.”
해리는 말문이 막혔다. 선수들이 사는 곳과 구단들이 워낙 제각각이여서 생활 전반을 담당하는 해리는 여러 지방을 떠돌며 집에 일, 이 주일에 한 번 들어오는 게 다였다. 해리는 딸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세바스티앙의 신변에 대한 걱정 사이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때, 아내가 끼어들었다.
“여보, 얼마 만에 들어온 건데 또···!”
해리는 두 손을 모아 빌며 밀했다.
“미안, 진짜 중요한 일이야. 한 선수 인생이 달려 있다고.”
아내는 해리를 한참 동안 노려봤다. 그리고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쉬고, 잔뜩 찌푸린 얼굴로 딸 둘을 떼어냈다.
“아빠아아아아!”
“열두시 전까지 안 들어오면 들어올 생각 말아요.”
“미안 얘들아. 다음에 꼭 놀아줄게. 여보, 고마워!”
해리는 차를 몰아 EW에이전시로 향했다.
대표에게 긴급 사안이라고 연락하니, 마침 사무실에 있다고 에이전시로 오라고 했다.
불이 꺼진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대표의 방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익숙한 모습이었다. 대표에게는 딱히 휴일이 없었다.
“왔나?”
“예.”
평일과 똑같은 양복차림에 잉크가 채 마르지 않은 것 같아 보이는 서류들. 해리는 대표가 대체 언제 쉬는 걸까 생각하다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란 걸 깨닫고 부랴부랴 가방 속의 패드를 찾아 전원 버튼을 눌렀다.
“무슨 일이야?”
“세바스티앙 로드리게스 건입니다.”
약간의 미소를 머금고 있던 대표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중요한 일이라고 해서 오라고 했더니, 또 세바스티앙 로드리게스인가?”
대표의 목소리에는 질책까지 들어가 있었다.
해리는 그날 손을 떼라고 말했던 대표를 기억했지만, 용기를 내 가져온 패드를 내밀었다.
“이걸 보시면 그런 말씀 못하실 겁니다.”
해리는 태현석이 보내준 증거 중 첫 번째, 의도적인 거친 플레이를 당하고 있는 세바스티앙의 영상을 재생했다.
그 다음에는 밤중에 갱단들이 집 앞에서 온갖 행패를 부리는 영상, 그 다음에는 리암 그랜트와 케빈 맥그리거, 다니엘 나이트가 하는 인종차별 행위들.
영상이 차근차근 재생될수록 대표는 눈썹을 찌푸리며 화면에 집중했다.
“줘 보게.”
대표는 해리에게서 패드를 빼앗다시피한 뒤 직접 하나하나 재생했다.
녹음 파일도 있었고 문서도 있었고, 마지막에는 리암 그랜트의 치명적인 약점, 미성년자 성매매 건과 증거사진들까지 나왔다.
대표는 한 점 흔들림 없는 눈으로 그 증거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이고 다시 봤다.
해리는 끈기 있게 대표의 반응을 기다렸다.
“이걸 누가 만든 거지? 태현석이라는 그 신참?”
“네.”
고개를 든 대표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하지만 눈만은 번득이고 있었다.
대표가 말한다.
“쓸모 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