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133
133
27. 시즌 개막, 신고식 (6)
“뭘 그렇게 멍하니 서 있어? 골이야! 골이라고!”
한여름이 내 팔 한쪽을 마구 흔들어대며 익룡 같은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반대쪽의 에린도 어머니와 함께 신나하는 중이다.
골도 기뻤지만 나는 별 일곱 개에 정신이 팔려 적당히 분위기만 맞춰줬다.
세레머니를 마친 크리스가 제 진영으로 돌아가고, 경기가 다시 재개됐을 때, 나는 다시 휴대폰을 꺼내 크리스의 수백 개가 넘는 정보 중 최상단의 정보를 찾았다.
-현재 능력 : ★★★★★★
다시 내려서 오늘의 능력을 살펴봤다.
-오늘의 능력(8/19) : ★★★★★★★
여전히 일곱 개. 지난주의 줄리우 처럼 일시적으로 일곱 개가 된 상태인 것 같았다.
나는 필드 위의 크리스를 내려다봤다.
크리스는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이 뛰고, 또 뛰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귀신같은 판단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지금도 맨시티의 패스 흐름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 차단해냈다.
어지간하면 당황하지 않는 맨시티의 에이스, 케빈 데브라위너도 크리스의 슬라이딩 태클에 공을 빼앗기고 허탈해하는 장면이 아까 나왔었다.
줄리우 때와 마찬가지로 온몸이 흥분으로 뜨끈뜨끈해졌지만, 어떻게든 침착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지금 이 플레이를 눈에 담아놔야 했다. 미친 활동량과 판단력을 종합해 수비와 공격 모두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약점인 온 더 볼이 장해가 되지 않도록 아예 할 일을 정해놓고 움직이는 것 같아 보였다.
크리스가 월드클래스가 됐을 때 꾸준히 펼칠 수 있는 플레이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수준의 경기력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어야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처럼 현재 능력이 별 일곱개가 될 수 있는 게 틀림없었다.
다시 폼이 떨어지더라도 이 플레이를 계속 보여줄 수 있도록 훈련 계획을 짜야겠지. 클롭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차후 다른 팀에 가더라도 이 플레이를 기준으로 생각해야겠고···. 영상도 보관해 둬야겠고, 일주일 동안 어떻게 훈련해왔는지도 기록하고···.
짜악!
“아야!”
등짝이 후끈후끈했다. 입에서 비명이 절로 나왔다.
내 등을 때린 건 한여름이었다.
“뭔 생각을 그렇게 해! 크리스가 대활약 중이라고! 경기에 집중해! 프리킥이야!”
“집중해서 보고 있었거든!”
볼까지 붉어진 게 잔뜩 흥분한 모양이었다. 맞은 등이 너무 뜨겁고 아프다.
내가 아파하든 말든 한여름은 필드 위에 시선을 다 쏟고 있었다. 꽤 먼거리에서의 프리킥 찬스라 살라가 차지 않고, 랄라나가 크로스를 올리려는 모양이었다.
크리스는 공중볼 다툼을 위해 맨시티의 선수들 사이에 섞여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한여름에게 따지는 걸 포기하고 랄라나의 발끝과 크리스의 움직임을 번갈아 바라봤다. 랄라나가 크로스를 올렸다. 꽤 먼 거리의 크로스라 크리스에게는 닿지 않을 것 같았다.
“아아아···.”
에린과 한여름이 동시에 아쉬워했다.
크로스는 너무 먼 나머지 리버풀 선수들의 머리에 걸리지 않았고, 상대 수비수 존 스톤스가 가슴으로 잡아냈다. 허무한 찬스낭비였다.
리버풀 선수들은 재빠르게 진영으로 복귀하기 위해 달렸다. 맨시티 선수들도 공격을 위해 달렸다. 수비라인까지 포함해서 전부.
그때, 크리스와 몇 선수들은 다르게 움직였다.
크리스는 곧장 스톤스에게 달라붙었고, 리버풀의 피르미누와 세세뇽이 압박에 동참했다. 여유 있게 패스하려다가 당황한 스톤스는 어중간한 롱패스를 아구에로에게로 보내려 했다.
말 그대로 어중간했기에 압박에 참가하지 않은 살라가 공을 잡아냈다.
공수 전환이 순식간에 두 번이나 이뤄져 선수들이 대부분 멈칫했다.
압박에 참여한 피르미누와 세세뇽은 상황 파악이 빨랐지만, 오프사이드 라인에 걸려있어 패스를 받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때 크리스는 스톤스보다 위로 올라와 손을 번쩍 들고 있었다. 혼자 다른 시간 속에서 움직인 것 같았다.
살라가 크리스에게 패스하자마자 리버풀 서포터석에서 기대 섞인 함성이 올라왔다.
한여름이 주먹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꺄아아아! 가라!”
에린도 소리쳤다.
“크리스!”
크리스가 다시금 페널티박스 안에서 찬스를 잡았다. 맨시티의 선수들과 바로 앞 스톤스가 한꺼번에 달려들어 슈팅 경로를 차단하려 했다.
여기서 크리스가 선택한 건, 슛이 아니라 패스였다.
피르미누가 어느새 오프사이드 라인에서 빠져나와 있었다. 크리스는 맨시티 선수 셋이 달라붙기 직전 피르미누에게 연습하는 것처럼 가볍게 패스했다.
현존 최고의 펄스나인이라 불리는 피르미누가 이 찬스를 놓칠 리가 없었다. 골대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피르미누는 당연한 듯 골망을 갈랐다.
리버풀의 서포터들이 자리에서 번쩍 일어나 양팔들을 흔들어대며 괴성을 질렀다.
나랑 한여름, 에린, 이자벨은 골보다는 다른 쪽에 초점을 맞춰 기뻐하고 있었다.
“어시스트!”
리버풀은 맨시티의 홈에서 전반전에만 2-0으로 달아났다. 크리스의 1골 1어시스트로 말이다.
후반전이 되자마자 크리스의 오늘의 능력은 다시 별 여섯 개로 떨어졌다.
전반전에 너무 무리한 건지 크리스의 움직임이 평소보다 굼떠 보일 정도였다. 교체를 할까 싶어 클롭 감독을 내려 봤는데, 클롭은 전술 지시에만 신경 쓰고 있고 교체 타이밍에도 세세뇽을 빼고 마네를 넣기만 했다.
끝까지 쓰려는 걸까.
크리스는 힘들어 보였지만, 그럼에도 계속 뛰고 또 뛰었다. 전력을 다하는 게 보여 괜스레 마음 한구석이 찡했다.
크리스가 지금 공을 뺏기 위해 달라붙은 선수는 조던 킹, 맨시티의 내 선수 조던도 교체 투입돼 크리스를 상대하고 있었다. 조던은 190cm이 넘는 우월한 체격으로 크리스를 튕겨내고 있었다.
전반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속도 떨어진 크리스는 데브라위너나 실바도 무리 없이 떨쳐내고 있었다.
다만, 리버풀의 다른 선수들이 크리스에게 감염된 건지 다들 미친개처럼 뛰어다니고 있어 맨시티는 후반전 내내 제대로 전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펩 과르디올라가 아무리 완벽한 전술을 구상했어도, 결국 실행하는 건 선수인데 맨시티의 선수들에게는 당혹스러움이 얼굴에 훤히 드러나 보였다.
크리스와 리버풀의 선수들은 경기 종료 휘슬까지 멈추지 않았다. 스코어도 끝까지 바뀌지 않았다.
삑, 삐이이익!
그리고 크리스는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대자로 필드 위에 드러누웠다.
맨시티 선수들은 고개를 떨궜고, 리버풀의 원정 서포터들은 자신의 응원가로 에티하드 스타디움을 채우며 승리를 자축했다.
그런데.
“쟤 왜 안 움직이지?”
에린이 제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빼 크리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리하는 것 같던데 몸에 이상이라도 생긴 것인가, 나 또한 스탠드에 붙어 크리스의 상태를 살피려 했다. 얼굴색이 창백한 게 보였다.
리버풀의 스태프들도 눈치챈 것인지 의료진들이 들것을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건 주변의 선수들과 교체로 나갔던 세세뇽이었다. 세세뇽이 크리스와 무언가 얘기하더니 크게 소리쳤다.
“괜찮대요! 그냥 힘들어서 누워있는 거래요!”
세세뇽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리버풀의 스태프들과 선수들은 각기 웃음을 짓고는 맨시티 선수들과 스탭진과 인사를 나누며 돌아갔다.
그리고, 맨시티 선수 몇이 크리스에게 다가왔다.
자신들의 유니폼을 들어 보이는 걸 보니 유니폼 교환을 신청하려는 모양이었다. 자기들끼리 계속 뭐라뭐라 하고 있는데 아마 누가 유니폼을 교환할지 정하려는 것 같았다. 크리스는 상체를 일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니폼 교환 요청을 한 선수는 케빈 데브라위너와 다비드 실바, 그리고 세르히오 아구에로였다.
“크리스 많이 컸다. 진짜.”
에린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크리스는 자신의 상의를 벗고 -이 순간, 관중석에서 자지러지는 비명소리가 여럿 들려왔다, 대부분 여자 목소리였다- 유니폼을 케빈 데브라위너에게 내밀었다.
오늘 가장 많이 충돌한 선수라 고른 것 같은데 실바와 아구에로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데브라위너는 급하게 상의를 벗고는 크리스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 줬다. 그리고 유니폼을 교환했다.
저 장면이 내일 기사로 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크리스는 실바, 아구에로, 데브라위너와 몇 마디를 나누고는 세세뇽의 부축을 받아 터널 쪽으로 돌아갔다.
다 끝난 게 아니었다.
터널 앞에는 맨시티의 감독이자 세계 최고의 감독 중 하나인 펩 과르디올라가 크리스에게 양팔을 벌려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포옹까지.
펩은 크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무언가 이야기를 건넸다. 패장이라기보다는 보물을 발견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맨시티에서도 제안 오게 생겼네···.”
한여름의 중얼거림에 나는 피식 웃음소리를 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에린과 이자벨은 차에서 기다리겠다고 했고, 나와 한여름은 믹스트존에 나가 있었다. 크리스는 나와의 약속대로 골도 넣고 MOM도 받았다. 크리스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바람에 의료진의 검사를 받고 온다고 해, 평소보다 MOM 인터뷰가 늦어지고 있었다.
나는 기자들과 뒤섞여 크리스를 기다리며 SNS를 살폈다.
스카이스포츠의 공식 계정에는 벌써 크리스에 대해 언급한 글이 올라와 있었다. 댓글이랑 하트 수가 가장 많아 클릭했는데 크리스의 오늘 경기 기록에 관한 내용이었다.
경기 중 데브라위너와 경합하고 있는 사진 아래 기록들이 쭉 쓰여 있었다.
-뛴 거리 : 13.8km
-골 : 1
-어시스트 : 1
-찬스 메이킹 : 3회
-키패스 : 2회
-인터셉트 : 2회
-태클성공회수 : 11회
-볼 경합 승리 : 7회
-패스 성공률 : 86%
“이게 수비형 미드필더야 공격형 미드필더야 공격수야···.”
실제 크리스의 오늘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였지만, 스탯이 괴랄 했다.
특히 뛴 거리 같은 경우는 아마 이번 시즌 신기록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괜히 경기 끝나고 뻗어버린 게 아니었다.
생각에 잠겨 있는데 누군가가 내 어깨를 건드렸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크리스의 인터뷰를 따기 위해 모여있던 기자들이 보였다.
“미스터 태 아니신가요. BBC의 조슈아 베넷인데 이번 경기에 대한 코멘트를···.”
“크리스의 에이전트로서 한 말씀···!”
선글라스도 쓰고 있는데 어떻게 알았지.
“인터뷰 안 해요!”
크리스가 시킨 대로 인터뷰 잘하나 보러 온 건데 이게 무슨 봉변이야. 나는 리버풀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아 관계자들이 머무르는 공간으로 도망쳤다.
관계자들은 내 부탁대로 기자들을 막아줬다.
“어허, 싫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우리’ 크리스 선수 인터뷰나 하고 가세요.”
기자들은 마이크를 들이밀었으나 결국 리버풀 측 경호원에게 밀려 내 쪽을 흘긋흘긋 보기만 하며 크리스가 설 단상을 지켜봤다.
마침 크리스가 나왔다.
크리스는 아직도 다리에 힘이 없는지 살짝 비틀거리면서 단상에 섰다.
멍해 보이는 표정이었던 크리스는 나를 흘긋 보자마자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나는 입 모양으로 말했다.
‘연습한 대로.’
크리스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기자들이 들이미는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아직 두 경기 남았습니다. 인터뷰는 한 번에 몰아서 하겠습니다.”
크리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세세뇽의 부축을 받아 회견장에서 빠져나갔다.
나쁜 활약을 펼쳤든, 좋은 활약을 펼쳤든 모두 이렇게 인터뷰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더 이상 말하지 말라고 했고.
기자들이 갖가지 질문을 들이밀며 아우성쳤지만, 크리스는 가볍게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크리스가 사라지자 기자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나를 찾았다. 나는 그들의 표적이 되긴 싫었기에 구단 관계자들만 이용할 수 있는 통로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한여름에게 주차장으로 먼저 가 있으라고 하고 나는 크리스가 있을 드레싱룸으로 향했다.
몸 상태도 확인하고, 해 주고 싶은 말이 있기도 해서.
이제 언론은 더 뜨겁게 타오를 거다.
자신의 말을 경기력으로 입증한, 전 시즌 리그 1위 팀을 상대로 괴물 같은 퍼포먼스를 보여준 10대, 크리스 앨런. 웨인 루니가 맨유 데뷔전에서 해트트릭한 것만큼 센세이션한 일이 될 거다.
리버풀의 선수들이 하나둘 나왔다. 한국 팬들에게 초코파이를 받은 적 있는 로브렌이 친근하게 어깨동무를 하며 크리스 오늘 굉장했다고 칭찬하고 사라졌다. 몇 선수들과도 더 인사하다 보니 크리스가 세세뇽과 함께 나왔다.
크리스는 날 보며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나도 웃으면서 크리스에게 다가갔다.
“몸 상태는 어때?”
“괜찮아요. 물리치료사가 마사지 해줘서 더 괜찮아 졌어요. 팀닥터 분들도 지쳐서 그런 거라고 했고.”
“큰 구단이 이래서 좋아.”
크리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묻는다.
“그건 그렇고, 오늘 경기 어땠어요? 저 정말 열심히 했는데.”
“길게 말할 거 있나.”
나는 한 번 뜸을 들이고, 진심으로 말했다.
“미친놈이었지.”
크리스가 씩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