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137
137
28. 휴가 같지 않은 휴가 (3)
국내 종합 검색 포탈 2위의 스페이스, 스페이스의 본사 건물 내부의 한 스튜디오에서는 국내 최고의 축구전문방송 ‘한준현, 장세문의 축구 뒷담화’ 촬영이 한창이었다.
축구 뒷담화는 한준현, 장세문이라는 해설위원계의 양대 산맥의 진지한 전문성을 신하연이라는 젊은 아나운서의 통통 튀는 매력으로 균형을 잡아 축구 매니아들에게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방송이었다. 라이트 한 축구팬들도 이 방송을 다 알고 있는데, 영상을 보진 않지만, 축구 커뮤니티에 짤로 많이 돌아다니기 때문이었다.
축구 뒷담화의 PD는 셋의 대화를 보며 어떻게 편집해야 할지, 어떤 멘트를 넣을지 고민하며 그들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PD님 전화 왔는데요.”
“지금 촬영 중이잖아··· 이따 받을게.”
PD의 말을 들은 작가가 평소처럼 물러나지 않고 우물쭈물 대더니 입을 열었다.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면서.
“최국종 편집장인데 혹시 저번에 얘기하신···.”
“뭐?”
걸려온 번호를 확인한 PD는 바로 휴대폰을 잡아 촬영장 구석으로 빠져 전화를 받았다.
“네, 편집장님··· 네? 태현석 씨라고요? 안녕하세요! 축구 뒷담화 PD입니다!”
될 수 있으면 조용해야 하는 스튜디오 외의 공간에서 PD의 힘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 출연진도 당황해서 PD쪽을 바라봤다. 카메라맨이 카메라를 끄고 녹화가 중단됐다.
그러건 말건 PD는 헤벌쭉한 얼굴로 계속 전화 중이었다.
“정말인가요? 촬영이 다음 주 인데···.”
PD의 얼굴이 밝아졌다가 곧바로 조심스러워졌다.
“괜찮다고 하시니 좋은데··· 이번 촬영 콘셉트가요. 인터넷 방송인데··· 네, 맞아요, 생방송이죠.”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통화에만 집중하고 있는 PD의 평소답지 않은 모습에 신하연 아나운서가 다가갔다.
“괜찮다고요? 네, 네, 준비하실 건 따로 없고 편하게 오세요. 그냥 어떤 일을 하시고, 선수들의 재미있는 일화 같은 거나 조금··· 아이고, 당연하죠. 심각한 건 절대! 절대 안 물어봅니다. 방송 전에 질문지도 다 보여 드릴게요. 예능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축구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얘기나 해 보자는 게 이 방송 콘셉트인데요. 하하. 그럼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PD는 전화가 끊어진 후에도 휴대폰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지척까지 다가온 신하연이 PD의 등을 쿡 찔렀다.
“하하하.”
“PD님, 정신 나갔어요?”
꽤 아플 텐데도 PD는 여전히 스마일마스크였다.
“나갈 만하지. 대박 게스트를 섭외했는데.”
“대박 게스트요?”
신하연의 물음에 PD가 자신 있게 말했다.
“신하연씨도 좋아하겠네. 리버풀의 새로운 원더보이! 크리스 앨런의 에이전트, 태현석 말이야. 다음 주 방송에 출연하기로 했어.”
신하연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
띠띠띠띠띠띠.
여섯 개의 번호를 누르고 열림 버튼을 눌렀다. 당연하게도 비밀번호는 바뀌지 않았다. 기분 좋은 소리가 울리며 문이 열렸다. 일 년 만에 돌아오는 집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왔냐?”
거실에 늘어져 계시던 아버지가 일어났고,
“오빠!”
방문을 열며 다은이가 나왔으며,
“왔어?”
화장실 앞에서 수건으로 얼굴을 두드리던 누나가 나를 맞이했다. 나는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바로 캐리어를 열었다.
“자, 이건 선물.”
“꺄아!”
다은이가 소리를 지르면서 가장 먼저 달려나왔다. 아버지도 묘하게 기대하시는 기색이다. 누나는 팔짱을 끼고 눈썹을 찌푸린 채 내 캐리어를 노려보고 있었고.
나는 내 앞에서 강아지처럼 헥헥대고 있는 다은이에게 물었다.
“뭔지는 알고 소리 지르는 거야?”
“에린이 골라줬을 거 아니야. 그럼 이상한 선물은 아니겠지.”
“···정답.”
나는 다은이에게 에린과 함께 고른 코트와 가디건 등 가을용 옷 풀세트를 넘겼다. 에린의 센스가 좋아서인지 다은이는 진심으로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추석을 크리스마스 같은 날이라고 하니까 카드도 줬어. 이건 네 거.”
“내 거?”
“응, 아버지랑 누나 것도 써줬더라고.”
다은이는 카드를 받아들고는 펼쳐보더니 신기하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얘 이제 한국말도 잘 쓰네.”
“응?”
다은이는 내용은 보여주지 않고, 형체만 짧게 보여줬다. 외국인의 글씨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동글동글한 글씨체가 보였다. 한글이 거기에 있었다. 얘가 언제 이걸 배웠지.
“내 건 뭐냐?”
어느새 아버지가 다가와 있었다. 나는 아버지 몫의 술병을 넘겼다. 아버지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건 리찌가 인증해준 이탈리아산 최고급 와인이다.
“저번 것보다 귀하고 비싼 거예요.”
“···정말이냐?”
아버지의 입꼬리가 귀에 걸리려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와인이 담긴 박스를 소중한 보물 다루듯이 들고 다시 소파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이번에는 누나.
“자.”
“와! 대박!”
누나가 아니라 다은이가 반응한다.
누나에게 선물로 가져온 건 지난해에 이은 명품 시리즈, 가방이었다.
“이런 거 사오지 말라니까···.”
누나는 쉽게 손을 내밀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나는 가방을 누나에게 더 가까이 가져가며 말했다.
“손 아파, 나 놓칠 것 같아.”
“놓칠 것 같긴 무슨··· 야!”
내가 진짜 가방을 떨어뜨리자 누나가 황급히 받아 들었다. 누나는 혹시라도 가방이 망가질까 어중간한 폼으로 가방을 들고 있었다.
“이거 대체 얼마야, 저번에 네가 사온 것만 해도···.”
“저번보다 다섯 배 비싼 거. 누나 성격에 이거 못 메고 다닐 것 같으니까 중요한 일 있을 때만 메고 가. 평소에 메고 다닐 건··· 이거.”
나는 캐리어에서 가방 하나를 또 꺼냈다. 이것도 꽤 값이 나가지만 못 메고 다닐 정도는 아닐 거다. 누나는 다섯 배라는 말에 얼이 빠져 있었다.
“미쳤어?”
“누나는 그거 받아도 돼.”
“너 회사도 차렸다며. 그런데 돈을 그렇게 팍팍 쓰면 너는···.”
이러니까 받아도 된다는 거다. 평소 투닥거려도 결국 나한테 뭐든 양보했던 누나다. 다은이한테는 더 심했고.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하겠다고 누나는 너무 고생만 했다.
“나 집도 샀어. 이번 여름에 엄~청 벌었다고. 그리고 우리 선수들 몸값 다 합치면 2,000억은 넘어.”
이건 팩트다. 평소에는 그냥 동생들 같아서 잘 몰랐는데, 공신력 수위권을 다투는 한 언론에서 EPL에서 뛰는 선수들의 몸값을 평가했는데, 우리 선수들의 몸값을 합치면 2,000억이 훌쩍 넘었다.
“2,000··· 어, 억이라고··· 여, 영국에 집을 샀다고?”
“어, 사무실도 겸해서. 런던은 아니야. 참고로 빚 같은 건 없어.”
나는 자랑하듯 휴대폰을 꺼내 집 사진을 보여줬다. 직원들과 선수들과의 파티 사진이었다. 아버지도 어느새 다가오고, 다은이도 다가와 에린과 크리스를 찾으며 즐거워했다.
누나는 복잡한 얼굴로 가방 두 개를 든 채 내가 보여주는 사진을 보고 있었다.
*
“뭘 이런 걸 사오고···.”
방에 돌아온 태다현은 동생이 사온 가방을 조심스럽게 들어봤다. 일단 평소에 메고 다닐 가방이라는 녀석부터.
“이건 내 월급 값인데···.”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건, 남편 잘 만난 친구가 동창회 때 메고 왔던 가방과 같은 브랜드였기 때문이었다. 친구의 가방이 얼마나 하나 검색했던 적이 있었는데, 동생이 선물한 가방은 친구가 메고 온 가방보다 100만 원 가량 더 비싼 모델이었다.
“이걸 어떻게 평소에 메고 다녀···.”
태다현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지만, 입가가 실룩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 동생이 처음 선물했던 가방은 브랜드만 익숙하지 처음 보는 가방이었다. 태다현은 휴대폰에 가방에 붙은 택을 검색했고···.
“미친.”
저절로 욕을 내뱉어버렸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메고 다니라고 했는데, 이거 메고 다니면 불안해서 다니질 못할 것 같았다. 스포츠 에이전트가 돈을 얼마나 버는지는 모르겠는데, 일반적인 금전감각과는 달라질 정도로 많이 버는 모양이었다.
태다현은 문이 닫힌 걸 확인하고, 동생이 선물해준 가방을 끌어안았다.
“힛.”
그리고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웃었다.
*
“아버지, 토트넘 경기 볼 거라고요?”
“응, 손흥진인가 걔 잘한다고 하더만. 이 아빠가 축구는 잘 안 봐도 우리나라 선수들 경기는 보잖아.”
“그래요, 그럼 그걸 TV에 틀고···.”
나는 노트북과 패드까지 갖고 와 방송을 보기 위해 설치 중이었다. 거실 중앙에서는 다은이와 누나가 송편을 빚고 있었고, 아버지는 전을 부치고 있었다.
지금은 추석 연휴의 첫날밤이었고, 우리 가족들은 내일 제사를 지내기 위한 음식들을 만들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둘 다 외동이셨고, 친가 쪽과 외가 쪽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다 일찍 돌아가셔서 우리는 어릴 때부터 집에서 제사를 지냈다.
“뭘 그렇게 많이 켜?”
“우리 선수들 경기가 다 겹쳐버렸거든.”
휴가 중이지만 선수들 경기는 챙겨 봐야 한다.
지금 시각은 열 시 반, 열한 시에 모든 경기가 몰아서 열렸다.
토트넘 vs 리버풀, 브라이튼 vs 사우스햄튼, 맨시티 vs 스토크시티까지. 두 경기는 팀마다 우리 선수가 있는 작은 더비전이나 다름없었기에, 볼 경기가 줄어서 마음이 조금 편했다.
“그··· 손흥진 선수 상대 팀에 네 회사 선수가 있다고 했었나?”
“네. 맞아요.”
“크흠. 그래도 난 손흥진 선수 응원 하련다.”
“마음대로 하세요.”
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속칭 국뽕을 몹시 좋아하시는 분이라 어쩔 수가 없다. TV를 켜니 벌써 중계방송이 시작하고 있었다.
해설자와 진행자는 양 팀의 선발 라인업을 보여주며 어떤 전술로 나올지 예측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한국어로 중계를 들으니 몹시 신선했다. 둘 중 장세문 해설위원은 다음 주 방송에서도 볼 사이라 왠지 모르게 더 친근하게 들렸다.
“와, 크리스 있다.”
송편을 빚던 다은이가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다은이의 말대로 선발 라인업에는 No.17 Chris Allen 이라는 이름이 보이고 있었다.
A매치 데이의 여파인지 지난주 사우스햄튼 전에서 평범한 활약밖에 못 했는데, 이번 토트넘전에서는 체력도 올라왔을 테고, 공간도 많이 나올 테니 크리스의 활약이 기대됐다. 손흥진 선수도 응원하고 싶지만··· 나는 크리스를 응원해야지.
다른 중계의 라인업도 살펴보니 우리 에이전시 선수들이 전부 선발로 나와 있었다. 큰 키의 스토크를 상대하기 위해서인지 평소 로테이션 멤버였던 조던도 맨시티에서 선발이었다.
잠시 후, 화면이 터널에서 대기하고 있는 선수들을 잡았고,
“꺄아!”
다은이가 작게 소리쳤다. 크리스가 잠깐 화면을 스쳐 지나갔다. 선수들이 줄을 서서 입장하자 양 팀의 선발 라인업이 나왔다.
먼저 토트넘의 선수들이 포지션에 맞춰 하나하나 소개됐고, 리버풀의 선수들이 소개되던 와중에 아버지가 내게 말을 걸었다.
크리스가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서 체임벌린과 함께 막 팔짱을 끼는 장면에서였다.
“쟤가 네 회사 선수 맞지?”
“네, 제가 작년부터 키웠어요.”
“그래? 저 선수는 응원해야겠네. 골은 손흥진이 넣어야겠지만.”
“그러세요.”
나는 누나와 다은이에게 합류해 함께 송편을 빚으며 경기를 감상했다. 이 경기가 느슨해지면 저 경기가 긴박해져서 쉴 틈이 없었다.
중간에 누나는 휴가 와서까지 일하는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쉴 땐 푹 쉬어야 한다고 조잘거렸다.
전반전 동안 브라이튼의 한 골이 나온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 브라이튼의 골은 세바스티앙이나 줄리우가 전혀 관여되지 않은 골이었다. 베니시오 쪽에서 실수가 나온 것도 아니어서 마음 편하게 경기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후반전, 크리스가 골을 넣었다.